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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Aug 30. 2019

[채식일기] 7월.

0.

‘채식주의’는 내게 언제나 미지의 라이프스타일이었다. 내가 이 단어를 처음으로 인지한 것은 나탈리 포트만(영화 <레옹>에서 마틸다를 연기한 내 또래의 그녀를 보고, 연소자 관람불가였지만 나는 어쨌든 그 영화를 봤고, 그녀의 예쁨에 홀딱 반했었다.)에 대한 기사를 읽고 나서인데 그녀는 인터뷰에서 자신은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라고 말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고기를 먹지 않으면 뭘 먹고 살지? 하는 궁금증과 함께 자신의 식단을 스스로 선택해서 실천하는 그녀가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인터뷰가 내 식단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어떻게 고기를 안 먹고 살아... 그러고 넘어간 것이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채식주의자’는 내게 좀 예민하고 별난 사람들, 몸매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었지 동물 복지, 환경 문제의 개념으로 확대되지는 못했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대형 마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처음 대형 마트에 갔을 때 거대한 공간을 가득 메운 물건들을 보면서 멀미가 일었던 기억이 난다. 무거운 카트를 미는 것도 싫었고,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계산대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는 과정도 싫었다. 그날도 툴툴거리며 엄마 아빠를 따라 마트에 갔었을 것이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선택의 순간들에 현기증이 날 즈음, ‘콩으로 만든 햄’이라는 글자가 적힌 햄 포장지가 눈에 들어왔고, 호기심에 그것을 들어 카트에 담았다. 그리고 채식을 해봐야겠군. 결심했다. 


콩으로 만든 햄은 두 조각을 먹기 힘들만큼, 단지 맛이 없는 게 아니라 맛이 이상했다. 내 호기심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도 그 후로 한 동안은 고기와 고기가 들어가는 가공식품은 먹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 기간이 얼마나 지속이 됐는지 어디까지 먹고, 어디까지 먹지 않았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때도 채식은 단지 호기심이었을 뿐, 동물 복지, 환경 문제는 관심 밖이었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그 재료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자취를 시작하면서 부터다. 장을 직접 보기 시작하면서 먹는 것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실감했던 것 같다. 인스턴트, 가공음식을 좋아해서 냉동피자, 라면, 햄버거를 자주 사먹었지만 다행히 심심하고 건강한 맛도 좋아해서 직접 요리를 해 먹는 날도 많았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후자의 식습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유튜브에서 자신의 식단을 올리고 공유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게 됐다. 처음엔 사람들이 별에 별걸 다 올리고 또 본다 싶었지만 굉장히 많은 비건vegan들이 자신들의 레시피와 비건의 장점을 전파하는 것을 보고, 완전한 채식의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됐다. 채식을 하면서 얻게 되는 장점들, 채식을 하면서 얼마나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영상들도 있었지만 오늘날의 육식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끼치는 악영향들을 알려주는 영상들도 있었다. 충격이었다. 그래, 고기를 끊자. 공장식 축산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고기를 먹어봤자 내 건강에도 좋을 바 없다. 그러니 끊자. 이 결심은 2015년 6월 말에서 9월까지 지속되었다.


고기와 생선을 안 먹는 건 생각보다 너무 쉬웠다. 유제품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가공식품을 고를 때, 재료 명을 일일이 따져봐야 한다는 것-어째서 닭 육수가 안 들어간 소스(대표적으로 파스타)를 찾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 인지-, 평소보다 늘어난 채소의 양, 그것들을 손질, 그러니까 껍질을 벗기고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 하는 게 꽤나 귀찮다는 것, 식량이 커서,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인지하고 있어 기운 빠지기 전에 무조건 많이 먹어둬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는 것이 조금 힘들었다. 매번 내가 무엇을 먹는지 알아야 한다는 게 어느 순간 피로하게 다가왔고, 솔직히 귀찮았다. 그러다가 가공식품은 너무 따지지 말자, 다른 사람들이랑 식사할 때는 그냥 먹자, 내 돈 주고 육식만 피하자, 그렇게 경계를 넓히다가 어느 순간 예전처럼 장바구니에 삼겹살을 담고, 라면을 담았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합리화할 이유도 괴로울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문득문득 스치는 이미지들에서 고통과 가책을 느꼈다.


내일 7월1일부터 2달 동안 채식을 할 계획이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이유와 명분은 항상 있어왔지만 왜 지금인지 모르겠다. 여름이니까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 음식을 컨트롤하는 능력이 예전보다는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내일부터 두 달 동안 매일 채식 일기를 쓸 생각이다. 식단에 대한 고민, 육식(육식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위해 벌어지는 모든 과정들)에 대한 고민, 환경에 대한 고민들을 좀 더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크다. 


고기, 동물성 재료가 들어간 모든 가공식품, 유제품, 달걀을 먹지 않을 것이다. 해산물은 조금씩 먹을 생각인데, 국수나 찌개용 육수를 위한 멸치가 이미 집에 있고, 젓갈류나 본가에 가서나 가끔 먹는 생선은 중간에 포기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장치가 되어 줄 것이다. 


부디 저번 보다 즐겁고, 진지하고, 단단한 정보로 두 달을 잘 다져서 채식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1.

2019.07.01.


6시.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알람을 끄고 잠시 뒹굴 거린다는 게 어느새 30분이 흐른다. 오늘은 산에 가야지. 이런 저런 일로 아침 산책을 거른 지 겨우 2주가 지났을 뿐인데 아침 산책이라는 일 자체가 엄청 거대하게 다가온다. 갈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이러다가 내일부터, 내일부터, 내일부터 하겠지. 일어난다. 양치질을 하고, 찬물로 얼굴을 씻는다. 썬크림을 바르고, 양말을 신고, 옷을 입는 데까지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6시 30분. 이미 하늘은 파랗고, 아스팔트를 뜨겁게 달굴 준비를 하고 있다. 밖으로 나오니 그래도 아직은 선선한 아침 바람이 뺨에 닿는다. 기분이 좋다. 그래, 움직이는 일은 생각을 말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게 답이다. 


오르막을 오르는데 2주 전보다 몸이 무거운 게 느껴진다. 날씨 탓인지 정말 몸이 둔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배에 힘을 주고 보폭을 더 크게, 더 빠르게 움직인다. 아직 7시도 안됐는데 하산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 아침엔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날벌레는 거슬리지만 우거진 나무, 꽃잎들, 살랑거리는 나비들이 기운을 채워준다. 1시간 10분. 4km. 7600보. 전날 스쿼트를 좀 했더니 아침 산책을 마치고 운동화를 벗는 다리가 뻐근하다. 스트레칭을 하고, 물을 마신다. 500ml. 온 몸으로 수분이 퍼지는 게 느껴지면서 무척 만족스럽다. 


그라인더에 커피 알을 넣고 갈면서 드르륵 드르륵, 그라인더 손잡이로 커피가 갈리는 진동을 느낀다. 향긋한 커피향이 나고, 나는 잠시 취한다. 냄비에 오트+치아씨드+헴프씨드+물+냉동망고+냉동블루베리+아가베시럽을 넣고 끓인다. 걸쭉한 죽이 완성되면 커피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한다. 수 년 전부터 거의 매일 아침으로 오트밀을 먹고 있다. 내게는 최고의 아침 메뉴다. 저렴하고, 간단하고, 든든하고, 속도 편하다. 오늘 아침엔 망고가 유난히 달고 맛나다. 


어제 시중에 나온 파스타 소스를 이용해 파스타를 해먹으면서 집에 있는 육류 가공식품을 모두 해치웠다. 토마토소스라 해서, 병을 씻으며 혹시나, 원재료명을 확인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치킨육수가 첨가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라도 가공 식품을 안 먹는 것은 결과적으로 내게 좋겠지만 선택지가 한정되어 있다는 게, 많이 아쉽고 조금 답답하다.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끓여 먹는다. 간식으로 참외를 깎아 먹고, 저녁엔 김치전을 구워 먹는다. 마무리는 맥주 한 잔. 술이 채식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채식 안주들을 찾아봐야겠다. 


4년 전, 내가 처음으로 채식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심한 것은 윤리적인 이유가 크다. 육식 자체가 비윤리적이라는 게 아니라 별 생각 없이 하나의 재료로 선택한 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도 잔인하고 비윤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식의 종말>(2002. 제레미 러스킨)이 내게 알려준, 더 많은 고기를 생산해 내기 위해 우리 인간이 하는 일들은 내 상상, 내 상식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소를 키우기 위해 밀림을 밀어버리고, (나무는 ↓, 소들이 뿜어내는 탄소로 인해 지구 온난화는 ↑)

-소를 살찌우기 위해 인간이 먹는 곡물을 먹인다. 

-곡물을 먹은 소들 대부분이 병에 걸리며(우리가! 인간이! 이걸 먹는다고?)

-식량으로서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소들은 태어나는 그 순간 어미와 이별하고 움직일 수 없는 우리에 갇혀 자신의 두 다리가 감당 할 수 없을 만큼 몸을 키워야만 한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이들은 지옥을 겪는다. 어디 소뿐이겠는가? 돼지도, 닭들도 마찬가지다.

재료로 포장된 고기에는 이들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다. 완성된 음식은 더더욱. 그래서 채식을 하다가도 다시 고기를 맛있게 먹는다. 정보로 자신을 무장하면서 결심을 다질 수도 있지만 충격 요법은 그리 좋은 원동력이 아닌 것 같다. 물론,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계속해서 공부를 해나가야 하지만 즐거운 식생활을 위해서는 채식으로 맛있는 레시피들을 연구하는 것이 지금 내게는 더 유익할 것 같다.  



2.

2019.07.02.


늦잠을 잤다. 아주 늦잠은 아니고, 아침 산책은 무리일 만큼의 늦잠. 아침 운동은 간단한 요가로 대신한다. 혼자 유튜브를 보면서 아쉬탕가, 빈야사 요가를 수련한지 2년이 넘었다. 균형감과 유연함이 많이 좋아졌지만 근력과 균형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동작은 여전히 어렵다. 까마귀 자세와 물구나무서기가 특히 그렇다. 두 손을 깍지 낀 채로 정수리를 바닥에 대고 물구나무를 서는 동작은 요가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터득했으나 여전히 복근의 힘으로 두 다리를 들어 올리지 못하고, 발차기의 반동을 이용해 다리를 들어올린다. 요가 수업을 진지하게 받아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으나 역시 비용이 만만치 않다. 왔다 갔다 시간도 그렇고. 


