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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Jan 17. 2024

힘들었던 우리네 모두를 응원하며

<덤 머니>

역사는 대체로 하나의 이름을 가진 거대 집단에 의해 움직인다. 그것은 국가가 될 수도 있고 한 정당이 될 수도 있고... 하여튼 다수가 모여 만든 절대 권력에 의해 보통의 역사는 흘러왔다. 보통은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다보니, 이름 없는 한 개개인의 힘은 무척이나 약해 목소리를 낼 수 없었지. 이것도 보통은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 절대적이란 가치는 희귀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 일견 당연해 보이는 흐름들도 종종 특수한 예로써 꺾일 때가 있었다. 이름 없는 개개인이 절대적 힘을 가진 집단을 끝끝내 무너뜨리는 기적. <덤 머니>는 불과 몇 년 전에 있었던 실제 사건을 끌어와 그 특수했던 역사적 흐름을 영상 증거물로써 남겨낸다. 


공매도. 쉽게 말해 없는 것을 파는 짓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그것은 그냥 도박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느 기업이 파산할 것이라 예측하고 그에 돈을 거는 일. 그러니까 공매도를 하는 집단은 다른 누군가의 실패를 제물삼아 돈을 버는 것이다. 특히나 그 집단이 월가에서 자본과 권력이 두둑하기로 소문난 회사라면, 그 회사가 공매도를 선언한 이상 일개 개미 투자자들은 모두 그 주식에서 도망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렇게 절대적인 회사가 공매도를 선언했다면, 분명 이 주식은 가망이 없는 게로구나!-하며 개미들이 털리면, 그로인해 결국 그 공매도 도박은 성공하는 것. 주식 등을 비롯한 경제 시스템을 잘은 몰라도, 이 공매도를 추구하는 집단이 일반적인 개인들에 있어서는 일종의 저승사자처럼 보일 수 밖에 없겠단 건 바로 예상이 가능하고. 


그런데 게임 스탑 주식을 끝까지 붙들고 있던 일개 개미들은 결국 그 거대 자본 권력의 헤지펀드사를 무너뜨리기에 이른다. 실제 사건 당시 여러 매체들이 분석하고 보도했듯이, 거기엔 별별 이유들이 다 개입되어 있을 것이다. 게임의 'G'자도 모르는 양복쟁이들이 자신들의 어릴적 추억과 지금의 취미를 얕잡아보고 무너뜨리려 함에 분노하며 나섰던 게이머들이 그것의 주축이 되었을 수도. 또는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사태로 인해 빚더미에 오르고 집에서 쫓겨났던 사람들이 어느새 성인이 되어 자신들의 과거를 불태웠던 월가에 복수하려 했던 것이 주축이었을 수도. 아니면 그냥 당시 유행의 흐름에 발 한 쪽이라도 올려보려 했던 사람들의 곁눈질이 그 주축이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확실한 건 이거 하나다. 극중 포효하는 냥, 그러니까 키스 길이 말했던 것처럼. 묵묵히 출근하고 열심히 일을 하는 등 자신의 직업과 삶 안에서 성실히 일했던 사람들이 이런 대접을 받아선 안 된다는 것. 또 비록 그것이 현실적인 경제 시스템 내에서 합법으로 작용하고 있더라도, 타인의 불행을 제물삼아 희희낙락 거리며 자기 돈벌이의 밑천을 끌어올리는 사람들과 그들의 집단들 역시 이 모든 걸 그저 멍청한 게임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 비슷한 종류의 선배격 영화였던 <빅 쇼트>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미 말했던 것처럼, 차트 위의 '1'을 그저 숫자로만 보지 말고 그 뒤의 '한 인간'이 있다는 걸 항상 인지해야 한다는 것.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양복 빼입은 금융업자들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또 아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도 그저 그들의 일을 했을 뿐일 것. 하지만! 하지만... 언제는 안 그랬던가 싶긴 해도, 우리네 모두는 최근 몇 년 동안 정말이지 너무나 힘든 시간들을 보내왔다. 전세계적인 감염병으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기도 했으며, 또 그로인해 직업이나 꿈을 버려내기도 해왔다. 그런 우리, 그저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일했던. 비트코인이니 주식이니 뭐니 해가며 미래를 위한 희망의 지푸라기를 조금이라도 쥐어보려 했던. 그런 우리들이 결코 이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며 떠오른 것은 다름아닌 시였다. 김종삼 시인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영화와는 다소 동떨어진 내용처럼 선뜻 느껴지지만 평소 좋아하는 시였을 뿐더러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덤 머니>에 깃든 가치와 이 시가 잘 공명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의 마무리는 시 전문으로 대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덤 머니> / 크레이그 질레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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