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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Sep 02. 2019

[채식일기] 8월.

32.

2019.08.01.


충분히 먹는 다는 것.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게, 적당히! 욕심 부리지 말기. 계절 따라 조금의 예외는 인정. 그러니까 지금은 여름이니 수분 가득 과일을 마음껏 먹기. 


아침엔 커피와 함께 오트밀 위에 바나나와 복숭아를 얹어서 먹는다. 바나나가 얼마나 단지 아가베 시럽의 단맛을 지워버린다. 점심엔 밥과 김치, 파래무침, 깻잎조림, 고등어조림을 먹고, 간식으로 수박을 사사사삭!! 저녁엔 술과 함께 하아안상! 


33.

2019.08.02.


서로 다른 라이프 스타일. 완전한 개인주의인 동시에 함께여도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은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오늘의 위기. 조금 출출한 오후, 잘 먹는 걸로 유명한 개그맨 4명이 유명한 라면집 탐방하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다 그 짭조름한 라면 맛이 입가에 맴돌아 침을 꼴깍.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더니....흐...


오늘 내가 먹은 것   

아침 : 오트밀(헴프씨드+귀리+치아씨드+물+아가베시럽+복숭아), 커피

점심 : 밥이랑 오징어볶음이랑 비벼서 한그릇 뚝딱

간식 : 수박

저녁 : 아보카도 파스타(아보가도가 으깨질 만큼 익어야 하는데 너무 탱탱해서, 면수를 조금 섞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너무 뻑뻑해서 실패)


34.

2019.08.03.


‘먹는 것’이 곧 ‘생존’의 문제였던 시절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죽음’을 통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어도 되는 것’을 배웠을까? 

...

1. 아침으로 오트밀과 복숭아, 그리고 커피
2. 점심으로 밥이랑 김치랑 파래무침
3. 저녁으로 추어탕
4. 그리고 와인이랑 전말 먹다 남은 파스타 
  


35.

2019.08.04.


1. 오트밀, 복숭아, 커피

2. 추어탕

3. 감바스, 아보카도 명란, 초밥, 와인, 맥주.


지난 일주일동안 하루라도 해산물을 먹지 않은 날이 없었음. 사회생활을 하는 비건들은 보통 일이 아니겠다 싶음. 미술관에서 배가 너무 고파 카페에 들어갔으나 내가 마실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건 커피, 티백으로 우려 낸 차 밖에 없었음.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는 멀미 증상이 왔으나 이 또한 참으니 지나가기는 했음. 잠시 마늘빵의 유혹에 흔들렸지만 잘 참았음.


저녁엔 루와 함께 공동 생일 파티. 언젠가 아빠가 마주앙 마신지 오래됐다 하여 별 생각 없이 마주앙을 집어 왔는데 이건 와인이 아니라 알콜 들어간 데미소다였음. 망했음.



36.

2019.08.05.


지난 주, 집 주인아주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에어컨을 설치 해 주겠다고. 설렘과 고마움보다 내가 없는 집에 설치기사며 주인아줌마며 들어오는 게 싫어 성가신 마음이 더 컸다.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 엄마가 전화하는 걸 듣더니 내게 말했다. 그래, 얼마나 고마워, 쓸데없는 걱정은 말자. 했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였다. 빨래 건조대에 다 늘어진 팬티도 널어놓고 왔는데... 으.... 순간 민망함과 짜증이 밀려오지만 어쩌겠는가, 이것 때문에 휴가를 취소하고 올라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좋은 점만 생각하기로, 서울로 돌아갔을 때 시원한 방에서 글을 쓸 수 있고, 넷플릭스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휴가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 예정보다 하루 당겨 서울로 돌아왔다. 청소를 해야 한다며 호들갑들 떨면서...


집은 난장판이었지만 청소는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끝이 났다. 곤드레밥에 맥주를 마시면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니 바깥은 열대야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18년 여름도 잘 버텼는데 이 정도 더위쯤이야 했던 나는 단 몇 시간 만에 내방 한 쪽 벽에 설치 되어 있는 에어컨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오늘 내가 먹은 것.   

아침 : 추어탕에 밥을 말아 먹었다. 그리고 커피도 마시고, 수박도 먹었다.

점심 : 어제 먹다 남은 초밥과 방울토마토를 먹었다.

간식 : 스키틀즈 신맛 한 봉지 클리어.

저녁 : 곤드레밥, 버드와이저.


37.

2019.08.06.


인바디 측정이 가능한 전자 체중계를 선물 받았다. 포장을 뜯어 평평한 바닥 위에 놓고, 핸드폰으로 측정 앱을 다운 받은 다음, 숨을 깊게 내 쉰 뒤에 체중계 위에 올라갔다. 엥? 뭐야, 이게 내 몸무게라고? 설마... 체중계를 들고 이 바닥, 저 바닥을 돌아다니며 체중을 쟀지만 충격적인 수치는 변할 줄을 몰랐다. 아.... 살이 쪘구나, 쪄도 많이 쪘구나! 좀 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이정도 일 줄이야... 체중은 표준 범위 안에 있었지만 과체중이었고, 무엇보다 내가 놀란 것은 피하지방이 상당히 높게 나왔다는 점이었다. 운동을 나름 열심히 하고 있고(그래도 운동 덕분인지 근육양이 꽤 높았다. 요즘 말하는 근육돼지인건가?), 군것질도 많이 줄였는데, 좀 억울했다. 유일하게 걸리는 게 있다면 안주와 함께하는 음주 횟수가 잦다는 건데... 내가 뭘 그렇게 많이 먹었다고... 아... 속상함을 토해 내 봤자 살들이 미안...하며 사라질 것도 아니고, 먹는 걸 조금 더 신경 써야한다는 걸 알지만 나는 칼로리를 재는 다이어트 식단은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좀 막막하고 기운이 빠진다. 


