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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May 14. 2019

시네마테크 아카이브 특별전: 아녜스 바르다

아녜스 바르다 특별전이 열린다는 사실에 열심히 시간표를 궁리할 무렵, 갑작스런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작년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보며 그녀가 여전히 굉장한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었고, 올해 ‘낭트의 자코’를 보며 그녀의 작품세계를 하루라도 빨리 더 깊게 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부고 소식이 더욱 철렁했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이번 특별전에서 일곱 편의 작품을 보았다. 언제나 그랬든 그녀의 영화는 모두 훌륭했기 때문에, 여러 번 본 작품들도, 처음 본 작품들도 모두 좋았다. 한 편 한 편,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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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스 바르다의 필모그래피로 말할 것 같으면, 프랑스 누벨바그의 시작과 그 맥을 함께 한다. (실제로 그녀의 장편 데뷔 년도를 고려하면, 누벨바그의 본격적인 시작이 아녜스 바르다라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녀의 데뷔작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은, 실험적인 작법과 전위적인 양식을 다각도로 실험하는 누벨바그의 선조격 작품이다.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이야기를 (공간적 배경만 통일한 채) 병치시키고, 그 각각의 이야기 내에서는 극을 연출하는 방식을 달리함으로써, 불균형 속에서도 안정감을 혼재시키는 데 성공한 인상적인 데뷔작.


이와 더불어 언급해야만 할 작품은 바로 (그녀의 대표작이기도 한)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화적인 제약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이라 할 수 있을 이 작품은, 영화 속 가상의 시간과 영화 밖 실제의 시간을 하나로 융합하려 한다는 점에서도 ‘시네마적 시간’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한 작품들과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분 단위로까지 분절된 각각의 챕터와 그 챕터마다 변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서 구조적인 변혁을 시도했던 그녀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은 영화사적 성취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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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성의 목소리를 영화 속에 끊임없이 담아내고자 했던 그녀의 행보에도 역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야말로 그런 아녜스 바르다의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시일 것이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으며,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두 명의 여성을 소개하며 십수 년에 걸친 그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는 이 작품은 말하자면 아녜스 바르다의 애정이 가득 어린 여성의 연대기다. 이 작품에서 아녜스 바르다는 다름이라는 특성이 연대할 수 있다는 믿음을 통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그녀가 만든 다큐멘터리들이 숱하게 떠오른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 속에는 러닝타임 내내 아녜스 바르다가 인물에 대해 품고 있는 따스한 애정이 흘러넘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인물 하나하나를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을 복기하면,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진다.


이러한 주제의식을 정반대의 각도에서 다룬 것이 ‘방랑자’일 것이다. 집 없이 떠도는 방랑자(상드린 보네르)의 이야기를 역순으로 풀어가고 있는 이 영화의 원제는 ‘지붕도, 규칙도 없는Sans Toit ni Loi’이다. 여기서 ‘없다’라는 술어는 애초에 그것들이 ’필요 없다’는 단언으로 읽히는 동시에 ‘없다’라는 상태의 결과로 그녀가 겪게 되는 사건들로도 이해된다. 이는 그녀를 만났던 인물들의 인터뷰 쇼트를 마치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삽입함으로써 극대화된다. 결국 절반은 다큐멘터리의 작법을 갖고 있는 이 작품은 그렇기에 아녜스 바르다라는 감독의 인장이 깊게 찍힌 동시에, 여성 방랑자라는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도 날카로운 고찰을 더한다. 극의 시작과 끝이 이어지도록 만들어진 순환적 구조는 극중 인물을 굴레에 붙박이게 하고,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패닝 쇼트는 얄궂게도 이러한 구조를 내부적으로 더욱 더 강조하고 있기까지 하다. 구조와 화법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룬, 아녜스 바르다의 원숙한 영화세계 속 또 하나의 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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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녜스 바르다의 걸출한 능력은 그녀의 초기작부터 드러나 있다. 그녀가 세 번째로 만든 장편 ‘행복’이 특히나 그렇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작품은 이번 특별전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이제까지 본 아녜스 바르다의 작품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작품이었다.) ‘행복’은 누벨바그라는 영화적 사조를 밑배경에 깔아둔 채 아녜스 바르다가 생각하는 행복에 대한 상념을 담아내고 있는데, 이는 확고한 비판에 가깝다. 영화 내내 과할 정도로 선명하게 아름다운 색채들과 이야기 사이의 부조화, 그리고 극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사용되는 분절되고 역행하는 쇼트까지. ‘행복’의 허구적 실체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에서 온다고 아녜스 바르다는 색채와 구조를 통해 역설한다. 변명과 궤변에서 얻어지는 만들어진 행복. 그리고 그런 행복을 정당화하는 가족.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거울상으로 대조시켜 담아내는 지점에 이르자, 이 영화가 말하는 (겉으로는) 따뜻하지만 (속으로는) 차가운 현실 속에서 극의 제목 ‘행복’은 아득해진다. ‘행복’의 아녜스 바르다는 어느 측면에서는 가장 날카롭다.