오늘 아침 요가는 유난히 잡생각이 많다. 아무리 생각해도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이다. 명상을 해야 해, 명상을 해야 해. 노래를 부르고 다닌 지 한참 됐지만 정작 나는 명상이 너무 어렵다. 몸은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쓰면 쓸수록 조금씩은 나아지는데 정신은 사소한 방해에도 금방 무너져버린다. 명상이 그렇게 좋다는데, 하루15분으로 24시간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진다는데... 내가 좋아하는 데이비드 린치도 명상을 좋아하고 오프라 윈프리도 명상으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과연 내가 아무것도 없는 정신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까?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다.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오트밀->귀리+치아씨드+헴프씨드+냉동망고+냉동블루베리+아가베시럽+물, 커피

점심 : 잡곡밥+김치찌개+김

간식 : 참외, 방울토마토

저녁 : 잡곡밥+김치찌개+김+멸치무침


내일은 장을 좀 봐야겠다. 



3.

2019.07.03.


엄마가 팥 앙금을 새로 만들었다고, 곧 보내주겠다고 전화로 말한다. 부산에 있는 동안 에어 프라이어로 구운 베이글 위에 버터와 앙금을 발라서 아침 커피와 함께 맛있게 먹었기 때문에 엄마의 선물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유제품이 들어간 음식은 안 먹기로 했으니 비건 빵이 있어야겠군. 인터넷으로 비건 빵집을 검색해본다. 대략 대여섯 개의 빵집이 검색 창에 오르는데 서울에서는 대부분이 마포구에 있고, 강남과 한남동에도 드물게 보인다. 외국 유튜버들을 보면 마트에서 비건 빵(식빵)을 사먹던데 한국은 가공 식품에서 비건 옵션이 거의 없다. 비건 제품에 비건 마크가 붙어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지난 번 채식을 시도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밖에서 간단한 스낵을 사먹고 싶을 때에도 원재료명을 일일이 확인해야한다는 점이었다. 검색 결과에 따르면 내가 사는 곳 주변에는 비건 빵집이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건 통밀 식빵을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 있다는 거다. 


오늘의 움직임 

산에 오르기, 걷기(11,342보), 스트레칭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오트밀(오트+치아 씨드+헴프 씨드+냉동 블루베리+아가베 시럽+물), 커피

점심 : 가지덮밥 (퀴노아를 첨가한 잡곡밥에 삶은 가지를 얹고 나만의 마법 간장과 스리라차 소스를 넣는다. 아주 맛나다!), 깻잎

간식 : 참외, 방울토마토

저녁 : 김치 볶음밥(남은 잡곡밥과 신 김치, 통조림 참치를 넣고 볶는다. 통조림은 이걸 끝으로 안 먹어야지.) 



4.

2019.07.04.


그저께 주문한 브리타 정수기가 오늘 도착했다. 사용법에 따라 필터를 물 안에 담그고 흔들어 공기를 빼 준 후에 두 차례 거른 수돗물을 대야에 버린다. 그 다음 다시 물을 받아 물을 마시면 되는데 물맛이 생수와 거의 흡사한 게, 아니 오히려 더 맛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쁘지 않다. 왜 진작 사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나는 일주일에 2리터 생수 한 팩(6개)을 소비해왔다.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부피가 꽤나 큰 페트병을 보며 늘 마음이 편치 않았으면서, 매번 낑낑거리며 무거운 생수를 나르는 동안, 왜 이제야 이 생각을 한 건지 스스로가 한심하다. 비닐이 붙은 채로 버리면 그나마도 분리수거가 안 된다는 것도 몇 달 전에야 알게 되었다. 분리수거를 할 때는 좀 더 꼼꼼하게 하자, 택배 박스에 붙은 테잎을 떼어내고, 병들은 모두 씻어서 분리를 하지만 혼자 살면서 무슨 쓰레기가 이렇게나 많은지... 온라인 쇼핑을 몰아서 한 주에는 각종 포장지로 쓰레기가 특히 더 많다. 가능한 온라인 주문보다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야지 하면서도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가격도 그렇고 편의성도 그렇고, 클릭 몇 번이면 다음날 집에 도착을 하는 세상이니 결국 내 결심은 허무하게 무너진다. 오늘만 해도 두 분의 택배 기사님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브리타 정수기가 도착했고, 이마트 몰에서 구입한 식재료가 도착했다. 이마트 배송은 과도한 포장 없이 내가 직접 장을 보고 온 것처럼 배송이 된다는 점, 그리고 배송 시간을 내가 설정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지만 땀이 범벅이 돼서 무거운 수박을 조심스럽게 건네는 택배 기사님을 보니 잠시 마음이 불편하다. 


내가 어렸을 때, 플라스틱 용기 사용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포장음식이 지금처럼 보편화 되지 않았던 시절이고, 테이크아웃 카페는 구경도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일회용품’이 거의 없었음에도, 오히려 그래서일까? 일회용품 사용은 비판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학교에서는 플라스틱은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기 때문에 쓰면 안 된다고 가르쳤으나 그것이 가져오는 문제를 체감하기에 환경문제는 내게 너무 멀리 있었고, 한 번 쓰고 버린다는 낭비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오히려 내게는 효과적이었다. 


어느 순간, 플라스틱 용기들이 여기저기서 넘쳐나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기론 2000년대 초반부터인 것 같다. 카페, 식당, 길거리 음식, 마트, 등등등. 집에서도 유리 용기대신 플라스틱 용기가 늘어났고, 냉동실에 음식을 보관할 때는 비닐봉지에 넣어 보관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플라스틱은 너무 싸고, 너무 간편하다.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을 어차피 분리수거하고 재활용 하니까, 하며 스스로를 합리화시킨다. 순진하고 어리석은 위로다.


바다를 떠다니는 쓰레기가 섬을 이루었다는 말을 사진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지 못했다. 그 면적이 한반도의 7배라고 한다.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한 해양 동물들이 그것들을 먹고 죽거나 병에 걸려 고통 받는다는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한 해양생물을 결국은 우리 인간이 먹게 되니 이걸 인과응보라 해야 할지... 요즘 플라스틱 안 쓰기 운동이 상점에서도 카페에서도, 전국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노력.


첫 번째! 소비를 줄인다. 

두 번째! 인터넷 쇼핑을 줄인다.

세 번째! 분리수거를 꼼꼼하게 한다. 

네 번째! 장바구니 사용(이건 이미 실천 중), 채소를 구매할 때 천 주머니 이용(이건 아직...)


또 뭐가 있을까?


오늘 내가 먹은 것!

아침 : 오트밀(오트+치아 씨드+헴프 씨드+냉동 블루베리+아가베 시럽+물), 커피

점심 : 수박(올 여름엔 수박 많이 먹어야지. 히히.)

간식 : 그라놀라(직구로 구매한 러브크런치베리. 너무 맛있다. 적당히 먹어야지. 적당히. 명심!) + 두유

저녁 : 월남 쌈(파프리카, 오이, 어린잎채소, 방울토마토, 브로콜리, 깻잎, 오뎅·양파 볶음, 아보카도, 땅콩 소스, 스리라차 소스) + 맥주



5.

2018.07.05.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채식을 진지하게 고려하면서 든 생각이다.


우유를 얻기 위해 소를 강제로 임신시키고, 젖소의 수명이 1/5로 단축될 만큼, 고문보다 더한 착취를 벌인다. 송아지가 먹고 남은 우유 가지고는 지금과 같은 상품화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우유를 짜내고, 버터와 치즈를 만들어야 할까? 병아리 부화장에선 감별사가 암·수를 구분한다. 수놈과 병든 병아리들은 따로 골라내 산 채로 분쇄기에 넣는다. 살아남은 병아리들은 닭장에 갇혀 평생을 지내야 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걸까?


모두가 이런 방식으로 농장을 운영한다고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마트에서 사먹는 유제품들은 대부분 이런 생산과정을 거칠 것이다. 유제품이 건강에 좋다고 하나 항생제가 검출된 달걀, 스트레스를 받은 젖소의 우유가 과연...그럴까?


오늘 내가 먹은 것!


1. 아침 : 수박(아침 운동을 끝내고 먹는 시원한 수박, 꿀맛이다!!!), 커피

2. 점심 : 가지 덮밥, 깻잎, 오이장아찌

3. 간식 : 그라놀라+두유(내 이럴 줄 알았다. 그라놀라를 과자 먹듯이 퍼먹을 줄 알았다. ㅠㅠ)

4. 저녁 : 샐러드(상추+아보카도1/2+파프리카+양파+브로콜리+방울토마토+간장+올리브오일+잡곡밥), 생선까스(엄마가 소포를 보내면서 같이 보내 준 마켓컬리에서 주문한 생선까스. 맛있어서 검색해봤더니 버터가 포함되어있다. 이런....ㅠㅠ), 그리고 맥주.



6.

2019.07.06.


며칠 전 비건 빵집을 검색하다가 이번 주말 코엑스에서 ‘비건 페스타’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빵은 여기 가서 사면되겠구나, 인터넷으로 사전등록을 했다.(사전등록을 하면 4천원, 현장에서 입장료를 내면 5천원이다.) 대략 100개의 업체가 참여한 그리 크지 않은 행사장에는 적당히 많은, 호기심을 자극하되 사람에게 치이지 않을 만큼의 사람들이 있었다. 외국인들도 많았고,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도 꽤 있었다. 가족단위로, 혹인 친구들과 함께 온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굳이 비건이 아니어도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행사장에 대략 90분 정도 머물면서 가기 전부터 꼭 먹어봐야지 벼르고 있었던 비건 햄버거도 사먹고, 강지원 변호사의 통곡물 세미나에서 통곡물 크래커도 선물로 받고, 초콜릿, 버터, 빵, 토너를 구매했다.


비건 햄버거의 맛은 일반 소고기 패티 버거와 80% 흡사했다. 시식 코너에서 소고기 맛과 치킨 맛의 패티를 시식했는데, 내 입에는 치킨이 더 맛있었으나 소고기맛 패티만 햄버거로 만들어 판매 중이었다. 호기심에 먹어봤지만 다시 생각나는 맛은 아니었다. 원래 내 입맛이 고기를 좋아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번에 채식을 하면서 다시 한다. 워낙 식성이 좋아 뭐든 잘 먹지만 4년 전 채식을 할 때도 고기가 먹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장 놀란 것은 발효 버터의 맛이었다. 맛은 버터 보다 크림치즈에 가까웠는데, 그 이상으로 맛이 있었다. 우유 없이 이런 맛을 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냉장 보관을 해야 하는 발효버터는 냉장보관 최대 2주, 냉동보관은 3달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집에 와서 다시 먹으니 코코넛 오일 맛이 조금 강하게 나긴 하는데 그래도 놀라운 맛이었다.


