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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Dec 14. 2023

순리대로 살아야 하겠지만...

<죽어야 사는 여자>

그리스 신화에 티토노스란 인물이 있다. 트로이의 왕자였던 인물로, 굉장한 미남이었던지라 필멸자임에도 새벽의 여신인 불멸자 에오스에 의해 간택된 인간. 여신 에오스는 티토노스와 결혼 후에도 그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 제우스를 찾는다. 에오스의 간곡한 부탁 끝에, 제우스는 결국 티토노스를 신들처럼 불사의 몸으로 만들고. 그런데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제우스에게 부탁할 적에, 에오스가 빼먹은 것이 있었으니... '불로불사'를 시켜달랍시고 부탁했어야 하는데 정작 '불사'만 요구했던 것. 그로인해 티토노스는 죽지 않는 몸과 운명을 갖게 되었지만, 그 몸만은 계속 늙게 된다. 결국 주름살 가득한 노인이 된 티토노스를 이후 에오스는 떠나게 되고...


이토록 오래된 신화 속에서조차 언급된 적 있는바, 불로불사는 인간의 태생적 욕망이었다. 그리고 그같은 욕망을 주제로써 다뤄낸 영화들도 지금까지 많았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죽어야 사는 여자>는 그 불로불사의 개념에 B급 감성과 블랙 코미디를 잔뜩 끼얹은 뒤 갈아낸 영화란 점에서 독특한 위치를 갖는다. 매번 가족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온 로버트 저메키스의 필모그래피 속 한 편으로써도 특이한 것은 물론.


재밌는 것 하나. 극중 골디 혼이 연기한 헬렌은 과체중에 오래도록 관리 안 된 외모로 일견 이해되는 측면이 있으나,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매들린은 대체 왜 불로불사의 명약을 들이킨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점. 그러니까 메릴 스트립은 그 당시 그 나이에도 예뻤고, 그런고로 그녀가 연기한 매들린 또한 무척이나 아름다워보인다. 조금씩 늘어가는 주름살과 처져가는 엉덩이에 다소 아쉬울 수는 있어도, 젊음의 묘약까지 구입해 마실 정도는 아니지 않냐는 것. 그를 통해 영화는 말하는 거다. 욕망에 결코 만족은 없을 것이란 걸. 누가 봐도 예쁘고 젊었지만, 매들린은 그보다 더한 청춘을 탐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싶었지만, 욕망에는 브레이크가 없는 법이란 소리. 


영화 곳곳에 거울이 많이 등장하고, 또 그를 통한 연출을 절륜히 해냈다는 점에서 로버트 저메키스가 인간의 그 브레이크 없는 욕망을 자꾸 반복해 표현하고 있다 말할 수 있을 거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영화 곳곳에 놓인 거울들이 시종일관 극중 인물들을 비춰내거든. 처음에는 귀여운 트릭 정도로 보였으나 이 정도로 반복되니 결국 이것 역시 주제 탐구를 위한 연출이었구나 싶었다. 


킬킬대며 볼 수 있는 B급 블랙 코미디란 점 외에도, 1992년작인 영화를 지금 2023년에 보는 재미가 확실히 더 있다. 바로 배우들에 관한 것. 골디 혼도 너무 예뻤지만 메릴 스트립의 젊은 모습에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 현재 영화계의 연기 본좌에게도 이런 젊음의 시절이 있었구나. 어찌보면 당연한 소리이지만, 그걸 그냥 생각하는 것과 직접 목도하는 것은 어쨌든 다를 수 밖에. 평소 이미지와 다른 연기도 너무 좋았지만, 너무 젊고 아름다워 놀라움만 느꼈다. 


그리고 브루스 윌리스가 있다. 2023년 지금은 치매가 발병해 은퇴한 배우이자 왕년의 대스타. 아-, 1992년은 <다이 하드>가 이미 공개된 이후였다. 존 맥클레인으로 정감가는 마초 연기를 잔뜩 보여줬던 그가 이렇게 칠칠치 못한 표정과 허우대로 코미디 연기를 했었다니. 메릴 스트립 못지 않게 기존 이미지를 비튼 모습인데, 그 코미디 연기가 너무 귀여웠다. 그리고 치매에 걸린 지금 그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 더 애잔했다. 왕년이란 이런 것인가. 이토록 돌이키고 싶은 것인가. 


불경한 소리다. 그냥 순리대로 살라 말하는 영화를 보고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불경한 소리 맞지. 하지만 끝내 그게 저주라 할지라도, 그 젊음의 묘약을 지금의 브루스 윌리스에게 먹이고 싶었다. 그런데 또 극중 브루스 윌리스의 얼굴을 한 어니스트는 이렇게 말하네. "난 영원히 살고 싶지 않아! 이건 달콤한 꿈이 아니라 악몽이라고!" 


당신 덕에 저는 지난 몇 십여년 동안 참으로 좋은 꿈을 꿀 수 있었습니다. 부디 평화롭고 행복한 말년을 보내시길. 


<죽어야 사는 여자> / 로버트 저메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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