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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Jun 03. 2019

5월의 무성의한 일기장.

https://www.youtube.com/watch?v=Xp8Ep1W-azw


특별할 것 없는 밤. 음악 소리도 과할 것 같았던 고요한 밤이었다. 한 시간 독서를 하고 잘 생각으로 침대에 누워 책을 펼쳤다. 십분 정도 지났을까, 존 버거의 책을 읽으며 ‘좋다! 좋다!’ 하고 있는데, 1층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계단을 오르는 걸음은 ‘나 지금 기분 별로야.’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전 이사나간 걸로 알고 있는 집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새 누가 이사 왔나? 왠지 불길한 기분에 내 집중력은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곧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쾅! 얼마나 세게 닫는지 내방 창문이 흔들릴 정도였다. 문이 부서져라 닫는 소리가 몇 분간 계속 이어졌고, 내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지만 나가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는 건데 내 머릿속엔 술에 취한 사이코패스의 이미지만 떠올랐다. 괜히 나갔다가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 만약 분노를 주체 못한 이 사이코패스가 누구라도 해칠 생각으로 우리 집 대문을 두드리면 어떡하지? 나는 서둘러 스탠드 전원을 끄고 숨을 죽였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지금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쾅! 벽이 부서질 것 만 같았다. 20분이 넘도록 이 불쾌하고 공포스러운 소리는 계속되었고, 나는 112에 전화를 해야 하나, 만약 전화를 한다면 뭐라고 해야 하지? 같은 층에 사는 사람이 20분이 넘도록 문을 너무 세게 닫는다고? 나름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위층 남자가 여느 밤과 마찬가지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닌가? 곧이어 옆집 여자가 문을 열고 나와 복도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 귀에는 벽이 부서져라 문을 닫는 소리가 안 들리는 걸까? 들었지만 그들에겐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소리인 걸까? 아니면 내가 헛것을 들었나? 내가 너무 예민했나?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지난 달 진주 방화 살인 사건을 보라!, 언제 무슨 일이 생길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이 건물에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있다는 확신이 들자 한껏 움츠렸던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문을 닫는 소리도 어느 순간 멈추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아침이었다. 아침 산책을 갈지 말지 잠시 망설였다. 양치질을 하고, 옷을 입으면서 혹시라도 복도에서 마주칠 어제의 미스터리가 가져 온 결과물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문을 열었다. 어제와 다름없는 복도를 지나 계단 옆, 문제의 그 집 앞에 섰다. 문은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는 듯, 얌전하게 닫혀 있었다.


초라하지만 포근하고 안정감을 주는 내 방에서 지난밤의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나는 생존에 위협을 느꼈다. 다행히도 나는 이 공포를 반나절 만에 잊었으나 언제라도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공포는 내 속에 잠복해 있다가 불시에 나를 엄습한다.


헝가리 다뉴브 강에서 유람선이 침몰했고, 거기엔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타고 있었다. 7명이 사망하고 19명은 실종상태라고 한다. 설레는 하루가 악몽으로 변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무장 세력에 피랍되었던 여행객들을 구출하다 목숨을 잃은 군인을 비롯해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그들과 나를 분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하지만 복잡했던 마음은 금세 잊혀진다. 공포와 망각의 반복. 거기에 내 일상이 있다.


5월의 키워드s

대통령 대담-송현정 기자 태도 논란, 루짱 장염, 5.18 민주화 운동 새로운 증언, 편의대의 존재, 맙소사! 72회 깐느 영화제, 봉준호 감독 <기생충> 황금종려상 수상!, 아프리카 피랍 여행객 28일만에 구출-프랑스 군인 사망, 한미정상통화내용 공개한 국회의원, 쯧쯧쯧!, 헝가리 유람선 침몰, 신림동 미수범, 헐!...

https://www.youtube.com/watch?v=jVe5dlpj-oY

너무 많이 봄으로서 역으로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잠깐의 재미로, 한 끼 식사의 동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머물렀다 사라진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쏟아지는 비슷한 이야기들과 비슷한 캐릭터들,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5월에는 영국 드라마 <더 폴>을 재밌게 봤다. <센스 8>과 <오펀 블랙>도 재밌게 봤지만 무엇이 재밌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왕좌의 게임>은... 음... 6개의 에피소드로 이 거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는 게 애초부터 무리였을 것이다. 그래도 2년을 기다렸는데... 에휴.


<센스 8>

세계 각지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8명이 정신적, 감정적으로 연결되어 서로의 인생에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나름 신박한 설정이다. 이렇게 공감각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센세이트라고 부르고, 이들을 인간에서 한 단계 진화한 새로운 종으로 보고 있는데 물론 이들을 해치려는 세력 또한 등장한다. 개연성 있는 전개를 위해 고심했으나 중간 중간 몰입을 방해하는 무리한 설정들이 아쉽다. 그것만 무시하고 보면 적당히 웃기고, 적당히 자극적이고, 편견과 공감이라는 나름 의미 있는 메시지도 얻고.


<오펀 블랙>

복제 인간을 소재로 한 드라마로 6명의 주요 인물을 비롯해 열 명이 넘는 캐릭터를 연기한 타티아나 매슬래니의 연기가 압권이다. 재생을 누르는 순간부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 보고나서 남는 건... 보는 동안의 재미.


<더 폴>

느리고 무겁다. 극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설득력이 있다. 수사관과 범인의 밸런스가 절묘하고, 다른 인물들의 배치도 균형 있다. 범죄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겪는 일들이 실감나게 와 닿는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하기 지루하거나 까다로운 부분은 점프해서 넘어가는데 <더 폴>은 꼼꼼하게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특히 시즌3 병원에서의 에피소드들이 기억에 남는다. 만약, 범죄물을 쓰게 된다면 꼭 참고해야할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왕좌의 게임>

노 코멘트.


https://www.youtube.com/watch?v=-EVhFTw4igw


<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얄팍한 도덕성과 가식의 지성.


<아무튼, 비건> 김한민

이 책을 읽고 비건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비건을 이제 막 시작한 사람들에게 좋은 가이드북이 되어 줄 것 같다.


<에브리맨> 필립 로스

늙는다는 건, 병들고 죽어간다는 건 여러모로 무서운 일이다.


“그는 그림교실에 오는 사람들 가운데 관심을 가질 만한 여자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것이 그림교실을 연 이유의 반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런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자기 또래의 과부 한 사람과 짝이 되는 일은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 아침 산책을 나갔다 눈에 띈, 널을 깐 보도를 따라 조깅을 하는 튼튼해 보일 정도로 건강한 젊은 여자들, 여전히 몸의 굴곡과 머리의 윤기가 살아 있으며, 그가 보기에는 이전 시대의 그 나이 또래들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 보이는 여자들은 상식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전문가 같은 태도로 그와 아무 뜻 없는 웃음만 교환할 뿐이었다. 그들의 빠른 움직임을 눈길로 따라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지만, 까다로운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존 버거

존 버거라는 사람을 왜 이제야 알게 된 것인지. 그 덕분에 생각하는 법을 새로 배우고 있다.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 미학> 김상근

빛과 어둠. 성자로 변신한 거리의 모델들. 자만과 욕망. 결국에는 인간.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빛에서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것이 묘한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뮤직비디오 리스트**


1. 박효신 "굿바이"

2. miel de montagne "Pourquoi pas"

3. perfume genius "slip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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