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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Nov 28. 2023

음악, 이번엔 악신의 길을 택하다

<플로라 앤 썬>

한때, 존 카니를 좋아했었다. 그는 음악을 발견하고 그로인해 삶을 재발견하는 사람이었다. <원스>의 두 주인공은 음악을 매개로 서로를 발견했고, 비록 그 끝엔 헤어짐이 있었을지언정 서로의 삶에 서로를 남겼다. <비긴 어게인>의 주인공은 재능있되 기회는 없었던 또다른 주인공을 역시나 음악으로 발견해냈고, 이후 같이 만든 그 음악들은 각자의 삶을 역시나 다시 발견해내는 데에 사용되었다. 그 모든 과정들이 굉장히 좋은 음악들로 매우 설득력 있게 표현되었기 때문에 존 카니를 좋아했었다. 하지만 <싱 스트리트>는 주제가와 몇몇 장면들 빼곤 좀 영혼 없이 기계적으로 만든 느낌이었지. 다만 이번 신작 <플로라 앤 썬>에 이르러 <싱 스트리트>를 보며 했던 그 생각은 조금 다르게 바뀌었다. 이 사람, 영혼이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충만한 영혼으로 그저 음악의 힘만을 맹신하고 있었구나- 하고. 


<라따뚜이>의 유명 요리사 구스토가 요리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음악 역시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캐치프라이즈로 다가가기에 매우 좋은 영화적 소재다. 그 때문에 <플로라 앤 썬>의 주인공 플로라는 힘을 받는다. 그녀는 일찍 남편과 헤어진 상황 속에서 거의 다 큰 아들을 거의 홀로 기르는 거의 한 부모 가정의 가장이다. 변변한 직장이라곤 없고 그마저도 고용주의 지갑에서 몰래몰래 지폐 몇 장씩을 훔쳐내는 사람이 바로 그녀고, 잊어서 하루 늦게 챙겨준 아들의 생일날 선물이랍시고 갖다준 기타마저 동네 쓰레기장에서 지나가다 주운 것이었지. 또한 음악적 재능이나 교양은 둘째 치고, 이후 기타를 배우게 되는 주인공으로서는 오로지 클럽의 댄스 음악에만 반응하는 EDM외 문외한이었다. 얼핏 보면 참으로 답 없다고 생각되는 그녀의 삶.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삶속으로 음악이란 요소가 침투해 들어오고, 그로인해 플로라는 바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아는 흔한 음악 영화의 흔한 주인공이라면 말이다. 음악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주인공인 플로라가 음악을 접하게 되고 또 배우게 되는 과정, 그리고 아들을 키우거나 주변인들과 대화하면서 등 성장하게 되는 그녀의 내면이 도저히 서로 엮여들어가질 못한다. 기타를 치기는커녕 잡는 법도 몰랐던 플로라가 어떻게 끝내 작곡까지 할 수 있게 되었는지 그 과정은 보여주지 않은채 휘뚜루마뚜루 넘어가고, 아들과 상스러운 대화를 서로 주고 받던 관계 역시 도대체 어찌 회복되었는지 또한 제대로 들려주지 않는다. 다름이 아니라 플로라는 내내 아들인 맥스를 버리고 싶다던 여자였다. 그리고 바로 그 기회가 나라와 법원을 통해 왔는데, 도대체 왜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내뱉어왔던 말들과는 완전 반대의 입장을 취하며 끝까지 맥스의 곁을 지키는 건가. 당연히 그녀도 한 아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 당연한 한 줄로 끝날 거였으면 앞에서 둘의 관계를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몰고가진 말았어야지. 


플로라와 그녀의 원격 수업 속 기타 선생님인 제프가 서로 어떻게 그리 심적으로 가까웠는지마저 제대로 설득되지 않고, 그와중 결말부 그 둘과 맥스, 심지어는 전 남편 이언까지 합류해 하나의 밴드를 만들었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급작스럽다. 아, 오직 이 장면의 설득력을 위해 이언이 맥스의 재판에 오지 않았던 것인가? 아무 이유도 설명도 없이? 그렇다고 해서 그 규합된 밴드 설정의 의아함이 완전히 가신 것도 아니긴 하지만. 


가장 최악은 영화가 마지막 프레임들에 담아낸 화면들이었다. 플로라와 맥스, 이언과 제프, 그리고 제프의 동료 드러머까지 총 다섯명이 연주한 음악이 흘러나오다 영화는 카메라를 그 무대 아래의 사람들에게로 옮긴다. 무대가 있는 술집에서 서로 수다를 떨거나 술을 마시던 사람들을 거쳐, 카메라는 심지어 술집의 문 바깥으로 나와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까지 이른다. 대체 이 무슨 연출이란 말인가. 아-, 음악이 우리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는 주장인가? <비긴 어게인>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니면 음악이 있음에 우리도 살아갈 수 있다는 설파인가? 지금까지 영화가 그려내온 그나마의 이야기들과는 전혀 생뚱맞은 화면으로 <플로라 앤 썬>은 막을 내린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거지. 존 카니야말로 음악의 힘을 그저 맹신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설득력 없어도, 인물들에 호감이 가질 않아도 음악이 모든 걸 구원해낼 거라는 환상 또는 착각. 더 비극적인 건 그 음악마저도 <원스>와 <비긴 어게인>, <싱 스트리트>를 통해 매번 좋은 OST 음반을 선물해왔던 존 카니의 영화치곤 그다지 흥겹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에게 음악이 신이라면, 그 신은 존 카니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이번 기회에 악신이 되기로 작정한 것이 틀림없다. 


<플로라 앤 썬> / 존 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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