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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in Aug 19. 2023

비어있는 한국의 현대 문화

Nomad Art Projecet(NAP)의 공간 탐구기

동시대에 만들어지는 미술 작품, 미디어아트는 관람자의 참여를 필히 요구한다.  현대의 인간은 혼자보다는 여럿이 구축한 사회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흐름 안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자라나려 하는 기술은 복잡함을, 정치는 다양함을, 미디어는 연결망을 제공했다. 현대미술은 시각이라는 기본 조건 하에 말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한 개인의 창작은 사회문화와 연결돼 있고 그 세계 속에서 취하는 선택과 행동에서 의미를 담는 식이다. 지금 사회가 흘러가는 상태 일부에 대한 하나의 일시정지버튼을 구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관람자가 잠깐 멈추어 무엇을 해낼지, 어떠한 장소에 얼마큼의 시간 동안 머무를지 정함으로써 현대미술 작품은 의미 층위를 쌓아간다. 작가만 작가가 아니고 관람자의 시간과 행위가 작품의 일부로서 참여해 실제 사회와 가깝게 재현되는 것이다. 작품과 관람자, 예술과 사회를 가깝게 만든 시도는 20세기 동안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1968년을 위시한 68혁명은 그중에서도 예술과 사회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문화혁명이었다. 다른 혁명이 정치적 지향점을 향해 있었다면 68혁명은 억압과 소외에 대한 해방이 주요 목적이었기 때문에 정치혁명보다 사회문화혁명으로 평가를 받는다. 금기를 반대하며 금지되었던 일상이 왜 해방되면 안 되는지 의심하고 무너뜨렸다. 권력은 제도나 의식이 아니라 상상력이 쥐어야 한다고 외쳤다. 


상상력이 권력을 가졌을 때 모든 사회 구조는 한순간에 빠른 속도로 결합되고 분배되고 감각적으로 변한다. 반드시 전쟁을 일으켜 적과 싸워야 할 명분은 상상력 앞에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총칼로 생명을 무자비하게 살육하는 행위에 대한 의지보다 학생, 여성, 모든 대중이 평등하게 지내는 데 관심이 모아진다. 이때는 전쟁터에서 어떻게 하면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보다 거리에서 어떤 예술과 언어를 담아 성공적인 축제를 개최할지 구상하게 된다. 길거리 공연, 연극, 토론 활동은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참여 예술이었다. 누가 예술가인지, 문화 관람자인지에 대한 구분 없이 권위와 위계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다변적 형태를 만들어 갔다. 


1960년대 프랑스 GRAV그룹의 거리미술


거리미술은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 냈다. 1960년대 프랑스의 GRAV 그룹은 지나가가는 사람들의 직접적인 예술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만화경, 조립과 분해가 가능한 조각, 용수철 의자 등을 트럭에 싣고 파리를 떠돌아다니면서 관객과 만남을 시도했다. 심리적으로 억압된 상태에서 벗어나 긴장을 풀고 함께 상호 교류하는 놀이도구를 길 위에 가져다 놓았다. 미술관, 갤러리, 지정된 장소가 아닌 곳에서 예술에 입장하면서 대중의 의미를 스스로 회복했다. 작품은 지식을 갖춘 특정 집단을 위한 전유물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었다. 일상에 경계, 전통, 규율로 인해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고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기준으로 가득하다면 예술의 역할은 그 활로를 마련하는 일이라고 주창했다. 


68혁명 전후로 예술가 개인보다는 사회, 포장된 이미지보다는 실제를 재현하고자 하는 시도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수용자는 그 어느 때보다 가치를 회복했고 의미 창조에 기여하는 행위를 다시금 바라보게 됐다. 관람과 수용, 그리고 모두를 담고 있는 대중예술도 모두 문화의 중요한 구성 요소를 형성한다는 시각이 발전했다. 사회는 매체로 가득 차 있고 취향과 이념을 떠나서 작품은 세상을 형성하는 일부로 해석됐다. 예술이 상상을 통해 가치와 의미에 대해 고민해 왔다면 사회는 경험과 사실에 기반해 사람들을 지탱한다. 이 둘은 거리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지만 함께 했을 때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 예술가는 일상이나 현재에서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게 되었고 사회와 어우러지는 방향으로 미끄러져 나아갔다. 대중은 예술을 곁에 둠으로써 자신과 옆사람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고 정체성을 되찾는 시간을 확보하게 된다. 


