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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in Aug 11. 2022

사랑 결혼 불륜 사랑 이별

헤어질 결심이 시사하는 것

결혼이라는 제도뿐 아니라 대중문화 속 사랑에서 비극이나 운명론적인 결말은 팔리지 않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고통스러운 과정의 대리 체험 대신 소소하게 발견할 수 있는 공감대가 영상이나 글로 선택받는 추세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로맨스 장르는 독자들에게 늘 사랑받았던 장르였지만, 고전적 문법의 연애와 결혼은 현실과 사뭇 닮지 않은 모습인 듯하다. 우연을 통해 만나게 된 커플, 거대한 재난 속에서도 서로의 사랑만큼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가슴 찢어지게 아픈 희생과 이별과 같은 요소로 관심을 끄는 경우는 줄어들고 있다. 대중문화 속 로맨스 장르의 변형이 시대상을 반영해온 점을 고려할 때, <헤어질 결심>은 동시대 대중문화 시장과는 다른 결로 이야기를 하겠다는 의지를 동력으로 삼은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헤어질 결심>은 위에서 언급한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공감대에 대한 수요보다는 특정 주제에 깊이 빠져들 관객의 진한 감상에 집중한 영화다. 그들을 붙잡아 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다름 아닌 파토스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말하기 불편하거나 쉬쉬하면서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이야기들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 파토스는 평온한 상태가 아닌 불안정함으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정서적 여운과 관련이 있다. 이제는 손님이 뜸한 운명적 사랑의 마음의 상태를 다룬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감정이 파토스였다. 


대중들의 소비 기준에서 파토스는 포함되면 곤란한 대상이다. 짧고, 신나고, 의미∙감동∙재미를 단박에 추구할 수 있는 효율성이 떨어진다. 섣불리 파토스를 다뤘다가는 감정이입에 방해가 된다. 이미 일상생활 속에서 퇴출시켰던 그리움, 연민, 슬픔과 같은 정서를 소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의 뼈대를 구축하고 메시지를 생산한 장본인인 박찬욱 감독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후퇴하지 않고 전면적 대응을 치렀다. 사랑법이 바뀐 것이 아니라, 사랑을 다루는 매체들이 현실에서 이미 펼쳐진 혼란과 방황을 애써 담아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서사를 만들었다. 


박찬욱 감독이 작정하고 구현한 이 비극에는 적극적인 대화 시도가 담겨있다고 보인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살인을 저지르는 타지 출신 여주인공, 중학생 아이를 함께 키우는 부부생활을 이어 오다가 새로운 사랑에 빠지는 남주인공은 일반적인 로맨스 장르의 소재는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법적인 처벌,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이들에 대한 윤리적 옳고 그름을 따지기가 아니라 파토스를 잊고 산 시간을 딛고 깊은 심연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이다. 


선택의 자유도가 높고, 연애나 결혼 생활에서도 슬픔이나 고통을 줄여줄 소비생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이 아직 잊지 못한 오래된 이야기들이 있다. 세계 어느 지역에 가든 가장 길게 구전된 이야기들의 원형 안에는 파토스가 존재한다. 칠월 칠석과 같은 민담이 현대인들의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이별에 대한 슬픔을 감당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증명한다. 가장 최근에 들어서 눈물을 펑펑 쏟을 정도로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소비되지 않았다고 해서 슬픔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렸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 편으로 남녀 간 사랑이 이뤄지지 않았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다 보면 무엇을 규범으로 삼고 있었는지도 드러난다. 보통은 그 시대와 공간이 지키고자 하는 선을 넘은 인물들은 피할 수 없는 벌을 받게 된다. 


