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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fille Apr 30. 2021

나의 첫 중편 영화 2

내가 꿈꾸던 영화, 관객이 바라는 영화

그리고 2019년 9월 초, 영화를 찍었다.


프로덕션에 큰 비용이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외부 촬영이 대부분이었고, 최소한의 스태프로 조명도 별로 치지 않고 가볍게 찍으려 했다. 기술적 퀄리티보다 현장에서 배우들의 에너지가 더 중요한 미니멀한톤의 영화였다. 문제는 찍어야 하는 씬의 양이었다. 총 26씬을 11일에 걸쳐 찍었다. 아무리 찍기 쉬워 보이는 영화라도, 긴 촬영 기간은 그만큼의 소비와 규모를 뜻했다. 사실 11일 촬영은 매우 짧았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영화가 전체적으로 어떤지 파악하기 위해 빠르게 가편집을 했다. 시나리오 내용에 맞추어 컷들을 모아 놓으니 오십 분이 넘었다. 대사가 많았는데, 여자주인공이 러시아 친구라 불어로 대사를 치는 속도가 살짝 느렸기 때문이다. 십 분만 더 채우면 장편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올랐다. 살짝 짜치는 부분이 있어도 나름 신선한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촬영을 끝낸 지 얼마 안 된 시기, 본인 영화에 대한 객관화가 잘 안 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편집을 전공으로 하는 친구에게 편집을 맡겼다. 가끔 그 친구가 주관적으로 불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는 씬들을 잘라내면, 일단은 시나리오 내용대로 다 붙여넣자고 고집했다. 그리고 오케이컷들을 다듬은 편집본을 지도 교수에게 보냈다. 젊은 교수님과 나는 비슷한 영화관을 공유했고, 그는 언제나 내 시나리오를 응원했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을 마친 내 프로젝트에 그가 무슨 말을 할까 설렜다. 나는 내 영화의 단점, 연출에서의 실수를 알았지만, 프리프로덕션을 비롯한 11일의 대장정을 거친 나 자신이 대견해서 무엇보다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는 영화가 너무 길다고 했다. 가끔 연기가 안 좋은 부분을 걷어내야 하는데, 편집 없이 긴 쇼트로 이루어진 대화씬들이 영화의 대부분이라 문제라고 했다. 편집에 리듬이 필요하다고? 나는 편집으로 리듬을 살리기보다 배우들의 대사로 쇼트 내부에서 리듬을 만들고 싶었고, 우리가 그런 영화를 함께 꿈꾸고 있지 않았나 자문했다. 관객들이 약간의 거리를 둔 채 배우들의 리액션과 제스처를 자유롭게 관찰하고, 은근한 유머에 웃고, 영화 속 감정에 휩쓸리기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포함한 영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주변 인물이 많은 게 영화의 매력일 거라고 했던 그는, 주변 인물들의 작은 이야기 설정에 큰 관심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주인공이 어떻게 행동할지가 관건이라, 좀 더 집중하는 게 나을 거라고. 그리고 시나리오 내용 그대로 영화를 고집하지 말고, 스타일을 바꾸는 것도 고려해보라고 충고했다.


속상했다. 나의 연출 의도를 부정하는 비평이었다. 이 영화는 그동안 내가 옳다고 믿은 영화 미학적 입장을 반영하는 작품이었다. 일상 속 대화의 중요성, 평범한 말들 사이에서 커지는 갈등, 주인공은 제각각의 사연으로 힘차게 돌아가는 세계들에 둘러싸여 있어야 했다! 지금이 아니면 내가 원하는 대로 영화를 하는 게 더 힘들어질 텐데 이제 와서 내가 원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라니, 말도 안 돼. 그러면서도 왜 기존의 대다수의 영화들이 반복된 편집으로 대사씬을 처리하는지, 왜 주인공 서사에만 집중하고, 주변 인물들은 마치 소품처럼 곁들어 나오는 방식으로 존재해야만 하는지, 이해가 갔다. 아무래도 경험의 산물일 것이다. 관객들은 보다 적극적인 연출과 빠른 전개를 원하고, 기존의 방식이 스토리텔링에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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