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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Oct 05. 2023

영화가 스스로를 구원했다!

<킴스 비디오>

사건의 전개는 이렇다. 뉴욕시에 킴스 비디오라는 VHS 테이프 대여 전문점이 있었다.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창업자이자 운영자는 김씨 성을 가진 한국 출신 이민자였고, 그는 과일 판매와 세탁소 일을 전전하다 비디오 대여업의 가능성을 보곤 킴스 비디오를 만들었다. 하지만 킴스 비디오는 일반적인 다른 비디오 대여점들과는 달랐다. 킴스 비디오는 블록버스터 흥행작 등의 메인 스트림 영화들엔 별 관심이 없었다. 킴스 비디오는 오히려 그 당시 미국의 영화팬들이 찾아보기가 어려웠던 유럽이나 아시아, 또는 제 3세계의 크고 작은 영화들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중엔 장르 영화도 있었고 예술 영화도 있었으며, 하다못해 포르노도 존재했다. 그야말로 뉴욕시의 시네마테크. 헌데 그 킴스 비디오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취고야 만다. 몇 만 편의 그 희귀 비디오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그리고 미스터 킴은 대체 왜 킴스 비디오를 해체했으며 또 대체 지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보통의 다큐멘터리는 좋은 의미에서 방관자적 기질을 가진다. 물론 모든 작품들이 저마다의 주관을 띄고 있긴 하다. 그치만 그중 대부분의 작품들은 사건을 그저 기록하거나 관찰하지, 스스로 직접 개입함으로써 해당 사건의 물꼬를 트거나 또는 이미 트인 물길의 방향을 반대로 틀게끔 만들진 않는다. 그치만 다큐멘터리계에도 종종 그런 적극적 태도를 취하고 이행하는 작품들이 나타나기 마련. 바로 그 점에서, <킴스 비디오>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되 그런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킴스 비디오>의 두 감독은 사건을 취재하고 그를 담으려다, 이내 사건 안으로 직접 뛰어들어 하나의 변화를 이룩해낸다. <더 코브 - 슬픈 돌고래의 진실>이 일본 타이치 마을의 진실을 전세계에 폭로해버린 것처럼 말이다. 


전말은 이렇다. 영업 및 비디오 보관 공간의 압박과 대 인터넷 시대의 흐름에 부담을 느꼈던 미스터 킴은 킴스 비디오의 작품들을 기부하려 했다. 웬만하면 그 작품들의 진가를 알아봐주고 그로써 앞으로도 대중을 위해 성실한 서비스를 제공할 기관에다 말이지. 여러 유력 후보들이 있었는데, 그 때 난데없이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살라미가 치고 들어왔다. 보관을 잘 해줄 것은 물론이고, 킴스 비디오의 회원들을 위해 그들이 올 때마다 숙박과 식사 등을 모두 꾸준히 제공하겠단 당찬 포부. 당연하게도 99%가 미국인이었던 킴스 비디오 회원들 입장에서는 이 소중한 작품들이 대서양 건너 저 멀리에 있는 외국 땅으로 간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갔고. 그러나 살라미시와 미스터 킴은 대쪽같이 일을 추진했고. 그렇게 결국 킴스 비디오의 작품들과 그 간판은 비토리오 데 시카와 베르톨루치의 나라로 떠났고. 


문제는 이전한지 10여년이 지난 뒤 <킴스 비디오>의 제작진이 살라미에 도착했을 때 발생한다. 귀하게 이전한 작품들의 보관 및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았던 것. 여기에 킴스 비디오 회원들에겐 모든 게 무상으로 제공될 것이라던 약속도 빛이 바랬고, 심지어 살라미의 주민들 대부분이 이전된 킴스 비디오에 별다른 관심을 주고 있지 않다. 이에 <킴스 비디오>의 감독은 백방으로 노력하다 끝내 결심한다. 내가 이 영화들을 몰래 훔쳐 다시 미국 땅으로 돌려놔야겠다고 말이다. 


재밌는 건 <킴스 비디오>의 감독이 그 비디오들을 훔치도록 가스라이팅한 게 영화란 점이다. 영화. 그래, '영화'! 감독인 데이비드 레드먼은 이 사태를 어찌할까 하며 머리를 식히기 위해 봤던 영화들 중 범죄를 다룬 영화들에 꽂힌다. 히틀러의 그림을 박물관에서 훔쳐다 달아난 내용의 독일 다큐멘터리를 보곤 범죄를 결심하고, 그 구체적 내용은 실화를 기반으로 했던 벤 애플렉의 감독 및 주연작 <아르고>에게서 빌려온다. <아르고> 속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가짜 영화 시나리오와 기획안을 만들어 살라미 시장에게 전달한 것. 하지만 그 수 만 편의 비디오 테이프들을 혼자서 다 훔쳐 옮길 수는 없는 법. 이에 레드먼은 익명의 친구들을 불러다가 <폭풍 속으로> 속 강도단이 그랬던 것처럼 신분을 숨기기 위한 가면을 씌운다. 그런데 그 가면을 죄다 감독이나 배우 등 유명 영화인들의 얼굴로 제작했지. 


그래서 <킴스 비디오>는 결국, 영화가 스스로를 구원했던 기록이 된다. 물론 불가지론자인 나로서는, 그 과정에 깃든 사람들의 노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안 감독이 아카데미상을 받으며 "만약 영화의 신이 있다면 그에게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정말로 영화의 신이 존재한다면 나는 그가 <킴스 비디오> 속 시점의 데이비드 레드먼과 그 친구들에게 임재했었노라 여길 것이다. 영화의 신은 그렇게 마냥 내팽개쳐져 있던 그 수많은 영화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영화들을 애타게 바라고 그리워하는 시네필들, 그러니까 자신의 숭배자들을 그냥 두고 볼 수 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신은 '영화'란 매체의 힘을 빌려 <킴스 비디오>의 감독인 데이비드 레드먼이 그 방법을 고민하고 있던 차에 자신의 신탁을 내려보냈을 것이다. 나는 감히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에서 다시 찾은 미스터 킴의 도움과 허락도 분명 중요했지만, 결국 그 일생일대의 범죄에 공범이 되어준 것은 자랑스런 선대 영화인들이었다. 현 시기를 살아가던 후배의 시네필들이 영화를 구원코자 지원을 요청했을 때, 그에 응답한 것은 알프레드 히치콕과 아녜스 바르다, 데이비드 린치, 찰리 채플린, 성룡 등이었다. 선배 시네필들이었다. 그들이 영화를 결국 구원해내는 광경. 그러니까, 영화가 자기 스스로를 구원해내는 광경. 그렇게 <킴스 비디오>는 한때 뉴욕에 존재했었던 자그마한 비디오 대여점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영화라는 매체 전체를 포근하게 에워싼다. 


영화가, 영화를, 구원했다!


<킴스 비디오> / 데이비드 레드먼 & 애슐리 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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