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환경 문제-[쓰레기]
미국에서 활동 중인 브라질 출신의 비쥬얼 아티스트 빅 무니즈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외곽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쓰레기 매립지 ‘자그딤 그라마초’의 쓰레기들을 작품으로 재창조했다. 다큐멘터리 [웨이스트 랜드]는 그가 카타도르(재활용 픽커)들과 함께 한 작업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고, 영화는 전 세계 관객들의 극찬을 받았다. 쓰레기가 예술로 변하는 기적 같은 순간과 쓰레기 더미를 뒤져 재활용품을 골라내는 빈민층들이 작업 참여로 성취감을 느끼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이 감동적인 것과 별개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규모의 쓰레기 처리장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대개는 더 이상 못 쓰게 된 물건을 버릴 때 ‘쓰레기’를 버린다고 하지만 더 이상 못 쓰게 된다의 기준은 ‘필요’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개인마다 다르다. 지금은 필요에 의한 소비도 소비지만 ‘갖고 싶다’는 욕구를 위한, 소비를 위한 소비를 하는 시대다. 갖고 싶은 것은 끝이 없고 가치를 잃은 것은 쓰임을 다 하기도 전에 버려진다.
영화에서 계속해서 보이는 산처럼 솟은 쓰레기 더미를 보면서 저것은 인간이 쓰레기로 쌓아올린 바벨탑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저 많은 쓰레기들을 어떻게 처리한다는 말인가? 인간의 이기와 자만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우리 옆에 없다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외면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은 아닐까, 종종 보이는 병든 지구에 대한 기사를 볼 때마다 걱정이 되지만 쓰레기가 눈 앞에서 사라지면 쓰레기의 존재를 잊듯이 병든 지구에 대한 고민도 금세 잊는다.
학교에서는 환경 보호에 대한 교육의 일환으로 각종 쓰레기들이 썩어서 없어지는데 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는지 가르친다. 우유팩 5년, 종이컵은 30년, 유리병 100년, 플라스틱은 수백 년이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수백 년이라니...과연 썩어 없어지기는 하는 것일까? 플라스틱이 등장한지 이제 100년이 겨우 넘었다. 태워서 없애버리지 않은 이상 최초의 플라스틱은 2018년 오늘 어딘가 처음 만들어진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플라스틱의 쓰임은 너무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저렴하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품들의 종류도 매일같이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물을 사서 마시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가 일주일에 2리터 생수 6병을 마신다면 그는 일 년에 평균 대략 312개의 플라스틱 병을 버리는 셈이다.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샴푸 병, 세재 병, 화장품 케이스, 각종 양념 병 외에도 비닐봉지, 카페에서 사용하는 컵, 빨대 등 플라스틱을 사용 않는 하루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사람이 전 세계에 수십 억 명이라고 했을 때, 버려지는 플라스틱의 양은 셀 수가 없다. 이 플라스틱 들은 모두 어디로 갈까? 재활용이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 재활용이 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그러나 이 궁금증은 플라스틱 사용만큼이나 일회적이다.
2016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바다]는 플라스틱이 어떻게 지구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를 연출한 저널리스트 크레이그 리슨은 흰고래수염에 매료되어 고래를 찾으러 바다로 나갔다가 고래가 아니라 바다를 떠다니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을 마주한다.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는 플라스틱이 대부분이고 이들은 바다에 직접 버려지기도 하지만 강에 버려진 것들이 바다로까지 떠내려 온 것이기도 하다. ‘태평양의 쓰레기 섬’이라는 명칭이 있을 만큼 이들의 양은 엄청나다. 이들은 단순히 바닷물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바다생물들의 생명도 위협하고 있다. 엄청난 양의 폐비닐을 먹이로 착각해서 먹은 고래가 고통 속에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물에 목이 걸려 깊은 상처를 입은 바다사자를 보면서 내가 이들의 가해자라는 죄책감이 들었다. 플라스틱은 바다의 오염물질을 흡수하고 다시 바다 생물이 이것을 그대로 흡수한다. 미세 플라스틱 조각을 먹고 배설한다 해도 이들의 피와 살은 이미 독성물질을 흡수하고 난 뒤다. 그리고 결국 인간이 이들을 먹는다.
