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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fille Dec 21. 2019

<스틸 라이프>, 울림으로 담아낸 거대한 세계

지아 장커 <스틸 라이프> (2006)

지아 장커의 <스틸 라이프>를 보고 무력해졌다. 이렇게 큰 스케일의 영화는 처음이었다.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의 예산과 기술력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스틸 라이프>는 작은 단위라고 할 수 있는 개인의 고독한 감정에서 시작해서, 2000년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인들의 삶과 사회를 웅장한 풍경 속에서 그려낸다. 두 시간도 안 되는 러닝타임에 모든 요소가 하나도 소홀히 취급되지 않은 채 담겨 있다.

<스틸 라이프>는 댐 건설로 물에 잠겨가는 도시, 중국 싼샤에 누군가를 찾으러 온 두 사람의 이야기다. 16년 만에 아내와 딸을 찾으러 온 한산밍과 2년 동안 연락 두절된 남편을 찾으러 온 셴홍.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던 배우자를 찾고 있다는 점 이 외에 두 남녀는 서로 다른 나이대에 다른 직업군(광부, 간호사)으로 별 연관이 없다.




같은 도시 속에서 서로의 배우자를 찾는 한산밍과 셴홍의 이야기는 섞이지 않은 채 평행적으로 진행될 뿐이다. 한산밍의 얘기로 시작해서 셴홍의 이야기로 넘어 갔다가 그녀가 쎈샤를 떠나면 다시 한산밍의 이야기로 돌아오는 식. 지아 장커는 두 이야기를 하나로 엮고 싶지 않았다며, “나는 두 명의 자리를 가면서 그 둘이 함께 살고 있는 시간을 찍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서로 관계없는 광부와 간호사의 모습은, 이들과 같은 문제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많은 다른 사람들을 짐작하게 한다. 자본주의에 빠른 속도로 적응하고 있던 중국 사회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해체되고 있는 가족들.

중국 인민 화폐 10위안에도 그려져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했던 싼샤. 댐 건설로 물에 잠겨가며 이주민들을 양산해내는 이 도시는, 중국의 급격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배경이다. 한산밍의 아내가 살던 곳도 십 년 전에 물에 잠겼다. 도시의 낡은 건물들은 다이너 마이트로 파괴되는 한편 다른 곳에서는 새 건물들이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다. 누군가를 찾고 있는 이방인의 시선은 아름다운 쌴샤의 풍경과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산수화도 같은 풍경 속 개인의 모습은, 인간이란 자신을 둘러싼 자연 및 사회 속,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작은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되새긴다.




그리고 영화는 주인공 이외에 고단한 삶을 지탱하는 쎈샤의 사람들을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으로 담아낸다. 오프닝 씬, 카메라는 싼샤로 향하는 배를 탄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주의 깊게 바라다가, 천천히 주인공인 한산밍에게 이른다. 주인공은 사연을 가지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에 불을 붙이는 어린 소년, 거리에서 셴홍을 붙잡고 자신을 하녀로 써달라고 부탁하는 16살 소녀, 건설 노동을 하다가 무너진 건물에 깔려 죽음을 맞는 청년, 매우 위험해도 보수가 괜찮다면 일하겠다고 말하는 광부들 등. 싼샤에서 두 주인공이 지나치게 되는 사람들을 통해, 감독은 2000년대 중반 중국 사회를 예민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배우가 아닌 실제 사람들의 모습은 영화에 사실감을 더한다.

큰 (grand) 영화, 위대한 영화인 <스틸 라이프>는 많은 것을 담아내려는 야심을 가진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설명과 상황을 절제하며 관객에게 상상력을 여지를 남기고 울림을 선사한다. 그렇게 영화의 세계는 더욱더 확장된다. 영화의 마지막, 한산밍이 쎈샤를 떠날 때, 한 건설 노동자가 철로 된 가는 줄을 타고 건물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이동한다. 이 위태로운 삶의 모습은 또 하나의 세계를 열며 영화를 마무리 짓는다. 당시 혼란스러운 중국을 살아가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영화 <스틸 라이프>는 거뜬히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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