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ejwk Jul 02. 2019

6월의 무성의한 일기장

https://www.youtube.com/watch?v=-Vnk_j1iKMA

커피를 좋아한다. 매일 아침 핸드드립으로 한 잔을 마시고, 카페에서 작업을 하는 날에는 아메리카노를 한 잔 더 마신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지 20년이 다 되었지만 커피가 정말 맛있어서 그 맛을 음미, 원두의 차이를 비교해가며 마시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예전엔 커피란 자고로 무겁고 진하고, 달달한 케잌과 먹을 때 밸런스가 맞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프랑스에서 살 때도 카페에 가면 에스프레소가 가장 저렴해서 마셨지 맛있어서 마신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기계로 뽑아내는 것이니 어느 카페를 가건 맛들이 고만고만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기계로 뽑아도 맛이 다르구나! 하고 느낀 것은 베니스를 여행할 때였다. 이탈리아는 그 전에도 여행을 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커피를 안 마셨던 것인지 젤라또와 파스타만 기억을 했는데, 아무튼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에서 허름한 카페에 들어가 마신 에스프레소의 두 눈이 번쩍! 할 만큼 부드러우면서도 깊고 풍부한 맛에 놀란 기억이 있다. 2유로도 안 되는 가격이었지만 내 전 생애를 통틀어 가장 맛있는 커피였다. 이탈리아에서만 맛 볼 수 있는 특별함이었고, 커피 덕분에 이탈리아 여행이 특별했다. 그때의 그 커피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서 박제되어 있다. 


스페셜티 원두니, 물의 온도니, 커피를 우려내는 도구니, 약간의 변화에도 맛이 달라지는 커피의 신비함은 여전히 어렵다. 그 차이를 일일이 구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다르다는 것이 이제는 느껴진다. 핸드드립으로 마시는 커피는 매일이 다르고, 그래서 즐겁다. 한동안 케냐  aa와 과테말라 원두를 열심히 마셨다. 산미가 강한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는데(요즘은 산미가 느껴지는 커피가 점점 맛있어진다.) 이들 원두의 산미는 적당히 향긋하고, 적당히 고소한데다 식어도 맛있어서 다른 원두를 고민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도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는 호기심이나 모험심이 엔간하게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너무도 다양한 원두 종류가 괜히 머리 아파서였을 수도 있고... 하하.


‘모모스 커피’를 알게 된 것은 엄마에게 선물할 스페셜티 원두를 검색하다가 2019년 세계바리스타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전주연 바리스타에 대한 기사를 통해서다. 그녀는 10년 전 부산 온천장에 있는 ‘모모스 커피’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시작해 지금은 챔피언이 된 바리스타였다. 다행히(?) 이 카페에서는 온라인으로 직접 로스팅한 원두도 판매하고 있었다. 에디오피아와 볼리비아 원두를 주문해서 엄마에게 선물했고, 이번에 부산에 내려갔을 때 나도 마셔보았는데, 두 원두 모두 맛이 좋았다. 에디오피아 원두는 은은한 차를 마시는 것 같았고, 볼리비아 원두도 향긋했는데 맛의 여운이 조금 더 길었다. 


한가한 평일 오후, 엄마와 함께 온천장에 있는 ‘모모스 커피’를 찾았다. 카페는 인상적이었다. 6평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에서 시작해 이제는 바리스타 학원을 옆에 둘 만큼 커진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카페 안을 메운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내 시선을 끌었다. 규모가 꽤 큰 카페는 평일 낮이었음에도 만석이었고, 손님들은 끊임없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직원들 역시 활기차고 친절했으며 다들 즐겁게 일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모두가 바쁘게 자기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손님들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부담이 아니라 친절과 배려로 다가왔다. 아... 커피도 커피지만 이래서 장사가 잘 되는구나, 싶었다. 겨우 한 번 가본 것이지만 누구라도 부담 없이 들어갈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의자, 음악, 조명, 위생, 서비스)가 그 어떤 힙한 카페들보다 맘에 들었다. 


요즘은 어느 지역의 무언가가 유명하다고 해서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됐다. 유명세와 자본이 만나면 샌프란시스코의 카페가 서울에도 짜잔! 하고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전주연 바리스타의 인터뷰 중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브랜드를 만들어 체인점을 만드는 것 보다 부산을 커피의 도시로 만들고 싶다는 그녀의 계획이었다. 밖으로의 확장만을 중요시하는 요즘, 뿌리를 깊이 내리겠다는 그녀의 계획에 괜히 가슴이 뭉클했고, 그때 내가 충격을 받았던 베니스에서의 커피처럼. 오직 그곳에서만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말 그대로 ‘유니크’하다고 말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고, 그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6월의 키워드

섬뜩한 고유정. 눈 하나 까딱 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범죄자들에 대한 드라마들을 그동안 꽤 많이 봤다. 넷플릭스에 있는 많은 드라마에 이런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고 그 가해자들의 신상이 공개될 때마다 그들이 어떻게 그 ‘상태’에 도달했는지, 그들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이해하는데 이들 드라마가 적잖은 도움을 준다. 그런데 고유정은 모르겠다. 으.... ㅇ...

