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문화에 영향을 끼치는 이슈 3가지 : 플랫폼, 개인, 부동산
문화에 있어서 시간과 공간은 한 축씩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시간을 뛰어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은 대신 공간을 새로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 온라인을 포함한 가상공간은 오프라인을 기준으로 한 문화의 틀과 원칙을 점점 더 비틀고 뒤바꾸고 있다. 현재 그 지역을 점령한 대장은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일상과 밀접하여 분리할 수 없게 된 이곳은 지난 역사에서 인간이 지낸 인문 세계와 다른 법칙으로 작동된다. '알고리즘'등의 기술이 국가나 정치보다 상위 영역에서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플랫폼'은 '개인'을 끌어들인다. '개인'은 자본주의에 대한 반응으로 효율과 탐욕을 쫓는다. 현재 가장 지배적인 사상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집값 상승에 기여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주택을 위한 대출 때문에 일을 하거나 더 많은 집을 소유하기 위해 일을 하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혼자 힘으로 살아가도록 강조하는 관점은 앞으로 21세기를 지탱할 문화의 거대한 토대가 될 것이다.
'개인'이 먼저 탄생했는지, '플랫폼'이 먼저 탄생했는지 묻는 다면 당연히 '개인'이라는 개념이 몇백 년 전에 먼저 역사에 등장했다고 답을 한다. '플랫폼'이 뒤늦게 나타난 이후에 '개인'과 '플랫폼' 중 어떤 것이 자본주의를 확대시키는 데 기여하는지 묻는 다면 답은 복잡해질 수 있다. 서로가 만만치 않게 여러 면에서 동시에 그리고 또 따로 자본주의의 영역을 개척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은 실제 공간에서 보다 국가의 개입을 덜 받는 공간적 특혜를 받는다. 국가의 부재는 힘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본주의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합한 매체의 조건을 획득하게 된다. 경쟁력이 없고 독자들에게 지지받지 못하는 말과 행동은 자연스럽게 선택받지 못해서 도태된다. 선택받은 발언의 상당수는 편견과 혐오와 차별의 언어에 속한다. 시민사회와 국가의 감시를 벗어난 곳은 메커니즘의 결정권이 '플랫폼'에 독점적으로 쥐어져 있다.
이러한 '플랫폼'이라는 기술과 외적인 공간은 '개인'의 내부로 침투해 들어간다. '개인'은 유행, 트렌드, 정보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이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사회 속에서 연결될 수 있는 동기를 충족하기에는 부분적인 결함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스스로 정체성을 잘 형성하는지, 균형감 있는 사회성을 기르는지와는 상관없이 기술은 모든 삶의 영역에 스며드는 것이 가능하다. '알고리즘'의 기술을 극대화하면 마음먹은 대로 뉴스를 보게 만들 수 있고, 타인과의 관계와 소비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것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은 실제 공간 속에서의 사회와 시민의식의 힘이 버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힘과 힘의 대결에서 잘 드러나지 않은 맹점은 의사결정권자들끼리의 균형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는 사람이 결정하지 않은 기술이고, 하나는 사람과 역사가 축적한 의식이다.
'알고리즘' 기술은 데이터 기반으로 인해 인간보다 오차범위가 적은 컴퓨터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데이터는 인간의 행동과 사회의 무의식이 합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인간이 부족하고 완전하지 않은 만큼 기술 역시 판단의 착오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을 뜻한다. 수학과 과학이 기술이 갖는 계산이 틀리지 않도록 잡아준다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맥락에 대한 데이터를 집어넣는 순간, 기존 인류가 범한 수많은 실수를 한꺼번에 들이붓는 것과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권력체계는 취약계층과 하위계급을 몰아내고 착취하는 방향으로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기술은 이러한 판단의 근거를 그대로 부여받는다. 실제로 구매력이 없거나 신용이 떨어지는 집단으로 분류되면 상호작용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 온라인 시장의 기본 원리로 여겨지고 있다. 자유가 무한히 부여된 온라인 공간에서 복지나 교육과 같은 공공서비스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려줄 결정권자는 아무도 없는 셈이다.
