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의 슈트보다 더 값진

"3000만큼 사랑해"

by Rootin

현재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아이언맨 슈트는 없다고 해도 인공지능 기반 앱이나 서비스가 있다.

네트워크, 디바이스, 플랫폼의 변화는 기술의 발전으로 편리함을 보장한다.

100년 전은 어땠는가.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력과 시간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은 편리함을 경험했다.

그 편리함을 찬양하는 이들도 있었다.

기계가 인류의 발전과 문명을 앞당기고 유토피아에 다가갈 수 있는 도구가 되리라는 믿음이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 기계가 인류의 문명을 앞당긴 것은 맞지만 유토피아에 다다르진 못한 듯하다.

기계와 인간이 결합한 아이언맨이 가능해진 시대인 지금도 기계가 완전히 인간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동시에 인간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두려움이 섞인 복잡한 심정을 불러일으켰다.


아이언맨 슈트는 토니 스타크가 타고 있는지, 한국의 김토니가 타고 있는지는 겉으로 보기 어렵다.

똑같은 기계의 복제라면 어떤 인간이어도 상관이 없어도 된다는 생각이 가능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이폰은 나만의 아이폰이 아니며, 넷플릭스 서비스는 나만의 넷플릭스가 아니다.

같은 디바이스를 쓰는 다른 인간들과 나의 차이점이 나의 개성이라고 여겨지곤 한다.

그런데 그 개성마저 대체된다면, 나는 어디에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사라지는 직업에 대한 리스트가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한 인간의 존재 의미로 여겨지던 '직업'이 가치를 증명해주지 못하는 상황으로 예측한 것이다.

확실한 기계보다 불확실한 인간의 쓸모가 없어지는 미래가 오는 상상을 배제할 수 없다.


토니 스타크는 최첨단 기술로 생명연장과 외계인과의 전투까지 치러낸 인간이다.

그의 서사는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윤리적인 선택과 영웅적인 면모를 통해 이뤄진다.

주목할 점은 그가 사랑하는 아내와 낳은 딸을 3000만큼 사랑한다는 것이다.

토니 스타크의 딸이 아직 어려서, 셀 수 있는 가장 큰 숫자인 3000을 사랑의 표현으로 써서 감동을 자아냈다.

비도덕 한 범죄자들,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들과 대결하면서 그는 고민에 빠졌었다.

확실한 기계 기술을 통해서 사랑하는 가족, 즉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럴수록 적은 더욱 강력해지고, 사랑하는 친구와 연인은 위험해져만 갔다.

이야기의 절정에서 인물이 내린 선택은 완벽한 기계의 신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의 선택은 기계와 인간 중 어느 한쪽이 우위를 점하고 대체할지 말지를 논하는 주제에서 벗어났다.

사랑하는 가족 곁에 남아서 영웅으로서의 삶과 분리했다.

사랑하는 연인만이 불확실한 미래와 위험성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켜주고 증명해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슈트, 무기산업회사, 영웅이라는 타이틀은 전쟁과 적 앞에서 의미를 상실했다.

어벤저스의 동료들은 최대의 위협 앞에서 초능력을 사용해서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오히려 초인의 능력이 없는 오래된 연인 만이 그의 삶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사랑하며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의 의미를 만들었다.


한 인간의 아우라를 형성해주던 지위, 권력, 직업의 성취는 곧 있으면 사라질지도 모른다.

SF영화가 상상하는 미래에는 기계가 그 모든 것을 대신할 수도 있었다.

한 인간이 노력해서 얻어내는 것들을 누구나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아직 기계가 닿지 못한 영역이다.

아이언맨이 인간 토니 스타크로 돌아가서 3000만큼 사랑하는 딸을 보며 느낀 점이다.

확실함을 추구하는 기계의 역설이었다.

사랑을 통해 생겨나는 관계와 연결은 대체되지 않는 가치라고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인셉션, 쫓기는 꿈 좇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