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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Oct 16. 2021

Runner’s log

3. 오늘은 어제를 기억한다.


‘나도 러너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처음 달리기를 했을때 나는 좌절과 의심, 그리고 당혹감을 느꼈다. 빠른 걸음에서 몸을 공중으로 살짝 더 띄웠을 뿐인데 어째서 1분을 달리는 게 이토록 숨이 차고 힘든 것인지… 머리부터 발끝, 피부 위의 솜털 부터 내장 속까지 나의 온 몸이 이 움직임을 거부하고 있는데 이 불쾌하고 힘든 일을 계속해서 해나갈 자신이 없었다. 안 그래도 늘 쫓기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쓸데없이 괜한 죄책감을 더한 건 아닌지, 내가 또 내 허영에 괜한 다짐을 했구나. 좌절감이 들었다.

달리기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돈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적어도 내 생각에는) 가장 소박한, 진입장벽이 낮은 운동이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이놈의 장벽을 초 단위로 마주하게 되는 것 아닌가! 왠지 곧 포기할 것 같다는 불안과 어떻게든 러너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숨이 차오르는 순간마다 충돌했다.

매일 아침 미뤄둔 숙제를 하는 아이의 마음으로 운동화 끈을 매고 집을 나섰다. 어제 1분을 달렸다고 해서 오늘 1분이 수월하지는 않았다. 과연 내게도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날이 올까? 나의 예상은 절망적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정말 너무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부터(정확히 언제쯤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제보다 나아진 오늘들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당장 멈추고 싶은 순간에도 몇 미터 더 뛸 수 있는 힘이 생겼고, 그 힘은 어제를 기억함으로서 더 큰 힘을 발휘했다. 이 힘을 인지 하면서 부터   나의 달리기는 보다 즐거워졌고, 나의 자신감도 늘었다. 이대로 꾸준히 달린다면 언젠가는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는 올거야. 조급함을 가라 앉히고 차분하게 내 몸이 느끼는 변화에 집중하면서 우리 몸의 기억이 얼마나 근사한지 깨달았다.   

하나의 목표를 정한다.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노력들을 한다. 어떤 날은 목표가 선명히 보여서 곧 도달할 것 같고, 어떤 날은 다다를수 없는 머나먼 곳에 있는 것만 같다. 목표에 집작하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들도 있지만 달리기는 그런 강박에서 스스로를 풀어준다. 나는 매달 달리기 계획을 세운다. 이번 달에는 7km 완주에 성공할 것, 주 3일은 달리기를 할 것, 평균 속도 6분대에 진입할 것, 등등등. 이 목표를 완수한다면 나는 무척 기쁠 것이지만 지키지 못해도 크게 상관치 않는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 만큼은 온전히 내 몸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몸의 생김새가 아니라 그날 그날 내 몸의 상태를 살피면서 ‘나’를 알아간다고 말하면 너무 거창한가?

헤드폰을 쓰고 땀에 흠뻑 젖은 상태로 달리는 러너에 대한 환상, 살이 빠지겠지? 하는 기대감, 적어도 몸은 건강해지겠지. 운동이 끝나고 느끼는 개운함과 성취감, 등등. 그런 이유들로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매일 다르게 느끼는 내 몸의 상태, 나를 공부하기 위해서 라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1분의 시간이 영원 같았던 나는 이제 30분은 거뜬히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러너가 되었다. 내 몸은 어제를 기억한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기억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느리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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