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ejwk Oct 03. 2021

9월의 무성의한 일기장

여름의 끝

https://youtu.be/Bbkwrf5lMqc


후덥지근한 가을 장마가 여름의 발목을 잡고 놓아줄 생각을 않는다. 나는 하나도 아쉽지 않은데… 그렇다고 가을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아니고… 그냥 9월인데 어째서 8월보다 체감온도가 높은것인지, 그게 좀 짜증이 날 뿐이고. 그래도 올해의 어중간한 태풍들이 고맙고. 작년 마이삭의 공포를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가로로 몰아치는 비바람에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온 빗물을 닦아내느라 밤새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수 년전 지진의 악몽에 맞먹는 강력한 바람이 천장 조명을 흔들어 무릎을 꿇고 하느님 아버지에게 기도를 하지 않았던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후이상 변화들을 보면서 저 난리를 내가 겪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나, 순간 가슴을 졸이지만 하룻밤 자고나면 이 긴장은 내 어두운 공포의 방 깊은 곳에 숨고 없다.

9월이다. 나는 퇴사를 했고, 언제 출근을 한 적이 있었던가, 다시 백수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조깅을 다시 시작했고, 올해 안에 면허를 따겠다는 결심을 실천하고 있으며 백신 1차 접종을 완료했다.


조깅

9월 한 달동안 15일을 달렸다. 70.8km를 달리는데 8시간 31분 54초가 걸렸으니 평균 속도는  7’14’’가 되겠다. 첫날 달리고 나서 다음날 온 몸이 쑤셔서(특히 상체 몸통이) 쉬는게 좋지 않을까 잠시 망설였지만 막상 달리기 시작하니 달리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어서 놀랬다. 보통 하루에 5km를 달리는데 10월의 목표는 7km다. 매번 7km를 달리는 것은 좀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달려보기전까지는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니 내 몸에 집중해서 부상 없이 7km, 연말에는 부디 10km 달리기도 성공하기를.


백신

집 근처 요양병원으로 1차 백신 접종 예약을 잡았다. 전신마취를 두 번이나 하고 병원에 한 달 넘게 입원해 있는 동안 하루에 주사를 열방 넘게 맞은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에! 백신 접종 쯤이야!’ 허세를 부렸다. 그리고 접종 하루 전 날, 인터넷으로 주의사항과 부작용을 검색해보는데 ‘아이고, 이거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나 내 지인들은 모두 괜찮았으니 나도 괜찮겠지, 괜찮을거야.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갔다. 신분증을 제출하고 신청서였나? 아무튼 서류 작성을 끝내자 간호사 선생님이 화이자 스티커를 내 손등에 붙여 주었다. 그리고 나서 의사 선생님과 30초정도 면담(알레르기가 있는지, 복용하는 약이 있는지를 물어본다.)을 가진 후 안내에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선택한 병원은 요양병원이었기 때문에 병실 하나를 주사실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방에 들어가니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침대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지금 내 기억으로는 그 방에 7명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몇 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2인 1조를 이루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다가가 주사를 놓고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그 누구도 아야!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었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느낌이 없어서 이거 식염수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 접종 후 20분간 이상 반응 관찰을 위해 병원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확인서를 받아들고 병원을 나섰다. 그 이후의 반응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었던 것과 비슷하다. 접종한 날 오후부터 다음날까지 왼쪽 팔에 통증을 느꼈다는거, 그리고 약간의 어지러움 정도. 몸이 힘들어야 건강하다는 반증이라는데, 나는 그럼 건강하지 않다는 건가?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에 쯧쯧쯧 스스로에게 혀를 차면서 2차 접종이 진짜 아프다던데… 또 벌써부터 걱정을 하고 있다.


운전면허

학원 등록이건 필기 시험이건 일단 증명사진이 필요했다. 처음엔 핸드폰 카메라의 화질을 믿으면서 셀프로 사진을 찍어 보려고 했다. 그런데 왠걸? 아무리 용을 쓰고 찍어봐도 찍힌 사진 속엔 불만가득한 표정의 추녀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게 아닌가.

