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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Jan 28. 2020

12/1월의 무성의한 일기장

변화와 적응

https://www.youtube.com/watch?v=tdpWmlScve8

POOM - Je suis venu te dire que je m'en vais


6년 전, 조급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나는 서울에서 내가 살 집을 찾아다녔다. 보증금 500만원으로 구할 수 있는 최상의 집을 구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아침 일찍 부산에서 올라와 수유동을 시작으로 지금은 무슨 동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동네 두 곳을 더 보고, 홍대를 마지막으로 총 네 곳의 원룸을 본 뒤 밤 11시 버스를 타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무척 고단한 일정이었다. 


수유동의 원룸은 다가구 주택을 개조한 원룸이었는데 방과 주방이 분리되어 혼자 살기에 공간이 꽤 넓은데다가 관리비가 따로 없는 35만원 월세의 가성비가 좋은 집이었지만 일터와의 거리, 그리고 집 앞에 보신탕집이 있다는 것에 썩 내키지 않았다.


서울은 얼마나 거대한지 수유동에서 다음 동네로 가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게다가 서울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내게 서울은 파리보다 낯선 도시였다. 아무튼 다음에 본 두 집은 영국 탄광촌 주택을 연상시키는 삭막한 원룸촌에 있는 5평 남짓의 조그마한 원룸이었다. 집 주인들은 하나같이 “서울에서 이 가격에 이만한 집 없다.”라는 말을 했다. 나는 멋쩍은 미소만 지었다. 서울에서 살기 위한 일종의 세금 같은 건가? 과연 내가 지출하는 비용만큼의 기회를 나는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당시엔 물론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밤이 되어서야 나는 홍대에 도착했다. 핸드폰 지도가 알려 준 곳에는 커다란 주택이 있었다. 여기에 방이 있다고?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 벨을 누르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할머니가 나왔다. 저, 방 보러 왔는데요. 조심스럽게 할머니를 따라 현관문을 넘어 마당을 지나자 8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예상되는 2층 주택 옆으로 쪽방들이 이어졌다. 어두워서 어떤 건물인지 형태가 짐작도 되지 않는 방들을 지나 할머니는 가장 구석에 있는 방 앞에 서서 문을 열었다. 불을 켰음에도 어둡고 습한 방이 그 초라한 모습을 드러냈다. 공짜로 살게 해 준다고 해도 살고 싶지 않은 그런 방이었다. “해가 전혀 들지 않는 것 같은데요?” 내가 물었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올꺼 아닌교? 그런데 해가 만다꼬 필요한교?” 맙소사!! 나는 웃었다. 


결국 나는 수유동에서 처음 본 집으로 이사했고, 그 곳에서 6년을 살았다. 처음엔 일 년 정도 살다가 이사를 나갈 줄 알았는데 6년을 살았다. 6년이라는 시간을 입에 담으니 가슴이 철렁한다. 심각하게 생각하자면 끝도 없이 심각해질 것 같아서 가능한 가볍게, 가볍게 여겼는데 변화 없는 6년을 살아내고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시간을, 더 이상은 피할 수 없었다. 

 치열하게 살았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내 일에 있어서 운이 조금 없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내 의지로 가능한 일들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많은 열정과 헌신을 요구하는 일이었고 내가 가진 열정은 그 모든 보통의 불운을 이겨낼 만큼 충분하지 않았다. 가난해도 나름의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면서 산다고 생각했는데 무력함이 반복되면서 흐르는 시간과 함께 나는 지쳐갔고 고작 접시물에도 나는 고여서 썩어갔다. 


내 처지를 안타까워 한 엄마는 내게 여러 번 말했다.

“더 늦기 전에 다른 곳에서 살아보는 건 어때? 변화를 줘보는 거야. 네가 지금 꼭 서울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요즘 같은 세상에 어디에 살든 그게 뭐 중요하니?”

나는 엄마의 말을 웃어 넘겼다. 언제라도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올지 모른다고. 하지만 내 전화는 울리지 않았고, 시간은 흘렀다. 


날씨가 궂은 날에는 침대에 누워 전기장판을 틀어놓고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를 보면서 그래도 내 공간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야. 그치만 다음에 이사 갈 때는 해가 잘 드는 집으로 가야지. 때로는 내가 벽지 뒤에 숨어있는 곰팡이로 변해서 이 집에서 영원히 떠나지 못할지도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퍼져서 꿉꿉한 실패의 냄새를 풍기는 존재로 변해가고 있다고. 변화가 절실했지만 어쩌다보니, 실망스러운 말이지만, 분명 이유가 있지만, 어쨌든 정말 어쩌다보니 변화가 두려운 사람이 되어있었다. 


변화는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나는 변화를 선택했다. 


나는 지금, 수유동을 떠나서 내가 바라던 해가 잘 드는 집, 거대한 창이 있는 집으로 왔다. 아직은 낯선 이곳 창밖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타고 나오는 음악은 높은 천장을 치고 내려와 맛깔나게 내 공간을 채운다. 정신없이 바빴던 한 달(지방 이사가 보통일은 아니더라.)이 지나고, 40일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나가고 있다. 


6년의 서울 생활을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모르겠다. 정리할 거리가 있기는 한 것인지, 단지 거주지를 바꾼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 그것보다는 좀 더 의미가 있고 중요한 변화라는 생각도 든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전혀)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왜 진작 변화를 주지 않았나 아쉽기도 하지만 결국엔 지금이 적절한 때이고 적절한 선택이라는 생각이다. 글을 쓰고, 이미지를 그리는 것, 그 일을 잘 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계속 연마해 나가겠다는 의지도. 


12월과 1월의 키워드


이사와 적응. 시끄러운 사회 문제들로부터 완전한 격리. 그럼에도 호주 산불은 걱정이 된다. 1월의 작품과 인물은 찰스 부코스키와 그가 쓴 장편소설 <헐리우드>. 영화 한 편을 완성해서 극장에 건다는 것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전투에서 승리해야만 하는 전쟁과도 같다는 것을 정말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극 중 종 팽쇼(실존 인물-바르베 슈뢰더)의 믿을 수 없는, 제정신 아닌 열정정도 돼야 영화를 하나...싶기도 하고. 


대가들은 늘 그렇게 참 쉽게 무언가를 하는 것 같다. 부코스키의 글도 참 쉽게 읽힌다. 너무도 가볍고 쉽게 점프하는 발레리나처럼. 나는 언제쯤 숨 쉬듯 글을 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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