기운이 빠진 김에 

연말까지

몸무게도 5kg 뺄테야!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오트밀(귀리+치아씨드+헴프씨드+냉동애플망고+물+아가베시럽), 커피

점심 : 비빔밥(잡곡밥+삶은 양배추+수박 흰 속+고추장+참기름)

간식 : 견과류, 수박

저녁 : 김치볶음밥, 올리브


38.

2019.08.07.


6시 30분에 일어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아침 식사를 하면서 <글래디에이터>리뷰를 두 시간정도 쓰고 나서 볼 일을 보러 나가는 게 원래의 계획이었지만 8시가 다 되어서야 침대에서 일어나 서둘러 청소와 미뤄둔 세탁을 하고 부랴부랴 외출 준비를 해서 집을 나섰다. 밖은 비가 기분 좋게 내리고 있었다. 그동안 모아둔 습기를 경쾌하게 뿜어내고 있었고, 우산에 닿는 빗줄기의 선명함이 내 기분을 유쾌하게 끌어올렸다. 볼 일을 끝내고 서점에서 책을 몇 권 구입했다. 제임스 설터의 <어젯밤>,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 가방이 금세 묵직해져서 집에 들어가는 길에 장을 보려 했던 계획을 오후로 미루고 집에서 늦은 점심을 챙겨 먹었다. 메뉴는 수박 흰 속을 넣은 비빔국수. 다진 마늘을 많이 넣었는지 뒷맛이 조금 썼다. 졸음이 밀려왔지만 장을 봐야 했기에 양파, 상추, 브로콜리, 파프리카, 가지, 애호박, 등등 필요한 채소들을 적은 종이와 에코 백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상추가 한 봉지에 삼천 원, 다 말라비틀어진 오이는 세 개에 이천 원. 무더운 날씨에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채소들의 값이 평소보다 두 세배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어, 원래 사려 했던 채소 대신 그나마 저렴한 채소들을 한 가득 사서 돌아왔다. 장 본 것들을 정리해 넣고, 책상 앞에 잠시 앉았지만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피로감에 노트북을 덮고 바닥에 그대로 누워 눈을 감았다. 충분히 잤는데 왜 이러지? 아침에도 8시에 일어났잖아. 누적된 피로가 있었던 걸까? 한 것도 없는데 어디서 온 피로감일까? 체력 좋다는 것도 내 자만이고 착각인가? 이유 모를 피로에 의기소침해져서 휴식 후에도 왠지 으쌰으쌰 할 수가 없었다. 저녁이 되고 몸에서는 에너지가 어느 정도 충전이 되었지만 이제는 눈이 제 말을 듣지 않았다. 스탠드 전구가 수명이 다 돼서 좀 어두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집중을 하든 딴 짓을 하든 어쨌든 노트북 앞에 있는 시간이 하루의 절반 이상이니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할 일이 줄을 섰는데... 오늘 to do list의 절반 밖에 채우지 못했는데...도대체 내가 뭘 했다고... 마음만 급한 하루다.


오늘 내가 먹은 것!   

아침 : 오트밀, 커피

점심 : 비빔국수

간식 : 수박, 견과류

저녁 : 잡곡밥, 된장찌개, 멸치볶음


39.

2019.08.08.


엄마는 이른 아침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여러 신문사 사이트를 클릭, 전날의 뉴스와 흥미로운 칼럼, 기획기사들을 읽어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 중 내가 꼭 읽어봤으면 하는 기사들은 카톡 메시지로 링크를 보내주기도 하는데 덕분에 나는 좋은 글들을 별 수고스러움(누군가에겐 전혀 수고스럽지 않고, 오히려 즐거운 과정일 테지만) 없이 읽는다. 오늘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는 한 자유기고가의 글을 읽고 가슴이 뭉클하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우리가 덕지덕지 붙이는 조건들. 그리고 그 조건들 때문에 결국 잊게 되는 본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의 인생을 재단하고 비교하면서 찾는 이상한 자기합리화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가난하기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2019년 오늘의 나는 ‘순진한 낭만’이라고 치부하며 잊고 있었던, 하지만 한 때는 열렬히 믿었던 삶이 이 길지 않은 글 한 편에 뭉글뭉글 설렘으로 내 가슴을 채운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7434.html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수박, 커피

점심 : 잡곡밥, 된장찌개 남은 것

간식 : 견과류

저녁 : 감바스, 메스테마허 빵 한 장, 올리브, 하이네켄


40.

2019.08.09.


최근 며칠간 육식의 유혹에 흔들리고 있다. 발단은 기차 안에서 맡은 샌드위치, 혹은 햄버거, 혹은 피자빵, 아무튼 고기 가공식품과 치즈, 그리고 소스가 한데 어우러진 냄새에서 부터다. 다행히 냄새가 사라지니 욕구도 사라졌고, 휴가 기간 동안 바로 옆에서 부모님이 고기를 드셔도 괜찮았지만 며칠 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치킨 먹방을 보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바삭바삭한지 침이 꼴깍, 맛있겠다, 먹고 싶다, 치킨 생각이 간절했다. 물론 치킨을 사먹지는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사 먹을 생각은 없지만 소리가 이렇게 강력한 유혹이 될 줄이야... 


채식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채식 식단을 꾸리는 노하우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중간 중간 위기도 있지만 혼자일 때 그 위기는 아주 미미하다. 하지만 친구와 함께일 때 치킨이 먹고 싶고, 피자가 먹고 싶다면? 나는 일단 두 달간 육류와 유제품을 끊겠다고 했지만 9월이 되면 내 식단은 어떻게 되는 거지? 채식일기를 써보자고 한 것도 일상에서 채식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실천해나갈지 고민하기 위해서 아니었나? 