<헤어질 결심>의 인물들은 평범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띤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들어서면 이들이 파토스를 자아냈던 오래된 민담 속 주인공들과 닮아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2022년에 마주할 법한 연애나 생활밀착형 사건 보다는 과장된 허구적 사건이 구체화될수록 특정한 감정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중국이라는 타지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송서래'라는 인물은 선별적으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선택권을 가진 인물처럼 그려진다. '송서래'가 영화 내에서 저지르는 살인은 형사의 입장에서는 모두 같은 심각한 범죄이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각각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녀와 결혼했던 '현대인'같은 남자들은 모두 그녀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살해당한다. 그에 앞서 그녀는 가장 소중한 존재였던 엄마 역시 살해한 전력이 있다. 병세를 치르며 고통스럽게 살아 있는 것보다 평온하게 숨을 거두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영화 속에서 그녀와 사랑의 기류를 느낀 '장해준'은 '현대인'같지 않았기 때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 살해당하지 않는다. 영화의 중후반부까지 '장해준'은 인물 스스로도, 관객도 과연 '송서래'에게 정말로 살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걱정 끝에 살해가 아닌 포옹, 사랑, 관계를 얻은 이 남자는 무엇이 특별해서 선별되어 살아남은 것일까. 


살인 용의자 신분이던 '송서래'와 추적하는 경찰 신분인 '장해준'이 서로 의심에서 벗어난 순간 밖에서 따로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다. '송서래'는 '장해준'이 현대인 같지 않고 품위가 있다며 호감을 직접적으로 밝힌다. 그녀가 그를 좋아하는 기준이 일상적인 정서를 벗어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적 선택임은 분명하다.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장해준'은 자부심으로 인정받는 직업인이자 남편이었다. 일부러 설정된 인물의 성품에 대한 칭찬과 인정은 특정한 메시지를 암시하는 단초가 된다. 무시무시한 현대인들은 실제로 그녀에게 죽임을 당했다. '장해준'은 '송서래'에게 있어서 그녀 나름대로 겪어오던 가련한 사정을 끄집어 올려 보살펴준 구별된 인물이다. 한 마디로 파토스를 건져준 그물인 셈이었던 것이다. 


'장해준'이 현대인 같지 않게 파토스를 건질 힘이 있는 그물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수사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범인도 잡을 수 있는 힘이 존재한 것에 있다. 명쾌한 답을 가슴에 품고, 주체적으로 결정해서 행동을 저지르지는 않더라도 꼿꼿함을 기준으로 적어도 무엇이 자부심을 해치는지는 알고 있는 것이다. '송서래'에게는 '장해준'을 만나기 이전부터 자신의 이별에 대한 결정과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는 쪽에 가까웠다. 엄마와 할아버지와 자신의 존재의 품격을 위해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필요하면 살인도 저지르고, 스스로의 삶도 마감하는 결단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파토스를 건져 올릴 만큼 괜찮은 남자였던 '장해준'이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해하면서까지 붕괴된 그물, 즉 더 이상 파토스를 발견할 만한 힘을 잃은 사람이 되었다는 소식은 '송서래'에게 또 하나의 결단을 내리게 한다. 경찰의 신분으로도 남자의 시선에서도 '장해준'에게만큼은 나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고 제대로 된 사랑의 결말로 자신의 파토스를 구원받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 실제로 '장해준'덕분에 자신의 서사를 완성시킨 '송서래'는 바닷속에서 영원히 사라짐으로써 이 작품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된다. '송서래'가 얻은 구원은 몇십 년 전까지 만 하더라도 결혼의 기능 중 하나였다. 결혼이나 특정한 윤리규범의 이념적 언어보다 감정의 이미지로 사랑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데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착하고 나쁜 것이 결정되는 현대인들의 말과 결론에는 그 외 수많은 이미지들이 뿜어내는 모호한 지점들을 무쓸모 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사랑과 관계가 중요한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을 말하는 것 자체가 입이 아프다는 시선이다. <헤어질 결심>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 가능한 이미지 하나 만으로도 파토스가 선사하는 구원의 소중함을 건질 수 있음을 결말을 통해 전하고 있다. 말로 정해진 제도와 표준들에서는 이미 사랑과 비극을 통해 얻어지는 구원이 어렵다는 것을 현대인들도 알고 있다. 파토스와 이별, 그리고 헤어질 결심 없이는 방황을 끝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박찬욱 감독이 알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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