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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Dec 12. 2023

앞사랑을 반성하고 뒷사랑을 희망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

<싱글 인 서울>

서울에 사는 영호는 그게 무엇이든 혼자가 좋다. 식당에서 혼자 먹는 밥, 혼자 보는 영화, 혼자 하는 산책 등등. 지금 혼자 살지 않는자, 모두 유죄-라고 독재자 같은 표현까지 서슴지 않으니 그야말로 싱글 파시스트라고 하겠다. 그런데 그는 왜 그런 싱글의 삶을 칭송하게 됐을까? 우리 모두 날 때부터 혼자이기 때문에? 그렇담 영호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혼자고 싱글이었을까? 연애 한 번 해보지 않은 상태로 싱글의 삶을 부르짖게 된 것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부재가 존재를 증명한다고, 영호 역시 연애를 해보았기 때문에 그 싱글로서의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반면교사로 깨닫게 된 거겠지. 그리고 실제로 영호는 밝힌다. 몇 번의 연애에서 모두 쓴맛을 맛보았다고. 그리고 그중에서도, 첫 연애가 무척이나 씁쓸했었다고. 


하지만 영화가 마냥 영호의 이야기로만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싱글 인 서울>에선 남주인공 영호 못지 않게 여주인공 현진 역시 중요하다. 작가인 영호는 '싱글 인 서울'이란 제목으로 에세이를 쓰고, 편집자인 현진은 그 원고를 받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다. 그러니까 <싱글 인 서울>은 작가와 편집자를 두 주인공으로 삼아 한 권의 책을 펴내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관계, 그중에서도 특히 연애를 반추해내는 영화다. 그런 고로 이 영화에서 책을 쓰고 펴내는 과정과 연애를 시작하고 끝내는 과정은 일종의 동률이다. 


그냥 헤어졌다고 해서 그게 연애의 마지막 페이지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우리 헤어져"란 대사로 책은 끝맺음되지 않는다. 연애라는 책은 그보다 더 길다. 어쩌면 그 뒤의 에필로그가 본문보다 더 길지도. 그만큼 이별의 과정은 지난히도 장대하다. 관계가 물리적으로 끝났다고 해서 연애는 종료되지 않고, 그 상대를 마음에서 진정 떠나보냄으로써 종료된다. <싱글 인 서울>은 그래서 첫 사랑 영화이기도 하다. 영호는 첫 사랑 주옥과의 예상치 못한 오랜만의 조우를 통해 한때 역경을 맞는다. 그녀가 내게 준 상처들, 내 결코 잊지 않으리! 하지만 영호의 첫 사랑에 대한 그 기억은 편집자 현진의 중개로 인해 재조립된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A였는데, 그 상대인 주옥은 B로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런데 찬찬히 돌이켜 뜯어보니, 그건 실제로 A가 아니라 B였네. 어라라. 


그렇게 영호는 뜻하지 않게 반성의 기회를 맞이하고, 또 그로인해 첫 사랑 주옥을 진정으로 떠나보낼 기회를 얻게 된다. 고로 이별은 곧 반성으로써 완성된다. 편집자 현진이 책을 펴내기 직전 오탈자를 유독 꼼꼼하게 따지는 것처럼 관계, 특히 연애 또한 반성으로 검산의 기회를 맞는다. 그런데 우리가 계산을 검산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은 이 문제를 완벽히 매듭짓고 다음 문제로 가기 위함이다. 편집자가 글의 오탈자를 꼼꼼하게 찾아내는 것 역시 다음 책을 또 펴내기 위함이다. 때문에 반성은 이 연애를 마무리하고 다음 연애로 가기 위한 일종의 교두보가 된다. 


앞사랑을 반성하되, 그 후에 올 뒷사랑을 희망하는 것.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우리의 의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이뤄지지 않았다고 어찌 그걸 실패라 할 수 있으랴. 혹여 당신이 비혼주의자이거나 진정 싱글로서의 삶만을 꿈꾸는 사람이라도 상관없다. 그게 꼭 결혼이나 연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 사회 속에서 다른 누군가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지 않는가. 그러므로 지금 혼자가 아닌 자 모두 유죄인 것이 아니고, 관계 후 반성하지 않는 자가 유죄인 것이다.


<싱글 인 서울> / 박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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