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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in Aug 11. 2022

그만큼 우리에게 관계 만한 것이 없나

<나너의 기억> 예술을 통한 매조질

관계에 대한 안정성을 지키기 어려우며 여러 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사랑의 가치가 바뀌어가고 있다는 위기감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22년 4월 8일부터 8월 7일까지 <나너의 기억>이라는 기획전시를 열어서 급변하는 흐름 중 기억이라는 테마를 통해 재고할 것을 권하고 있다. 소통과 관객 참여의 중요성을 앞세워온 현대미술의 입장에서는 작금의 변화가 당황스러울 듯하다. 소통은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가급적 최소화하고 참여에 경제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상 동기를 찾아보기 어려운 분위기가 짙게 가라앉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새롭게 도래하고 있는 시대는 분명 관계에 대한 또 다른 정의를 요구하고 있다. 


<나너의 기억>은 기획의도와 방향에 대해서 숨지 않고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관계 사이 속 기억이라는 주제 안에서 인간이 기억을 한다는 것의 의미, 동시대의 기억하는 방법에 대한 성찰에 대해 조심스럽기보다는 강한 어조 성격의 제안을 이야기한다. 단적인 예로 전시장 안에 들어와 있는 작품들은 기획자가 발화하고자 하는 전시 메시지를 표현하는 데 적합한 사례로서 활용되고 있다. 대중적인 현대미술 전시는 동시대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비슷한 카테고리 안에서 재현한 작품들을 모아놓는 방식을 주로 채택하고 있다. <나너의 기억> 전시가 그러한 방식에 앞서 메시지를 우선시했다는 점은 특정 화두를 던지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가장 첫 번째 전제는 한 개인의 정체성이 타인과의 교감과 교류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눈을 뜨고 스스로의 주관으로 판단할 때 내리는 생각이 가장 옳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거부하는 입장인 것이다. 앤디 워홀이 촬영한 잠에 관련한 <수면> 영상은 눈을 감고 있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고 편집되는 시간을 인간 사고 활동에서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힌다. 자는 동안 일어나는 진짜와 가짜 생각들의 출처들 역시 망막이라는 필터를 통해 걸러지고 왜곡될 수 있음을 허만 콜겐의 <망막> 레이저 영상을 통해 보여준다. 늘 옳은 것, 늘 자신의 기준과 판단이 합리적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지만, 그 생각이 도달한 지점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인지해보자는 요청이다. 


왜곡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다수의 사람들이 모였을 때 동일하거나 단일한 서사를 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임윤경의 <Q&A> 영상은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하더라도 한 사람의 증언 만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점을 나타내는 작업이다. 당사자도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이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자신의 기억을 거울 비춰서 볼 수 있다는 것까지 받아들인다. 이 모든 중첩이 역사가 될 수 있을지, 사실인지를 판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이 구성한 대화 방식이다.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마음을 드는 것을 넘어서는 발견이다. 동일한 성격의 또 다른 사안과 또 다른 사건을 자신의 기억에 대입해보면서 어떤 오류를 니지고 있는지까지 생각해보는 방법론이 제시된다. 


두 번째 전제는 시각예술을 구현하는 방식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뿐 아니라 모두 역사를 기억하는 형태로 남겨져 미래 후손들에게 전해진다는 점이다. 역사가들의 연구 방법론을 거치지 않고도 문화적 양상 자체가 기존의 역사가들이 수행한 역할을 맡게 될 셈이라는 것이다. 이 양상 안에는 다양성, 다문화성, 동시대성, 글로벌 인식 등이 포함되어 있다. [지금, 여기 Here and Now]라는 제목으로 구분된 구역에는 앞선 [나너의 기억 My Your Memory]와는 다르게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한 작품을 선정하여 배치했다. 전시기획에 따르면 다양성을 인정하며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보다는, 다양성이라는 것을 중요시하게 다룬 시대의 시선을 미래에 물려주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20세기에는 시각예술 외에도 대부분의 학문 분야에서 2가지의 흐름을 무시하기 어려웠다. 하나는 서구 중심주의를 경계하며 다원적으로 사안을 바라봐야 하는 관점을 견지해야 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그만큼 서구권의 영향력이 강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 Here and Now] 구역에 선정된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주제는 권력자가 독점하고자 하는 역사의식에서 벗어나 보려는 노력이다. 현재를 상징하는 기억법이라고 라벨을 붙인 이상, 이 작품들이 관통하는 시선에 대표성을 부여하는 의식을 신경 쓸 수밖에 없게 된다. 


현대미술관의 흥미로운 점은 동시대의 관점이 전시되고 있는 와중에, 해당 작품과 전시는 아카이브화 되어 역사적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현대 이전의 과거를 다루는 박물관과 형식은 유사하지만 현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과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한 축에는 공감대 형성이 있으면서 또 한축에서는 역사적 관점으로 기록을 남겨가고 있는 주체이다. 전시를 열고 작품을 선정함에 있어서 <나너의 기억>의 [지금, 여기 Here and Now]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정체성과 역사관을 선언하는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전시의 서두에서 인간은 왜곡을 통해, 그리고 오류를 손에 쥐고 있는 상태에서 기억을 만들어 간다는 전제를 세웠다. 마지막 구역인 [그 때, 그 곳 That Time, That Place]는 합리적으로 만 구성되지 않은, 취사선택된 기억들을 건네받은 미래 세대 역시 나름의 방식으로 재구성할 것이라는 예측을 세운다. 지금 세대 속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근거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보충한다. 미디어에 의해 장면과 사건이 주목받고 그렇지 못한 일은 기억에서 잊히는 것, 장소와 공간을 통해서 감정을 다시 마주하고 상상하는 것, 경험하지 않은 역사를 이야기와 허구적 언어를 통해 재조립하는 것은 지금 시대에서도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과거 재현 방식이다. 


<나너의 기억> 전시의 마침표는 바다를 배경으로 재현에 대한 파편화된 풍경 회화다. 그러고 보니 미술은 처음부터 특정 주제를 재현하고 싶은 욕망에서 출발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의 기억, 인간이 기억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적합한 작품들을 모아놓았고 마지막에는 영상 작품이 아닌 회화를 선택했다. <나너의 기억>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맞이하여 변형되고 있는 소통과 관객 참여 방식에 대해 관계 없이 구성될 수 있는 개인은 없고, 시대 정신에 참여하지 않고 남길 수 있는 기억은 없다는 발제 후에 미술의 본질로 이야기를 정리한다. 기술과 미디어 변화 속도가 빨라져도 현대미술은 인간을 통해 이뤄지고, 인간은 기술과 미디어가 아닌 인간의 사고를 보고 배운다는 표현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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