가공 식품 업체들이 꽤 많았고, 비건 화장품들도 눈에 띄었다. 그라놀라와 에너지 바와 같이 곡물과 견과류가 들어가는 가공 식품은 재료가 비싼 만큼 가격도 비쌌는데, 일상이 바쁜 사람들에게는 좋은 제품일지 모르겠으나 나처럼 시간이 많고, 식량이 큰 사람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제품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샴푸나 비누 같은 제품은 당장 쓰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가벼운 마음이었고, 구체적으로 기대하는 게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뭔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비건 요리들을 좀 더 다양하게 접하고 싶었는데, 좀 뻔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이런 행사가 있어 반갑고, 고맙고, 다행이기도 하고.


오늘 내가 먹은 것!


아침 : 그라놀라+두유(아껴 먹으려고 했는데 삼일 만에 끝! ㅠㅠ), 커피

점심 : 비건 버거

간식 : 수박

저녁 : 토마토 수프(마늘+양파+올리브오일+가지+팽이버섯+통조림 플럼토마토), 샐러드(브로콜리, 파프리카, 방울토마토, 상추), 비건 올리브 치아바타(비건페스타에서 구입), 비건 발효버터, 피클, 그리고 맥주.

후식 : 초콜릿 한 조각, 대추야자 3알



7.

2019.07.07.


아침 식사는 내게 매우 중요하다. 아침을 먹어야 화장실에 가고, 전날 먹은 것을 비워내야 하루를 개운하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매일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침을 제대로 먹어야 화장실에 간다는 게 내가 터득한 쾌변 노하우이며 오트밀을 즐겨 먹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이걸 먹으면 속이 편하고, 볼일도 시원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는 입이 까슬거려 식사를 부담스러워 한다는데 어렸을 때부터 나는 워낙 식성이 좋았던지라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잘 먹었다. 자취를 시작하고 오랫동안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커피를 내리면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면 물도 마시지 않고, 공복 상태로 운동을 한다.  


공복상태로 움직인다는 것은 내 상식 밖의 일이었다. 그래서 아침 운동을 할 때도 아침을 먹고 나서 움직였다. 아침을 먹고 나면 똥신의 신호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운동을 나가는 시간은 그날그날 다를 수밖에 없었고, 전날 술이라도 마시면 한걸음 뛸 때마다 배가 꿀렁거려 운동에 집중할 수 없었다. 운동을 해도 개운하지 않았고, 몸이 무거웠다. 식사와 운동의 순서를 바꿀 생각을 그때는 할 수가 없었다. 뭐라도 먹어야 몸을 움직이지... 그게 내가 생각하는 내 몸의 메커니즘이었다. 그런데 웬걸? 그냥 가볍게 걷고 오자하는 마음으로 공복 산책을 한날, 어라? 몸도 가볍고 기운도 더 나는 게 아닌가? 아... 이게 오후 공복과 아침 공복의 차이구나! 내게는 큰 깨달음이었고, 그때부터 아침 운동을 할 때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멸치도 먹고, 참치도 먹고, 오뎅도 먹고, 생선까스도 먹었지만 아무튼 계획했던 식단(생선까스에 발린 버터는 제외하고)을 일주일째 잘 지키고 있다. 다행히 고기 식단은 전혀 생각나지 않고, 피자 냄새와 라면 냄새에 잠시 흔들린 적이 있다. 아직은 특별히 기운이 없다거나 혹은 반대로 기운이 넘친다거나, 몸의 변화를 느끼지는 못하나 지금 내 식단이 나는 상당히 만족스럽다. 


오늘 내가 먹은 것!

아침 : 비건 베이글, 팥 앙금(엄마가 만들어 보내 준 앙금, 맛나다.), 수박, 커피

점심 : 방울토마토, 통곡물 비스킷, 발효버터

간식 : 수박

저녁 : 떡볶이(밀떡, 오뎅, 마늘, 양파, 팽이버섯, 애호박, 깻잎, 고추장, 올리고당, 참기름), 피클.

후식 : 초콜릿, 대추야자



8.

2019.07.08.


그 어느 때보다도 상쾌한 월요일 아침이다. 6시 알람에 눈을 뜨고, 알람을 끔과 동시에 침대에서 일어난다. 저 멀리 보이는 북한산이 전에 본 적 없이 선명하다. 산봉우리의 나무들이 각각 채도를 달리해 오묘한 녹색을 만들어낸다. 뭐라도 가능할 것 같은 아침이다. 산책길을 한 바퀴 돌고 내려 올 즈음에는 잔뜩 힘이 들어간 햇살이 풀잎들을 비추고, 그 사이사이를 나비들이 가볍게 날아다닌다. 햇살, 꽃, 풀잎, 나비. 마치 내가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집에 오자마자 미지근한 물을 크게 한 컵 마신다. 식도를 타고 내려간 물이 손끝까지 퍼지는 게 느껴진다. 먼저 수박을 몇 조각 먹고, 작은 냄비에 눌린 귀리, 헴프 씨드, 치아 씨드, 냉동 블루베리, 물을 넣고 끓인다. 끓는 동안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린다. 완성된 오트밀에 아가베 시럽을 한 스푼 추가하고, 유튜브(요즘 비건 요리 동영상을 찾아보고 있는데 조만간 만들어보고 싶은 것들로는 페스토 소스, 후무스, 비건 커리 등등이 있다.)를 보면서 아침 식사를 한다. 식사가 끝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배에서 신호가 온다. 핸드폰을 들고 화장실로 간다. 개운한 아침이다.


오전에 계획한 일을 마무리 하고, 점심으로 두부 부침과 샐러드를 준비한다. 마트에서 파는 부침용 두부 한 모를 1.5cm 두께로 썰어 까놀라유를 두른 팬에 올려 놓고 샐러드 재료를 손질한다. 상추, 깻잎, 오래 되서 말라비틀어진 오이, 브로콜리,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양파, 씨를 뺀 참외를 먹기 좋게 손질해 그저께 새로 산 접시에 담는다. 앞뒤로 노릇하게 잘 부쳐진 두부를 그 위에 가지런히 놓고, 간장과 올리브유, 깻가루를 섞은 드레싱을 두른다. 맛나고 배도 부르다.


오후에 카페에서 작업을 하며 커피를 한 잔 더 마신다. 저녁 시간이 다 되도록 허기가지지 않는데 두부 덕분인 것 같다. 지난 번 채식을 할 때는 공복감과 음식에 대한 이상한 집착 때문에 하루종이 먹을 것을 달고 살았는데 단정하긴 이르지만 이번엔 음식에 대한 통제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저녁은 잡곡밥과 복음 반찬들(다진 마늘과 양파를 함께 넣고 볶은 가지볶음과 신김치, 먹다 남은 캔참치, 그리고 양파를 넣고 볶은 김치볶음), 그리고 조미김으로 간단하게 먹는다. 후식은 비건 페스타에서 사온 비건 초콜릿 한 조각.


충분히 움직이고, 충분히 먹고, 수분섭취도 충분했던 하루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오늘을 마무리 하며

A demain!  



9.

2019.07.09.


식사1.

오트밀(오트+치아씨드+헴프씨드+냉동블루베리+물+아가베시럽), 커피


식사2.

비빔밥(식은 잡곡밥+상추+가지나물+깻잎조림 국물+스리라차소스+참기름), 깻잎조림, 멸치무침


식사3.

바나나아이스크림(얼린 바나나, 대추야자5알, 두유 넣고 블렌더로 갈아주면 완성! JMT)


식사4. 

곤드레밥


그 외에

스키틀즈 신맛 쪼매난 거 한 봉지.

밤에 출출하고 잠이 안 와서 곡물 크래커에 발효버터 발라먹기. 그러다가 발동 걸려 잼도 발라먹고, 방울토마토도 먹어버림. drrr....


위험했던 순간.

극장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요즘 유행하는 블랙슈가밀크티를 마시고 있는 것을 보고 그 맛이 무척 궁금하였으나 잘 참았다. 


운동    :      요가 30분+근력 20분(팔 운동을 오랜만에 했더니 오후 내내 어깨가 뻐근하다.) 



10.

2019.07.10.


채식을 한다고 하니 가족들은 내가 영양실조라도 걸릴까 걱정이다. 인간은 잡식성 동물이기 때문에 동물성 식품도 섭취를 해야 한다고. 건강한 채식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나의 짧은 지식으로는 채식으로 거의 모든 영양소 섭취가 가능하며 건강한 채식이 비싸다는 것은 선입견이라는 거다. 비건들의 경우, 동물성 식품에서만 섭취 가능한 b12 비타민을 보조제로 먹어줘야 한다지만 나는 해산물은 먹기로 했기 때문에 내 식단에서 굳이 건강 보조제를 먹어야 할 필요성은 못 느낀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한국엔 싸고 맛있고 몸에도 좋은 채소들이 많다는 거다. 특히 제철 채소들을 노리면 정말 싼 값으로 풍성한 식탁을 차릴 수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가공 식품에 비건 옵션이 거의 없다는 것,(대표적으로 비건 빵) 유튜브에서 비건 레시피를 검색하면 외국인들이 올린 영상이 대부분이라는 것 정도? 


건강한 채식을 위해선 조금 부지런해질 필요가 있다. 요리법은 심플하지만 아무래도 채소들이다보니 껍질을 벗기고, 썰고, 손질이 많이 필요한데다(음식물 쓰레기도 그렇고) 상하기 전에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굳이 채식이 아니어도 건강한 식습관을 위해 이걸 귀찮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오늘 내가 먹은 것! (사진 찍어야지 하면서 매일 까먹는다.)


아침 : 수박, 비건 베이글, 팥 앙금, 커피

점심 : 오트밀 죽(오트+헴프 씨드+치아씨드+물+간장+참기름)

간식 : 수박, 대추야자

저녁 : 토마토 소스 파스타, 와인, 통곡물 비스킷

후식 : 초콜릿



https://www.youtube.com/watch?v=M8GhWgy5g_8

참고 영상

접시 하나에 내가 먹을 음식들을 모두 담아 먹으니 내가 무얼 먹는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무기질, 칼슘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어 좋다. 양도 푸짐해 보여 심리적으로 만족감도 주고.    



11.

2019.07.11.


내게 오늘 뭐 먹지? 라는 질문은 저녁에 뭐 먹지? 무슨 안주를 먹지? 라는 질문과 같다. 이럴 때 만만한 건 역시 고기다. 귀찮을 땐 만두를 삶아 먹거나, 치킨 혹은 피자를 먹는다. 시간이 될 때는 돼지 두루치기도 해 먹고, 소시지야채 볶음도 해먹는다. 또 뭐가 있지? 카레나 파스타도 자주 해먹지만 생각해보니 사실 별것 없다. 


