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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Oct 20. 2017

권력자의 만행을 은폐하는 사회

헐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몰락

헐리우드가 발칵 뒤집혔다. 

유명 영화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폭행 사건이 줄줄이 터지면서 이는 개인의 범죄에 그치지 않고 연예계 성불평등 문제로 까지 확산되고 있다. 웨인스타인은 거물급 영화 제작자로 지난 수십 년간 그가 제작한 영화들 대부분이 오스카상에 호명되거나 수상을 했다. 

처음 그의 성폭행 기사를 접했을 때, 헐리우드에 그런 난봉꾼이 한둘이겠어? 뭐 뻔 한 이야기겠지. 힘 있는 권력자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약자를 폭행하는. 익숙하다 못해 진부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모두가 그의 만행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는 것이고 그는 탁월한 능력으로 승승장구, 더 큰 힘을 가지고 더 많은 약자를 괴롭히면서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고-그는 민주당의 주요 후원자이기도 하다- 요즘 유행하는 ‘페미니스트’인 척 했다는 것이다. 


미라맥스의 설립자이자 수많은 명작들을 제작한 하비 웨인스타인.


자신이 웨인스타인의 피해자라고 밝힌 여배우들 명단을 보면 소위 금수저라고 불리는 배우들도 많다. 아무리 유명 제작자라고 해도 기죽지 않을 만큼 연예계/영화계에서 방구 좀 뀐다하는 집안의 그녀들도 포식자 앞에서는 무력했다. 그녀들은 그가 자신의 커리어를 망칠까봐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다행히(?)도 그녀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했지만 그렇지 않은, 무명의 피해자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을 거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헐리우드는 –가보지는 않았지만- 젊고 아름다운 배우 지망생들이 득실대는 곳이다. 재능이 있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름답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닌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다. 그 절실함이 ‘배역을 따내기 위해서라면 당신과 침대에 눕겠어요.’ 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그 절실함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자만. 그 자만이 여성들을 희롱하고 우롱해도 된다고 합리화 시키는 것은 아닐까. 

미국의 디자이너 도나 카렌은 젊은 여배우들을 비난했다. 그들의 행실이 성추행을 자초한 거라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한 것이다. 물론 자신의 성적 매력을 이용해서 원하는 것을 획득하는 여자들도 있고, ‘성추행’을 역 이용하는 여자들도 있을 것이지만 이 사건의 요지는 그게 아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피해자들.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웨인스타인은 어리고 아름다운 여성들을 그들의 인생을 가지고 협박했다. 그들의 절실함과 간절함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문제 제기를 했을 때 이를 막기 위해 자신의 힘을 다시 한 번 이용했다. 자신은 그럴 능력이 되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밖으로는 그를 욕하면서도 그와 같은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그는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들었다. 좋은 영화를 만들고 진보 정당을 후원하고 사회적 이슈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재능 있는 여배우들에게 기회를 주니 여배우들을 추행하는 것쯤이야. 그가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때린 것도 아니고, 배우들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지거나 최소한 가진 것을 잃지는 않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지 않은가. 역겨운 발상이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이런 성추행을 별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헐리우드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어? 하면서 말이다.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일은 세계 어디에서든 언제고 일어난다. 그리고 무서운 것은 강자의 폭행을 알면서도 ‘우리는’ 모르는 척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이런 반응이 권력만 가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옳지 않은 걸 알지만 권력자는 그래도 되니까. 라는 인식을 가지게 하는 것 아닐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


어느 영화 속 대사처럼 이것은 권력자가 약자들을 얕잡아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권력자들을 향한 말일 수도 있다.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는 권력자가 자신의 방에서 술 한 잔 하자고 했을 때, 딱 잘라 거절할 수 있는 20대 초반의 여자들이 몇이나 될까. 그의 추잡한 명성을 알면서도 피하지 못한 여자들을 손가락질 하고, 용기 내어 고백한 피해자들을 욕하는 이상한 상황이 일어나는 것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강간당한 여성에게 네가 그렇게 야하게 입고 다니니 제가 자초한 일이야 하고 비난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웨인스타인의 피해자뿐만 아니라 많은 배우들이 연예계에서 겪은 성추행 경험을 SNS를 통해 고백하고 있고 이는 사회 각 분야로 번지고 있다. 피해자 증언이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성폭력이라고 알고 있는데, 용기를 낸 그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결국 피해자들의 용기가 이 사건을 수면위로 올린 것이다.

그래도 그녀들은 이미 성공한 배우들이지만 회사에서 사회에서 혼자 아파하고 있을 성폭행 피해자들이 자신의 직업과 안전에 위협을 느끼지 않고 용기를 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힘을 가진 자들의 권력을 이용한 폭행이 없어지는 날은 그 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추행이 추행인지도 모르는 인간들을 감안하면 더더욱.


이번 웨인스타인 사건은 단순히 유명 배우들이 개입된 스캔들이 아니다. 틀림없는 성범죄이고, 약자를 대하는 권력의 태도와 권력자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를 명백하게 보여준 하나의 사례이다. 이번 사건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모르겠지만 몇몇 배우들의 고백과 웨인스타인의 법적 처벌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추신 

이와는 비교도 안 되게 충격적인 사건이 몇 년 전 한국에 있었다. 한참동안 온 나라가 들썩일 만큼 시끄러웠던 이 사건은 유야무야 묻혀 버렸는데 그때 그 가해자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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