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otin Sep 02. 2023

지금은 맞지만 전부가 아니니까

민주적인 한국 미디어 생태계가 가능하다면

민주적 지향은 개개인이 인권을 가지고 평등한 입장에서 다수가 결정에 참가하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일부 권위를 가진 사람만 명령하고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권위적이다. 권위가 없는 사람이라도 질문할 수 있으면 참여하는 데 익숙해질 수 있다. 각자가 처한 현실과 문제에 대해 왜, 어떻게, 무엇을, 언제 할 것인지 물을 수 있다면 돌파하고 능동적으로 삶을 가꿀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지 않는다면 위임을 하거나 누군가의 의도에 부합한 결과물이 도출된다. 이 사이에서 복합적으로 취사선택하고 있는 것이 민주적 사회의 지금일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어떤 수단을 사용해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지도가 되거나 열쇠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아이디어는 대부분 지나간 과거, 상상을 통해 얻은 관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겨난 지혜로운 이야기에서 얻는다. 역사, 철학, 문학, 즉 인문학이 민주사회 속에서 삶이라는 거대한 직조물을 만드는 데 큰 영감과 영향을 준다. 사회구성원은 다양한 밥벌이를 하고 많은 역할을 각자가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를 통해 인문학적 경험을 간접으로 체득한다. 출판된 책, 지식이 쌓인 도서관, 축제와 예술 행사들을 통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 소양을 배우고 또 활동하며 퍼뜨린다.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하면 할수록 인간,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시대, 배경을 바라보는 시선은 확장된다. 지금 여기뿐만 아니라 저기에도, 그때도, 앞으로도 저마다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기술, 미디어, 소통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형되어 스마트폰, 가상현실, 인공지능이 일상에 스며든 지금까지 이르게 됐다. 새롭고 접근성이 좋은 창문을 각 개인이 보급할 수 있게 되자 작고 사소한 경험에 대한 리뷰부터 기존 대형 언론사가 보급했던 뉴스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적 콘텐츠까지 세상에 널리 퍼져 나갔다. 


책을 즐겨 읽지 않던 사람들은 고급 정보를 빠르고 쉽게 섭취할 수 있게 됐고 대학이나 연구기관에만 상주하는 전문가를 매일 만나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기자나 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유용하고 질 좋은 지식을 유통시킬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질문들을 쏟아 냈고,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 심적인 안정을 주는 상담가, 창의적 영감을 주는 예술가,  통찰과 지혜를 가르쳐주는 선생님, 소외된 사람들의 회복과 성장을 도우며 오늘 현실세계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보태고 있다. 


민주적 지향대로 기술을 통해 더욱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질문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기도 했으나 플랫폼, 기술을 운용하고 보급하는 이들은 국가나 시민이 아니다. 메시지를 생산하거나 수용할 때 복합적 기술을 필요로 하는 영화, 텔레비전, 인터넷, 소셜 미디어 매체는 시민의 정치적 자의식, 특정한 대중보다는 관심을 기반으로 한 집단이 모였다가 해체되는 것이 특징이다. 사회적 논의 대상을 주제로 삼기보다는 개별적 이익집단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집중한다. 


책, 신문, 잡지는 지식의 민주화를 점진적으로 이끈 매체다. 공론장을 형성해 일반 대중이 정치에 가깝게 오게 만들었고 스스로의 힘으로 더 나은 삶을 실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꾸었다. 공론장은 시민에게 자유로운 의사 표현, 비판을 허가한다. 긴 관점에서 일상의 중요한 사건들이 왜 일어났는지 평가하고 맥락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넓혀주는 기능을 담당했다. 비평언어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안들, 새로운 현상을 분석하고 기록하는 관점을 제공했다. 사회적인 지식과 기억을 만드는 과정의 일부다. 이러한 대화와 소통이 시도되지 않거나 관심에서 멀어지면 진실을 확실하게 담보할 수 있는 영역은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관심과 취향에게 허락된 공간은 커질지 모르겠으나 시민 공동체는 연약해질 수 있다. 


책은 제목과 저자의 이름을 통해 구별가능한 문자 집합으로 성장했다. 수많은 글자들 중에서 하나의 방향성과 흐름을 잡는 것이 책이 했던 중요한 기능이었다. 도서관은 책과 책 가운데 구분을 짓고 지식을 축적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었다. 분류를 통해 지식은 활용할 수 있도록 가치가 발전했다. 잡지는 특정 주제에 대해 편집 방향을 설정하며 구별된 독자층과 소통했다. 해당 분야에 대한 정보의 깊이나 상세함을 담는 것이 목표였다. 학자들이 게재하는 논문이나 전문 학술지를 따라갈 수는 없으나 당대성, 시의성을 구성할 수 있는 그릇이었다. 개인적으로 더 나은 삶을 꿈꾸게 해 주었던 장소, 공간, 시간이 책과 도서관과 잡지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이들의 저항 없는 퇴장은 왠지 모를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언론사, 잡지사들은 온라인에 머무르기를 선호하는 독자들을 만나고자 기사나 글을 그대로 모니터 화면에 옮기기도 했다. 이름있는 신문사를 맞이한 포털 운영사는 자사 트래픽 활성을 목적으로 매체력이 강한 이들에게 지면을 내주었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일관된 편집 방향성과 정체성을 유지할 수는 있었으나 독자는 대중보다는 포털 방문자로 무게중심이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정보의 명확성은 갖추되 포털 소비에 적합한 형태로 콘텐츠가 작성됐다. 더 많은 사람들이 쉽고 빠르게 매체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관심사 기반 취향에 맞지 않는 관점의 생존은 더욱 치열해졌다. 