음.....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오트밀, 커피

점심 : 감자 샐러드(삶은 감자+방울토마토+양파+올리브유+통겨자+바질가루+레몬즙+간장)

간식 : 말차 레모네이드

저녁 : 떡볶이, 하이네켄


41.

2019.08.10.


오트밀, 커피, 수박, 견과류, 엔초비 파스타


 42.

2019.08.11.


생리 둘째 날. 하루 종일 정신을 못 차리고 침대 위에서 뒹굴거렸다. 이런 날은 죄책감까지 더해져 몸도 마음도 버겁다. 빅뱅 이론과 에어컨 덕분에 그나마 하루가 수월하게 지나간다.


수박, 커피, 곤드레밥, 견과류, 감바스, 메스테마허빵.



43.

2019.08.12.


오전에 화장실 청소를 했다. 


샤워기로 세면대, 변기, 바닥을 씻어내고 그 위에 락스 제품을 뿌린 다음 30분 정도 기다린다. 약품이 곰팡이 때에 스며들고 나면 마모된 칫솔을 가지고 열심히 닦아낸다. 거품이 일어나면서 냄새도 함께 일어난다. 때가 벗겨져 나오는 것을 보면 역겨움과 쾌감이 동시에 느껴지지만 역겨움이 훨씬 크다. 청소 액의 효과는 강력하다. 혹시라도 옷이 닿으면 색이 변색되고, 청소가 끝나면 두통이 인다. 욕실 슬리퍼 바닥의 구멍 사이사이를 뚫고 나온 거품이 발바닥에 닿을 때마다 살이 벗겨지지는 않을까, 무섭다. 청소를 서두른다. 마지막으로 샤워기 물을 틀어 여기저기 물로 쓸어내자 깨끗해진 바닥이 드러난다. 이번 락스를 다 쓰고 나면 좀 순한 제품을 사야지, 아니면 베이킹 소다를 써도 되고. 배수구로 빨려 내려가는 거품을 보면서 생각한다. 찌든 때, 묵은 때 다 벗겨주는 세재는 좀 무섭잖아. 


저녁이 되었는데도 락스 냄새가 집안을 떠돌고 있다. 냄새 때문인지 입맛도 없다. 결국 세재 알갱이들을 내가 다 먹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오트밀(귀리+치아씨드+팥앙금), 커피

점심 : 양배추 비빔밥(잡곡밥+삶은 양배추+고추장+참기름)

간식 : 견과류

저녁 : 채소 쌈(파프리까, 새싹, 토마토, 당근, 감자, 아스파라거스, 양파, 버섯)


44.

2019.08.13.


후무스 만든다 해놓고 아직 안 만들었고, 비건 페스토 소스 만든다 해놓고 아직 안 만들었고, 비건 버터 만든다 해놓고 아직 안 만들었다. 별거 하지 않아도 하루가 숨 가쁘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하면 할수록 성에 안 찬다. 적당히 더럽게 살자, 하는 순간 적당히는 상당히가 되어 버린다. 일상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은 셀 수가 없다. ‘성취’의 필수 조건인 동시에 그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 하찮고도 중요한 일. 여기서 플러스 원이 된다면 나는 아마도 성격파탄자가 될 것 같다. 


폭염주의 알람이 신경질적으로 울린다. 아씨...깜짝 놀랐잖아.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오트밀(귀리+헴프씨드+치아씨드+냉동망고+물+아가베시럽), 커피

점심 : 김치볶음밥

간식 : 견과류

저녁 : 메밀면+잘게 썬 채소들+ 간장+와사비 


45.

2019.08.14.


인터넷 포털 창 검색어 순위에 낯선 단어가 보이면 이게 뭔가? 호기심에 클릭해 보게 된다.  00가루, 00주스, 등등. 그것이 식품인 경우 어떤 연예인이 어느 프로에 나와서 ‘그것’을 먹고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거나 ‘그것’을 먹고 병을 완치했다는 기사들이 주루루룩 뜨고, 그 아래로 역시 ‘그것’을 먹고 효과를 봤다는 블로그 후기 글들이 주루루룩, ‘그것’의 효능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정교하게 짜여진 교묘한 상술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잠시 흔들린다. 쏟아지는 정보들 속에서, 과연 이게 정보이기는 한 건가? 싶을 때도 많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기 만만치 않다.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스무디(두유+치아씨드+오트밀+대추야자), 커피

점심 : 곤드레밥

간식 : 소이라떼

저녁 : 샐러드, 감자볶음


46.

2019.08.15.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해서 몸의 변화를 느껴본 적은 없다. 좋은 건 늘 티가 나지 않으니까. 반면 인스턴트나 자극적인 음식은 속이 더부룩하거나 설사를 하거나, 바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빠른 변화를 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을 하느냐, 보다 무엇을 하지 않느냐일 것이다. 


누군가 “이걸 먹기 시작하면서 인생이 달라졌어요.”하고 말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허풍쟁이로 여길 것이다. 세상에 그런 극적인 변화는 없으니까. 그래도 나는 몸에 좋다는 음식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가능한 많이, 자알, 챙겨먹으려고 한다. 뭐가 특별히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속이 쓰리지 않고, 아침에 시원하게 볼 일을 보면 그걸로 일단은 충분하다. 


오늘 내가 먹은 것들!

1. 오트밀(귀리+헴프씨드+치아씨드+냉동애플망고<늘 사먹던 제품이 품절 이길래 다른 걸 사봤는데 과육이 탱글하지 않고, 단 맛도 덜하다.>+물+아가베 시럽), 커피.

2. 메밀국수

3. 소이라테

4. 파스타, 멜론, 소비뇽 블랑



47.

