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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Sep 29. 2021

Runner’s Log

1. 달리기에 마스크는 곤란합니다.


두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간다. 내 몸을 공중으로 띄운다고 생각하면서 발바닥으로 바닥을 살짝 밀어내고, 90도로 구부린 양 팔은 무언가를 두드리듯 앞뒤로 움직인다. A에서 B로 이동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 움직임의 목적은 오직 움직임에 있다. 언제, 어디서든 길이 있으면 가능한 이 움직임은 내 발에 맞는 운동화, 내 심박수와 비슷한 리듬의 음악을 필요로 한다. 어떤 날은 몸이 가벼워서 지구 끝까지라도 달릴 수 있을 것만 같고, 또 어떤 날은 그 어느때보다 강한 중력의 힘을 느끼며 바닥에서 발바닥을 떼어내는 게 힘들때도 있지만 일단 뛰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내가 달려온 날들의 중간은 달릴 수 있고, 어느 순간에는 가쁜 숨과 흘러내리는 땀으로 아이고, 더는 못달리겠다, 멈출수 밖에 없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내가 살고 있는 집을 기준으로 반경 5km의 길은 어디든 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출근하는 직장인들 사이를 가르면서 도시의 아침이 주는 에너지를 온 몸으로 받고, 빨간불인 횡단보도 앞에서 헛둘 헛둘 호흡을 고르기도 하고, 달리기를 하는 동안 마주할 동네의 소소한 변화들을 기대하면서. 여유가 있는 아침에는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산책하는 강아지들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런 달리기를 해 본적이 없다. 달리기를 시작한지 일 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사람들이 있는 거리를 달릴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왜냐하면 마스크를 쓰고 달리다가는 호흡곤란으로 쓰러질 것만 같아서다. 게다가 나는 시력이 나쁘다. 안경과 마스크 조합, 다음 말은 생략가능. 가빠진 숨 때문에 뱉어낸 숨을 크게 들이 마실때마다 마스크가 얼굴에 들러붙을테고 그러면 몇 분내로 질식해서 쓰러지지 않을까?하는 몹쓸 상상. 달리기를 할거라면 어떻게든 사람이 없는 공간과 시간대를 찾아내야 했다. 다행히도 집에서 10분 거리에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항구가 있었다. 주차장을 이용하기 위해 드물게 왔다갔다하는 차들과 낙시대를 놓고 시간을 보내는 몇몇의 아저씨들만 있는 조용하고 꽤 넓은 공터가 있는 그곳을 나는 내 달리기 장소로 찜하고 직장인들이 출근하기 전인 7시 전후로 달리기로 했다.


항구까지 마스크를 쓰고 이동한 다음 시작지점에 도착을 하면 좌우를 두리번 거리면서 사람들이 있는지 살피고,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린다. 그리고 나이키 런 앱을 켜서 ‘달리기 시작’ 버튼을 누른다. 어떤 날은 시작부터 숨이 가쁘고, 어떤 날은 어머! 나 왜이렇게 가벼워? 하지만 10분, 20분 지나면 가쁜 숨은 진정이 되고 날아갈 듯 가벼운 몸은 제 무게를 찾는다. 그러니 처음의 몸상태에 당황할 필요는 없다. 비릿한 바다 냄새, 배들이 뿜어내는 기름냄새, 게다가 이미 다른 곳으로 모두 사라지고 없는 노숙자들이 남기고 간 냄새가 섞여 상쾌한 아침 공기라 할 수는 없지만 찰랑거리는 물결, 바람을 가르는 갈매기, 그날 그날 다른 구름을 배경으로 나에겐 신기하기만 한 다양한 배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은 나름의 운치가 있다.  


달리기가 어느정도 익숙해지자 나는 매일 똑같은 장소를 달리는 것이 지루해졌다. 이쯤 달려봤으면 이제 마스크를 쓰고 달려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처음 달리기를 결심하고 그려본 그림을 실현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 휴무일이 아침,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운동화를 끈을 묶고, 마스크는 눈 아래까지 끌어 올린 다음 야심차게 집을 나섰다. 오피스텔 건물에서 나온 나는 전날의 코스와는 반대방향으로 몸을 틀어 시내쪽을 향해 보폭을 크게 걷다가 점점 속력을 올렸다. 헛둘 헛둘. 초반 1분은 그럭저럭 달릴 만 했다. 2분, 3분이 넘어가자 점점 숨이 가빠오고, 숨을 들이마실때마다 얇은 마스크가 코에 들러붙기 시작하는데 순간 이 세상 오만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잠시 마스크를 내려보려고 해도 앞에도 사람, 뒤에도 사람. 이 상태로 달리 다가는 호흡곤란이 아니라 짜증을 이기지 못해 쓰러질것만 같았다. 나는 달리기를 멈추고 마스크를 내리는 대신 마스크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어 코와 마스크 면 사이를 떼어 놓고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내 쉬고를 반복했다. 집을 나설때의 기대는 처참히 무너지고 눈부신 햇살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남들은 마스크 쓰고도 잘만 달리던데… 어쩌면 처음의 그 힘든 순간을 넘어서면 마스크도 견딜만 한 것이 될지 모른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을때 1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것도 심장이 터질 듯 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마스크를 극복하고 싶지가 않다. 마스크로 인한 힘듦은 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호흡이 불안정하거나 다리가 아프면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내 상체 움직임을 최소화해서 가능한한 몸의 무리를 줄이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할 수 있지만 마스크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쓰고 있는 것도 짜증 나는데 숨 쉴 때마다 얼굴에 짝짝 달라붙는 그 성가시고 공포스럽기까지한 일을 왜 극복하냔 말이다.  


나의 소박한 야심이 실패하고, 나는 나의 아름답고 지루한 달리기 코스가 새삼 그렇게 고맙고 소중할 수가 없다. 이 좋은 공간, 코로나가 종식되고 마스크를 불태우기 전까지는  부디 나만 알고 있어야 할텐데…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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