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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Jun 12. 2019

2019년 5월 상반기의 영화들

'벤 이즈 백', '논-픽션' '로지', '서스페리아' 등 6편


R037 <에이프릴의 딸>

이런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이렇게 흡인력있는 필치로 끌어간다. 미셸 프랑코의 신작 '에이프릴의 딸'은 논쟁적인 소재를 흥미로운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점에서 그의 인장이 뚜렷하다. '애프터 루시아'에서 정서를 극한까지 밀고 가 혼란을 야기하는 데 주저가 없던 그는, 근작 '크로닉'과 '에이프릴의 딸'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혼란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서 두 가지 관념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데 집중하는 것만 같다. '크로닉'에서 그러한 관념이 죽음과 삶이었다면, '에이프릴의 딸'에서 그것은 욕망과 모성이다. 그리고 이 두 이야기 모두 그 기저에는 관습을 뒤흔드는 충격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방식은 지극히 예상 가능한 범위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 놓인 관객에게 고스란히 가중되는 극적 효과는 더욱 더 강렬하다. 극의 제목인 '에이프릴의 딸'의 스페인어 원제는, 사실 여러 명의 딸들을 의미하는 복수의 표현 '아브릴의 딸들Las Hijas de Abril'이었다. 극중 아브릴(엠마 수아레스)의 딸로 지칭될 수 있는 존재가 세 명 등장한다는 사실은, 이 영화의 제목을 떠올리자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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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의 딸 / April’s Daughter (Las Hijas de Abril, 2017)

dir. 미셸 프랑코

★★★☆



R038 <명탐정 피카츄>

기대치가 한없이 낮았음을 감안하면 생각 이상의 나쁘지 않은 완성도. 전형적인 전개와 예상 가능한 반전에도 불구하고, 단순하지만 가장 강력한 스토리라인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포켓몬이라는 어마어마한 캐릭터 파워와 라이언 레이놀즈라는 스타 파워를 적절히 활용하며 실사화 영화의 한계를 돌파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한다. 특히나, 이제는 (그린 랜턴, 데드풀 등으로 이어지는 맥락 속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하나의 익살맞은 브랜드로 각인시키는 데 성공하고 만 라이언 레이놀즈라는 배우의 존재감이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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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피카츄 (Pokémon Detective Pikachu, 2019)

dir. 롭 레터맨

★★☆



R039 <벤 이즈 백>

배우들의 연기에 힘입은 진진한 드라마. 피터 헤지스가 쓴 각본은 극을 관통하는 사회적 주제에 집중하는 저력이 있고, 인물을 묘사하는 줄리아 로버츠 그리고 루카스 헤지스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극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벤(루카스 헤지스)이 재활원에서 집에 돌아온 하룻밤 사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을 뿐인데, 사건들이 다소 성기게 배치되어 있는 점은 아쉽다고 하더라도 소재의 강렬함 자체가 극을 끌고가기에 모자람이 없다. 극의 근본을 이루는 질문은 두 가지로 보인다. (자신의 잘못으로 상처입은 이들에게) 돌아올 수 있을까. (자신의 숱한 과오가 반복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무너진 가족과 무너지려 하는 가족을 대비하면서, 그 원인이 된 인물과 이를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인물 사이의 긴장을 지켜보는 것 역시 흥미롭다. (각본과 연출을 담당한 피터 헤지스와 주인공을 연기한 루카스 헤지스가 실제 부자지간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극중 벤은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집에 돌아와 사고를 일으키고 재활원에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극의 시작과 끝에서 드러나듯, 이 영화는 이러한 굴레가 반복될 것인가, 라는 질문을 관객들의 마음 속에 깊게 응어리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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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이즈 백 (Ben Is Back, 2018)

dir. 피터 헤지스

★★★



R040 <논-픽션>

정말 한 시도 쉴 틈 없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클라우드 오브 실스 마리아' 혹은 '퍼스널 쇼퍼' 등의 근작에서 더 놀라운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는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각본이 빛을 발하는 그의 신작 '논-픽션'은, 최근의 그가 영화로 다루기 까다로운 내용을 흥미진진한 완성도로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전작 '퍼스널 쇼퍼'와도 묘하게 겹쳐진다. 훌륭한 각본을 바탕으로 불꽃튀는 연기 앙상블을 펼치는 줄리엣 비노쉬, 기욤 까네, 뱅상 맥케인, 노라 암자위의 연기 역시 인상적이다. 인터내셔널 타이틀을 '논-픽션Non-Fiction'으로 설정한 이 영화의 프랑스어 원제는 '이중 생활Doubles Vies’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겉보기에는 불륜을 주요 소재로 담아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의 격렬하게 대립하는 관계의 맥락에 주목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불륜 관계, 레오나르(뱅상 맥케인)의 경험, 점점 더 각광받는 전자책의 시대일 것이고, '보이는 것’은 부부 관계, 레오나르의 작품, 여전히 범람하는 종이책의 시대이다. 어느 쪽으로 보든, 겉으로 드러난 플롯 속에 서브플롯을 녹여내는 데 있어서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능력이 퍽 흥미로운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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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 Non-Fiction (Doubles Vies, 2018)

dir. 올리비에 아사야스 (프랑스)

★★★☆



R041 <로지>

연민하되 동정하지 않는다. 독려하되 설교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소재와 작법에 있어서 켄 로치 그리고 다르덴 형제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마치 두 감독의 작품세계를 교묘하게 섞어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로제타’를 한 데 모으면 이런 영화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까지 든다.) 연민하되 동정하지 않으며 진솔하게 인물들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에서는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진심이 느껴지고, 독려하되 설교하지 않으려 감정을 눌러담아 연기하는 배우들에게서는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사려가 배어난다. 다소간의 기시감에도 불구하고, 그 정공법적인 울림에 있어서 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 영화를 보고 나면, 어딘가의 ‘로지’를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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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 (Rosie, 2018)

dir. 패디 브레넥 (아일랜드)

★★★



R042 <서스페리아>

압도적인 에너지로 가득찬 기이한 괴작. 루카 구아다니노의 이전 작품들과는 거의 정반대의 지점에서 관객들의 혼을 흔들어 놓는다. 1977년 만들어진 다리오 아르젠토의 원작과는 아예 작법이 다른데, 이쯤 되면 시놉시스 혹은 표층적인 장르만 공유한 채 (러닝타임을 거의 두 배로 만든 데서 알 수 있듯) 아예 다른 의도와 다른 심층적인 접근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떠오른 대로 에둘러 말하자면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의 원안을 데이빗 린치의 감수 하에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연출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데, 언급한 세 감독의 특장점이 도드라지는 가운데 영화 내내 호러 내지는 공포보다는 중압감과 기괴함이 엄습해서 얼을 빼 놓는다. 거기에 독일의 근현대사 속 서브텍스트와 오컬트라는 장르까지 결합하자, '서스페리아'는 그 끝을 모르고 멀리까지 내딛는다. 그러니까 어느 측면에서 보더라도 루카 구아다니노 필모그래피에서 독보적인 돌출점을 차지하게 될 '서스페리아’를 요약하자면, 흑색 역사에 대한 적색 징벌, 정도의 시각적 은유가 가장 적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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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페리아 (Suspiria, 2018)

dir. 루카 구아다니노 (이탈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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