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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in Jun 24. 2023

눈으로 담을 수 없는 미술

《광주비엔날레 2023: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리뷰

올해로 14회를 맞은 광주비엔날레는 광주의 상징성, 기존 비엔날레와 차별성, 새로운 예술의 가치를 밝힌다는 취지로 시작된 국제적 미술 이벤트다. 광주비엔날레가 풀어야 하는 오래된 숙제는 늘 비슷했다. 1995년에 시작한 한국의 비엔날레는 무엇을 상징해야 하는지, 세계와 아시아 속 한국의 미술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안에서 민주∙평화∙인권의 가치가 깃든 광주정신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해설하고 때로는 해명해야 했다. 서구 미술계와 차별성을 가져가며 동양만의 미술 색채를 드러내야 하는지, 유럽 주요 비엔날레 같은 인지도를 갖추기 위해 일단은 유명해져야 하는지 의심하는 추론의 세월을 보냈다. 


1차적으로 '비엔날레'라는 용어가 유럽의 것이라는 점은 건너뛰더라도 전시 형식, 작품 설치 방식, 행정 조직 운영 등을 기존 서구 미술 축제 등에서 차용한 것은 분명하다. 현대미술이 경계를 허물어 그 너머에 있는 이들과 공존하고 함께 손을 맞잡아 보자는 의식을 포함하고 있기에, 대한민국 광주에서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것은 서구권 미술계에 오히려 신선했을지도 모른다. 재단법인으로 구성된 광주비엔날레 행정 조직은 광주시, 외교부, 문화체육부 등의 승인과 도움을 받아 전문가, 행정가, 지역 시민, 출향기업인이 예산과 전시를 꾸렸다. 국고보조금, 시비보조금, 개인과 기업체의 협찬금, 자체수입 등을 합하면 전시 준비와 운영에 100억 원 대 예산을 활용할 수 있다. 국내 미술계 행사 중 가장 큰 규모이기도 하다. 많은 자원과 관심이 쏠리다 보니, 한국 미술의 대표 격으로 인식돼 어느덧 목표는 정체성 수립을 넘어 세계 3대 미술 축제로 가야 한다는 방향성이 자연스러워지는 듯했다. 


광주라는 도시에서 민주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다루는 것 자체에 큰 명분이 있고 역사적 상처를 예술적으로 승화하는 의지가 모여 회차를 거듭할수록 규모와 질은 발전했다. 광주비엔날레에서 전시감독을 하거나 큐레이터를 수행한 인력이 유럽의 비엔날레에서도 활약하는 소식은 광주비엔날레의 아우라를 만들어주는 증거로 활용됐다. 유럽에서 보나 한국에서 보나 장점이 많은 광주비엔날레는 14회 차를 맞아 영국 테이트모던 국제 미술 수석 큐레이터인 이숙경 예술감독을 얼굴로 내세웠다. 어쩌면 봉준호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BTS가 전 세계 팬들에게 한국인의 자긍심을 선보인 것처럼, 광주비엔날레도 세계 무대를 향해 뻗어나가는 또 하나의 활로가 되어줄 수 있다는 기대감을 터뜨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런데 14회 광주비엔날레에 선임된 이숙경 감독은 그 길도 좋고, 또 다른 길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시에 꽉 채워 선보였다.


이숙경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예술 총감독. 사진=Roger Sinek.


이숙경 감독은 테이트모던에서 '현대 데이트 리서치 센터: 트랜스내셔널' 수장으로 다양한 국가와 지역의 미술을 수집하고 조사하는 일을 맡고 있다. 트랜스내셔널은 인터내셔널과 글로벌과는 구분되는 개념이다. 인터내셔널은 근대부터 자리 잡은 개념으로 국민국가를 상정하고 그러한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글로벌은 앞서 언급한 봉준호, BTS, 혹은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되는 한국 영상 콘텐츠들이 인정받는 무대처럼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들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기준을 의미한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강성하다고 여겨지는 주류의 인정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것 역시 글로벌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인 것이다. 