한국의 경우, 1980년대 미술 소그룹 작가들을 중심으로 신세대가 자신을 둘러싼 일상에서 발견한 재료를 작품에 합치기 시작했다. 압축 고성장으로 산업화를 형성한 서울에 드러난 문화현상에 대한 언급도 늘어났다. 그 이전까지는 유럽 모더니즘을 학습하며 탐구한 존재에 대한 주제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1980년대에 뉴욕으로 유학해 후기식민주의,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 다양한 미술을 전파한 박이소 작가 등 주류와 비주류에 대한 구분에 의문을 가진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박이소 작가 스스로 제3세계 출신 신분으로 미술 활동을 전개하면서 몸소 경험한 문화 차이,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보편적 문학이 아닌 주변 일상사로 답을 하게 만들었다. 영속성이 아닌 일시적이고 즉각적 성향의 미술이 한국에도 설치되는 순간이었다. 


인터넷 보급과 미디어 매체 사용량 증가, 새롭게 시작된 한국형 현대미술을 담을 그릇은 새로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전과 다른 질문에 대한 토론과 논쟁을 원하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대안공간에 모이기 시작했다.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적 방법과 미술관 주도형 작가 활동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모습을 재현해 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자세와 태도는 천재적인 재현 능력보다 돋보이게 됐다. 매년 꾸준히 발견되고 출시되는 매체에 접근해 복잡해지는 개인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개념에 대한 탐구가 필수적이었다. 한국 예술은 유럽, 뉴욕에서 수입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모사하고 덧입혀 보며 대응하는 사례를 늘리긴 했으나 자국의 시선을 명확하고 뾰족하게 드러내는 시도에는 여전히 부담이 뒤따랐다. 


독자적 활동, 개념 기반 작업, 작품 속 오브제 탐구는 깊은 예술에 대한 여정이기도 하지만 뚜렷하지 못한 한반도 정체성으로 이야기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조형 언어로 외국인, 다른 문화배경을 가진 이들과 소통하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먼저 같은 문화권 사람들과 공유할 시선의 부족은 가볍게 배제할 문제가 아니었다. 68혁명에서 실현됐던 참여미술의 의미는 지금도 유효하기에 한국의 현재를 포착할 예술가들은 대안을 제시하고 인터미디어적 융복합 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Nomad Art Project(NAP)는 한국에서 유목하며 문화예술에 새로운 대안을 시도하는 독립된 단체다. 이들은 특정 공간에 상주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며 전시할 공간의 관람객이 주도할 수 있는 융복합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도시발달과 인구밀집 현상으로 쉽게 소멸하는 한국의 현실적인 이야기와 연합한다. 지역이 축적한 의식과 정서를 시각적 주제로 삼을 뿐 아니라 기획하는 동안 겪은 체험을 작품의 재료로 차용한다. 미디어에서 소개되지 않고 거주했던 이들의 집 계약이 끝나면 떠나고 남은 자리에 사라지는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대화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언젠가 변할 것에 집착하지 않고 계속될 이야기의 전개를 기대하며 전시가 종료되면 다른 지역으로 방랑한다. 2021년 대림동에서 <thermal>을 전시하고 2019년 황학동에서 <LAB2065>을 전시했다.

<LAB2065> 전시. 황학동. 2019.


NAP는 평등한 사회구성원들을 만나고자 각 지역을 찾아다니는 행위를 목적이자 작품의 맥락 자체로 삼는다. 대중 미디어는 화려하고 놀라운 곳을 비추고 있고, 온라인 플랫폼과 소셜 미디어는 과장된 이미지를 노출하느라 실제 지역과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동네에서 잊히는 감정과 서사는 담지 못하고 있다. 예술가 소식망에 멀리 있는 사람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예술 딱지가 붙인 공간이 아니라 모든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누구나 들어와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확장성을 추구한다. 유목이라는 생활은 정체성을 뒤집으며 늘 다른 문화권의 문학을 체험하는 여정을 가져다준다. 관계 맺는 장소와 지역 사람들과 NAP에 소속된 단체원들의 유한함이 만나 혼재되고 병치되고 대립된 경험을 기록할 수 있다. 