2019.08.16.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묵직하고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이럴 땐 아쉬운 대로 라면을 끌어먹으면 나름 해소가 되는데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라면을 먹을 순 없으니 된장찌개를 끓여먹기로 한다. 토마토 수프를 끓일까 잠시 망설였으나 오늘 아침엔 신맛이 나는 음식도 단맛이 나는 음식도 먹고 싶지 않다. 양파, 감자, 버섯, 두부, 어묵을 넣은 찌개와 함께 콩나물밥을 한 그릇 크게 퍼서 먹는다. 찌개가 많이 싱겁지만 다시 끓이기 귀찮아 그냥 먹는다. 평소 아침으로 먹지 않던 한식이어서 그런지 아침이 아니라 점심을 먹은 것 같은 기분이다.

점심은 간단하게 멜론으로 때우고 오후에 견과류로 모자란 에너지를 채운다. 팟캐스트 방송을 들으면서 운동을 하고, 이른 저녁을 먹는다. 메뉴는 아침에 먹다 남은 된장찌개. 밥 대신 두부 반 모를 더 넣어서 먹는데 어찌나 싱거운지 밥이 없어도 짠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다음엔 꼭 중간에 간을 보고 가스불을 꺼야지... 싱거운 버섯을 질겅질겅 씹으며 생각한다. 밤 열시가 되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냉장고문을 열고 뭐 먹을 게 없나, 대추 야자를 손에 들었다가 그냥 놓고 물을 한 잔 마신다. 오랜만에 가벼운 몸으로 침대에 눕는다. 배가 살짝 고프지만 잠을 쫓을 정도는 아니다. 대추 야자를 안 먹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를 한 시간 정도 읽다가 불을 끄고 팟캐스트를 자장가 삼아 눈을 감는다. 어제보다 시원한 여름밤이다.



48.

2019.08.17.


닭고기 대신 각종 채소를 넣은 태국식 카레를 만들어 먹으려 했다. 그린 커리 소스는 지난 번 직구 때 구입해 두었으니 코코넛밀크만 사면되었다. 집 앞 홈플러스(익스프레스)에는 코코넛 밀크가 없었다. 이마트(에브리데이)에도 코코넛 밀크가 없었다. 더 큰 마트에 가기엔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터라 맥주와 프링글스 할리피뇨맛 한 통만 사서 급히 집으로 향했다. 프링글스. 한때 참 좋아했던 과자다. 용돈으로 마음껏 사먹기엔 조금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늘 먹고 싶었던 과자인데 내 입맛이 변한건지 제조방법이 바뀐 건지 그때의 그 감질 맛은 어디가고 짠 맛 밖에 나지 않는다. 일단 기운이 없으니 먹는다, 하면서도 할라피뇨 맛이 제법 나는 걸? 신기해한다. 타이 커리와 함께 맥주를 마시려했던 나름의 야심찬 저녁계획이 미뤄지자, 에라이 아무거나 먹자, 프링글스를 그 자리에서 해치운다. 한 통을 다 먹고도 무언가 아쉬웠던 때가 언제였는지... 이제는 과자로 배를 채우면 온 몸이 버겁다. 


-오트밀(과일대신 두유와 팥앙금), 커피

-비빔국수(국수면이 없어서 메밀면으로. 정말 맛이 없었다.)

-소이라떼

-감바스(이렇게 간단한 안주가 있을까?), 프링글스, 맥주




49.

2019. 08. 18.


마인드헌터 2와 함께 한 일요일.

운동은커녕 스트레칭도 않고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굴뒹굴.


-멜론

-떡볶이

-곤드레밥  


50.

2019.08.19.


채식은 단지 식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입고, 무엇을 바르는지, 일상에서 행해지는 모든 소비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동물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화장품,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옷과 패션소품을 쓰지 않는 것에서부터 우선, 시작한다. 다행히(?)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진짜 가죽이 아니더라도 가죽의 느낌을 낼 수 있고, 동물실험 없이도 피부에 생기를 주는 제품들을 만들어 낸다. 하나의 관심은 다른 여러 문제로 뻗어 나간다. 많은 채식주의자들이 환경문제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소비를 하고, 장을 보러갈 때 작은 천 주머니들을 챙겨가는 사람들. 강한 화학제품 대신 직접 만든 세재를 쓰는 사람들. 자급자족의 생활이 불가능하기에 가능한 최소한의 피해를 위해 일상 속 작은 것들을 희생하고 고민하는 사람들. 그들의 지혜와 노력에서 영감을 받아 어떤 날은 친환경주의자가 되었다가 또 어떤 날은 ‘오늘날’이 주는 편리함에, 필요하진 않지만 ‘그냥’ 갖고 싶은 ‘욕망’에 수없이 다졌던 마음들이 무너진다. 하나하나 일일이 다 따져서 어떻게 사나, 이렇게 불편한 마음을 합리화 할 수도 있겠지만 불편한 마음을 애써 지우지는 않으려한다. 이 불편한 마음들이 모여서 결국 행동을, 이 반복이 변화를 가져올 테니까.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오트밀(귀리+헴프씨드+치아씨드+냉동망고+냉동블루베리+아가베시럽+물), 커피

점심 : 샐러드(방울토마토+삶은 감자+양파+올리브오일+레몬즙+소금)

간식 : 견과류

저녁 : 비빔밥(잡곡밥+콩나물+가지+간장+다진마늘+고춧가루+참기름), 멸치볶음


51.

2019.08.20.


육우 기지화


 아메리카 대륙의 육우 기지화 500년 역사의 마지막 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시작되었다. 여러 민족국가들과 다국적기업들은 중앙 및 남북 아메리카를 하나로 아우르는 단일 축산 단지를 조성하는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이 단일 농장은 북미 대평원에서 아르헨티나 팜파스의 비옥한 목초지까지 무려 6,000마일에 이르는 광대한 방목지를 이룬다. 

