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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in Aug 11. 2022

에로스가 없는 현실 중 실제 제도와 눈에 띄는 변화

결혼제도와 사랑이 끝나는 이유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

공교롭지만 한병철이 에로스의 종말이라고 제목 지은 저서가 출간된 시점에서 이혼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혼율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결혼이라는 제도의 다양한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현재의 이혼과 결혼에 대해 말하려면 근대와 중세의 결혼은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었는지 먼저 만나봐야 한다. 서구권에서 결혼은 자유분방함에 대한 억압이자 종교 공동체를 통제할 수 있었던 수단이었다. 미화될 수 있을 만한, 판타지와 같은 연애결혼은 금지되어 있었다. 늘 신나고, 삶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으로 빛날 수 있는 결혼이 자유롭게 허락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중세 역사에서 출발한 결혼의 속성은 지금과의 차이를 통해 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근대를 맞아서 강제성이 동반되었던 결혼은 해방을 맞았고 선택에 의한, 개인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순정이 시대가 열렸다. 이상적으로 여기는 상대와 낭만적인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 과거에는 하지 못했으나 이제는 가능해진 결혼 제도인 것이다. 문제는 많은 커플들은 결혼을 할 때, 시간이 지나서도 계속되는 환상이 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결혼뿐만 아니라 자식 교육, 각자의 커리어, 끝나지 않는 흥분이 동시에 이뤄지는 것을 꿈꾼다.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결혼생활이 이혼을 앞당기는 요소가 되는 것은 자유로운 선택의 아이러니라고도 볼 수 있다. 


결혼을 끝내고 이혼을 맞이해야 하는 정당성에는 자유와 기대가 한몫을 하고 있다. 상대가 있든 없든 새로운 시작은 또 다른 해방과 다름이 없다. 이처럼 금지되었던 것에서 벗어난 뒤에도 또 한 번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은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뿐 아니라 사회 경제적으로도 현대적 자아 탄생에 기여했다. 스스로 결정하고, 방해받는 상황에서도 욕망을 달성해야 하고 끝까지 자유를 위해 나아가야 했다. 종교가 억압했던 성적 자유 또한 긍정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몸을 통한 표현 역시 중요해졌다. 몸을 가꾸고 강화하는 방법은 언어와 정신을 다루는 것보다 훨씬 더 명확했다. 시장의 평가와 기준에 맞춰 소비를 통해 시각적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자아의 일부가 되었다. 


경제적 능력이 있는 경우, 몸에 대한 표현력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미용, 신체 단련, 치장은 경제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기준에 대해서 통과한 몸은 우월하고, 그렇지 않은 몸은 열등한 것으로 나뉘는 평가 방법은 대중화되었다. 대중적인 시선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이분법적인 잣대에 채택되지 않은 관계는 쉽게 깨버리는 것은 결혼까지 영향을 미쳤다. 맞는 것은 수용, 맞지 않는 것은 쉽고 빠르게 거부하는 행태가 제도 안에 스며든 것이다. 결혼 공동체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설명되지 않고, 소비생활에 적합한 구조인지를 먼저 따지게 된다. 정신적으로, 내면의 성장에 충분히 부합하도록 잘 맞는 관계이더라도 적합한 소비 패턴이 들어맞지 않는다면 배우자 역시 제거될 수 있는 현실이다. 


주목할 점은 사회 경제적으로 관계 형성에 있어서 소비생활이 끼치는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의 관점에서는 관계의 파멸이 이끌 괴로움과 자아의 상실에 앞서서 주체적인 선택이 우선된다. 자율적으로 소비생활을 유지해 나가는데 당장 관계로 인해 취해야 하는 행동들이 거슬리게 되면 종료 버튼을 누르는 결정을 하게 된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행하는 이유는 이미 자아 속에 대중화된 소비의 기준이 명확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역설은 소비에 최적화된 자아가 맞춤 구분선에 의해 온갖 스트레스를 끌어당긴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선택할 기회를 부여받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예상하지만, 그만큼 목표달성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높은 강도로 일에 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의 관점에 맞춰 결혼도 하고, 이혼의 위기도 넘긴 커플이더라도 불안정한 경제 현실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순정을 원했던 부부관계에 금이 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순정, 이상적인 부부생활, 감정적 교류, 성적인 흥분을 모두 충족하기를 원했던 결혼 생활은 더 이상 지속하기에 버겁다는 현실을 마주하는 길목에 다다른다. 억압된 자유에서 해방으로 진입한 결혼 생활은 회의감을 키우고 혼란을 가중시킨다. 결혼과 이혼 중 어떤 것을 택하더라도 소비에 최적화된 자아는 모순된 제도 속에서 필연적인 방황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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