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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Sep 03. 2019

7월과 8월의 무성의한 일기장.

https://www.youtube.com/watch?v=yjz2TvC2TT4


월말이면 그 달을 돌이켜보며 생각들을 정리한다. ‘무성의한 일기장’이라는 타이틀로 글도 쓴다. 7월엔 어찌어찌하다 그 시기를 놓쳐서 오늘 9월 3일에야 지난 두 달을, 어느 새 9월인가 싶지만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던, 기억하는데 어제 있었던 기자간담회 때문에 일본과의 경제전쟁도, 류현진의 활약도, 정두언 전 국회의원의 자살도, 조은누리양 실종과 구조도, 이용마 기자의 죽음도, 브라질 산불도, 모두 흩어지고, 내 생일이 있었던, 고기를 먹지 않았던 나의 여름이 착잡한 마음 아래로 가라앉는다. 무슨 대답을 하건 받아들이는 건 듣는 자의 몫이다. 누군가는 지지를 보낼 것이고, 누군가는 위선자라 욕하며 의심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을 하는 기자들은 막연한 믿음과 막연한 의심이 아닌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의심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기자간담회 전체를 보지는 않았지만 중간중간 유튜브로 라이브영상을 볼 때마다 같은 질문들이 무한 반복되고 있었고,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몇 주간의 보도와 더불어 어제의 기자간담회는 ‘의혹 검증’이라는 명분아래 행해진 ‘고문’과 다를 바 없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 집단에 속한 자들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질문들과 태도. 여기에 내 마음은 분노가 아닌 무력감과 슬픔을 느꼈다. 


에라이!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진 초가을의 내 마음, 9월을 시작하는 내 마음, 매일 노트북 앞에 앉는 내 마음을 짧게 고백해본다. 


흩어지는 생각을 겨우 붙잡아 종이 위에 옮긴다. 문장으로 완성된 글이 부서진 꿈의 조각들처럼 낯설다. 뭐 대단한 생각이라도 한 줄 알았어? 스스로가 한심해 잠깐 웃는다. 참 지루한 문장이고, 뻔 한 생각이야. 조사도 바꿔보고, 사전도 검색하고, 문장의 위치도 바꿔가면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그럴듯한 것으로 만들어보려고 ‘나름’ 애쓴다. 이제 막 화장을 배운 소녀의 얼굴 같아 거울을 보는 게 부끄럽다. 그래도 쓴다. 쓰고 싶으니까, 영화는 못 찍어도 글은 ‘나’만 있으면 쓸 수 있으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s1QCL9AGbO0


cinema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프랑스 영화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배우들이 총 출동한 영화라 기대가 컸는데... 영화가 감동도 없고, 웃음도 시시하고. 뭐야!

<로마의 휴일>

말해 뭐해. 다시 봐도 명작이다. 그레고리 펙이 이렇게 미남인지 몰랐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찌질하고 수다스럽지만 사랑스러운 영화. 

<롱샷>

빵빵 터지는 영화인데 한국에선 어째서인지 흥행 실패. 음... 세스 로건 나오는 영화는 웬만하면 다 좋다. 

<아임 낫 데어>

뮤지션에게 음악 외에 주어진 역할이라는 게 있을까? 늘 누군가에 의해 해석 된 ‘내’가 된다는 건....

<누구나 아는 비밀>

그 비밀이, 설마..설마.. 에? 그 비밀이 드러난 순간 쌓아온 감정들이 단숨에 무너져버린다. 아쉽다.

<글래디에이터>

재밌다. 옛날에 봤을 땐 재밌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훌쩍 지나간다.

<호크니>

봄에 그의 전시를 보고 여름엔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영화는 조금 지루했으나 그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그의 입으로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쉘부르의 우산>

아름답고, 아름답고, 아름답다. 