이거 찍으려고 2년 만에 화장품까지 새로 샀는데… 근데 내가 진짜 이렇게 못생겼나? 하…

절망 가득한 마음으로 집 근처 사진관을 검색한 후 다음 날로 예약을 했다. 결과는 대 만족! (왜냐하면 사진관에서 찍은 내 얼굴이 내가 절망한 만큼 망가져 있지 않아서, 자존감 회복!) 사진을 찍고, 곧장 인터넷으로 필기시험 예약을 했다. 2종과 1종 중 망설이다가 기왕 따는거 뭐 1종따지, 하는 마음으로 1종 보통을 예약한 다음 ‘운전면허plus’어플로 예상40문제를 풀고 또 풀었다. 1종 보통은 70점 이상 맞춰야 합격인데, 풀 때마다 긴가민가 하는 문제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매번 70점 넘게 점수가 나와서 큰 걱정 없이 면허시험장으로 향했다. 접수를 하고, 시험장으로 들어가니 이미 시험을 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내가 시험을 보는 중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험관이 배정해준 컴퓨터 앞에 앉아(아마도 5번 컴퓨터였지?) 차분하게 천천히 문제를 풀었다. 역시 긴가민가 하는 문제들이 있었지만 다시 본다고 알 것 같지도 않고, 아이, 몰라. 시험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화면에 나타난 점수는 79점. 아슬아슬하게 합격! 하하! 자랑할만한 점수는 아니지만 중요한건 합격 여부니까… 그렇게 필기시험 합격증을 받아들고 나는 곧장 운전면허학원으로 향했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 같아 여기서 쉼표를 두고 싶지  않았다. 추석때 본가로 내려가기 전 장내기능 시험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학원에 갔으나 코로나 거리두기 때문에 한 번에 수강할 수 있는 학생 수가 제한되어 있어서 내 계획대로 수업을 들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추석 연휴 전에 소양교육을 듣고 연휴가 끝나고 장내 기능을 듣기로 하고 거금을 지불했다.

그리고 어제 장내 기능 시험을 치렀고, 80점으로 아슬아슬하게 합격했다.