이미 바다에 버려진 미세 플라스틱은 지금 플라스틱 배출을 멈춘다고 해도 오히려 그 수가 계속해서 쪼개져 늘어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문제의 심각성의 높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플라스틱 배출을 멈춘다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다. 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많은 플라스틱의 쓰임과 양에 놀랄 정도다. 그 무엇도 플라스틱이 쓰이지 않은 것이 없어 보인다. 물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여러 캠페인들이 있다. 장바구니 챙기기, 카페에서는 텀블러쓰기, 재활용하기 등등. 과연 이런 캠페인들은 충분할까?
‘노 임팩트 맨’이라는 영화가 있다. 환경 운동가이자 작가인 콜린 베번이라는 남자가 일 년이라는 시간동안 자신의 가족과 함께 지구 환경에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도전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상기온이라 할 만큼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 어느 날, 콜린은 환경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하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자신을 질책하며 ‘노 임팩트 맨’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실험 뒤에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들만 소비하고, 탄소를 배출하는 교통수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기. 일회용품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tv와도 안녕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포기해야 할 것들은 늘어간다. 화학제품들 그러니까 화장품과 각종 세재 사용도 끊고, 급기야는 화석연료를 소비해야만 얻을 수 있는 전기까지 끊는다. 하루하루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대도시 뉴욕에서 극단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콜린의 실험을 사람들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지켜본다. 고군분투하는 콜린과 그의 가족을 보면서 우리가 문명의 이기에 얼마나 익숙해졌는지, 인간이 누리는 편리함의 이면에 어떤 희생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산다는 것이 일 년 동안은 가능할지 몰라도 평생은 불가능 하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콜린은 자신의 실험이 무의미한 시도는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자신의 노력에 그 의미를 두는데 ‘실천하고 노력한다.’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영화들을 보는 것은 일시적인 반성과 각성으로 끝날 수도 있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개인의 의지는 너무도 무너지기가 쉽다는 것이다. 특히 도시에서 생활하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 소비 생활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란 거의 불가능하다. 소비는 곧 쓰레기 배출로 이어진다. 보다 간편하고 편리한 선택이 있을 때 수고를 감수하는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노력일 수 있다.
지난 해 중국의 재활용 쓰레기 수입 중단 선언 이후, 한국에서는 지난 1일 갑작스럽게 재활용 수거에 혼란을 겪었다. 누구도 쓰레기를 수거해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혼란이 모두가 쓰레기의 처리에 대해서,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다양한 방법에 대해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민하라는 알람으로 들렸다. 1995년, 쓰레기를 돈 내고 버린다는 개념이 없을 시절, 쓰레기 종량제가 시작되고 23년이 지났다. 엄청난 변화였지만 우리는 거기에 잘 적응해왔다. 그에 못지않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쓰레기가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인간에게 폐가 돌아오기 때문에’라고 말들을 한다. 만약에 인간에게 폐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지구를 병들게 할 권리는 없다.
병들어 있는 지구 곳곳을 보면 이미 늦은 것은 아닐까, 걱정과 의심도 들지만 인류는 아직 살아있고 지구는 여전히 우리 삶의 터전이 되어주고 있으니 우리는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성급하게 눈에 보이는 성과를 기대하지 않고,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 결국 나를 위한 마음이라는 것, 불편함이 진짜 불편함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먼저 말하고 싶다.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는 것은 물론이고 ‘쓰레기 없는 하루’를 한 달에 한번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글에서 언급한 영화들 list*
1. 웨이스트 랜드. Waste land. 2010.
2. 플라스틱 바다. A plastic ocean. 2016.
3. 노 임팩트 맨. No impact man.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