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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Sep 01. 2023

메타몽도 물리치는 근성!

<스파이 코드명 포춘>


같은 종류의 예술가들을 모조리 도마 위에 올려두고 특정 기준에 따라 급을 나눈단 개념은 일견 이상해보이지만 실제로 존재한다. 봉준호와 마이클 베이는 분명 영화감독이란 같은 직업을 갖고 있고 또 각자의 팬층을 거느리고 있지만, 그 사이엔 무언가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 아닌가. 하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마이클 베이를 좋아하는 관객층을 아예 무시할 순 또 없는 노릇이고... 어찌되었든 참으로 위험한 발상 같지만서도 한편으론 참으로 편리한 발상이기도 하다. 원체 인간이란 존재가 급을 나누고 순위 매기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종족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는 것. 그런 차원에서 가이 리치를 판단해본다면, 그가 거장이 되어 영화감독계의 GOAT가 되진 못할 것 같다. 누군가는 그를 그저 그런 B급 스타일의 감독이라 부를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번 <스파이 코드명 포춘>까지 보고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장? 그래, 가이 리치가 거장까진 되기 힘들 수도 있지. 하지만 이 정도면 이제 명장 정도의 타이틀은 붙여줄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스파이 코드명 포춘>이 에스피오나지 액션이란 동일한 장르 아래 <미션 임파서블>이나 <007>, <본 얼티메이텀> 정도의 선배 영화들과 비슷한 완성도를 지녔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가이 리치가 이젠 명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근거는 다름 아닌 그의 근성이다. 근성. 포기하지 않고 또 휘둘리지 않은채 묵묵히 자신의 길을 성실히 걸어 얻어낸 두 글자. 가이 리치는 참으로 많은 영화들을 꾸준히 만들어왔고, 더불어 그 작품주기마저 짧았다. 그런데 <스파이 코드명 포춘>을 보니 뻔할지언정 그 안에서의 노력 역시 잊지 않았더라. 


포켓몬 중에 메타몽이란 녀석이 있다. 젤리처럼 생긴 생김새로 그게 무엇이든 상대의 외형을 복사해내는 포켓몬이다. 다만 거기엔 조건이 붙어 있다. 내가 알기로 녀석은 상대의 100%를 복사해내진 못한다. 메타몽은 원본의 80% 정도만을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다. 물론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100%와 80% 정도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그래봤자 20% 정도의 차이인 거니까. 하지만 만약 원본을 80%로 복사해낸 메타몽을, 또다른 메타몽이 또 복사해낸다면? 거기엔 또다른 20%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다. 그럼 원본 관점에서 봤을 때, 그 두번째 메타몽의 흉내는 60% 정도의 정확성을 띄게 된다. 그런데 또다른 메타몽이 등장해 그 두번째 녀석을 복사해내면? 원본 관점에서는 또 그 세번째 녀석이 40% 정도의 정확성만을 가진 것처럼 보이겠지. 


예컨대 장르 영화의 역사란 그 메타몽의 과정이라고 난 생각한다. 언제나 말해왔지만, 장르 영화는 좀 뻔해도 된다. 애초 장르 영화란 카테고리 자체가 특유의 클리셰와 컨벤션으로 먹고 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엔 딱 두가지 단서가 붙는다. 첫번째, 뻔하더라도 재미있을 것. 그리고 두번째, 그 안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해볼 것. 특정 장르를 개국한 영화가 있다면, 그 후속이 될 동일 장르의 영화는 그 원본을 똑같이 복사해내더라도 아주 다른 무언가를 1% 정도 더해내 총합 101%에 이르러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나 우리가 다 알고 있듯, 대부분의 장르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못했다. 메타몽 마냥 10~20% 정도의 손실을 자꾸 감내하며 지금에 이르렀던 거지.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가이 리치는 <스파이 코드명 포춘>을 통해 그 1%를 더해냈다고 생각한다. 물론 <스파이 코드명 포춘>의 액션이 <본 얼티메이텀>만큼 실제감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캐릭터들의 팀플레이가 <미션 임파서블>만큼 긴밀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007>만큼 주인공이 매력적이란 생각도 물론 안 든다. 개그 감각도 <킹스맨>에 비해선 떨어지고, 복잡한 플롯이란 첩보 영화 특유의 매력도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같은 작품에 비교하면 당연히 부족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파이 코드명 포춘>은 첫째로 기본적인 재미를 잘 전달해준다. 제임스 본드 만큼은 아니더라도 주인공인 올슨 포춘은 충분히 매력있는 스파이다. 나랏돈 삥땅쳐 열대 기후의 나라에서 휴가 보내는 걸 좋아하고, 그러면서도 제 역할 만큼은 제대로 해내는 주인공. 그리고 그걸 또 제이슨 스타뎀이 뚱한 표정으로 연기하고 있어 더 재밌다. 


그런데 주인공인 올슨 포춘 하나만으로 다 때우려 하지 않고, 그 주변 동료들에게도 각자 제 몫을 챙겨주었단 점에서 팀플레이에 의미가 생긴다. 악당으로 주인공 일행의 주된 타겟이었으나 마지막엔 동료 비스무리한 관계로 변모하는 휴 그랜트의 그렉 시몬스 역시 나름의 매력이 있고, 그 사이에서 심적으로 갈팡질팡하는 조쉬 하트넷의 대니 프란체스코에게도 일견 감정이입이 되어 몰입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만연해있진 않지만, 이 뻔한 장르 영화의 틀 안에서 최소한 무언가라도 해보기 위한 가이 리치의 발버둥이 동시에 체감되었다. 카메라를 주인공이 파지한 소총에 달아 독특한 앵글을 선보인다든가, 담백한데 뻘하게 터지는 개그 요소를 넣어둔다든가 등.


걸작을 만들어 거장이 되는 감독들이 있다. 하지만 그 사이 누군가는 걸작까진 아니여도 준수함 이상의 평작들을 만들며 근성으로 명장 반열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래서 나는 이제 가이 리치를 인정하기로 했다. 비록 그의 <셜록 홈즈> 연작을 그리 재미있게 보진 못했었지만, 이후 <맨 프롬 UNCLE>과 <킹 아서>, <알라딘>과 <젠틀맨>, <캐시 트럭> 등을 만들며 자신만의 개성을 유지하고 또 과시해온 가이 리치. 나는 그의 근성을 이젠 치하해주고 싶다. 최소한 나라도. 


<스파이 코드명 포춘> / 가이 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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