6월 말, 여름 두 달간 채식을 해보겠다고 결심하고, 머릿속으로 여러 식단을 그려보았을 때 조금 막막했다. 아침은 오트밀을 먹고, 점심은 밥과 채소 볶음, 혹은 비빔밥, 혹은 비빔국수를, 저녁에는... 볶음밥, 파스타, 김치전 정도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밥하기 귀찮을 때 라면도 못 먹고, 집 앞에 있는 빵집에 가서 빵을 사 먹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니 순간 채식을 위해 내가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저번처럼 음식에 대한 강박이 생기는 것도 두려웠고, 이미 한 번 실패 했으면서 왜 갑자기 ,또 무슨 바람이 든 건가 싶었지만 2달간 육류와 유제품을 끊고, 서서히 비건 지향의 라이프스타일을 살고 싶다는 예전부터의 바람을 내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어떤 음식으로 내 식단을 채워나갈지, 기대감이 더 컸다. 이제 겨우 11일에 접어 들었다. 식단을 짜는 일은 우려했던 것처럼 수고스럽지 않고, 술안주에 고기가 빠져도 아직은 아쉽지 않다. 


오늘 내가 먹은 것!   


아침 : 스무디(얼린 바나나+두유+대추야자), 커피, 통곡물 비스킷+블루베리 잼

점심 : 잡곡밥, 애호박+팽이버섯 볶음, 가지 볶음, 깻잎, 멸치 무침

저녁 : 김치볶음밥, 수박 흰 속 무침, 상추, 파프리카

후식 : 초콜릿 한 조각.



12.

2019.07.12.


초복이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고, 여름 열기로 빠진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보양식을 먹는 날로 보통은 삼계탕을 많이 먹고, 보신탕을 먹는 사람들도 아직 있다. 몸을 써야하는 일은 많았던 반면 먹을 것은 부족했던 옛날이야 삼복을 챙기는 게 중요했겠지만 오히려 너무 먹어서 문제인 오늘날엔 삼복이 무슨 의미겠나 싶다. 


예전에 내가 아직 중학생일 때 학교에서 보신탕에 대한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보신탕 금지에 반대표를 던졌었다. 개고기를 먹는 것은 한국 문화이기 때문에, 개고기를 먹는 것이 소나 돼지, 닭을 먹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보신탕을 먹는 것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나의 논리였다. 뭔가 좀 찜찜했지만 그때 내 상식은 그랬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개고기를 먹고 안 먹고는 개인의 선택이라는 생각이었으나 8년 전, 본가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반려견 루가 내 인생에 들어오고 이 생각은 바뀌었다. 루의 다양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개와 인간 사이의 구분짓기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어딘가에서 한 끼 식사로 사라질 개들을 생각하는 것은 고통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 루도 그런 운명(우리가 데려오지 않았다면)을 맞이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내가 채식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루의 영향이 크다. 개는 우리의 일상에 너무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모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존재다. 보양식이 따로 필요 없는 영양 과다의 시대에 개고기 식용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고, 이제 그럴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스무디와 커피 (블렌더에 얼린 바나나 두유를 넣고 간 다음 치아 씨드와 대추야자를 잘게 썰어서 함께 호로록! )

점심 : 비빔국수 (볼에 상추를 깔고, 그 위에 삶은 소면을 삶아 올리고, 그 위에 수박 흰 속을 잘게 썰어 토핑한 다음 간장+고춧가루+식초+참기름+깨+양파를 섞은 양념을 뿌려주면 완성!)

간식 : 자몽에이드

저녁 : 월남 쌈과 맥주(천도복숭아, 파프리카, 양파, 상추, 깻잎, 브로콜리, 수박 흰 속, 토마토, 크래미, 땅콩 소스, 스리라차 소스)

후식 : 초콜릿 한 조각


13.

2019.07.13.


입이 짧아서... 하며 젓가락을 놓는 사람들이 나는 참 부러웠다. 아니, 지금도 조금 부럽다. 일인분으로 충분한 사람들. 먹는 행위 자체에 크게 흥미가 없는 사람들. 한 끼 굶었다고 손이 떨리거나 초조해하지 않는 사람들. 나는 왜 그들이 아닌 건지, 나는 왜 이렇게 식성이 좋은 건지, 십대 시절에는 먹어도 먹어도 자꾸 들어가는 식성 때문에 스트레스 꽤나 받았다. 일인분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정하나, 20대 중반 까지도 궁금했으나, 지금은 일인분이 살짝 모자라거나 대체로 적당한 사람이 됐다. 뭐, 내 위도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겠지. 서른이 넘으면서 내 기준에서는 위가 반쪽이 된 것 같은데,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타고난 식성이라 그런지, 엄마는 아직도 내가 먹는 것을 보면 ‘참 잘 먹는다...’ 감탄을 한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만해도(나, 옛날사람) 살찐 어린이를 볼 일이 거의 없었다. 한 반에 50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 절반은 빼빼했고, 나머지 절반은 날씬했다. 나를 포함, 통통한 아이들은 한 반에 기껏해야 두 세 명이었다. 우량아로 태어나 정말 잘 먹었지만 ‘통통’을 넘어선 적은 없었다. 키가 크면서 살은 점점 빠졌고, 그렇게 날씬?으로 넘어가나 했으나 중학생이 되고, 군것질을 시작하면서 똥실똥실한 사춘기 소녀가 되어버렸다. 단 것을 유난히 좋아해 몽쉘통통을 매일 사먹었다. 그랬더니 살이 급격히 쪄버렸고, 복도에서 마주치는 선생님들마다 살이 왜 이렇게 쪘냐며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몽쉘통통이었고, 그 다음에는 춥파춥스, 프링글스였다. 식량이 커서 그런지 간식을 식사처럼 먹었고, 과자 하나에 꽂힐 때마다 한두 달 사이 살이 3,4kg씩 급격히 쪘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과자에 분식(떡볶이, 튀김, 순대, 핫도그, 등등등)까지 더해져 나중에는 교복 치마 버클이 잠기지 않을 정도로 살이 쪘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람마다 체형도 체질도 다르기에 절대 일반화 할 순 없겠지만) 가공식품, 인스턴트를 많이 먹으면 살이 찌거나, 찌기 쉬운 체질로 변한다는 거다. 주로 코끼리를 예로 들면서 채소도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지만 채소로 섭취하는 칼로리엔 한계가 있지 않은가? 아무튼 나의 경우, 엄마가 해주는 음식만 먹었을 땐, 그때도 많이 먹었지만, ‘통통’을 넘어선 적은 없었다. 10대 때 찐 살들은 나중에(생각해보니 학교를 그만둔 시점이다. 하!) 빠졌지만 성인이 되니 또 다른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술과 안주’다.


투 비 컨티뉴드....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흑미 식빵 쪼매난 거 세장, 팥 앙금, 천도복숭아 1.5개, 커피

점심 : 샐러드 (삶은 감자 2개, 상추, 토마토, 양파, 깻잎, 소금, 올리브오일)

저녁 : 김치전 두 장, 천도복숭아, 브로콜리, 오이양파피클, 흑맥주

후식 : 초콜릿, 대추야자3개.


14.

2019.07.14.


술을 잘 마시고 싶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소주’를 잘 마시고 싶었다. 대학생이 되니 학기 초부터 술자리들이 이어졌고, 술자리엔 (당연히) 소주밖에 없었다. 이제 겨우 20대 초반의 선배들은 물론이고 스무 살 동기들까지 다들 소주를 어쩜 그렇게 잘 마시는지... 물론 술을 이기지 못해 인사불성이 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 상태가 될 정도로 소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게 나는 신기했다. 소주가 맛있다는 어느 친구의 말을 나도 이해하고 싶었으나 내게 소주는 구토를 유발하는 고문음료와 다름없었고, 따라서 술자리도 금세 불편한 자리가 되었다. 한두 잔은 어떻게든 마셨으나 세 번째 잔부터는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게 그날 컨디션에 따라 겨우 진정이 될 때도 있고, 변기를 끌어안고 그날 먹은 것을 모두 게워 내는 때도 있었다. 도대체 기분 좋게 취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지만 조금이라도 과음을 감지한 내 몸은 알딸딸한 상태를 건너뛰고 바로 구토증상을 보였다. 덕분에 갑자기 화장실 혹은 집으로 사라지는 것을 제외하곤 주사를 부린 적이 없다. 그래도 맥주는 좋아했고 잘 마셨다. 맛있다? 정도까진 아니었으나 그 시원함이 좋았고, 함께 먹는 안주 먹는 재미에 더 좋았다. 


프랑스에서 혼자인 시간이 늘어가면서 술을 마시는 빈도수가 늘었다. 술이 워낙 싸기도 했지만 일상을 나눌 상대가 없다보니 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자주 마셔서인지 주량이 늘었고, 알딸딸한 기분이 어떤 건지도 알게 되었으며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도 멀쩡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맥주 한 캔, 와인 반 병, 막걸리 한 병, 저녁 반주는 일상이 되었다. 문제는 내가 기왕 반주 하는 거, 좀 더 안주스럽게, 좀 더 기름지고 좀 더 자극적으로 저녁상을 차리려 한다는 거였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과식을 하지 않았음에도 살이 빠지기는커녕 얼굴이 점점 동글동글해졌다.


채식으로 식단을 바꾸고, 저녁 메뉴를 고민할 때 조금 심심한 것은 사실이다. 단지 채식이 아니라 건강한 채식을 하고 싶은데 술안주를 떠올리면 우선 채소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 생각난다. 고작 2주 만에 식단 고민이 시작된 건가? 이제 시작인건가? 싶다. 컨디션은 이상 무!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오트밀(오트+치아씨드+헴프씨드+얼린블루베리+천도복숭아+아가베시럽+물), 커피

점심 : 토마토+감자 스프, 통곡물 비스킷, 발효버터

저녁 : 잡곡밥, 김치찌개, 수박 흰 속 무침, 브로콜리

후식 : 초콜릿, 대추야자 3개


15.

2019.07.15.


생리 둘째 날. 전날부터 아랫배에 머물러 있던 불쾌한 통증이 오후가 되니 온 몸으로 퍼진다. 그대로 바닥에 드러눕는다. 두 손바닥을 배꼽아래에 두고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린다. 방 안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우르르 쾅쾅! 하늘이 충돌하는 굉음이 들려온다. 이어서 울분을 토해내듯 쏟아지는 비. 바닥을 때리는 거센 소리에서 비의 무게가 느껴진다. 약을 사다 놓을 걸. 오전 볼일을 보고 들어오면서 진통제를 사야하나 말아야하나 잠시 망설였는데, 후회가 된다. 배가 아프다. 생리 둘째 날이 되면 나는 내 자궁벽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린다. 아랫배가 당길 때마다 착상에 실패한 내 자궁 내벽이 흘러내리는 그림. 기왕 실패한 거 그냥 한 번에 다 쏟아내면 안되나? 지금 내리는 비처럼 그냥 시원하게? 해봤자 쓸데없고 소용없는 바람이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찜찜하고 무겁고 무기력한 이 불쾌한 기분이 평생 내게서 안 떨어질 것 같은 불안이 든다. 안다. 조금 있으면 통증은 가라앉을 거고, 온 세상이 내게 시비 거는 것 같은 불쾌함도 내일이면 사라질 거라는 걸. 하지만 당장은 이 불안한 예감을 나도 어찌 할 수가 없다. 