이희호 여사 별세. u-20 남자 월드컵 준우승, 너무너무너무 귀여운 이강인, 웃기려고 작정한 야당대표의 말말말, 마이클 잭슨 사망 10주면, 드라마틱한 6월의 마지막 날(남북미 판문점 회동)...


Forever!! 마이클 잭슨 (1958년 8월 29일 - 2009년 6월 25일)

https://www.youtube.com/watch?v=oG08ukJPtR8


mooovies

<기생충>

브라보! 너무 빈틈이 없어서 오히려 매력은 조금 떨어지지 않았나. 배우들의 열연! 이정은과 조여정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트루먼쇼>

트루먼씨, 너무 슬퍼마세요. 오늘 우리는 모두 당신과 같으니까요.


<올랜도>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페미니즘은 직접적이지만 노골적이거나 공격적이지 않다. 남성과 여성은 분명 다르지만 구분짓기는 또 다른 문제다. 그 경계에 있는 인물로 틸다 스윈튼만큼 완벽한 캐스팅이 있을까! 틸다 스윈튼은 존재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다. 그녀를 보고 여성적인 매력은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에게 <올랜도>를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한 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그녀도. 영화도. 


<노트북>

어쩜 이리도 예쁠까. 동화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이야기. 라이언 고슬링에겐 뭔가 특별한(여자의 마음을 아리게 하는) 로맨틱함이, 레이첼 맥아담스에겐 보는 순간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상큼함이 있다! 이들 모두 그것을 뛰어넘는 배우가 되어 이 영화가 더욱 특별한 듯!


<해피엔드>

영화에 집중하는 게 쉽지 않았다. 기운 빠지는 영화다. 찜찜하게 신경을 거스르는 부분들. 가족의 초상이라고 썼지만 오늘날의 인간관계가 다들 이러지 않나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yPhmeeunqII


netflix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플롯과 내러티브는 특별할 게 없다. 캐릭터도 익숙하지만 조합이 신선하고 인물 하나하나가 매력적이다. 버릴 캐릭터가 하나도 없고, 유머와 깊이도 적당한 수준을 잘 유지하고 있다. 시즌2가 제작중이라니 반갑고 기다려진다. 


<배드 블러드>1,2

식상한 구성이었으나 시즌1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데다 배우들의 연기, 짜임새 있는 플롯에 재밌게 봤다. 시즌2는 음.... 개연성도 제로, 캐릭터들 간의 균형이 엉망이었고, 아무튼 여러모로 안 보는게 나을 뻔 했다. 


<블랙 미러>5

찰리 브루커의 힘이 다됐나보다. 전혀 흥미롭지 않고, 뻔해도 재밌으면 실망스럽지는 않았을텐데, 지루하기까지 했다. 세 개의 에피소드 중 맘에 드는 에피소드가 하나도 없다. 하나도! 


https://www.youtube.com/watch?v=NrgcRvBJYBE


booooooks

<아버지의 유산> 필립 로스

필립 로스가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기록한 자전적 에세이로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책에 대한 감상은 허연 기자의 글로 대신한다.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9/06/444457/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산문집. 쉬운 문장으로 깊은 여운을 주는 산문이다. 그가 언급한 작품을 읽거나 보지 않았어도 이 책을 읽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시대와 문화에 대한 그의 고민과 공감이 깊이 와 닿는다. 두고두고 읽을 책이다.


and......

연곡사

연곡사로 가는 길에는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누구라도 시 한 편은 쓸 수 있을 것 같은 섬진강 길을 지나 울창한 산 속으로 끝도 없이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가는 만큼 울창한 나무와 바위, 그리고 계곡의 흐르는 물이 지나온 길들을 지우고 과거의 일들을 잊게 만든다. 


아주 잠시였지만 먼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뮤직비디오 리스트**

1. goldfrapp - Annabel

2.Michael Jackson, Justin Timberlake - Love Never Felt So Good 

3. Neil Frances - Dumb Love 

4.Noir Désir - Le Vent Nous Portera

매거진의 이전글 5월의 무성의한 일기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