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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May 03. 2023

이름이 간판이다.

<보스턴 교살자>

보스턴에서 홀로 사는 여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연쇄교살사건이 벌어진다.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보스턴 경찰은 정작 해야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채 무능력한 모습만을 보이는 상황. 이와중 당시의 성 편견적 시선을 뚫고 모든걸 건 채로 취재에 임했던 두 여성 기자가 있었으니...


실화에 기초한 영화로, 로레타와 진은 '여기자'라는 말과 그 한계에 아랑곳하지 않고 뚜벅뚜벅 전진해 사건의 중심점에 도달하게 된다. 비슷한 소재를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만큼이나 유려하게 연출해내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보스턴 교살자>는 직설적 태도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남긴 두 여성을 진심 어리게 담아낸다. 그와 관련해 준수한 여성 서사 영화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더불어 언론인을 다룬 영화로써도 그 태도가 올곧다. <스포트라이트>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꽤 괜찮은 언론인 영화. 


그러니까 결론은,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라는 것이다. 왜? 한 영화의 주제로써 너무 단순한가? 하지만 나는 그게 진리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이 맡은 일을 하찮게 여긴다. 내가 지금 이 일을 열심히 해봤자 다른 사람들과 역사는 나를 기억해주지 않을 텐데, 무엇하러 열과 성을 다 해야하지? 하지만 실리적 기술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 결국 그것 또한 예술이 되는 것처럼, 직업인도 그 귀천을 따지지 않고 모든 걸 바쳐 자신의 직업에 몰두한다면 충분히 유의미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저 물이나 음료 등을 따라 마시는 도구일 뿐인 컵을, 어떤 장인이 극단적으로 집착해 만들어내 극의에 달하게 된다면 그것이 예술적 조형물로써도 완성될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보스턴 교살자>는 언론인을 넘어 한 편의 직업 영화로써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준다. 가타부타 말 더할 것 없이, 언론인은 그저 언론인으로써의 사명만을 다하면 될 뿐이라는. 그리고 세상만사 모든 직업이 다 그렇다. 


언론인을 다루는 영화의 태도와는 별개로, 보스턴 교살자의 악명에 기대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결코 연쇄살인 따위의 범죄들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사람을 죽이거나 무언가를 훔칠 거라면 최소한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걸고 저지를 정도의 용기 내지 뻔뻔함은 있어야지. 극중 혐의가 짙은 것으로 나오는 인물들은 익명의 '보스턴 교살자'가 펼쳐낸 자장 안에서 각자의 목적만을 위해 이른바 부스러기 같은 범죄들을 더한다. 아, 물론 사람이 죽었는데 그걸 부스러기라고 표현한 건 좀 부적절 하지. 피해자들의 죽음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가해자들의 옹졸한 태도에 관련해서만 '부스러기'라 부르고 싶다. 


직업인이나 범죄자나, 자기 이름 걸고 당당하게 하지도 못할 거면 아서라-라 말하고 싶어지는 영화. 하긴, 그 정도로 생각이 깊었다면 애시당초부터 사람 죽일 생각 따윈 일찍이 접었을 테지만 말이다. 


<보스턴 교살자> / 맷 러스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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