 영국 투자기관들은 미국의 평원에 축산 회사를 설립하는 동시에 남미의 대초원에도 침투했다. 북아메리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평원에 사는 인디언들과의 강화조약과 대서양 냉동 운송 수단은 대량의 영국 자본이 대초원으로 유입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했다. 1880년에 이르러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회사들은 이미 팜파스에서 사육되는 육우의 2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그 후 20년 동안 영국의 자본가들은 초창기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축산 단지를 세웠던 것처럼 북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이를 진행했으며, 남미에도 서둘러 축산 단지를 세우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중략)

중앙 및 남아메리카의 ‘육우 기지화’는 쇠고기 생산과 유통을 위한 단일 세계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다국적기업들이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인 것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중략)

다국적기업들은 자동차를 조립하는 방식으로 쇠고기를 생산하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여러 나라에 분산되어 있는 씨앗, 곡물, 의약품, 소 배아, 도축 자동화 시설, 도매 판매망, 소매 유통망과 같은 기본 요소들을 한 곳에 모아 단일 공동 운영체계로 만드는 것이다. 이미 ‘육우 기지화’는 거의 실현 단계에 있으며, 중앙 및 남북 아메리카는 빠른 속도로 세계 최대의 방목지와 도축장이 되어가고 있다. 

(중략)

한편 브라질과 같은 나라들은 가축 사료 재배에 점점 더 많은 토지를 할애하고 있다. 이런 가축 사료는 유럽과 러시아, 일본, 미국에 수출되고 있다. 중앙 및 남아메리카의 육우는 대부분 목초로 사육된다. 현재 브라질은 경작자의 23%에서 콩을 재배하고 있는데, 그 중 거의 절반에 달하는 양을 수출한다. 이런 현상은 장기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일반적으로 1에이커의 토지에서는 연간 1,200파운드(1파운드=0.45킬로그램)의 옥수수를 생산할 수 있다. 만약 경작지에 콩 씨앗을 파종하게 되면 사람들이 소비할 옥수수 생산량이 현저히 감소하고, 결국 곡물 가격이 상승하게 된다. 이렇게 상승된 곡물 가격으로 인한 피해는 엉뚱하게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일례로 농부들이 국제 사료 시장에서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콩을 재배함에 따라 오랜 세월 브라질 농가의 주식이었던 검정콩의 가격은 점차 상승하게 되었다. 

(중략)

방목지와 농경지로 전환된 열대우림 지역이 재차 사료 작물 지배지로 전환되면서 시골의 농부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보호할 어떤 수단도 없이 설자리를 빼앗긴 채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근대적 육우 사육은 고도의 자본집약적 산업인 동시에 노동 절감 산업이다. 농업에서는 때때로 1평방 마일에 농부를 100명까지 고용할 수 있지만, 열대우림 지역의 축산 목장에서는 평균적으로 소 2,000마리에 인부 1명을 고용하는데, 이는 기껏해야 12평방 마일에 인부 1명이 고용되는 수치이다. 토지도 없이 절망에 빠진 수백만의 농부들은 하찮은 일자리라도 구하기 위해서 인구가 밀집한 도시 지역으로 이주했다. 


                                                                                                    <육식의 종말>(제레미 리프킨) 중에서. 


비단 남미, 축산업 뿐이겠는가....자본주의의 공식이 성립되지 않는 곳이 없구나.


오늘 내가 먹은 것들

1. 아침 : 오트밀, 커피

2. 점심 : 토마토 수프, 메스테마허 빵

3. 간식 : 멜론

4. 저녁 : 볶음밥, 샐러드



52.

2019.08.21.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49417271?xtor=AL-73-%5Bpartner%5D-%5Bnaver%5D-%5Bheadline%5D-%5Bkorean%5D-%5Bbizdev%5D-%5Bisapi%5D


브라질 아마존 열대우림이 3주째 불타고 있다. 3주, 21일, 504시간이 넘게 불타고 있다니, 그 규모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브라질 정부는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지구 열대우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지구 산소의 20%이상을 만들어내는. 그래서 ‘지구의 허파’라고도 불리는 곳이 까만 재로 변해가고 있는데도 브라질 정부는 그들 정부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NGO가 개입되었을 지도 모른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 집권 이후 산불 발생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단지 우연일까? 개발, 발전이 가져올 경제적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행해지는 만행들을 우리는 언제까지 타협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영화 <퍼스트 리폼드>에서 목사 톰(에단 호크)은 신도 메리(아만다 사이프리드)의 부탁으로 그녀의 남편 마이클을 만난다. 그녀의 남편은 환경운동가다. 세상을 바꾸려는 그의 노력은 인간의 탐욕에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그에게 남은 것은 절망과 삶에 대한 회의뿐이다. ‘종말’을 위해 전력 질주하는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그에게 무의미를 넘어 잔인한 일이기에 그는 아내 메리가 낙태하기를 원한다. 우리 모두는 환경 속에 있지만 우리가 만들어낸 문제들, 현실은 막연하고 멀게 만 느껴진다. 똑똑한 사람들이 지금의 문제점들을 해결 할 방법을 만들어내겠지. 지금까지 인류가 그래왔던 것처럼. 이런 막연한 믿음.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기만 하는 현실을 매일 마주해야했던 마이클의 절망은 그 무엇으로도 극복되지 않는다. 절망은 그의 삶을 빠르게 잠식하고, 그에게 남은 선택은 스스로 삶을 끝내는 것뿐이다. 무겁고 어두운 그의 절망은 그 만의 것이 아니다. 과거의 것도 아니고, 단지 영화가 만들어낸 가상의 것도 아닌 현재 우리의 절망이기도 하다. 


오늘은 자기 전에 아마존을 위해 기도를 해야겠다. 그리고 내 절망이 너무 무겁지 않기를, 내 삶을 삼켜버리지 않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XAi3VTSdTxU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오트밀, 커피

점심 : 메밀국수, 찐 옥수수

간식 : 견과류

저녁 : 콩나물 비빔밥


53.

