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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in Jun 24. 2023

밀집된 도시에 대한 위로

《대전과학예술 비엔날레 2022: 미래도시》리뷰

도시는 촘촘하게 이어져 있는 사회 조직과 시장 구조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이 수단과 방법이 마비가 되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이러한 어려움이 사회와 무관하다는 인식은 위험하다. 스트레스조차 받지 않으면 같은 실수가 쌓여 큰 재난이 일어난다.  

          

도시인들은 제도와 장치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개인들이 혼자서 고통을 감당하지 않도록 대비한다. 하지만 도시가 끊임없이 만드는 밀집성, 좁은 공간에서의 사회적 갈등과 불행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개인은 도시가 크면 클수록 작아진다. 작아진 이들이 소외되거나 배척당하지 않고 소속감을 가질 수 있는 곳에서 긴장을 해소할만한 감정이 주변에 많을수록 극단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도시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구성원들은 사고를 방치하지 않으리라는 염원을 예술이 담당한다. 불행한 사건에 원인을 찾거나 생각을 가두지 않고 스스로 받아들이고 도시의 일원이 되는 과정이다. 문제로 인해 생긴 스트레스는 통제할 수 없을지 몰라도 고통과 괴로움을 받아들이는 결정은 각 개인에게 달려 있다. 같은 일이 벌어져도 선택으로 인해 누군가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를 다녀왔다. 그날 밤, 허망한 비보를 듣기 전이었다.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는 지구의 모든 인간과 비인간이 소외되지 않고 어떻게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지를 숙고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서로 상호의존하는 생명체들이 함께 세계를 만드는 공간에 대한 잠재력을 되돌아보는 관점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는 광주 비엔날레나 부산 비엔날레에 비해 예산이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과학이라는 특정 주제와 함께 관점을 개발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첨단 기술 등에 대한 문제의식도 크게 뒤떨어지는 편이 아니다. 주요 전시실로 활용하는 대전시립미술관은 공원과 공연장과 붙어 있어서 가족단위 방문객이 부담 없이 찾을 수도 있다. 특히 어린이 관람객이 편하게 작품과 만날 수 있는 환경이다.


대서특필될만한 담론을 주도한 것도 아니고 스타 작가들의 등용문도 아니지만 과학기술 시대에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소개한다는 점이 시민들에게 큰 혜택이다. 진지한 고민을 놓지 않고 있다는 점, 앞으로 다가올 첨단 미래를 두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는 점은 가치가 있는 일이다. 당장의 효과를 산출하기 어렵지만 2012년부터 올해로 6번째 개최한 만큼 해당 분야는 과정을 만들어가고 있다.


본 전시의 기획은 3가지 섹션으로 나뉜다. '모두를 위한 테라폴리스', '한때 미래였던', '∞교차로'. 테라 폴리스는 땅을 뜻하는 '테라(Terra)'와 도시를 뜻하는 '폴리스(Polis)'가 합쳐진 단어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도시라는 것은 모순이라고 볼 수 있지만, 예술만큼은 그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역할을 한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미리 대처하고자 하는 시선과 관심은 현재에는 없지만 미래에는 만날 수 있는 상상력이다. 전시는 드디어 일상으로 다가온 가상현실, 증강현실에서 어떤 태도로 사람을 대해야 할지 못 정하고 있는 상태라고 가정하고 있다. 예술작품을 주제로 그동안 다뤄보지 않은 어려움에 대해 대화해 보는 것이 인간이 늘 해왔던 방식이기도 하다.


신재은 <별의 궤도를 따라> 가변설치 흑경, 대전역전 고물상에서 발견한 철로, 기록 영상 2022
신재은 <별의 궤도를 따라> 가변설치 흑경, 대전역전 고물상에서 발견한 철로, 기록 영상 2022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에서는 대전시립미술관 외에도 대전창작센터, TJB사옥, 대전일보 갤러리 등에서도 각 공간에서 준비된 전시관람이 가능하다. 그중 대전창작센터에서 신재은 작가의 <별의 궤도를 따라>를 만났다. 작가는 대전역전 고물상에서 발견한 옛 철로 조각을 가져왔다. 일부를 양 발에 고정시켜 전시장 내부 바닥에 놓인 거울 위를 걷는다. 깨지는 소리와 함께 거울은 부서진다. 원을 그리며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멀쩡했던 거울은 파편이 되어 산산조각 난다. 해당 퍼포먼스는 영상으로 편집되어 부서진 조형물 앞에서 상영된다. '나는 별빛 아래 쇄빙선. 어둠 속에서 궤도의 입자에 파동을 일으킨다'는 자막이 보인다.


이는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야 했던 역사에 대한 재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철로 조각이 재료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발시대 서울과 경상도 사이를 상징하는 대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연약한 장소를 가로지르는 발걸음은 큰 충격을 동반한다. 한참 최신 기술과 화려한 불빛색조합의 비디오 작품을 메인 무대에서 보여주는 동안 <별의 궤도를 따라>는 과학예술이 지녀야 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도시는 명확하게 균열되어 있는 상태에서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비관적 관망 속에서 또 다른 긍정적 실천을 제시해야 하는 흐름은 소중하다.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방문한 어린이 관람객을 만날 수 있었다. 보호자인 부모님의 큰 간섭 없이 VR 기기를 활용한 작품을 적극적으로 감상하는 모습, QR코드가 준비된 작품을 주도적으로 향유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디선가 밀집된 도시에서 안타까운 사건을 겪을 때에 미래 도시를 상상하는 전시에서는 또 다른 미래 세대의 아이들이 예술언어를 접하고 있었다. 어둡고 차가운 시대에도 화합과 미래를 말했던 어느 예술가처럼, 밀집과 과잉이 당연해진 오늘날에도 어린이 관람객은 새로운 경지로 나아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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