두 시간정도 지나자 통증이 가라앉는다. 휴... 바닥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생리컵을 비우고 다시 착용한다. 생리컵을 사용 하고나서부터 생리통은 ‘끔직한’에서 ‘견딜만한’으로 완화되었다. 2년 전, 생리대에서 발암물질이 발견되고, 고민 끝에 생리컵을 해외직구로 구입해 2년 가까이 사용하고 있는데 생리대를 쓸 때는 생리가 시작된 순간부터 둘째 날 까지 서너 시간 주기로 약을 계속 먹어야 할 만큼 통증이 심했지만 지금은 약 없이도 견딜만하다. 생리컵의 장점은 생리대를 쓰지 않으니 환경 문제 개선에 도움이 되고, 생리통이 완화되며, 생리대를 하고 있음으로서 생길 수 있는 피부 질환이나 찜찜함(특히 여름)에서부터도 해방 될 수 있으며 둘째, 셋째 날을 제외하고는 안심하고 야외활동을 할 수 있다는데 있다. 단점은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고, 공중화장실에서 컵을 비우고 다시 넣는 것이 여러 면에서(불편함, 위생문제 등등) 스트레스가 된다는 점이다. 


무슨 방법을 써도 생리는 만만하지가 않다. 20년 동안 매달 한 번씩 6일 동안(계산하면 1400일이 넘는다.), 해왔는데도 매번 아프고, 귀찮고, 혹시 새지는 않았나 불안하다. 나는 한 달에 한번(30일 중 6일이니, 한번이라고 하기엔 기간이 좀 길지만 그래도 아픈 건 이틀이니, 뭐..), 생리가 너무 싫다고 징징거린다. 똑똑한 과학자들이 몸에 이상을 주지 않으면서 통증을 없애고, 생리도 빨리 끝낼 수 있는 약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혼자서 (물론 속으로) 유난을 떨다가, 여성이라면 다 하는 일인데 그만 징징거리자. 차츰 진정한다. 이때쯤엔 모든 여성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까지 더해져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오트밀(오트+헴프씨드+치아씨드+냉동블루베리+아가베시럽+물+천도복숭아), 커피

점심 : 잡곡밥, 김치찌개(어제 먹고 남은 것)

간식 : 아이스크림 (얼린바나나+두유+대추야자를 넣고 블렌더에 갈아주면 최고 맛난 아이스크림 완성)

저녁 : 곤드레 밥, 샐러드(상추+파프리카+토마토+브로콜리+올리브유)


16.

2019.07.16.


오늘 아침 오트밀은 유난히 맛이 없다. 어제 먹은 것과 다른 게 하나도 없는데 무無맛이다. 맛이 없으려니 커피도 쓴맛만 나고 아무런 향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남김없이 다 먹는다. 하늘은 맑은 것도 아니고 흐린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고, 주민센터에서 등본 떼 주는 직원도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는 얼굴로 앉아있다. 괜히 마음이 바쁘다. 오늘은 여기저기서 떼야 할 서류들이 많다. 분명 존재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서류들. 차근차근하면 별거 아닌데 뭐가 뭔지 잘 모르니 물기를 잔뜩 머금은 끈적한 공기처럼 짜증이 들러붙는다. 점심엔 올리브유, 통겨자 소스, 소금, 식초를 섞은 드레싱을 더해서 감자와 토마토를 넣은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다. 통겨자와 채소들과의 궁합이 잘 맞다. 통겨자 소스 하나 추가했을 뿐인데, 사소하지만 반가운 발견이다. 오후엔 스트레스가 갑자기 치솟아 바나나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고도 꼬깔콘 과자 한 봉지를 혼자 해치운다. 바삭바삭 식감이 시원하다. 마침, 일도 잘 해결된다. 저녁엔 크고 싱싱한 아보카도를 이용해 오픈 샌드위치를 해먹는다. 베이글을 반으로 갈라서 발효버터를 바르고, 그 위에 아보카도, 잘게 썬 빨간양파, 파프리카를 송송 얹어 다른 채소들(상추, 토마토, 브로콜리)과 함께 먹는다. 생양파의 식감과 맛이 샌드위치와 잘 어우러진다. 먹으면서 음~~~ 감탄사를 연발한다. 거기다 맥주 한 모금. 그래, 이 맛이지!! 아보카도가 조금 남았으니...하는 핑계를 대며 흑미 식빵을 두 장 꺼내 남은 채소들을 모두 해치운다.


맛없는 아침에서 맛있는 저녁으로,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 한다. 



17.

2019.07.17.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2004년 12월, 인천공항에서 아보카도를 처음 먹어봤다. 비행기 연착으로 항공사에서는 승객들에게 공항 내 어느 식당에서도 쓸 수 있는 만 원짜리 식권을 나눠 주었고, 나는 내 식권을 이름도 낯선 아보카도 롤을 사 먹는데 썼다. 속이 하얀 김밥 안에는 새끼손가락보다 가는 참치 회(아마도?)가 들어있었고, 김 대신 아보카도가 이 심심한 김밥을 싸고 있었다. 아보카도에서는 특별히 ‘맛’이랄 게 느껴지지 않았다. 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식감과 이상한 맛이었지만 고급스러운 맛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 먹어봤으니 됐다, 아보카도의 존재감은 내게 딱 이 정도였다. 


외국에서 장을 보면, 같지만 다른 모양의 채소를 비롯해 생전 보도 못한 낯선 식재료도 보게 되는데, 프랑스에 살면서 손질되지 않은 아보카도를 처음 보게 되었다. 초록색 그물에 들어가 있는 초록색 껍데기의 낯선 채소(옆에는 그물에 들어가 있지 않고, 하나씩 고르도록 되어 있는 것들도 있었는데 그물 안의 아보카도보다 크기도 크고 상태도 좋으며 값도 훨씬 비쌌다.). 그게 내가 몇 년 전 공항에서 먹었던 이상한 식감과 맛을 가진 과일이라는 걸 프랑스 체류 몇 달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고, 샐러드 재료로 쓰기 위해 종종 구입해 먹었는데, 처음에는 언제 먹어야 맛있는지를 몰라 무턱대고 설익은 아보카도를 반으로 갈랐다가 이도저도 아닌 맛에 그냥 버린 적도 있고,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샀다가 안이 썩었거나 힘줄이 많아 못 먹은 적도 많았다. 프랑스에서도 아보카도는 가격이 싼 과일이 아니었지만 프랑스 채소들이 워낙 비싸다보니 별 부담 없이 (묶음)아보카도를 사먹었고, 간혹 상태 나쁜 게 있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지금은 집에 아보카도가 있으면 괜히 든든하다. 내 기준에서는 워낙 비싼 식재료다 보니 마트에서 할인 행사를 하면 이때다 싶어 꼭 구매를 하는 편이다. 그리고 제발 상태가 좋기를 바라며 이리저리 꼼꼼하게 살펴보고 장바구니에 담는다. 초록 껍질이 점점 어두워지고 손으로 만졌을 때 과육의 연함이 느껴지면 칼로 반을 가른다. 연초록 빛깔의 깨끗한 과육이 보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잘 익은 아보카도는 밥이랑 먹어도 맛있고, 풀이랑 먹어도 맛있고, 빵이랑 먹어도 맛있다. 거기다 영양까지!!


점심에 각종 생 채소를 잡곡밥과 섞고 그 위에 아보카도 반개를 썰어 간장 드레싱을 두르고 한 숟갈 크게 먹는다. 아보카도가 아주 크고 상태도 좋아 기분이 좋다. 껍질에 붙은 스티커를 보니 오늘 내가 먹은 아보카도는 저 멀리 캘리포니아에서 왔다. 비행기를 타도 열 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이곳 서울, 그것도 작디작은 원룸에 사는 나에게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아보카도 나무들이 있어야 할까? 참, 좋은 세상? 이라 해야 할지, 무서운 세상? 이라 해야 할지... 너무 노인네 같은 생각인가? 


오늘 내가 먹은 것!   

아침 : 오트밀, 커피

점심 : 잡곡밥+상추+파프리카+생양파+브로콜리+아보카도

저녁 : 양배추 왕창 넣은 떡볶이(맛은 그냥 저냥...), 맥주

후식 : 대추야차 4알



18.

2019.07.18.


아침 산책 후, 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창문을 열고 좌우, 위아래로 회전하는 선풍기를 틀어 지난 밤 내 방에 갇혀 있던 공기들을 밖으로 풀어준다. 태풍 다나스가 올라온다는데 서울은 고요하다. 오늘 아침메뉴는 흑미 식빵과 팥 앙금, 천도복숭아와 커피. 식사를 끝내고, 하루 일과를 머릿속으로 그린다. 오늘 오전은 화장실 청소도 하고, 반찬도 만들면서 집안일을 하는데 보낼 생각이다. 애호박과 가지를 따로 볶아 반찬통에 담고, 양배추를 삶는다. 양배추가 삶아지는 동안 방을 청소하고, 가스 불을 끈다.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세면대, 화장실 바닥, 변기에 세제를 뿌린 다음 마모된 칫솔로 때를 닦아내면 누런 때, 푸른곰팡이들이 씻겨 내려간다. 온 집안에 진동하는 락스 냄새로 어지러워진 속을 찬물 샤워로 깨우고 나오니 언제 아침식사를 했냐는 듯 배가 고프다. 김치와 청경채, 오뎅을 썰어 식은밥과 함께 볶는다. 볶은 밥을 삶은 양배추 잎에 싸서 접시에 담아 조금 이른 점심 식사를 한다. 아침 6시 30분부터 쉬지 않고 움직였는데도 막상 한 게 별로 없는 것 같아 조금 허탈하다. 