<프라이멀 피어>

1997년에 이 영화를 봤을 때 우아! 했는데, 그건 순전히 에드워드 노튼 때문이었어. 


https://www.youtube.com/watch?v=Rq0yhizu0y8

TV Series

<체르노빌>

공포 영화보다 무섭다. 보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리고 미간에는 주름이 지워지지 않는다. 상상이 만들어 낸 비극이 아니라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 어쩌면 우리에게도 생길지 모르는 일. 그것이 주는 공포와 피로는 상당했다. 차분하고 임팩트있게 잘 만들어진 드라마다.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드라마를 기획하고 쓰고 제작한 사람이 줄곧 코미디 영화 각본(<행오버>시리즈, <무서운 영화> 시리즈 등등)을 써왔던 크레이그 마진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그의 필모가 기대된다. 

<모던패밀리>

좀 저렴하게 웃기는 코드들이 있지만 밥 동무하기에 참 좋다.

<빅뱅이론>

쉘든. 이토록 사랑스러운 꼴통이 있을까. 그의 성장을 보면서 울컥한 순간들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아듀 쉘든.

<마인드헌터>2

이번 시즌은 각각의 카테고리들을 따로 보면 괜찮은데 9개의 에피소드 속에 섞어 놓으니 산만하다. 재밌게 봤지만 기대가 워낙 컸었기에 아쉬움도 컸다. 


https://www.youtube.com/watch?v=fBc08yzdB4c

booooks

<슬픈짐승> 모니카 마론

읽기에 쉬운 책이 아니었다. 황량한 방에서 과거의 기억에 갇혀 있는 늙은 여자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괴로웠다. 결코 동참하고 싶은 슬픔이 아니었지만 중간에 멈출 수가 없었다. 중간에 읽기를 포기하면 그녀의 기억, 슬픔 속에 함께 갇혀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포트노이의 불평> 필립 로스

미국 사회에서 유대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미 여러 대중매체를 통해 코미디의 소재(<빅뱅이론>에서 하워드, 그리고 우디 알렌의 거의 모든 영화)로 접한바 있는데다가 필립 로스의 다른 소설들에서도 학습한 바 있지만 <포트노이의 불평>은 2019년에도 충격적일만큼 거침없고, 변태적이다. 엄청나게 수다스러운 성공한 유대인 남자가 거침없이 토해내는 불평이 숨 가쁘게 읽힌다. 일단, 필립로스 책은 다 재밌다. 


<연애의 책> 유진목

모니카 마론의 <슬픈짐승>이 생각나는 시 <접몽>을 옮긴다.


접몽


빈 방에서 사랑을 했는데

당신은 어느덧 살림이 되고


나는 봉지처럼 느슨하게 묶여서

서랍에 들어 있길 좋아한다


움켜 쥔 창틀 쪽에서

매일 밤 돌아오지 않는 꿈을 꾼다


나는 당신이 돌아오지 않는 것보다

그게 더 슬펐다.


배꼽에 흐르던 당신의 일들


내게서 당신이 가장 멀리 흐를 때

나는 오래 덮은 이불 냄새


우리는 닫힌 채로 집을 나왔다


<어젯밤> 제임스 설터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을 읽고, 그의 두 번째 책이다. <어젯밤>은 그의 단편집인데 그의 장편 소설을 한 편밖에 읽지는 않았지만 그의 장편보다 단편이 내게는 강렬하고 좋았다. 단편 소설을 읽고 충격에 빠지기는 쉽지 않은데 제임스 설터의 단편들은 사람을 당황시킨다.  작가 하성란은 화장 안 한 맨얼굴로 나갔다가 제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딱 마주친 느낌이라고 했다. <어젯밤>을 읽고 철렁 내려앉은 가슴은 이 작품을 생각할 때마다 그때의 느낌 그대로 가슴이 철렁한다.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작가 김애란의 첫 산문집이다. 정말 많은 글들을 담았다. 그 중 어떤 글은 참 좋았고, 또 어떤 글은 지루했다. 


<네메시스> 필립로스

예정된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 청년의 운명을 읽으면서 그래도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로 끝을 맺었다. ‘폴리오’라는 전쟁과도 같은 이 거대한 질병 앞에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지. 누군가는 감염되어 죽고, 누군가는 불구가 되고, 누군가는 살아남는 이 비극이 주는 두려움 앞에서 우리는 또 얼마나 무자비해질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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