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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Jan 05. 2024

나의 전부 역시 세계의 일부였음을

<클레오의 세계>

누구나 알고 있듯, 성장이란 건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서만 불쑥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성장기'라고도 많이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그저 신체적 성장에 국한된 표현일 뿐. 사실 성장이란 건 그 신체적 성장기 이전이든 이후이든 삶 전반에 걸쳐 가늘고 얇게 펴발라져 있는 것일 터. 어찌되었든 바로 그렇기에, 유년기에도 우리는 내적 성장을 거친다. 그렇다면 삶의 아주 극초반이라 할 수 있을 그 유년기에 우리가 겪어왔던 성장의 첫 관문은 바로 무엇이었을까.


원제는 'Àma Gloria'인데, 그것을 국내 수입사는 '클레오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바꿔 붙인 뒤 들여왔다. 불어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원제에서의 'Àma'는 대략 영어에서의 'To' 같은 의미라 들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이 품고 있던 뜻은 '글로리아에게'인 것. 헌데 그렇다고 해서 국내 수입명이 생뚱맞다는 건 또 아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어린 클레오에게는 자신의 한평생을 함께해온 유모 글로리아가 자기 세계의 전부였을 테니. 이 영화에서 클레오의 세계란 건 곧 글로리아 그녀 자체를 뜻한다.


여기서 우리 모두가 겪은 생애 첫 성장의 순간이 도래한다. 이를 테면 우리네 인생에 관한 101 기초 강의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그것은 바로, 나의 전부 역시 세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일이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나 뿐만 아니라 남들에게도 나만큼이나 견고한 세계가 저마다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 아이들의 세계에서, 유일한 주체는 오직 어린 나 자신 하나뿐이다. 한 아이의 세계는 오직 그 아이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은 그렇게 느낀다. 나만의 엄마, 나만의 아빠, 나만의 침대, 나만의 장난감 등등...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아이들은 남들에게도 자신만큼의 세계가 잊다는 걸 까맣게 모른다. 하지만 그 너머에는 분명히 그 다른 세계들이 실존한다. 일견 엄마는 나만의 것 같지만, 엄마 또한 자신의 부모가 있고 친구가 있는 그녀만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빠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오직 아이 너만을 위해, 또 너만을 중심으로 돌아가진 않는다는 진실. 물론 순수한 아이들은 그 사실을 알 턱이 없고.


클레오의 세계도 결국 글로리아의 세계를 목도하며 천천히 붕괴된다. 오직 나만의 유모, 그러니까 오직 나만의 유사 어머니인 줄로만 알았는데 바다 건너 저 멀리 땅에 그녀는 이미 아이를 둘이나 놓았다. 글로리아와 평생 내 집에서 살 줄로만 알았는데, 바다 건너 저 멀리 땅에는 이미 그녀의 집이 존재했다. 그런 식으로 클레오의 세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그리고 그 새 국면의 정점. 글로리아 역시 클레오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마지막 헤어짐의 순간엔 속삭인다. 이젠 각자의 삶을 위해 서로를 놓아주자-라고.


영화는 내내 카메라와 인물들 사이 거리를 최대한 가깝게 만들어 내밀한 분위기를 풍겨낸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쇼트 사이즈들이 죄다 클로즈업 내지는 익스트림 클로즈업이다. 좀 넓다 싶어도 겨우 풀샷인 정도. 어떻게 보면 프랑스에 살던 클레오가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의 카보베르데로 넘어가는 여행 영화라 볼 수도 있을 텐데, 이국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한 것 치고는 와이드한 쇼트 사이즈가 거의 전무. 게다가 심도는 또 어찌나 얕은지, 전경의 인물과 후경의 배경은 서로 철저히 분리된다. 어떻게 보면 보는내내 답답하게 느껴질만도. 하지만 그로인해 영화는 어린 아이인 클레오만의 세계에 좀 더 가까워졌다. 원래 아이들이란 딱 한 치 앞의 상황에만 몰두하지 않나. 클레오 오직 그녀만의 시선과 오직 그녀만의 세계에 천착한 연출과 촬영. 어쩌면 영화의 첫 시작이 클레오가 새 안경을 맞추는 장면인 것도 그런 연출에 기인한 것일 것.


인생은 결국 이별의 연속이라지만. 회자정리,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지만. 그럼에도 클레오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낸 뒤 홀로 눈물 흘리는 글로리아의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워 나 역시 슬플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계속해 억지로 떠올렸다. '회자정리'란 말 뒤에는 '거자필반'이 따라오기 마련이라고. 만난 것은 헤어지게 되지만, 떠난 것은 또 반드시 돌아온다. 그래도 이후 언젠가는 클레오와 글로리아가 거자필반할 순간이 도래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으며 극장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클레오의 세계> / 마리 아마추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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