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EKOON Oct 02. 2023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

<무빙>


"내 당신을 어찌 믿소?"

북한에 있던 당신의 가족들을 이미 모두 남한으로 모셔뒀으니 빨리 우리와 함께 가자는 말에, 북한 출신의 강 박사가 물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김두식의 대답은 무척이나 명료했다. "박사님, 이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입니다."


리차드 도너의 <슈퍼맨>이 실사 영화로써 해당 장르를 개국한 이래, 몇 십여년간의 역사를 거치며 수퍼히어로 장르는 참으로 다양한 주제들에 탐닉해왔다. 거기엔 자유 vs 통제에 대한 철학적 딜레마도 있었고 복수 같은 감정이 한 인간을 어떻게 집어삼키는지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도 있었지. 하지만 제작규모와 원작의 유무 차이를 모두 떠나, 수퍼히어로 장르의 근간에는 언제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정체성. 정체성은 바를 정(正)에 몸 체(體), 그리고 성품 성(性)을 쓴다. 몸의 바른 성품. 사전적 의미로는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디즈니 플러스에서 오리지널 드라마로 공개된 <무빙>은 혈연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두 세대의 가족 드라마를 통해 바로 그 정체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다. 


정체성은 대개 보통 뿌리에서 나오고, 그렇기에 수퍼히어로 장르에서 그 뿌리란 대단히 중요하기 마련이다. 수퍼히어로들이 저마다의 초능력을 얻게 되는 데에는 크게 두가지 종류가 있다.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 그리고 <무빙>은 그 중 전자를 선택했다. 그쪽 계열에서 가장 유명한 선배들은 아마 태생부터가 외계종자인 수퍼맨과, 유전으로 인해 대물림되는 형질을 갖는 엑스맨이 대표적일 터. 특히 엑스맨이 자주 탐구해왔듯이, <무빙>은 선천적인 기질과 성질이 우리를 정의할 수 있는가 따져묻는다. 영웅의 아들로 태어났으면 그조차 자연스레 영웅이 되는가? 괴물의 딸로 태어났으면 그녀조차 자연스레 괴물이 되는가? 그리고 만약 설사 그렇지 않다면, 거기에는 대체 어떤 것이 개입했단 말인가. 


<무빙>은 결국 그 모든 건 선택으로부터 연유한다 말하는 이야기다. 비록 내가 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닐지언정. 비록 내가 원해서 이런 부모 밑에 태어나 이런 능력을 가진 건 아닐지언정. 그 모든 변명들 한 가운데에서도, 언제나 선택의 여지는 존재한다 말하는 이야기. 세상에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많고 또 그 이면에 깔린 사연들 역시 이해되나, 어찌되었든 그런 상황 앞에서 최종 선택을 한 건 결국 당신이지 않는가. 그저 괴물로 태어났기에 남은 평생도 괴물로 살아야 한다고? 아니, 거기엔 당신의 선택이 들어갈 최소한의 틈이 분명히 있다. 괴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영웅이 되기를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틈 말이다. 


그리고 그 개인의 선택은 타인의 선택으로도 확장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온 마을의 힘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처럼, 한 개인이 자신만의 정체성으로 당당히 바로 서는 데에는 여러 명의 타인이 필요하고 또 그들의 선택이 필요하다. 괴물을 영웅으로 키워낼 선택. 또는 반대가 될 수도 있겠지. 봉석이나 희수처럼 그저 초능력을 타고났을 뿐인데도 그들과는 반대로 어릴 때부터 미국 CIA의 잔혹한 훈련만을 받으며 인간병기로 개조된 프랭크처럼, 어떤 선택들은 그저 태어난 아이를 괴물로 둔갑시키기도 하니까. 


결국 그러한 타인들의 선택은 선 또는 악으로 이어지는데, 그중에서도 선이라는 공동체적 가치를 당연하게 밀어붙이는 이야기란 점에서 역시 <무빙>은 가치를 갖는다. 강풀의 만화들이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무빙>의 인물들은 누군가를 구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또 누군가를 다독이면서 점차 앞으로 나아간다. 수퍼히어로 장르로서 중요한 건 수퍼히어로인 그들이 언제나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의 가장 깊은 비밀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 비밀이 드러남으로써 그들은 사회적 멸시를 받을 수도 있었고 더 심하게는 국가기관에 끌려가 남은 평생을 목줄 잡힌 사냥개로 살아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모든 걸 감수하면서도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깊은 비밀을 밖으로 꺼내놓는다. 그저 그게 옳은 일이기 때문에. 


초능력이 없는 일반인들에서조차 그 선의는 빛난다. 이제 막 아버지를 잃은 직장 동료에게 회사 나오지 말고 쉬면서 마음 잘 추스리라 말해주는 운수업체의 버스 기사나, 단 한 명의 제자만은 살려보자며 차라리 나를 대신 죽이라고 말하는 고등학교 교사나. 이쯤 되면 초능력쯤은 아무 상관 없던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비록 하늘을 날거나 어마어마한 괴력의 소유자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 선택 여부에 따라 영웅이 될 수도 있는 것. 어쩌면 그 선의야말로 대물림되는 능력들 중 최고의 초능력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고로 그에 반하는 악당들의 자리엔 초능력의 여부를 떠나 공동체의 선이란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자들에게 돌아간다. 주인공 그룹에게 맞서는 무투파 악당으론 크게 미국에서 온 프랭크와 북한에서 온 기력자 집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앞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잘못된 선택들에 의해 그저 괴물로 자랐을 뿐. 프랭크의 위엔 미국 CIA와 주 정부가 있었고 기력자 집단을 이끌던 김덕윤 위에는 역시 북한이 있었다. 김덕윤조차 말하지 않는가, 죄는 인민이 아니라 희생을 강요하는 자에게 있다고. 


이야기 외적으로도 <무빙>의 성취는 뛰어나다. 수퍼히어로 장르라면 관객들이 응당 기대할 만한 CG 효과나 특수 효과 등도 모두 크게 흠 잡을 데 없이 뛰어나고, 여러 시간대를 동시에 연기해내는 각 배우들의 연기력 역시 발군이다. 하지만 특히 연출만은 반드시 말하고 싶다. 넷플릭스의 <킹덤>에 이어, 박인제는 최근의 연출자들 중 시각적인 감각이 가장 뛰어난 감독이란 생각이 든다. 각 인물들의 초능력을 표현하는 각기다른 방식이나, 보통의 짧은 쇼트들로 씬을 이어가다가도 롱테이크가 어울릴 땐 과감히 쓰기도 하는 전략적 연출력이 매우 돋보인다. 여기에 아무리 작은 캐릭터라 할지라도 기어코 사연을 한 움큼씩 꼬옥 쥐어주는 캐릭터 운용력과 조형술 역시 뛰어나고. 물론 이는 대본을 쓴 강풀 작가의 공 또한 무시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다시 김두식의 말로 돌아와서. 그런 고로 이것은 언제나 선택의 문제다. 그 때가 암흑의 시간이든 야만의 시간이든 간에 말이지.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은 시대가 언제 우리에게 온전히 주어진 적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그 시대가 얼마나 어둡든, 얼마나 매섭든, 얼마나 길든 간에. 이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괴물도 영웅도 모두 될 수 있다. 


<무빙> / 박인제


이전 17화 나의 전부 역시 세계의 일부였음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