2019.08.22.


나는 착한 어린이였다. 돌이켜보면 낯선 유년시절이다. 학교에선 선생님 말을 잘 듣는 학생이었고, 집에서는 순하고 사랑스러운 딸이었으며 주말에는 미사를 듣고 주일학교 수업도 열심히 듣는 아이였다. 토요일 미사가 끝나면 한 시간 정도 성경 수업을 듣다가 그 주에 잘못한 일들을 진심으로 반성하면서 주님이 내 죄를 부디 용서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주일학교 선생님은 주로 대학생 언니, 오빠들로 다들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 거다. 당시 갓 스무 살을 넘긴 청춘들이 즐겨했던 스타일은 앞머리를 동그랗게 세워 올린 스타일이었는데 나는 성당에서 그런 머리를 한 언니들이 보이면 쫓아가서 “선생님. 스프레이 쓰면 안돼요. 스프레이에 프레온가스가 있어서 오존층을 파괴하고 오존층이 파괴되면 우리 전부 다 피부암 걸려서 죽는대요.”하고 말했다. 학교에서 오존층에 대한 수업을 받은 후였다. 분명 지구온난화에 대한 얘기도 들었을 텐데, 지구온난화는 내게 막연한 개념이었고, 내 귀에 꽂힌 것은 바로 피부암이었다. 나는 두려웠다. 프레온 가스가 원인이라면 안 써야 하는 건데, 냉장고 없는 집이 어디 있으며 다들 멋 부린다고 스프레이를 써대고 있으니, 이렇게 심각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스프레이를 쓰는 것인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보다 금방이라도 인류 전체가 피부암에 걸려 전멸 할 것만 같아 두려웠다. 머리를 세운 사람들만 보면 쫓아가서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그 행동이 무례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지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 타는 속을 달래었던 기억이 난다. 


프레온가스에 호들갑을 떨었던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어른들은 오존층 파괴에 무지했고, 무심했다. 어린이의 짧은 집중력 때문인지 내 관심도 금세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스웨덴의 소녀 당찬 그레타 툰베리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그때의 일이 다시 생각났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외면하는 정부와 어른들에 대한 항의의 행동으로 매주 금요일 학교에 가는 대신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를 위한 학교 거부’ 피켓을 들고 일인 시위를 시작한 (시작 당시)열다섯 살 소녀는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냥 주어진 것이라고 해서 내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질문, 문제의식이 가지고 오는 변화, 그 영향력을 그녀를 통해 실감한다. 


똑똑한 그녀와 내 어린 시절을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착했던 그때가 떠올라 잠시 웃는다.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오트밀, 커피

점심 : 파스타 샐러드(통밀 파스타+토마토소스)

간식 : 견과류

저녁 : 타이 그린 커리, 맥주


54.

2019.08.23.


초저녁 선선한 바람이 아직 뜨거운 내 피부를 스친다. 

처서. 더위가 그치고 가을을 기다리는 시기. 

다정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어."


며칠 전, 마트에서 레몬을 싸게 사온 뒤로 아침마다 레몬즙을 짜서 넣은 물을 크게 한 컵씩 마시고 있다. 레몬향이 상큼하게 아침을 깨운다. 두유 한 컵에 오트밀 두 스푼, 치아 씨드 한 스푼, 호두 2알, 대추야자 3개 넣고 갈아주니 든든한 스무디 완성! 3시간은 거뜬하다. 점심에는 된장찌개를 끓여 먹고, 저녁엔 아보카도, 무화과, 토마토 샐러드를 통밀빵 위에 얹어 먹는다. 



55.

2019.08.24.


https://g.co/kgs/nKfWbM

!!! 한 번에 봐 내기 힘든 다큐멘터리. 보기 전에 각오가 필요하다. 나는 도입부 10분, 중간 중간 건너뛰기 해서 모두 20분을 채 보지 못했다. 



아침 – 무화과, 커피

점심 – 된장찌개, 잡곡밥

간식 – 견과류(호두, 아몬드, 해바라기씨, 대추야자)

저녁 – 월남쌈



56.

2019.08.25.


침대 위에서 뒹굴 뒹굴. 행거에 걸린 옷들을 보며 저것들을 다 빨아야 하나? 생각한다. 청소를 매일 하는데도 불시에 재채기가 계속 나오는 게, 에어컨을 달기 위해 뚫은 벽, 거기에서 나온 흙먼지들을 저 옷들이 뒤집어쓰고 내가 그 먼지를 들이 마시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이러다 호흡기 질환이라도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을 키운다. 그럼, 그냥 다 빨아버리면 되잖아, 하면서도 또 그러지는 않으니, 그러기엔 좀 귀찮기도 하고. 그 고민을 하다 반나절이 또 훌쩍 지나간다.  


내게 오트밀은 최고의 아침식사다. 맛이 최고라는 말은 못하겠으나 식단 고민하는 게 꽤나 큰일인 자취생에게 고민 없이 속이 편하고도 든든한 식사를 보장한다는 것만으로 합격이다. 오늘은 부재료로 햄프씨드, 치아씨드, 냉동망고, 무화과, 아가베 시럽을 더해서 먹는다. 점심은 가볍게 삶은 감자와 방울토마토를 넣은 샐러드를 먹고, 저녁엔 마늘과 아스파라거스를 넣은 통밀 엔초비 파스타를 먹는다. 파스타를 먹고 남은 올리브 오일이 괜히 아까워 메스테마허 빵을 한 장 구워 먹는데 아무래도 괜한 짓을 한 것 같다. 배가 빵빵, 가스가 차서 방구가 뽀오오옹 나온다. 적당하게의 기준을 조금씩 낮춰가야 하는데, 나는 왜 어떻게 해서든 내 정량을 채우려 하는 것일까? 몸의 반응을 봐서는 내 몸이 내 먹는 것을 못 따라가고 있는 게 분명한데 말이다.



