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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Dec 10. 2018

개 이야기 1.

지난 주말, 김장을 한다고 온 가족이 시골에 모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도 가족들이지만 외삼촌이 데리고 온 시월이, 구름이, 콩이와의 만남을 나는 고대하고 있었다. 애교 많고, 힘이 넘치는 시월이와 겁이 많고 얌전한 구름이, 그리고 처음 만나는 콩이까지. 요놈들과 우리 루가 시골 마당에서 함께 뛰어 노는 그림을 상상하며 혼자 흐뭇해했었는데, 그것은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외삼촌이 데리고 온 강아지들은 처음 보는 우리 가족이 낯선지 우렁차게 짖기 시작했고, 루는 제 꼬리를 엉덩이 아래로 감춘 채 집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않았다. 


루는 산책 할 때마다 다른 개가 자기를 보며 꼬리를 살랑거리든, 짖으며 으르렁거리든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을 만큼 다른 개에게는 관심이 1도 없는 사회성 제로의 개다. 시간이 갈수록 무관심이 심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루가 다른 개를 공격하지는 않을까 가슴을 졸여본 적이 없어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나는 시월이도 루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시월이가 얼마나 착하고 예쁜 개인지 알고 있으니까. 당연히 루와도 잘 지낼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루를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시월이가 달려들었다. 장난친다고 달려든 것일 수도 있지만 보통 처음 만나는 개들은 서로 냄새를 맡는 탐색전을 벌이지 않는가? 당황한 내가 루를 번쩍 들어 올렸고 루는 바들바들 떨었다. 그때부터 나의 고행이 시작되었다. 삼촌네 개들이 온 동네를 휘저으며 뛰어 노는 동안 루는 내 품에 안겨 있었고, 함께 술래잡기 하며 놀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그렇게 허무하게 흩어져버렸다. 시골에 가니 중형견인 루도 소형견처럼 깜찍했으나 계속 안고 있기엔 8kg의 무게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시월이는 원래 할머니가 키우던 개였다. 시월이가 애기였을 때, 생크림 케잌을 조금 먹였다가 녀석이 밤새도록 토를 해서 걱정으로 밤을 새운 날이 있었다. 그 작은 배에서 천둥번개 치는 소리가 나는데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던 사랑스러운 시월이.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온갖 쓰레기들을 할머니 집 마당에 주어다 놓고 할머니의 칭찬을 기다리던 장난꾸러기는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삼촌네 집으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도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다 저 보다 덩치가 두 배는 되는 암놈과 사귀어 새끼까지 보았다. 여러 마리의 새끼 중 하나가 구름이었고, 제 어미를 닮아 다리가 길쭉한 딸 구름이를 또 삼촌이 거두게 된 것이다. 


삼촌네 개들이 마음껏 뛰어 노는 동안 옆집에 묶인 하얀 개는 제 목줄이 허락하는 만큼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내 품에 안겨있는 루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보는 하얀 개. 이름 모를 그 개의 모습이 가엽다가도 겁도 없이 그 개에게 다가가 탐색전을 벌이는 시월이를 보면서는 가슴이 철렁했다. 시월이의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시월이는 이름 모를 하얀 개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고, 다행히(?) 묶여 있는 개의 고충을 아는 것인지 시월이는 녀석을 자극하지 않고 얌전히 옆집을 빠져나와 구름이와 함께 또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집 마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제 고향을 기억하는 것인지 매번 시골에 올 때마다 구름이, 콩이와는 달리 시월이는 읍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호들갑이라고 했다. 개들이 세상을 기억하고 보는 방식은 분명 인간과는 다를 것이다. 온 마을을 뛰어 다니며 고향에 대한 추억을 만끽하는 시월이의 모습이, 그 아이의 몸짓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단순함 속에 온 세상이 보였고, 그 순간 흐뭇한 미소가 발끝까지 번졌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지치지도 않고 몇 시간을 뛰어 다니고, 혹시나 길 따라 멀리 나가는 건 아니겠지? 불안해질 즈음 나타나는 시월이를 안아보고 싶어서 루를 잠시 아빠에게 맡기고 시월이를 불렀다. 혹여 루 냄새 때문에, 내가 루를 너무 감싸고 돌아서 내게 오지 않는 거 아냐? 했지만 시월이는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들며 내 품에 쏙 안기었고 내 얼굴을 부드럽게 핥아 주었다. ‘이노무 시키. 이렇게 다정하고 예쁜데 루는 왜 물려고 했던 거야?’ 세상 착한 얼굴로 나를 보는 시월이의 눈빛은 ‘별거 아닌 일로 호들갑 떠는 누나구나...’하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고작 하루, 그 하루 중에서도 몇 시간 함께 했을 뿐인데, 서울에 돌어와서도 시월이가 자꾸 눈에 밟힌다. 시월에 태어나 시월이라 불리는 시월이. 비록 함께 뛰어 놀지는 못했지만, 나를 빤히 보는 녀석의 얼굴, 다정한 눈빛은 우리가 함께한 물리적 시간을 뛰어 넘어, 언제고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추억으로 각인 되었다. 


아마도 (운이 좋으면) 내년에 시골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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