온라인 환경, 소셜 미디어, 인공지능 기술로 얻어지는 정보들은 도서관처럼 정보량은 많지만 인간의 손으로 정리되지는 않았다.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매체는 기본적으로 화제를 이끄는 주제, 인플루언서의 근황이 우선적 안건으로 설정된다. 주요 목표를 달성시키기 위해 정보나 사실은 왜곡할 수 있고 편견을 조장할 수도 있다. 개인정보만 넘겨주면 무료로 편리하게 사용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고민 없이 매체를 소비한다. 이러한 기준으로는 책이나 잡지가 가지고 있던 고유한 특성과 기능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인문학을 통해 삶에 녹아드는 인식, 시선, 감수성, 표현능력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자 적합한 신규 매체를 탐색하다 카카오의 브런치를 선택했다. 


브런치의 작가와 독자들에게는 누군가와 따뜻한 일상을 나누고 싶은 호의가 있었다. 시민공동체까지는 아니더라도 글쓰기를 통한 진정 어린 소통이 담기는 특징이 인상적이었다. 일상에서 활력을 얻고 싶은 평범한 직장인, 좋아하는 문화콘텐츠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일반인, 행복한 삶에 대해 긍정적 기운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 등 좋은 글을 통해 좋은 인간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의 일상 속에서 무엇인가를 변화시켜보고자 하는 마음도 엿보였다. 읽고 쓰는 활동은 결국 지금은 맞지만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발전시킨다. 이러한 소중한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어떤 관점을 통해 더 다양하게 사안을 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보조하는 역할, 삶을 가꾸는데 도움이 되는 생각을 엮어 쓰자는 결심을 했다. 


역사문화, 인문학, 예술에 대한 이야기 소재를 활용해 개개인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는 통찰을 퍼 나르고자 했다. 의무교육 과정이나 백과사전에 있는 내용보다 조금 더 나아간 지식을 이야기 서술 형식으로 제공해 깊은 탐구를 해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열고자 했다. 예술과 문화와 좋은 친구 관계를 맺고 실제 삶과 연결 지어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서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갈 뻔한 사건이나 장면에 대한 기억을 같이 만들고 새롭게 만날 기회를 마련한 작가, 예술가, 일화를 글의 주제로 담았다. 감사하게도 새로운 환경에서 수립해야 하는 새로운 윤리에 대해 고민하거나 참여하고자 하는 이해관계자들, 소중한 독자를 만날 수 있었다. 아직 해답이 없는 상황에서 인지적 해방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질문하는 사회, 민주적으로 내 삶을 되찾을 수 있는 공간, 그곳은 매체의 전환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문학의 부재, 매체 발달의 역사,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글의 주제로 삼을 때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함께 나누고 대화하고 고민할 수 있는 관계의 대상과 단절을 겪을 때 가장 아쉬움이 컸다. 고립되고 싶지 않았고 함께 공동체를 이뤄 다양한 목적으로 소통하고자 했다. 무엇이 모순이 있는지, 무엇이 좋은 사회인지에 대해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충실하게 소속감과 정체성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발견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관점을 생산하는 데 전문성이 있던 언론도 그다음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독자들을 쉽게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민주사회의 전체적인 경치와 조망을 내다볼 수 있는 시야를 형성할 수 있을지 답을 찾고 있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맥루언은 새로운 미디어의 내용보다 미디어 자체를 살펴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철도는 이동, 수송, 바퀴를 직접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철도로 인해 사회는 빨라졌고, 새로운 도시, 노동, 여가가 탄생했다. 철도라는 매체가 1920년대 어느 날 운반한 1번 칸의 화물 내용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맥루언은 복잡한 구어 문화의 승리자였던 스콜라 철학자들 역시 구텐베르크 문자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아 새로운 매체에 새롭게 적응하지 못해 패배한 역사도 소개한다.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기 전 미디어를 압도한 승리자들도 미디어가 가져올 구조적 변화 앞에서는 전혀 다른 접근법을 구사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취향기반으로 집단을 형성하는 인터넷 매체들 안에서 특정 이념에 영합하는 메시지들, 편향적 보도들을 비판할 때 비판하더라도 기반이 되는 미디어의 속성 역시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브런치가 완벽한 윤리적 공간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적절한 의미부여로 풀어나가고자 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의 성격을 일부 가지고 있었다. 기술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인류가 그동안 축적해 온 지식의 결집인 도서관처럼 온라인 공간에서도 가능성, 다양성, 자유로운 표현이 윤리 의식을 갖춰 제안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민사회와 대안을 꿈꾸는 이들의 적극적 참여가 뒷받침된다면 말이다. 

이전 05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