57.

2019.08.26.


<엄마의 실종>(2018. 베니아미노 바레스)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http://www.eidf.co.kr/kor 에 들어가면 2019년에 출품된 다큐 영화들을 무료로 볼 수 있는데  언제까지 무료인지는 모르겠으나 엄선된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아무튼, 영화는 감독의 엄마에 대한 영화다. 베네데타 바르지니. 1965년 이탈리아 모델 최초로 미국 보그 표지를 장식하고, 앤디 워홀의 뮤즈이기도 했던 당대 최고의 모델.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패션 산업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 그 허상을 경멸한다. 지금 그녀의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하지만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 슬픔과 분노, 그리고 수줍음으로 반짝거리는 눈빛은 그녀를 꼬장꼬장한 할머니가 아닌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 보게 만드는데 그녀의 젊은 시절 사진들을 보면 누구라도 그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그녀는 아름답다. 그것이 연출된 사진이건 아니건 그녀를 보고 느끼는 즉각적인 반응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름다움은 모델로서 그녀의 성공에 정당성을 부여할 만큼 강력하다. 


모두가 그녀의 아름다움을 칭송하지만 남자들이 만들어낸 판타지를 재현하는 도구로 전락한 자신의 존재, 그런 그녀를 보고 스스로 수갑을 채우는 여성들을 보면서 그녀는 우쭐해하는 대신 참을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패션 산업이 만들어 낸 기형적인 욕망을 깨우기 위해 그녀는 나름의 싸움을 계속해오고 있다.  tv 토론, 페미니즘 시위에 참여하면서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이탈리아 사회와 싸워왔고,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tv토론 프로에서 재능 없이, 단지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성공하고, 많은 여성들이 이를 추구하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영화 <네온 데몬>(2016)이 생각났다.  https://brunch.co.kr/@cinejwk/34 )       


그녀는 사라지고 싶다고 말한다.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는 곳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수십 년의 세월동안 욕망의 대상으로 이미지 안에 갇혀 있었던 그녀는 자유를 원한다. 일흔다섯. 이제 그녀는 자신에게 다른 인생을 주고 싶다. 노동의 시간을 끝내고 지성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그녀는 아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자 한다. 


영화를 보고 구글에서 그녀를 검색해 봤다. 이탈리아 유명 저널리스트와 상속녀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가 누렸을 문화적, 경제적인 윤택함, 그리고 타고난 아름다움. 모델로서의 성공. 몇 줄의 글로 설명되는 그녀의 삶은 누구라도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그녀의 삶이 아니다. 그녀를 보며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투쟁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정말 내 삶의 주체자인가? 부끄러움과 힘이 동시에 차오르는 밤이다.


-오트밀, 무화과, 커피 

-잡곡밥, 버섯볶음

-견과류

-볶음밥  


58.

2019.08.27.


나는 새콤한 과일을 좋아했다. 지금도 새콤한 맛을 좋아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온 인상을 찌푸리게 되는 딴딴한 자두를 특히 좋아했고, 부사보다는 아오리나 홍옥을 좋아했다. 귤이 아무리 셔도 내게는 달았다. 과일은 무조건 신맛이지! 그랬다.


입맛도 변하나보다. 올해 나는 자두를 하나도 먹지 않았다. 맛있는 자두, 과육이 단단하면서 새콤함과 달콤함이 적절하게 배합된 자두가 드물어서 이기도 하지만(대부분 과하게 싱겁거나 과하게 시거나해서) 미간에 주름이 절로 지어지는 그 신맛이 어느 순간부터 통증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전에 좋아하지 않았던 것들도 좋아하게 되면서 취향의 폭이 넓어지고 다양해진다. 그래서 좋기도 하지만 한때 ‘너무너무너무’ 좋아했던 그 마음을 잘게 나누어 이제는 ‘너무너무너무’ 좋아하는 것이 없는 건 아닌지, 씁쓸하기도 하다. 오랜만에 새콤달콤한 아오리를 씹어먹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오트밀(귀리+헴프씨드+치아씨드+냉동블루베리+무화과+아가베시럽+물), 커피

점심 : 메밀국수

간식 : 쏘이라테 (라테를 마실 땐 언제나 샷을 하나 더 추가했었는데 오늘은 샷 추가 없이 마셨다. 커피 양이 적으니 오히려 쓴맛이 덜하고 고소한 맛이 포근하다.)

저녁 : 타이그린커리에 두부를 부쳐서 함께 먹었다. 후식은 아오리사과.  


59.

2019. 08. 28.


처음 계획했던 채식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이것이 끝나고 나서도 채식 식단을 이어나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일단 매일 쓰는 일기는 8월로 끝을 맺을 생각인데 끝나갈 때가 다 되니 원래 계획했으나 완수하지 못한 것들이 생각난다. 

1. 여러 가지 채식 레시피 시도와 그에 대한 평가.

2. 일주일 식비로 구입할 수 있는 식재료.

3. 구입하는 식재료의 원산지와 그에 따른 맛과 가격 비교.

3. 채식으로 채우는 영양 균형에 대한 공부.

시도해보고 싶었던 채식 레시피들이 많았지만 재료 구입이나 시간 등등, 현실적으로 무리가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을 시도하고 정리하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그리고 돈!) 필요로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라고 변명을 해본다. 이번 채식 프로젝트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이것으로 스트레스 받지 않을 것! 이었다. 내 일상과 소비형태에 맞게 나름 균형 있는 채식 식단으로 스트레스 없이 두 달을 이어오고 있으니 그 점에 대해서는 일단 성공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오리사과 2알, 무화과, 커피

-곤드레 밥

-견과류

-잡곡밥, 된장찌개, 멸치조림 


60.

