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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피에 Feb 21. 2022

나는 이제, 나와 함께 간다.

영혼을 위한 따뜻한 뚝배기

"괜찮아, 별거 아니야."

"이번에 실패했다고 해서 매번 그러라는 법은 없어."

"너 정도면 충분히 가능해, 도전해 봐."


나는 지인들의 용기를 북돋곤 한다.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은 나의 평범한 습관이며 일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다가와 고민을 털어놓았고, 위로를 얻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다양한 사람들을 겪다 보니, 이런 내 성격이 보편적인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왜' 그러는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것들은 전부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려고 노력했다. 착한 어린이가 되려고 했었고, 바른 청소년이고자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 속의 나는, 불안과 긴장이라는 철장 속에 갇혀있었다. 사람들의 기분이 나빠 보이거나, 갈등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내 잘못인지를 걱정했고, 불안에 휩싸였다. 그때는 '난 왜 그럴까?'에 대한 의문을 가질 여유조차 없었다.


부모의 눈치를 살피고, 선생님 눈치를 살폈으며, 심지어 친구들의 눈치도 살폈다. 어린이답게 웃고, 청소년답게 쾌활해야 했는데, 나는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남의 감정과 평가에만 신경이 곤두서 있는 동안, 나의 내면은 억압될 수밖에 없었다.  



삶의 대부분 동안 불안과 우울에 시달렸지만, 발버둥 치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어쩌면 '연기'에 끌리고 몰두했던 이유 역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심리에서 출발했던 것 아닐까 싶다.


심리학이나 연극치료를 공부하기도 하고, 심리상담을 받는 등 극복을 위한 과정에서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홀가분했다. 난 어려서부터 내가 틀려먹은 아이인 줄 알고 살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 만으로도 고통의 굴레에서 일부 해방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실타래가 풀려나가듯 고통의 사슬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상담사 선생님 역시 이리 짧은 시간에 내담자의 상태가 긍정적인 변화를 겪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그렇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했던 다양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은 것 같다고 하셨다. 혼자 극복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상황이었을 텐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 견뎌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힘'이라는 말 한마디가 내 경험을 완전히 재인식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시달려온 우울과 불안의 시간이 단순한 고통의 시간들이 아녔음을,

견디고 극복하기 위해 힘을 내고, 키워왔던 시간이었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었다.  


요즘은 내가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불안과 우울이 없는 삶을 경험하는 중이다. 가만히 있을 때 우울과 불안이 침투하지 않는다 것은 엄청난 행복이었다. 나는 사실 우울과 불안이 가득한 상태, 그것이 보통의 삶인 줄만 알고 평생을 살았다. 지금의 상태로 그때의 나를 바라보면 어린것이 너무나 가엽다.


그동안 놓쳐버린 것들도 많았다. 사랑을 갈망할 뿐 받아도 느끼지 못했고, 작은 행복이 눈앞에 있어도 볼 수 없었다. 세상 모든 것은 나를 거부한다고 느꼈고, 나는 존재하지 않는 도피처를 찾아 헤매며 무능력한 나를 할퀴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것은 마치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무채색에서 총 천연색으로 바뀌는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그렇게 내면의 어려움들이 대부분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던 중,

우연히 내 안에 숨어있던 어린 '나'가 고개를 들고 나타났다.

어린 나를 깨운 주문은 '안돼'였다.


어린아이를 둔 친구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보드게임을 마치고 부속물을 정리하는데,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친구의 아이는 봉투 하나를 '획'하고 집어 들었다. 부속물이 우수수 떨어졌고, 나는 '안돼, OO야.'라고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어질러지는 걸 막기 위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영문을 몰라 당황스러웠다.


친구의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안돼'라는 말은 아이들에게 세상이 무너지는 무서운 말이라고 했다. 안돼라고 하기보다는 '~하면 ~니까 ~하자'라고 잘 알려주면 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그때 알았다. 어린 내가 가장 두려워하고 슬퍼했던 것은 바로 이 '안돼'와 맞닿아 있음을.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기억들이 스쳐갔다. 나는 제대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항상 찡그린 표정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무언가 행동을 하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금지'되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안돼'라는 말을 들을까 무서워 긴장한 채로 인상만 쓰고 있었던 것 아닐까 싶다. 정확히는 '거부'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나는 평생을 거부당하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 쳐왔다. 그래서 착한 아이였고, 착한 청소년이었으며, 지금도 착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 마음이 편안했던 적은 거의 없었고, 매일 불안과 우울에 젖어 있었다. 술은 그러한 고통을 한 번에 털어주기도 했지만, 더 큰 자괴감과 우울함을 불러와 악순환을 만들어냈고, 자기 파괴 수준까지 나를 밀어 넣었다.


심리상담을 통해 어느 정도 나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지만, 가장 깊숙이 숨겨져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는 어려웠다. 거기 숨어있던 어린 나를 발견해준 것은, 바로 친구 아이가 터뜨린 '울음'이었다. 나는 그 서러운 울음에서 내 삶을 지배하던 '두려움'을 보았고, 오랫동안 숨죽이고 있던 나의 어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제 어린 나에게, 그 모든 것들이 별거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줄 차례였다.



'30년이 넘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근데 있잖아, 다 괜찮아. '안돼'라는 말을 들어도 상관없어. 그러니 거부당하는 것이 무서워서 포기하거나 절망할 필요 없어. 거부는 너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 아니야. 거부는 그저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자연스러운 의사표현일 뿐이야. 그러니 괜찮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네가 사랑하고 꿈꾸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해. 그럼 분명히 행복해질 수 있어.
                                                                                              - 어린 나에게, 36세의 내가.'


나는 이런 내면 아이의 존재가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이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린 나를 다독이는 행위가 나를 홀가분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내 세상은 한층 더 다채로운 색깔로 채워지고 있다.    



앞으로 내 세상에는 쉽게 어둠이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거부가 두렵지 않다.  

이제 나는 어린 나의 손을 잡고 세상을 향해 걷는다.

나는 이제, 나와 함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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