장내 기능 수업은 모두 4시간인데 수업을 듣고 차에서 내릴때마다 얼마나 긴장하고 용을 썼는지 다리가 후들거리고,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축축했다. 이놈의 트럭이 어떻게 움직이는 건지 감도 안 잡히는데 시험이라니! 그래도 국가고신데 4시간이면 충분하니까 4시간만 수업하겠지? 왼 발로 클러치, 오른발로 브레이크, 으아으아 내가 핸들을 한 바퀴 돌렸는지 한 바퀴 반 돌렸는지 오락가락하고, 기어 변속은 왜 하는 건지 왜 이단 갔다가 삼단에서 또 이단으로 바꾸는건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시험 코스 중에 꼭 수행해야 하는 과제라 하니 선생님이 일러 준 대로 하기는 하지만 내가 제대로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나는 제대로 한 것 같은데 이렇게 하면 감점이라하고, 그래도 직각주차는 매뉴얼대로 잘 한다 싶어서 가속구간만 조심하자, 출발할때 좌측 깜빡이, 종료직전에 우측 깜빡이만 안 잊으면 합격이다! 했다. 일기예보상으로 비가 온다해서 긴장 했는데 다행히 날이 활짝 개었고, 유튜브를 보면서 시뮬레이션도 여러번 했으니까, 나를 믿자. 나보다 앞서 시험을 치르는 사람들이 모두 합격인걸 보면서 나도 합격할거야! 하면서 운전석에 앉았다. 좌석 내 체형에 맞게 맞추고, 안전 벨트를 맨다. 휴….자, 시험이 시작되고, 시동켜고, 와이퍼 작동하고, 클러치 밟은 상태에서 기어 후진으로 바꿨다가 중립에 둔다. 오케이! 당연히 모두 통과! 클러치 밟은 상태에서 주차 브레이크 내리고 기어 1단에 놓고 좌측 깜빡이 켜고, 브레이크 발 떼고, 클러치 살살 놓으면서 출발, 오케이! 그러고 오르막길 올라가는데 갑자기 감점이라고 하는게 아님? 이런 제길, 삐! 소리가 나면 좌측 깜빡이를 꺼야 하는데 내가 깜빡이를 끄지 않은 거다. 근데 정말이지 내 귀에는 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괜찮아. 진정하자. 휴…. 호흡 한 번 크게 내 쉬고, 오르막길 정지, 1,2,3, 브레이크 누른 상태에서 반클러치, 차가 흔들리면 브레이크 떼고 출발. 휴… 이때부터 살짝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던것 같다. 언제 돌발이 튀어 나올지 모른다. 조심하자. 휴… 커브길을 도는데 어째서 차가 자꾸 삐뚤다. 핸들을 계속해서 움직여준다. 괜찮다. 다음은 주차 코스. 나는 주차는 잘 하니까. 배운대로 어깨선 노란 선에 맞춘 다음에 핸들 오른쪽으로 전부 돌리고 반 클러치 살살살 차가 일자가 되면 브레이크. 그리고 핸들 풀어준 다음 반클러치로 왼쪽 어깨가 왼쪽 연석이랑 일자가 될때까지 살살살. 그리고 스탑, 핸들 오르쪽으로 반만 돌려서 앞바퀴가 앞쪽 연석 반만 걸쳐질때까지 또 살살. 핸들 왼쪽으로 전부다 돌린 상태로 기어는 후진으로 바꿔준다음 차가 주차구역이랑 일자가 될 때까지 역시 반클러치. 핸들 바로 해 준 다음 주차선까지 다시 후진. “확인되었습니다.” 하면 그때 주차 브레이크 올리고 삐! 소리나면 주차 브레이크 내리고 기어 다시 1단에 놓고 오른쪽 어깨 노란 실선에 맞춘 다음 핸들 오르쪽으로 전부 돌려서 주차구역 빠져 나오면 되는데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빠져 나오는 순간에 “탈선으로 감점입니다.” 하는게 아닌가? 이건 무슨 소리? 탈선이라고 왜? 당황해서 핸들 제대로 안풀고 차가 삐뚤게 나가는데 정신이 혼미해져서 어떡하지? 어떡하지? 헤매다가 앞에서 감독하는 선생님의 손 방향보고 겨우 감잡고 핸들을 제대로 틀어서 주차구역 탈출, 그리고 몇초 지나지 않아 돌발! 돌발! 다행히 시간내에 정지하고 비상등 켜고. 휴… 돌발 구간 통과. 그래도 벌써 15점이나 감점되어서 아, 나는 망했다. 가속구간 실패하면 10점 감점인데, 다시 시험 치를 각오를 하고, 교차로에 진입. 파란불이길래, 지나가려고 하는 찰나, 정지선을 막 넘은 시점에 왜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는거지? 이런 쓰…. 정지선 위반 5점 감점. 아, 이제 실수 하나만 더 하면 나는 실격이다. 그렇게 가속구간 진입. 잠시 멈추고 클러치 밟은 상태에서 기어 2단으로 변환, 브레이크 떼고, 반클러치에서 발 떼는 순간 액셀 밟고 가속구간 절반 지나서(진짜 절반 지난지는 모르겠고, 그냥 감으로)액셀에서 발 떼고 클러치 밟고 기어 3단에서 바로 2단, 브레이크 살살 밟으면서 속도 줄이고 가속구간 탈출. 어라? 감점이라고 안하네? 잘하면 합격하겠는데? 그렇게 핸들 왼쪽으로 돌려서 코너 돌고 종료지점을 10미터 앞두고 오르쪽 방향등을 켰는데 핸들을 제대로 안 돌렸는지 방향 바로 한다고 핸들 돌리니까 방향등 자동으로 꺼져 버리고 당황해서 재빨리 다시 방향등 켜고 그러고 종료지점 통과! 어라? 합격이라고 하네? 휴… 차에서 내린 후 기절할 것 같은 정신을 간신히 붙들어 매고 사무실에서 도로주행 접수를 하는데 긴장이 그때까지도 가라 앉지 않아 이거 참 큰일이다 싶었다. 하다보면 늘겠지. 그런데 이건 운전이잖아.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건데. 사람들 정말 다들 용감하다. 어떻게 이 무서운 걸 타고 잘도 달리고 좁은 골목길도 왔다갔다하고 갑자기 사람 튀어나오면 잘도 서는 걸까? 하…이제 겨우 4시간 운전 했을 뿐이지만 지금 내 상태는 운전하는 모든 사람이 대단해 보인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다보면 늘겠지.