글로벌은 지구를 뜻하지만 차별받거나 소외된 집단이 자연스럽게 포함되지 못하는 것은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수직적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내셔널은 주류와 비주류, 중심과 주변을 초월해 위계를 무너뜨린 수평적 상호연관성에서 예술을 보는 관점을 제시한다. 지역이나 문화가 달라도 민주 운동의 경험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면 함께 작품을 놓고 테마별로 전시를 열 수 있는 것이다.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보편성을 확대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을 받거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스포츠선수와 예술인들이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뽐내는 것만큼, 한국인도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 여전히 불의에 저항하고 희생하는 사람들과 함께 뭉치는 것도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숙경 감독이 테이트모던에서 아시아, 제3세계권 작가들을 발굴하고 세상에 공개하는 일을 하고 있는 만큼  그 어떤 때보다 3세계권 전통문화가 풍성하게 도입됐다. 그동안 한국을 사랑하고 광주의 가치를 지켜내는 일에서 일정 부분 승리를 쟁취해 낸 광주비엔날레가 택한 또 하나의 길이 바로 명분과 강박에서 벗어나 다른 공동체와 연합하는 일이다. 새로운 방향을 찾은 목적에는 코로나19가 들춰낸 아픔과 상처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모임장소가 폐쇄되고 문을 닫는 동안 사람들이 함께 의기투합할 수 있는 시도들에는 한계가 있었다. 만나서 대화하는 행위가 배제된 삶은 건강한 삶의 온기를 앗아갔다. 늘 체제에 의심을 달고 전복과 전위를 꿰찰 수 있는 도전을 꿈꿨던 미술계가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공동체와 연대의 가치를 우선으로 삼은 것 역시 기본적인 생의 모습을 되찾기 위함이었다. 


2023년 열린 광주비엔날레에 트랜스내셔널을 주창하는 이숙경 감독이 오게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행사였음에도 광주라는 지역에 잘 뿌리내려온 문화적 공간이 있기에 가능했다. 개인의 삶이 파괴되고 건강한 일상이 지워져 버리는 와중에도 과거로부터 단절되지 않고 원자화되지 않은 정신이 묶여 있었던 것이다. 뿌리가 내려져 있는 삶은 코로나 팬데믹 같은 광풍이 온 동네를 휩쓸어 가더라도 역사가 전하는 지혜를 기억할 수 있다. 그 자리에서 만나서 대화하며 후세의 삶에 대해 꿈꿀 수 있다. 인간이 새긴 무늬를 보고 확인하며 다시 관계 맺고 사랑이 있는 일상을 맞이할 수 있다. 좋은 국제 비엔날레가 되기 위해 예산이 확대되고 실력 있는 작가가 큰 기획을 이뤄내는 것만큼 따스하고 선한 의제를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터가 확보돼 있어야 한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국립광주박물관',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무각사', '예술공간 집' 총 다섯 곳에서 선보이는 본 전시는 광주 지역의 다양한 표정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더불어 해외 9개국이 국가교류 차원에서 참여한 번외 전시인 '파빌리온'도 광주 여러 미술공간에서 열렸다. 어린이와 청소년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학생 대상 교육 프로그램,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담론을 논의하는 장으로 열리는 '주제확장 토크', 매월 1회 열리는 '아티스트 토크' 등의 행사는 2023년 동안 광주비엔날레를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공동의 이야기가 된다. 전환과 회복의 가능성을 말하고자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라는 전시 주제를 택했고, 그에 맞는 프로그램과 작품이 준비돼 있다면 광주비엔날레는 내적으로 미덕이 있는 미술 이벤트가 맞다. 


만약 주류와 비주류, 혐오와 차별이 없는 문화를 상상한다면 그동안 경쟁 상대로 여겼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지구를 집으로 삼고 인류를 하나의 종으로 여긴다면 그 모습이 어떨지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설치 작업을 선보인 '모리 유코' 작가의 작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모리 유코 작가와 이숙경 감독은 공교롭게도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 이어 2024년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에서도 연을 맺게 됐다. 이숙경 감독이 일본관의 첫 외국인 기획자로, 모리 유코가 전시작가로 선정된 것이다. 두 사람의 협업이 가진 진정성을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모리 유코 작가. 광주비엔날레 유튜브 채널 캡처.