오후에는 수박을 정리해서 넣는데 무려 한 시간을 투자한다. 이번 수박은 유난히 씨가 많고, 당도는 떨어지는데다가 껍질은 조금 질겨 아쉽다. 수박을 썰어 통에 담고, 껍질을 벗겨낸 흰 속살은 소금에 절여 물기를 빼낸다. 흰 속살은 나중에 고춧가루, 참기름에 무쳐서도 먹고 샐러드에 넣어서도 먹을 생각이다. 음식물 쓰레기와 청소까지 모두 마치고 나니, 한 시간 동안 서서 칼질 좀 했다고 오른 손 집게손가락과 허리, 어깨까지 얼얼하다. 조금 수고스럽지만 아무 때고 칼질 없이 포크로 집어 먹을 수 있는 수박과 오이 대용으로 쓸 수 있는 속살, 게다가 1/10로 줄어든 음식물 쓰레기까지, 나만의 작은 뿌듯함이 피로감을 달래준다. 


냉장고가 먹을 것들로 가득하다. 각종 채소들과 엄마가 보내 준 반찬, 그리고 수박까지. 다음 부산 여행까지 장을 더 보지 않아도 될 정도다. 저녁은 아보카도 오픈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먹는다. 베이글 위에 발효버터를 바르고, 으깬 아보카도, 파프리카, 생 양파를 섞어 그 위에 얹는다. 그리고 그 옆에 토마토, 브로콜리, 아몬드, 호두, 해바라기씨, 올리브, 오이 피클을 곁들이면 간단하지만 알찬 식사가 된다. 후식으로 대추야자 두 알을 먹어주면 달달함까지 채워져 11시가 넘어도 야식 생각은 나지 않는다. 채식 18일째, 식단도 컨디션도 이상 무! 



19.

2019.07.19.


비가 오기 직전의 물기를 잔뜩 머금은 무거운 공기로 가득한 날씨가 나는 너무너무너무 싫다. 게다가 오늘처럼 높은 기온까지 더해지면 날씨가 사람 잡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습하고 뜨거운 공기에 녹아버리는것 같아!!! 오후부터 비가 온다더니, 우산을 챙겨 나왔는데, 비는 오지 않고,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듯 먹구름만 무겁게 내 머리를 누른다. 카페에 앉아 차가워진 살갗은 밖의 뜨겁고 답답한 공기가 두렵다. 나가야하지만 나가고 싶지 않다. 추워서 몸을 한껏 움츠리면서도 그래도 이게 낫지, 버티고 버티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와!!!!! 형언 할 수 없는 색과 모양으로 변한 구름이 나를 압도한다. 조금이라도 늦게 나왔으면 이 변신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무엇보다 멋진 작품에 잠시 넋을 잃고 어둠이 깔릴 때까지 본다. 고맙습니다.  


오늘 내가 먹은 것!   

아침 : 그저께 먹다 남은 오트밀+팥 앙금, 수박, 커피

점심 : 삶은 감자, 가지 볶음, 애호박 볶음

저녁 : 아보카도 샐러드, 비스킷, 발효버터, 화이트 와인



20.

2019.07.20.


[헝그리 플래닛](2005)이라는 책이 있다. 피터 멘젤과 페이스 달뤼시오라는 저널리스트 부부가 세계 23개국 30 가구의 일주일치 식량을 취재하고, 21세기 식문화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이 인용한 마이클 폴란(작가, 환경운동가)의 글을 여기에 다시 옮긴다.




얼굴을 가진 음식

 동물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모순된 태도를 갖고 있다. 감성과 야만성이 공존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기르는 개의 절반이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가운데, 개만큼 똑똑한 돼지들이 크리스마스 햄이 되는 비참함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돼지는 일상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돼지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가? 애완동물을 제외하고 실제로 살아 있고 죽어가는 동물들은 우리의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식료품점에서 구입하는 고기들은 가능한 한 작은 부위들로 잘린 채 말끔하게 포장되어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동물들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잔인함에 대한 인식이나 동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몇 년 전 영국의 지식인 존 버거는 <왜 동물을 쳐다보는가(Why Look at animals)?>라는 에세이에서 인간과 동물의 일상적인 접촉, 특히 눈길의 마주침이 없어지면서 다른 종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볼 일이 없게 됐다고 썼다. 만약 동물과 눈을 마주칠 기회만 있다면 동물들이 우리와 닮은 점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눈에서 우리는 고통과 공포, 부드러움과 같은, 너무 친숙한 뭔가를 읽게 될 것이다. 문론 다른 점도 느끼게 되겠지만. 과거에는 이렇게 동물을 바라보면서 동물을 존중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관계가 사라졌다. 지금은 동물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채식주의자가 된다.

 마지못해서든 필연적으로든 동물과의 친밀한 관계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미국의 사육 공장이 출현했다. 

(...중략) 

공장형 우리에 갇힌 새끼 돼지들은 생후 10일 만에 어미 돼지들로부터 분리된다. 정상적으로는 생후 13주일 만에 떨어지는 것이 맞다. 분리시키는 이유는 호르몬과 항생제가 들어간 사료를 먹여야 더 빨리 몸무게를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일찍 젖을 떼면 돼지는 빨고 싶은 갈망을 평생 지니게 되고 함께 갇혀 있는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무는 것으로 보상받으려 한다. 정상적인 돼지라면 꼬리를 못 물게 하겠지만 이미 저항할 의지를 상실한 돼지들은 그냥 놔둔다. ‘학습된 무력감’이라는 심리적인 현상이 돼지우리에서는 보편적이다. (중략) 그러나 미농무부가 생각해낸 해결책이 있다. 바로 ‘꼬리 자르기’ . 마취제도 없이 집게를 써서 꼬리의 대부분을 잘라내는 것이다. 왜 조금 남기느냐고? 이 수술의 목적은 꼬리 물기의 대상을 없애는 게 아니라 꼬리가 물리는 것을 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꼬리가 물리면 너무 아파서 아무리 저항할 의지가 없는 돼지라도 기를 쓰고 피하려고 한다. 

 미국의 사육 공장은 자본주의가 도덕적, 사회적 규제가 없는 곳에서 어떻게 가능한지를 악몽 같은 모습으로 다른 어떤 집단들보다 더 리얼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에서 삶은 재정의 된다. 단백질 생산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고통이라는 존경할 만한 단어는 ‘스트레스’로 바뀐다. 이것은 비용 대비 효과를 감안한, 경제적인 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꼬리 자르기’같은 해결책이 등장한다. 

 그러면 고기를 안 먹으면 되지 하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다른 동물 농장을 기술해보고자 한다. 많은 얼굴이라는 뜻의 폴리페이스 농장은 버지니아 주 세난도 계곡에서 구릉지와 삼림 550에이커를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서 조얼 샐러턴과 그의 가족은 소, 돼지, 닭, 토끼, 칠면조, 양 등 6종의 동물을 각 종마다, 샐러턴의 표현을 빌리면, 종의 생리학적 특성을 완전히 표현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공동체에서 키우고 있다. 

 이 말이 실제로 뜻하는 바는 샐러턴의 닭들은 닭처럼 살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동물권익보호론자들에게는 심지어 폴리페이스 농장조차도 죽음의 수용소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동물들이 아픈 것을 볼 수 있듯이 동물들이 행복해하는 것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 

(중략)

존 버거가 사라졌다고 슬퍼한, 사람과 동물의 눈 마주침이 샐러턴 농장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다. 이 동물들의 삶과 죽음은 더 이상 쇠창살에 숨겨진 비밀이 아니다. 샐러턴은 그가 판매하는 고기를 ‘얼굴을 가진 음식’이라고 부르길 좋아한다. 아마 일부 고객들은 질겁할 것이다. 돼지와 닭, 수송아지의 눈을 보면 사람마다 연상하는 것이 다르다. 영혼이 없는 짐승, 권리를 지닌 ‘삶의 주체’, 먹이 사슬에서의 한 고리, 고통과 행복을 담는 그릇. 맛있는 점심.

 샐러턴의 옥외 도축장은 도덕적으로 강력한 개념이다. 누구나 지켜볼 수 있는 곳에서 닭을 도축한다면 도축자는 닭과 닭 먹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주의 깊게 도살할 것이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이 나라에서 공장형 사육장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조치는 카포의 쇠와 콘크리트 벽을 유리로 대체하도록 법을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가 바로 세워야 할 새로운 권리가 있다면 아마 이것이 될 것이다. 볼 수 있는 권리. 

 미국 동물 노장의 산업화 그리고 비인간화는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지극히 미국적인 현상이다. 어떤 다른 나라도 우리처럼 집중적으로 그리고 잔인하게 가축을 키우고 도살하지 않는다. 육류 산업의 벽들이, 문자 그대로 또는 비유적으로라도 투명해진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방식을 지속하지 않게 될 것이다. 꼬리 자르기 같은 관행은 한순간 사라지게 될 것이고 한 시간에 400두의 소를 도살하는 날도 종막을 고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와 같은 모습을 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맞다. 고기 값은 올라갈 것이다. 그래서 고기 소비량은 줄겠지만 고기를 먹을 때는 동물들을 생각하고 예의와 합당한 존중을 표하면서 먹게 될 것이다. 


                                                      -마이클 폴란, 뉴욕 타임스 매거진 2002년 11월호 <An Animal’s Place>


오늘 내가 먹은 것!   

아침 : 수박, 커피

점심 : 감자 사라다(으깬 감자, 오이+양파 피클), 가지 볶음, 애호박 볶음, 삶은 양배추, 쌈장

간식 : 천도 복숭아1, 견과류 한 줌(호두, 아몬드, 해바라기 씨, 대추야자)

저녁 : 아보카도 파스타(면을 삶아요, 잘 익은 아보카도를 으깨고 소금간을 해요, 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을 넣어줘요, 맛있는 냄새가 나면 면과 으깬 아보카도를 넣고 마구 섞어요, 접시에 담아요, 토마토를 찹찹 썰어 얹고, 올리브도 몇 알 올리고, 바질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으니 나는 깻잎을 잘게 썰어 올려줘요. 맛이 끝내줘요.)



21.

2019.07.21.


대학생일 때 일이다. 같은 과 선배, 동기들과 함께 고기 집에 간 적이 있다. 고기가 구워지는 대로 다들 열심히 먹고 있는데 선배 중 한 사람이 고기는 손도 안대고 반찬만 먹고 있어, “선배, 왜 고기 안 먹어요?”하고 내가 물었다. 선배는 “난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해서.”라고 대답했고, 나는 그 대답이 너무 신기해서 “네? 고기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요?”하고 되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식한 질문이지만 아무튼 그때는 그 선배가 마치 외계에서 오기라도 한 것처럼 낯설었다. 선배는 고기의 냄새가 싫다고 했다. 비린내가 나서 입에 넣지를 못하겠다고. 고기 앞에 앉아 있는 것도 사실 좀 힘들다고. 나는 그때 선배가 민망해할 정도로 선배를 빤히 쳐다봤다. (이런 파시스트 같으니라고.)신기했고, 이상했다. 얼마나 신기했으면 아직도 기억하고 있겠는가. 그리고 지금은 미안함과 부끄러움까지 더해져 이날의 식사를 더욱 잊을 수 없다. 