기술의 소유주는 원하는 대로 정보와 소통방식을 설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에 비해 책임회피에서는 비교적 자유롭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의사결정을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내렸다면 결정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자본은 인간이 통제하는 사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스스로 주인공이 된다. 자본의 강력한 힘은 '개인'속에 '자아'를 만든다. '개인'들은 자본이 만들어 준 이미지와 정보들로 '자아'를 만들었기 때문에 취약해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성함이 무너지고 존재는 불안과 상처의 위험에 끊임없이 노출된다. 이는 '플랫폼' 경제가 활성화되기 전부터 드러났던 특징이었다. 구조적으로 개인의 노동력이 상품화였던 때부터 노동시장에서의 생존은 개인에게 걸려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신성시하는 모델이 된 미국이라는 국가 역시 투표, 교육, 정치와 같은 사회적 장치로 그 부작용을 조절해왔다. 이것은 개인의 자율이 다른 개인들의 자율로 묶여있다는 역사를 기억하게 한다.
미국도 스스로 조정하거나 관리하지 못하는 세계화는 결정적으로 지배적인 '개인'을 우선시하는 현재를 앞당겼다. 국가와 정치의 힘을 벗어난 경제적 시도들이 곳곳에서 봇물 터지듯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어디서든 연결된 노동시장과 온라인 시장은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경쟁에서 살아남고 늘 우수한 실적을 내는 '개인'이 표준화되도록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개인의 우월성이라는 것이 사실은 세습과 가족으로부터 물려받는다는 점을 기억하는 한, 인정하기 힘든 개념이 될 수 있다. 재능, 좋은 취향과 감각, 경제 자본에 접근할 기회, 습관, 모든 생활 방식은 부모로부터 물려받게 되어있다. 모두가 공평하게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당위인 세상에서 처음부터 능력에 따라 경쟁을 펼쳐야 하는 것은 심각한 모순인 셈이다.
유기적인 사회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모순적인 세상에서 '개인'의 관심은 집과 주택으로 향한다. 능력을 키워야 하는 이유와 직결되는 주거 문제는 일상과 일생의 상당 부분을 할애할 수밖에 없기에 모순을 알면서도 덮어두게 만든다. '부동산'은 '개인'이 강조되었던 만큼이나 소유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방법이었다. 현대의 '개인'들은 높은 집값에 수준을 맞추기 위해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높고 높은 가격이 편안한 상태로 내려오지 않는 이유는 주식회사적 관점을 인간 세상의 관계망에 독점적으로 적용해왔기 때문이다. 이 방식을 선호하는 집단은 누가 어디서 주택담보대출을 위해 많은 나날들을 보내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강력한 힘으로 끌어당길 뿐이다. 힘의 원천은 거대 도시의 압박에서 태어났다. 과밀한 인구는 역할, 의사소통, 정보에 압도되어 과도한 자극과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공유한다. 외부적 자극과 즐거움을 통해 해소하려고 하지만, 이는 도시의 팽창과 인구의 압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만다. 결국 이를 피할 곳은 집이라는 공간이거나 또 다른 안식처인 온라인 '플랫폼' 공간이다.
결국 돌고 돌아가다 보면 인간의 문화가 처음부터 추구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절실히 알게 된다. 인간이 소유하고 싶은 건 정서와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행위와 의미 있는 작은 물건들이다. 불쑥불쑥 정감 있는 삶보다 이성적인 바탕의 결정이 뛰어나다고 믿고 싶은 마음은 절제하기도 어렵고 그럴 필요도 없어진 체계가 세상의 논리가 되었다. 상품 구매와 '개인' 능력의 높은 고지에 도달함이 새로운 경험과 감정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지 않고 절제시키지 않는다. 모든 몫은 '개인'에게 달려있다.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이상, 강박과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주인공은 자본이 된다. '개인'과 '플랫폼'기술과 '부동산'폭등 문제는 지배적인 문화적 흐름이다. 이 관점에서 벗어나서 문화를 말하고 해석하는 것은 21세기 내내 무지한 이론이 될 것이다. 앞으로 옳고 그름을 주장하는 강도와 신중이라는 태도를 중요시하는 분위기의 경중이 미래 문화 모습을 결정지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