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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피에 Mar 27. 2023

소가 그리워서, 외양간을 못 고치겠어요.

일상 몽타주


무릎이 이상했다.

축구하다 넘어지는 건 예사였고,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아주 높은 곳에서 넘어지기는 했다. 무릎으로 떨어진 것도 있었다.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의욕을 앞세우다 보니 무리하게 공을 향해 점프했다. 상대 키퍼의 펀칭을 맞았고, 흙바닥으로 추락했다. '도르륵'. 내 무릎에서는 처음 듣는 귀여운 소리가 들렸다. 영하의 날씨라 바닥이 깡깡 얼어, 조금의 충격흡수도 없었나 보다. 내 왼쪽 무릎은 모든 무게를 감당했고, 나는 처음으로 십자인대라는 녀석과 조우하게 되었다.  

십자인대는 무릎 관절이 앞뒤 좌우로 잘 움직이도록 잡아주는 녀석이다. 전방십자인대와 후방십자인대가 십자가 형태로 교차하는 모양에서 십자인대라 부른 듯하다. 나는 후방십자인대가 30%가량 파열되었다. MRI를 본 담당의는 재건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경우, 미국에서 사망한 미식축구선수의 아킬레스건을 구매하면 된다는, 오싹한 이야기였다. 다행히 나는 나이가 어리고, 파열 정도가 경미하니, 수술 부작용이나 기타 변수가 적은 '자가재생' 방향으로 진행하자는 것이 의사 선생님의 의견이었다. 무릎으로는 한국에서 손에 꼽는 분이었기에, 이견 없이 'OK'했다.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라고, 선생님은 나를 안심시켰다. 수술실은 마치 악당 실험실 같았다. 무시무시한 공구들이 즐비했다. 분위기 파악도 되지 않았는데 시술이 시작되었다. 젊으니까 피부에만 부분마취를 해도 된다는 말은, 드릴이 정강이뼈를 뚫는 동안 맨 정신이라는 뜻이었다. 한 달 보름 가량의 깁스, 6개월 가량의  재활이 이어졌다. 선생님은 경고했다. 앞으로 몇 년간은 왼쪽다리에 무리가지 않게, 걸을 때도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이때만 해도 십자인대 부분파열이 얼마나 큰 나비효과를 가져올 지 알지 못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2012년에 다친 무릎은 나에게 파국을 초래했다. 화근은 오른쪽 다리로만 몸을 지탱하는 행위였다. 오른쪽 다리의 종아리 근육, 아킬레스건, 햄스트링, 무릎에 무리가 누적되었다. 결국 지금은 오른쪽 다리에 만성적인 통증과 잔병치레가 끊이질 않는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왼쪽 무릎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무의식 중에 자세를 삐딱하게 바꿨고, 척추가 한쪽으로 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로 인해 허리와 목 디스크에 무리가 생겨, 항상 신경 쓰지 않으면 심각한 통증이 찾아온다. 그래도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 웬만해선 병원에 안 가는 성격이었는데, 지금은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얼른 병원으로 달려간다.

깨달음었다. 균형을 지키고 있는 것들의 존재감이었다. 관련한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한 기업의 이야기다. 기업의 높으신 분께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직원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네트워크 유지보수 인력을 감축했다고 한다. 곧바로 네트워크 장애와 보안 문제가 연달아 터져, 다시 엔지니어들을 불러들여 안정화했다는 해프닝이었다. 나도 그랬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두 다리로 서있는 것이 너무도 당연해서, 그것이 어떻게 균형을 지키고 있는지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그 당연한 균형이 깨지고 나서야 뒤늦게 그것을 이루는 존재를 인식했고,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나의 삶에는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존재들이 균형을 위해 고군분투 중일 것이다.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활동, 가족관계나 인간관계에도 그 존재들은 균형을 지키는 중이다. 나 자신도 어떤 균형에서는 그런 존재일 것이다. 내게 문제가 생기거나 다른 존재에 문제가 생기면, 균형은 무너지며 나비효과가 시작된다. 그러고 보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의 경우는 그나마 괜찮은 상황이다. 다음 소를 위한다는 극복 의지도 보인다. 하지만 균형은 한번 붕괴하면 복구가 어렵고, 고치려면 또 다른 붕괴가 발생하기도 한다. 마치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다가 소가 그리워 눈물 나고, 울며 망치질을 하다 손을 찧고, 사다리에서 떨어지고, 그러다 더 이상 외양간에 발을 붙이지 않게 되는, 그런 상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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