오늘 내가 먹은 것!   

아침 : 오트밀(오트+헴프 씨드+치아 씨드+냉동 애플망고+냉동 블루베리+물+아가베시럽), 커피

점심 : 수박, 흑미 식빵, 발효버터(다 먹었다. 또 먹고 싶은데 포장지에 적힌 사이트에는 아직 아무런 정보가 없다. ㅠㅠ)

간식 : 견과류

저녁 : 비빔밥(잡곡밥+양배추+고추장양념+애호박볶음), 깻잎조림


22.

2019.07.22.


내 방에는 에어컨이 없다. 매년 여름이 오면 곧 이사 갈 건데 굳이 뭐하러...하면서 에어컨 설치를 미뤘는데 작년 여름에는 내일 당장 이사를 가더라도 에어컨을 달아야하나, 고민 했을 만큼 더운 날들이 많았다. 도대체 이놈의 열대야는 언제 끝나나, 아이스팩을 수건에 싸서 끌어안고 잠든 밤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선풍기에서는 뜨뜻한 바람이 나왔고, 노트북 키보드를 누르는 내 손은 20분만 지나도 금세 뜨거워졌다. 이러다 노트북도 선풍기도 폭발하는 거 아냐? 심각하게 걱정이 될 만큼 모든 게 뜨거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찬물 샤워로 잠을 깨웠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찬물 샤워로 열을 식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몇 달 후에는 또 춥다고 난리겠지, 하면서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어느 새 7월22일, 중복이다. 물론 뜨겁고 습한 날씨에 진이 빠지지만 아직은 아이스 팩의 도움 없이도 잘 자고, 노트북이 폭발할까 하는 걱정도 않는다. 선풍기는 시원까지는 아니고, 꽤 선선한 바람을 만들며 제법 제 할 일 잘 하고 있다. 숨을 쉬면 불덩이를 삼키는 것 같았던 2018년 여름도 에어컨 없이 버텼는데, 이정도 더위는 선풍기로 너끈하다. 


부디, 열대야 없는 2019 여름이 되기를.....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오트밀(귀리+헴프씨드+치아씨드+냉동애플망고+냉동블루베리+물+아가베시럽), 커피

점심 : 잡곡밥, 가지볶음, 김치찌개

간식 : 수박주스, 견과류(호두, 아몬드, 해바라기씨, 대추야자)

저녁 : 생선까스 두 조각, 밥, 파프리카, 수박 흰 속, 피클, 스리라차 소스



23.

2019.07.23.


[입맛] 명사. 

1. 음식을 먹을 때 입에서 느끼는 맛에 대한 감각. 

2. 어떤 일이나 물건에 흥미를 느껴 하거나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입맛이 없다.”라는 게 어떤 건지, 나는 중학교3학년 겨울이 되기 전까진 몰랐다. 독감에 걸려도, 입 안에 혓바늘이 돋아도, 심지어는 체해서 설사를 하면서도 내 입맛은 사라질 줄을 몰랐다. 오죽 먹는 걸 좋아했으면 감기 시럽도 맛있다고 먹었을까, 하하!! 밥을 잘 안 먹어서 어린이 영양제(새콤달콤해서 사탕 같았던)를 먹는 애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중학교 3학년, 겨울 방학을 얼마 앞두지 않고 나는 심한 감기에 걸렸다. 몸에서 열이 나고, 가래가 끓는데다가 머리가 띵 한 게 당연히 감기 인 줄 알았다. 다만 입맛이 없어서, 뭘 먹어도 모래를 씹는 것 같아 삼키기 힘들다는 게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걱정보다는 ‘내가 입맛을 잃다니!’ 오히려 신기한 마음이 컸다. 병원에 가서 주사도 맞고, 약도 먹었으니 자고 나면 낫겠지, 하고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늦은 밤, 잠에서 깼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을 삼키면 공기는 거대한 바늘이 되어 내 가슴을 쑤셨다. 


응급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연옥이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어왔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의사들의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진 환자들의 얼굴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좀 아플겁니다.” 거대한 진통제 주사를 내 가랑이에 놓으며 누군가 말했지만 나는 주사 바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숨만 편하게 쉴 수 있으면 바랄 게 없었다. 퍼지는 약기운에 숨쉬기가 수월해진  나는 이 주사를 맞고, 링겔 한 대 맞고 나면 집에 갈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한 달을 병원에 있었다. 7시간의 긴 종격동 종양 제거수술이 끝나고(나는 못 봤지만, 부모님은 수술 후, 내 몸에서 떼어낸 혹을 보았는데 주먹만 한 크기에 털이 나 있어서 무척 징그러웠다고 한다.), 7일간을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하루 세 번, 도합 열대가 넘는 주사를 맞았다. 일주일동안 의사 선생님들의 회진 시간을 제외하곤 사람 구경을 할 일이 없는 곳에서 tv도, 음악도 없이 하루 종일 약에 취해 자고, 자고 또 잠을 잤다. 창문 너머로 엄마의 얼굴, 아빠의 얼굴이 지나가고 다시 잠. 배고픔도 모르고, 먹어야 한다니 억지로 미음 몇 숟갈 넘기고 다시 잠. 잠. 잠. 계속된 잠 속에서 두 번의 죽음을 보았다. 가망 없는 수술을 끝낸 엄마를 떠나보내기 전 “엄마!”를 울부짖는 딸의 통곡소리에 수술 마취에서 깨어났고, 옆 침대에 있던 내 또래의 남학생 부모가 장기기증동의에 서명을 했다는 이야기를 잠에 취해 들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중환자실에서 보내고 일반 병실로 복귀하고서도 내 하루의 2/3는 잠이었다. 병원 밥을 먹지 않는 나를 위해 엄마는 매일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 회복에 좋은 음식들을 해 날랐고, 나는 빠르게 회복해나갔다. 


투비컨티뉴드.....


오늘 내가 먹은 것!   

아침 : 오트밀(귀리+헴프씨드+치아씨드+물), 팥 앙금, 천도복숭아, 커피

점심 : 잡곡밥, 김치찌개(어제 먹다 남은 거)

저녁 : 실곤약 채소 볶음(다진 마늘+실곤약 한봉지+청경채+양파+파프리카+양배추+가지+땅콩소스+스리라차 소스+소금), 1664blanc, 견과류(호두, 아몬드, 해바라기 씨, 대추야자)


24.

2019.07.24.


몸이 회복하면서 입맛도 빠르게 돌아왔고, 나는 금세 일상생활에 적응했다.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넘치는 식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예전처럼 ‘나도 입맛 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않았다. 예상치 못했던 수술과 한 달 동안의 입원 이후, 나처럼 남다른 식욕을 가진 사람이 입맛이 없다는 건, 그건 바로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내 입맛은 여전히 좋다. 간혹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정말 간혹, 일 년에 며칠? 정도?) 입맛이 없기도 하지만 대체로 잘 먹는다. 


살면서 입맛은 자꾸 변한다고들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어렸을 때 억지로 먹었던 것들을(특히 파, 양파, 시금치 같은 채소들) 지금은 잘 먹고, 좋아도 하지만 이건 변했다기보다 몰랐던 맛을 알게 되면서 ‘맛’이 주는 즐거움의 폭이 넓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어렸을 때 좋아했지만 지금은 꺼리게 되는 맛은 자극적인 양념 맛을 제외하곤 없는 것 같다. 


내가 채소를 좋아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어떤 날은 식단 짜는 게 너무 쉽고, 또 어떤 날은 도대체 뭘 먹나, 막막하지만 그건 육식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꼭 무언가 특별한 음식, 복잡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줄이고 단순하게 조금 심심하게 먹으려한다. 이제 채식 23일째. 충분히 먹되 과식은 않는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어김없이 응가신호가 오고, 야식의 유혹 없이 잠자리에 든다. 지금 식단이 나는 무척 만족스럽다. 다만 주 1일 음주 계획이 잘 지켜지고 있지 않아 그게 좀 아쉬울 뿐이다. 


오늘 내가 먹은 것!    

아침 : 오트밀(귀리+헴프씨드+치아씨드+냉동망고+냉동블루베리+물+아가베시럽), 커피

점심 : 김치 볶음밥

간식 : 자몽셔벗, 견과류(호두, 아몬드, 해바라기 씨, 대추야차)

저녁 : 김치 볶음밥 남은 거. 감자 사라다, 레페


25.

2019.07.25.


냉동실에 소분해서 넣어둔 수박 흰 속을 한 봉지 꺼내 해동해 두 손으로 물기를 쭈욱 뺀다. 이번 수박은 씨가 많고, 과육은 중간 중간 가루처럼 퍼석거리는 데가 있는데다가 껍질부분, 그러니까 흰 속은 조금 질기고 쓴맛까지 있어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는데 냉동실에 들어갔다 온 흰 속은 웬걸? 전혀 다른 채소로 변해 있는 게 아닌가. 꼬들꼬들한 식감에 쓴맛은 사라지고 시원함만 남아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음식물 쓰레기 좀 줄여보겠다고 껍질을 벗기고 흰 속만 따로 썰어 보관한 건데 이런 발견까지 하고, 한 시간 동안 용쓴 보람이 있다.


오늘 내가 먹은 것!   

아침 : 수박, 커피

점심 : 비빔밥(밥을 할 때 그 위에 양배추를 한가득 총총 썰어 얹는다. 밥이 다 되면 잘 익은 양배추와 밥을 면기에 담고,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그리고 참기름을 섞은 간장을 뿌려 비벼주면 된다.), 가지볶음, 멸치무침, 수박 흰 속 무침

간식 : 견과류(호두, 아몬드, 해바라기 씨, 대추야자)

저녁 : 토마토 덮밥(토마토와 각종 야채를 올리브유에 볶아 식은 잡곡밥 위에 얹어준다.)



26.

2019.07.26.