모리 유코 작가는 사운드 인식장치를 활용해 사물의 형태적 변화를 보여주는 작업으로 광주비엔날레를 찾았다. 그의 작업이 놓인 장소는 원래 원요한(존 T. 언더우드) 선교사가 살던 집을 리모델링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이라는 문화 공간이다. 이번 <I/O>는 특별히 소설가 한강의 <흰>이라는 소설의 내용을 재료로 삼았다. 발로 열 발자국에서 스무 발자국 정도 걸으면 거닐 수 있는 목조 건축물이 모리 유코가 설치한 사물들의 바탕이 된다. 20세기 광주가 간직하고 21세기 광주에서 필요로 한 문화의식이 자리 잡은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기억을 소재로 다룬 작품은 장소특정적 미술로서 작품을 시도하는 것 자체에서 이미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기본적으로 먼지를 감지하는 센서로부터 작품이 시작된다. 사람이 건물 내부로 들어와 걸어서, 바람이 불어서, 날마다 날씨가 바뀌어서, 여러 이유로 인해서 먼지는 방안 구석구석을 옮겨 다니고 흩어지고 다시 뭉치며 날아다닌다. 센서가 미세한 움직임들을 포착하면 전구를 켰다가 끄기도 하고, 블라인드가 움직여 마찰음을 내기도 하며, 기둥에 매달은 흰 종이가 바닥을 향해 내려앉기도 한다. 그날의 습도, 온도에 따라 사물 저마다의 움직임은 매번 달라진다. 내려앉는 흰 종이에 영향을 받은 먼지떨이 3개는 바닥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쿵쿵 치며 둔탁한 소리를 낸다. 이와 연결된 전구가 서로 다른 시간 차에 의해 깜빡인다. 새장에 달려 있는 숟가락 2개는 종을 치기도 한다. 한쪽 벽면에 매달린 흰 휴지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쌓인다. 선풍기가 돌아가고 낡은 실로폰이 저절로 리듬을 만드는 동안  흰 종이는 넘실넘실 춤을 추듯 천장 쪽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온다. 


각각의 요소들이 모여서 연주 아닌 연주가 진행되고 소리들은 작품이 설정한 한정된 공간에서만 울려 퍼진다. 관객에게는 익숙한 크기의 공간이지만 실제로는 광주라는 지역을 은유하고 있다. 누군가 관심을 가지고 개입을 하지 않아도, 관객이 방문하지 않아도 생명이 없는 사물들은 움직이고 또 음악을 한다. 각자가 발산하는 목소리를 듣고 시시각각 다른 조도와 형태를 비춘다. 누군가의 흔적은 먼지처럼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그 사람이 부재한 곳에서도 여러 움직임과 음을 낳는다. 광주와 광주 사람들의 삶과 죽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양림동이라는 마을에, 한강 작가가 기록한 이야기에, 모리 유코가 설치한 작품에 모두 남아 있다. <I/O>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여백에 숨어 있는 요소를 끄집어 내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광활하게 확장시킨 시각 초월적인 작품이다.



눈에는 자꾸 안 좋은 것들이 들어온다. 광주비엔날레를 개최하면서 생기는 잡음, 안타까운 사건들도 눈에 잘 보인다. 좋은 취지와 고결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시도하는 현대미술 잔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실수들도 크게 다가온다. 못나고 나빠 보이는 행동은 일상인 것처럼,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라는 전시 대주제는 현실이 아닌 저 멀리에 있는 이상향인 것처럼 전시 내적인 이야기는 잘 다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외부에서 드러난 무능한 모습만 더 부각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모처럼 전환과 회복의 가능성을 가진 물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는 기획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광주비엔날레는 꾸준히 예술이 할 수 있는 일, 삶을 되찾을 수 있는 일들을 말하고 보여줬다. 예술이 제시한 질문과 끊임없이 탐구한 가설들 중에 가까운 일상으로 통합된 것들이 많다. 결국 인종과 지역을 넘어 같은 문화적 심성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경험은 이미 현실 중 일부가 됐다. 예술은, 광주비엔날레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모든 아픔과 상처가 코로나 팬데믹에서 오지는 않았다. 그전에도 해결하지 못했던 인류의 과제가 있다. 트랜스내셔널도 멀지 않은 미래가 될 수 있다. 지구촌이나 세계시민 의식 같은 것들이 실패한 관념처럼 보이지만 <I/O>가 말하고 있듯, 적극적인 유대를 통해 만든 역사와 이야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 팬데믹보다 더 힘겨운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세상을 북돋으려 한 움직임과 운동은 흔적으로 남아 지친 사람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목소리를 보탤 것이다. 가끔은 그 빛이 약해지고 소리가 약해진 것처럼 보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후세대에게 좋은 지혜를 다시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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