2019.08.29.


미용실에 안 간지 5년이 넘었다. 내 머리카락은 일 년에 한두 번 내가 직접 자르는데 필요한 것은 다이소에서 산 이발용 가위, 바닥에 깔 신문지, 거울, 빗, 10분의 시간이 전부다. 내가 특별히 손재주가 좋아서 직접 이발을 하는 건 아니고, 늘 같은 스타일, 긴 머리(가위질이 정교할 필요가 없다. -순전히 내 생각)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미용실에 갈 필요성을 못 느끼는데다가 미용실이라는 공간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드라이기 소리, 약품 냄새,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수다들까지 미용실에 가면 마치 멀미하는 사람처럼 늘 마음이 불안하고 두통이 일며 나는 머리카락만 자르러 왔는데 모발이 너무 가늘다, 머릿결이 너무 안 좋다, 관리를 해줘야 한다, 등등등 듣기 불편한 말들을 들어야 하는 게 싫어서다. 그럼 나는 “원래 모발이 가늘고, 반곱슬이라 그렇다.” 뭔가 죄지은 사람처럼 변명하기에 바쁘고...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썩 기분이 좋지 않아서,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어느 순간, 미용실을 끊어 버렸다. 미용실을 끊고 나니 일단 미용비가 절약되고, 머리에 화학약품을 쓰지 않아서인지 머리가 아무리 길어도 머리카락 끝이 갈라지지 않으며 헤어스타일에 대한 고민이 줄어 그에 대한 스트레스 역시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어떤 날은 단발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회색으로 염색을 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그 이후(머리카락이 기는 시간, 염색한 머리 위로 자라는 검은 머리, 상한 머리카락)를 생각하면 괜한 짓 말자, 지금에 만족하게 된다. 머리를 묶거나 혹은 풀거나 그게 전부다. 다른 꾸밈에도 이처럼 단순한 마음일 수 있으면 좋겠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샴푸로 머리를 감고, 헤어식초로 두피를 헹궈주는 걸로 나름의 관리를 하고 있는데 지금 쓰는 샴푸를 다 쓰면 바 형태의 샴푸로 바꿀 생각이다. 플라스틱 용기 배출을 줄이고자 얼마 전부터는 바디 클렌저를 따로 쓰지 않고 비누를 쓰고 있는데 왜 진작 바꾸지 않았을까 싶다. 


간혹 나를 칭찬하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음... 칭찬할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하고, 하고 또 하다가 아주 사소한 것들, 그러니까 미용실에 가지 않음으로써 화학제품을 쓰지 않고, 가능한 쓰레기 배출을 줄이려는 그런 노력들을 찾아낸다. 하하하!! 쳇! 하하! 흥! 



오늘 내가 먹은 것들!   

아침 : 스무디(두유+호두+아몬드+대추야자+치아씨드+오트밀), 사과, 커피

점심 : 된장찌개

간식 : 무화과

저녁 : 볶음밥(양파, 당근, 호박, 어묵), 샐러드(상추+토마토)


61.

2019.08.30.


서울현대미술관에서 박서보 전시를 보았다. 전시 타이틀은 ‘박서보 :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지하 1층에서부터 전시를 봐야 시간 순으로 볼 수 있는데 우리는 1층 후기 묘법 시기에서부터 시작해 역순으로 초기 작품까지 그의 작품들을 감상했다. 그의 후기 작품들을 보면서 잠깐이지만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 단순한 선들 사이로 내가 빨려 들어가고, 자연 속에 홀로 서있는 듯한 초현실적인 느낌. 두렵고도 황홀한 기분이었다. 


분노와 부정, 파괴, 그리고 체념과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예술가에게 휴식이란 없는 거구나,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 


아침엔 오트밀 죽, 점심엔 샐러드와 타이 그린 커리, 그리고 저녁엔 피자. 비건 피자 아니고 그냥 피자. 피자. 피자. 맛있게 먹었다. 맛있게. 변명을 하자면 나는 너무 배가 고팠고, 피곤했고, 함께 간 식당에 다른 대안이 없었고. 앞으로의 식단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62.

2019.08.31.


비거니즘. 이 단어의 의미는 간단하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동물성 제품을 섭취하지도, 사용하지도 않는 것을 의미하는 이 단어에서 누군가는 책임과 죄책감을, 누군가는 위선을, 누군가는 무의미를 읽는다. 이것은 종교도 아니고, 정치적 신념도 아니다. 하지만 이 라이프 스타일은 종교나 정치적 입장 이상의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한다. 질문들이 이어진다. 왜? 그럼 뭘 안 먹는 거야? 왜? 영양 불균형은?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려고? 윤리적 이유 때문이라면 이것도 하면 안 되고 저것도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질문은 점점 공격적으로 변해가고 어느 순간 나는 까다롭고, 불편하고,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주의’로 완성되는 개념들은 종종, 아니 수시로 싸움을 야기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비거니즘은 개인의 선택이고, 육식을 하는 자와 아닌 자를 가르기 위함이 아니다.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시야를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시작이다. 


원래 계획했던 두 달간의 채식, 마지막 날이다. 이번 채식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음식에 대한 집착을 많이 줄이고, 단순한 식사에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맛있는 음식은 큰 즐거움이고, 이를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또한 축복이지만 때로 이 때문에 (요즘 시대에 더더욱)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앞으로 채식을 계속 이어갈지는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고 하는 걸 보니 아마도 플렉시테리언([명사] 식물성 음식을 주로 먹지만 고기류도 함께 먹는 사람.)으로 한 동안 살 것 같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동물성 소재, 성분이 들어갔거나 동물 실험을 한 제품은 쓰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사과, 커피, 가지비빔밥, 방울토마토+오이 샐러드, 견과류, 맥주, 치즈, 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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