생수를 사먹지 않으니 (재활용)쓰레기 양이 많이 줄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재활용박스에 자꾸만 쌓여가는 플라스틱 페트병을 보면서 괜히 마음이 급해지고, 아이고 귀찮아, 귀찮아, 귀찮아, 페트병의 부피 때문에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쓰레기를 배출해야 했던 것이 적잖이 스트레스였는데 이제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 이제 한 달에 한두 번, 종량제 봉투가 다 찼을 때만 (재활용도 함께) 배출해도 충분하니 말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집안일 중 하나가 쓰레기 배출이다. 내가 살고 있는 다가구주택은 골목길 구석에 있어서 집 앞에 쓰레기를 내 놓으면 일주일이 지나도 쓰레기 수거를 해 가지 않기 때문에 차가 다니는 도로변까지 나가서 버려야 한다. 이사 오고 얼마 안 되서는 구청에 전화해서 우리집이 골목길에 있어 그런지 수거를 안 해 가신다, 어떻게 해야 하나, 도로변에 내 놔도 되는 거냐, 묻기까지 했었다. 직원 분은 친절하게 상담을 해 주었고, 원하는 대답(시간에 맞춰 도로변에 배출하라.)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내 기분은 찜찜했다. 상점들이 문을 받는 10시쯤 내다 버려야 하는 것도 귀찮은 이유 중 하나지만(이것은 정해진 규칙이니 당연히 따라야 하는 것이고) 플라스틱, 종이, 유리, 알루미늄 캔 등등 각각 분리를 해서 재활용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음에도 도로변에 그것들을 두고 오는 게 괜히 찝찝한 기분이 들어 참 단순한 일이고, 어렵지 않은 일인데도 쓰레기 배출은 귀찮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일이 돼버렸다. 아마도 밤 10시면 쓰레기가 쌓이는 그 곳이 원래 쓰레기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 때로 차도로 떨어진 쓰레기 봉지가 차에 치여 깨진 유리조각처럼 지저분하게 퍼져있고, 아침까지 제대로 수거가 되지 않아 사람들의 발에 치이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기 때문이 아닐까?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뭔가 획기적인 방법(깔끔한 분리수거와 정확한 배출, 그러니까 간혹 길가에 분리수거가 제대로 안 된, 혹은 재활용이 안 되는 쓰레기들이 인도에 나뒹구는 것을 볼 일이 없는)이 없을까? 생각하지만 ‘에라 모르겠다. 내가 좀 더 똑똑했더라면 또 모르지만 이게 내 한계다.’ 하고 1분도 안 되어 고민을 접는다. 물론 이 고민들은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들이 내 눈에 거슬리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이 고민을 좀 더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행동으로 옮기자면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쓰레기를 줄이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편리함’에 너무도 쉽게 굴복한다. 


내 재활용 박스 안, 커다란 비닐봉지에 ‘비닐류’가 한 가득이다. 페트병 없다고 좋아했는데 다른 것들은 여전하다. 


투비컨티뉴드....


오늘 내가 먹은 것!   

아침 :오트밀, 커피

 점심 : 샐러드(삶은 감자, 토마토, 상추, 파프리카, 올리브유, 통겨자소스, 소금, 레몬), 두유

간식 : 견과류

저녁 : 파스타 (올리브유에 마늘을 볶다가 잘게 썬 토마토, 파프리카, 애호박을 넣고 볶아요. 그 다음 잘 읽은 면을 넣고, 소금 간을 해주고, 깻잎을 잘게 썰어 한줌 가득 넣고 비빈다음 올리브와 함께 먹어요.)



27.

2019.07.27.


물건을 구입할 때 가격 검색은 필수다. 같은 제품이라도 온오프라인 가격이 다르고, 온라인 사이트마다 또 가격이 다르며 포인트, 쿠폰 등등을 적용했을 때 또 달라지기 때문에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진지하게 쇼핑에 임한다. 물론 이 절약이라는 게 엉뚱한데서 나사가 풀려 생필품을 살 때 고르고 골라서 한 시간을 투자해 5천원을 아껴놓고, 잠깐 친구를 기다리는 사이 들어간 올리브영에서 필요하지 않은 립글로스에 만원을 쓰기도 하고, 만원 아끼겠다고 몇 시간이고 핸드폰을 붙들고 있기도 한다. 내가 구입하는 물건들의 대부분은 공장에서 만들어져서 내게로 온다.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올 때는 다 같은 값이었을 텐데 왜 여기저기 가격이 달라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시간낭비를 하게 하는 걸까? 음... 파스타 소스 공장은 몇 개나 있을까? 병을 만드는 공장과 가까이 있을라나? 이상하게도 자꾸만 생각이 엇나간다. 


공장 기계들이 지치지 않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그 반복적 행위에서 뭔지 모를 쾌감이 느껴지지만 완성된 제품이 끝도 없이 쌓여 있는 모습에서는 조금 전의 쾌감은 사라지고, (역시 뭔지 모를) 공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나름 최선의 포장지에 담긴 제품들은 트럭을 타고, 때로 배도 타고 멀리 멀리 상점의 진열대로, 천장이 높은 창고로 이동한 다음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린다. 이미 포장된 물건은 또 다른 포장지에 담겨 내게 온다. 비닐 봉투. 한 장에 20원, 혹은 50원. 비닐봉지가 있기 전에는 어디에 물건을 담았을까? 봉지 판매가격이 20원이면 원가는 도대체 얼마라는 거지? 그럼 재활용 비용은? 


간혹, 패키징에 마음을 뺏겨 물건을 구입하고, 그 패키징을 인테리어 도구로, 아니면 수집 용도로 재사용할 때가 있다. 특히 예쁜 음료수 병 같은 경우엔 꽃병으로 쓰고, 소스 용기는 물 컵이나 반찬용기로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재활용도 한 두 번이지. 병을 내다 버릴 땐 병에 붙어있는 잘 떨어지지도 않는 스티커를 다 떼서 버려야 하나? 병이나 알루미늄은 재활용가치가 꽤 높아 보이지만 비닐류는? 포장 비닐에 역시 종이 스티커가 붙어 있는 비닐은 ‘비닐류’ 재활용가능 마크가 있어도 재활용이 안 되겠지? 양념이 묻은 것도 안 될 테고. 누군가 3리터 크기의 비닐에 비닐만 담아 버렸어. 근데 한 장 한 장 꼼꼼하게 확인을 못하고 그냥 버린 거야. 안에는 버섯 찌꺼기도 있고, 빵 가루도 들어있어. 그럼 이럴 경우엔 재활용이 어떻게 되는 거지? 음... 생각이 자꾸만 엇나간다.


오늘 내가 먹은 것!   

아침 : 수박, 커피

점심 : 가지 비빔밥, 멸치무침, 수박 흰 속 무침

간식 : 견과류, 두유

저녁 : 감자전, 올리브, 토마토, 파인애플 1/4, 오랜만에 아마도 최소 5년 만에 하이네켄



28.

2019. 07.28.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내 방도 몽글몽글

날씨를 핑계 삼아 게으름을 피운다.


오늘 내가 먹은 것!   

아침 : 오트밀(귀리+헴프씨드+치아씨드+두유), 파인애필1/4, 커피

점심 : 김치볶음밥(남은 채소 올 인)

저녁 : 비빔국수(소면+수박 흰 속+간장+마늘+고춧가루+식초+참기름), 토마토



29.

2019.07.29.


바쁜 아침이다. 6시 알람이 울리고, 30분간 침대에서 뒹굴 거리며 아침 일정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습기 때문인지 소심하게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성냥으로 초를 밝히자 은은한 장미향이 흔들리는 촛불에 천천히 퍼진다. 요가매트를 깔고,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이 여름의 습기를 지배하는 자는 바로 나’를 되뇐다. (음... 말이 안 되는데? 지배가 아니라...이겨내는 자? 이 표현도 맘에 안 드는 걸?) 다운독자세. 종아리와 어깨가 특히 시원하다. 물구나무까지 30분 요가를 마치고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오트밀을 먹을까, 과일을 갈아 주스로 마실까, 지난밤부터 고민을 하다 주스는 간식으로 먹기로 하고, 오트밀을 끓여먹는다. “오늘부터가 진짜야.” 나와 식단이 다른 사람들과의 식사. 거기에서 나는 어떻게, 서로 불편하지 않게, 모두가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을지... 오늘부터가 진짜 채식 도전일지도 모른다. 모든 식사를 직접 준비하면 “고기 안 땡기는데! 채식 전혀 어렵지 않아!” 할 수 있지만 휴가기간에도 그게 가능할지...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로 기차는 만석이다. 갖가지 음식 냄새들이 내 코를 자극하고, 특히 치즈 냄새에 나도 모르게 침이 고인다. 음.... 가방에서 파인애플+망고를 갈아 만든 주스를 꺼내 마시면서 고인 침을 삼킨다. 매일 약 먹듯이 먹는 견과류가 오늘은 유난히 지루하다. 불안하다. 갑자기 피자가 무척 먹고 싶다. 


엄마가 묻는다. 

집에 있는 동안은 고기 먹지? 

싫어. 

그럼 피자도 안 먹는 거야? 

응. 

헐...라면도?

응.

적당히 타협을 하지?

괜찮아.  

9월부터는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야? 

몰라. 


저녁엔 아구찜과 호박전을 안주삼아 맥주 한잔, 와인 한잔, 결국 과음을 한다. 술에 취해 잠자리에 든다. 잠이 들기 전, ‘식사’에 대해 생각한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을지, 선택사항. 죄책감. 타협. 공유. 등등등... ‘식사’. 단지 음식을 먹는 행위가 아닌 그것이 의미, 그것이 행사하는 영향력에 대해 고민하다 바쁜 꿈에 빠진다. 



30.

2019.07.30.


햇살이 두렵지 않은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뛰어 다닌다. 나의 나이든 아비는 느린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까마득한 옛날을 회상한다. 내가 아직 아이이고, 그가 아직 청년이었을 때, 우리 또한 햇살이 두렵지 않았을 때를 회상한다. 향수는 뜨거운 햇살에 이리도 빨리, 어느새 증발하고, 그늘을 찾아, 바람을 찾아 가능한 이 햇살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우리는 발걸음에 기합을 넣는다.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수박으로 해장하기, 그리고 커피.

점심 : 밥, 김치, 전날 먹은 아구찜 소스에 면 사리 비벼서 쓱싹.

간식 : 복숭아, 견과류

저녁 : 초밥, 관자구이, 복숭아, 와인


31.

2019.07.31.


아침 산책을 하고 가벼운 몸으로 들어온 루는 바닥에 누워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이 여름을 견디는 그의 노하우는 의미 없는 움직임으로 체온을 높이지 않는 것! 나도 그를 따라 바닥에 누워 뒹굴뒹굴, 단잠이 들었다 빠졌다, 지루한 여름 오후를 밀어낸다. 


1. 오트밀(귀리+헴프씨드+치아씨드+물+아가베시럽+복숭아), 커피

2. 점심으로 비빔국수. 오후 내내 이걸 소화시키느라 위가 열심히 일했다.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던지, 꾸르륵꾸르륵 소리가 소리가... 

3. 오후에 수박으로 수분충전하고, 

4. 저녁엔 문어로 원기충전까지. 그리고 술술술.


  


32.

201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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