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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Jun 17. 2019

2019년 5월 하반기의 영화들

'알라딘', '기생충' 등 4편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R043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현실과 환상 혹은 현실과 영화를 뒤섞는 과정에서, 장단이 여실히 드러나는 괴짜 테리 길리엄의 괴작. 실제로 완성까지 25년이 걸렸다는 이 영화의 프롤로그에서처럼, 긴 시간을 벼른 만큼 역작이어야 할 테리 길리엄의 이 신작은 비정상 그리고 정상 중 어느 쪽의 취향도 제대로 포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실망스럽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영화(속 영화)의 맥락 속에서 캐릭터들은 남용되고 스토리는 오용된다. 극중 인물의 대사를 그대로 빌려오자면, ‘이유 없는 광기를 목격한 뒤에야 이유 있는 광기의 정도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나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에서 이유 없는 광기를 보았지만, 이유 있는 광기에 대해서는 일말의 단서조차 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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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The Man who Killed Don Quixote, 2018)

dir. 테리 길리엄 (미국)

★★



R044 <알라딘>

절대 실패하지 않는 디즈니의 영리한 실사화 전략은 '알라딘'에서도 유효하다. 이제는 거의 고전으로 여겨지는 30년 전의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하는 과정에서 현대에 맞게 과감하고도 적절하게 각색하는 지점이 흥미롭다. (특히 자스민(나오미 스콧)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측면에서 그렇다.) 뮤지컬로서 극에 적절한 탄력과 폭발을 선사하는 ‘A Whole New World’ 그리고 ‘Speechless’ 등의 넘버가 귀에 감기기도 한다. 세 명의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들 각각이 좋은 인상을 남기지만, 누구보다도 지니를 연기한 윌 스미스가 극 전체를 지탱할만한 매력을 선사한다. 다만 뮤지컬 영화로서도, 블록버스터 영화로서도 거대 프랜차이즈를 다루는 디즈니의 작업방식 속에서 가이 리치의 맛깔나는 연출이 전혀 살아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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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Aladdin, 2019)

dir. 가이 리치 (미국)

★★★



R045 <기생충>

이렇게 대중적인 화술로 이렇게 다층적인 화제를 녹여내는 봉준호의 능력. 정말이지 친절한데 너무나도 복잡하다.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 극중 대사들을 빌어오자면) 예상치도 못했던 소재를 '상징적’으로 다루거나, 사회의 단상을 블랙코미디로 ‘시의적절’하게 녹여낸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를 기념할 만한 황금종려상의 주인공) ‘기생충’은 생물을 통해 환유하는 사회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와 동시에 구렁텅이 속의 인물들을 다루는 부조리극이라는 점에서 그의 이전 작품들을 에둘러 경유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기생충’은 감정적 운동의 영화다. 예컨대 ’설국열차’에서 전후 방향으로의 움직임이 중요했던 것처럼, ‘기생충’에서 중요한 것은 상하 방향으로의 움직임일 것이다. 어떤 가족은 계속해서 계단을 내려가지만, 어떤 가족은 당연하게 계단을 올라간다. 그들의 ‘보금자리’는 철저히 서로 다른 위계에 놓여있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움직임의 ‘반동’이다. 내려가야 했던 이들이 올라가려 할 때, 공고했던 구조는 무너지고 결속되던 연대는 성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결국 감정적이다. 예컨대 ‘설국열차’의 마지막에 엄습하는 감정적 여진이 ‘기생충’에도 존재한다. 숱한 전복의 기운에도 불구하고, 통쾌할 뻔 했던 순간들마다 깨닫고 나면 무지막지한 무력감이 인물을 (그리고 관객을) 휘감는다. 그렇게 이야기의 끝에 결국 남겨지는 것은 하강하는 움직임이다. 이와 연결지어 볼 때, 영화의 제목인 ‘기생충’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제각기의 독법에 따라 양가적인 특성을 지니게 된다. (이 영화의 마지막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 지독한 영화 속에 악은 없다. 악이 만일 존재한다면, 그건 이 기이한 이야기를 빚어내게 한 사회 그 자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기생충’은 어떻게 보아도 봉준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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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 Parasite (기생충, 2019)

dir. 봉준호

★★★★



R046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굉장히 실망스러운 속편. 가렛 에드워즈의 전작 ‘고질라’를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괴수영화 자체로의 완성도로 보아도 그렇다. 2014년 ‘고질라’에서 고질라를 거의 보여주지 않음으로 얻어졌던 이율배반적인 서스펜스는 이번 영화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거대한 괴수를 많이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그 효과가 발휘될 것이라 믿는 연출은, 그렇기 때문에 전혀 감흥을 주지 못한다. (거대함을 거대함으로 묘사할 줄 모르는 연출은 퍽 지루하다. 예를 들어 ‘퍼시픽 림’과 ‘고질라’에서의 그 감흥들을 이 영화는 전혀 살려내지 못한다.) 더군다나 인간들의 이야기는 도무지 왜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으며, 괴수의 이야기와 한데 섞이지도, 독립적으로 다른 플롯을 구성하지도 못한 채 주위를 뱅뱅 돌다가 뜬금없이 종결된다. 워너 브라더스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유니버스를 끌어나갈 생각이라면 꽤나 대담한 쇄신이 필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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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Godzilla: King of the Monsters, 2019)

dir. 마이클 도허티 (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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