사소하다고 평가받는 대상들을 모아 사회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대중의 일상과 주체성을 신뢰해야 한다. 자본과 시장의 지배 논리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지금 현재를 지긋이 바라보는 것이다. 현실의 관계들은 확정된 숫자와 도형이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과 행위들을 파악할 때 이해될 수 있다. 문화적 정체성은 완결이 되지 않은, 외부가 아닌 내부의 사정에 의해 구성된다. 유목과 산책이 필요한 이유다. 바깥에서 제공하는 스펙터클한 공산품에 짓눌리지 않고 순간마다 번졌다가 흐려지는 상을 발견하는 태도다. 범람하는 대중 매체 콘텐츠에는 지식과 이미지는 이미 차고 넘친다. 머릿속에는 빈 공간을 조금이라도 남겨두려면 시선과 해석을 요구하는 광고들에게 잠시 멈추라는 제스처가 필요하다. 


<thermal> 전시.  대림동. 2021.

NAP가 주로 시도하는 설치미술은 주어진 공간을 재정의하는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이미 주류 사회가 이름 붙이고 맥락을 완결한 장소이더라도 변화를 주거나 본모습을 다시 제시함으로써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다. 설치는 브랜드화된 설명을 지우고 일상의 조건에서 작품의 의미를 발견한다. 조각이 아닌 디지털 매체가 포함됐을 때는 현대인의 소통방식에 대해 한층 더 가까운 위치로 나아간다. 현대인은 늘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시선에 사로잡혀 있다. 기기와 장치에 의해 매개된 화면 수용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아바타로서 인식하게 만든다. 미디어에 반영된 자신과 인물들을 바라보는 눈길에는 자기 중심화가 담긴다. 미디어가 설치된 환경은 예술 오브제가 작품으로 완성되는 맥락화에 참여를 불러일으킨다. 화면 속 자신을 자아로 삼을 수밖에 없는 예술가와 수용자는 정체성을 반복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다.


익숙한 시선으로 지역을 바라보다가 NAP가 재해석한 공간으로 들어오면 설치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찾으며 세세하게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외부 현실로 돌아가면 작품 속 자신의 모습은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한 마디로 NAP 전시의 미디어 작품은 참여자의 결점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결점이 많은 것은 NAP 전시 기획자들도 마찬가지다. 결점 투성이로 구성된 전시 현장에서 발견한 상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믿음은 상을 누가 어떻게 얻었는지와 상관없이 눈앞에 있는 상이 명료하다는 경험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모습이 NAP가 설치한 미디어 작품에 담기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다가도 결점으로 이뤄진 상이 실제 나의 자아가 아니라는 것을 떠올린다. 이 경우까지 참여가 진행되면 NAP의 작품은 전시 자체의 결점을 보여줄 뿐 아니라 무엇이 상을 왜곡하고 있는지 이해하도록 돕는다. 평소에 바라보던 관점과 시선이 정말로 사실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지 되묻는다. 


NAP의 유목은 공간과 더불어 시간과 관점의 유한함을 전시 설계도면에 추가시킨다. 중심이 작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의 시간보다 멈추고 바라본 장소가 지닌 역사적 이야기가 생략되지 않는다. 미디어에서 그 지역이 소비되는 행태, 경제적 활동에 포함되는 범위, 제도적으로 시행되는 결정들,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한 문화적 관계까지 모두 탐구의 대상이 된다. 진행 중인 상황에 대한 이해를 위해 지역에 오래 머무는 사람들에게 심층 인터뷰를 한다. 넋 놓고 돌아다니며 그 지역 사람들이 보내는 시선은 어디에 집중되고 있는지 관찰도 한다. 책이나 미디어에서 소개된 적 없는 사건, 행위, 가치들을 발견하려는 의도다. 문헌에서 축적된 자료를 수집함과 동시에 NAP의 시선과 관점에도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는 연구 태도다. 


현대라는 시간 속에서 디지털이 아닌 물리적 공간을 탐구하는 행위는 시대 속에서 문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기준을 찾는 작업이다. NAP는 일상과 대중의 일부 자체가 문화예술이라는 메시지를 제시하기 위해 늘 뒤바뀌는 새로운 장소를 무대로 삼는다. 예술을 경험하는 수용자들 사이 공적인 공간에 위치시킴으로써 아직 역사적 해석이 달린 적 없는 현재를 만인이 판단하고 기록하도록 참여하는 장을 마련한다. 이유 없이 그리워하는 과거나 특정 집단에게만 허락된 미래보다 현재에 집중하게 하는 뿌리를 어떻게든 찾는다. 작품 제작에 돌입하기 전 기획, 취재, 탐사를 거치며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충분한 설명과 이해가 이뤄지도록 산책을 쉬지 않고 전시는 참여자 각자의 감상을 통해 완성된다. 설치될 미디어 작품이 현재라는 뿌리를 염두에 두면 내용과 형식은 새로운 시선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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