거리의 생존자

쟝 쥬네의 <도둑 일기>

<더 듀스> 시리즈

거리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투쟁가다.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의 부조리와 폭력을 온 몸으로 받아낸 자들이다. 그 댓가로 그들은 인생의 민낯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누구보다 삶을 뜨겁게 사랑하고 용기있게 살아가는 이들을 나는 오랫동안 존경해왔다. 내 삶에서 이들과 실제로 엮인적은 없다. 내가 만난 이들은 모두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에서 재창조된 캐릭터들이기 때문에 내 실제 삶에서 이들을 만난다면 나는 어쩌면 이들을 무의식적으로 피하려들지도 모르고, 또 불쾌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이들 중 누군가의 생존기를 내가 기록하고 재창조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삶에대한 이들의 무자비한 열정을 잔인하고 찬란하게 표현할 수 있기를 바라고 바란다. 프랑스 작가 장 쥬네는 그 스스로가 거리의 생존자다. 태어남과 동시에 고아가 된 그는 부랑자로 도둑으로 남창으로 젊은시절을 살았다. 그 시절에 대한 자전적 기록을 담은 글이 바로 <도둑 일기>다. 그는 유럽 전역을 돌며 그가 할 수 있는 온갖 비행을 저질렀다. 그 어떤 망설임이나 죄책감도 없이 도둑질을 하고, 매춘을 하고, 남색가들을 유혹한 뒤 협박해서 돈을 뜯어냈다. 그의 옷은 항상 지저분했고, 마치 그 스스로가 숙주가 된 양 그의 몸에는 피부위의 솜털 만큼이나 이가 많았다. 자주 배를 곯았고, 수많은 밤을 동상이 걸릴 것 같은 추위 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도둑 일기>는 그 시절 작가의 삶을 변명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잔인하고 가혹한, 우리가 흔히 시궁창과도 같은 삶이라고 하는 세상의 어둠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고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작가의 열렬한 고백이고, 한 편의 장대한 사랑시다. 글을 읽는 내내 그의 놀라운 재능과 지성에 감탄하면서도 포기를 모르는 그의 열정이 나는 조금 버겁다. 평생을 ‘보호막’ 안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인것만 같다.

거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나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만 함께 머물지는 않는다. 나는 그들을 스쳐 지나간다. 어떤 사람은 구걸을 하고,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고, 어떤 사람은 연설을 늘어 놓고, 어떤 사람은 잠을 잔다. 그들에게선 냉소와 체념의 악취가 난다. 저기 저 검은 입을 가진 노인이 웃는다. 마치 나를 조롱하듯이. 나는 어떤 연유로 저들이 거리로 나왔는지 오만한 상상을 해본다. 한때 그들의 집이었던 곳을 상상하고,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준 다음 사건을 만들어서 그들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거리에서 그들과 마주치면 나는 시선을 내리깔고 걸음을 빠르게 옮길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Runner’s Lo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