정반대로, 아녜스 바르다의 가장 누그러진 모습은 ‘낭트의 자코’가 비추고 있다. 수십년을 함께 한 자크 드미의 마지막 순간에 만든 이 영화는, 그야말로 뭉클한 사랑영화인 동시에 탁월한 메타영화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인물을 영화로 담아낸다는 것, 그러면서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환기한다는 것. 이 세 가지를 모두 저릿하게 담아내고 있는 ‘낭트의 자코’는, 그녀가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있는 영화와 현실 사이의 관계 속에서 마치 꿈과도 같은 위치에 놓여있는 환상적인 작품이다. 말하자면, 아녜스 바르다의 가장 사적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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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자연스레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 떠오른다. 작년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인 이 다큐멘터리는, 카메라 안팎의 그녀를 끊임없이 환기한다는 점에서 아녜스 바르다가 만든 숱한 다큐멘터리들과 그 맥을 함께 한다. 카메라 속에 담아낸 얼굴들에 대한 믿음과 애정으로 빼곡히 들어찬 이 황홀한 다큐멘터리는, 삶의 풍경화를 액자에 넣어 품은 것만 같은 소중한 순간들로 가득하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로드무비와 같은 성격을 지닌 이 영화 속에서, 각자의 필모그래피 속에서 사진과 영화 사이를 오가던 아녜스 바르다와 JR의 협업은 결국 각자의 마을 속에서 분투하고 또 분투하는 군상들의 얼굴을 담아내는 데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얼굴들 마을들Visages Villages’이다.) 현실을 재구성하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 중 하나.


그렇게 끝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그녀의 마지막 작품은 마치 평생을 정리하고 여생을 맞이하듯, 자신의 영화세계를 한 발 한 발 되돌아보는 다큐멘터리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였다. (고맙게도 곧 정식 개봉 예정인 이 작품을 나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보았다.) 마지막 작품에 이르러 자신의 삶(영화)을 이야기하는 입장이 되어 무대에 홀로 앉은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더더욱 이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그녀의 삶을 정리하는 것만 같은 잊기 힘든 순간이었다. 한평생 카메라 뒤에서, 때때로는 카메라 앞에서 영화와 함께했던 아녜스 바르다는 떠나갔지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예술의 힘을 빌었던 그녀의 영화들과 그녀의 생각들은 앞으로도 남고 또 남을 것이다.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는 그래야만 한다는 그녀의 굳은 믿음이자 자신감이다. 떠올려보면,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서, 망자의 묘지를 찾은 그녀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했었다. 떠나간 그 곳에는 ‘행복’이 아닌 진짜 행복이 있을까. 떠나간 곳에서는 편히 쉬세요.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Reposez en paix, Agnès Var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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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012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La Pointe-Courte, 1955)

S013 낭트의 자코 (Jacquot de Nantes, 1991)

S014 방랑자 / Vagabond (Sans Toit ni Loi, 1985)

S015 행복 (Le Bonheur, 1965)

S016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 One Sings, the Other Doesn’t (L’Une Chante L’Autre Pas, 1977)

S017 5시에서 7시까지의 클레오 / Cleo from 5 to 7 (Cléo de 5 à 7, 1962)

S018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 Faces Places (Visages Villages,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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