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답답하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심리학이나 철학 관련 서적을 읽는 편이다. 대학교에 다닐 때 읽었던 '설득의 심리학'이 너무 즐거웠던 기억이 있었고, 아버지께서 추천해 주신 '에르하르크 톨레'라는 영성가의 책으로 나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런 버릇이 생겼고, 그럴 때마다 우울과 불안이라는 녀석들에게 대처할 무기들을 마음의 책장에 한권씩꽂는것이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녀석들은 때가 되면 다시 '짠' 하고 나타난다. 마치 사계절이 돌고 돌듯, 이 녀석들도 때가 되면,
'몇 주 간 잘 놀았지? 다시 고통을 느껴볼까?'
하며 찾아온다.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고, 죽음조차도 초월할 것 같이 단단했던 내 마음의 무장이 , 단 한순간에 쿵 하고 해제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못하겠다.'
무기력함이 온몸을 지배하고, 똑같은 문제에 대해서 정반대의 평가를 내린다. 이럴 때마다 나는 새로운 무기를 찾아내야만 했고, 이번엔 우연히 '마음 가면(브레네 브라운)'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핵심은 이랬다.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 용기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로는 두려움을 감추는 것이 용기라고 했는데, 어떻게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 용기 일 수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책을 읽고, 또 넷플릭스에서 저자의 강연을 보고 난 뒤에 나는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말을 인용하며 설명하곤 했다.
용기는 계속하는 힘이 아니다. 용기는 힘이 없어도 계속하는 것이다.
힘이 없어도 계속하는 것. 내가 목표를 달성하기엔 너무 취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계속 도전하는 것이 용기라는 것이었다. 나는 큰 울림을 느꼈다. 저자가 인터뷰한 남성들이 보이는 취약성 감추기와 비슷한 것이 나에게도 있었다.
1. 강한 사람.
남자들은 취약성을 보이는 것을 치명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감정표현, 그중에서도 우는 행위가 굉장히 금기시된다. 그러다 보니, 억눌린 감정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가끔 날을 잡고 울기 위한 영화를 본다. 단골 소재는 '바보의 승리'같은 내용이다.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배척당하고, 억압당했던 주인공이 조력자의 도움과 순수한 목적을 통해 세상을 뒤엎고 목표를 이루는 내용이다. 물론, 목표가 좌절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루려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모습에 이미 내 슬픔은 충분한 위로를 받는다.
내용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나는 울기 위해서 그 영화를 본다. 울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고 그래 서도 안되기 때문에 그렇다. 눈물을 흘리는 것.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취약한 것이고, 취약한 것은 나약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길은 내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힘들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항상 앞서왔다. 그러다 보니 억눌린 감정들이 영화를 통해 폭발했다. 그리곤 또 되뇌이곤 한다.
'슬퍼서 운 거 아니야. 감동적이라서 운 거야.'
2. 좋은 사람.
남학생들의 세계에서는 군림하거나 굴복하거나로 나뉜다. 그 치열한 세계에서는 노선을 정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군림하려는 녀석들에게 좋은 타깃이 됐다. 중학교 때는 항상 긴장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원치 않는 싸움도 많이 했고, 불안감과 우울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참 좋은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학교에서 가장 힘이 강한데도 군림하려 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을 평등하게 대해줬고, 특히 나를 참 재밌어했다.
'말하는 게 겁나 웃겨'
그게 그렇게 기분 좋았다. 내가 던지는 농담에 박장대소하는 친구들의 모습. 긴장감이나 불안감은 없고, 웃음만이 가득한 세상.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
스스로를 거슬리는 인간, 가치 없는 인간, 사랑은커녕 도움도 주지 못할 인간이라고 여겼던 내가, 모두를 즐겁게 하는 좋은 사람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들을 재밌게 해줘야 한다는, 잘해줘야 한다는 강박으로 살았다. 나의 감정이나 불안함은 감추고, 사람들에게 포커스를 맞췄다. 사람들이 웃지 않으면 불안했고,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으면 망상이 펼쳐졌다.
이것 말고도 취약성을 감추기 위해서, 좋은 사람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나 자신이 가엽다.
이런저런 농담으로 감정을 감추고, 실패할 거 같으면 너스레를 떨며 둘러댔던 날들이 너무 많다. 좋은 사람, 멋진 사람이 아니어도 되는데.
그냥 편하게,
'나 잘 못해. 좋은 사람도 아니야. 근데 상관없어. 그래도 할 거니까'
라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
앞으로는 취약성을 감추지 않겠다. 힘들다고, 어렵다고, 자신 없다고, 별 볼 일 없는 놈이라고, 그런데도 한다고. 그렇게 말하려 한다.
친구들은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된지 한참이 되었는데. 나는 아직 성공한 자식, 성공한 예술가가 되려면 한참 멀은 것 같다.
내 인생에선 내가 주인공인데, 주인공이 참 취약해 빠졌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이 참 가상하다.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