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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Dec 08. 2023

관객들이 제 발에 걸려 넘어질 영화

<괴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리는 온갖 선입견들로 똘똘 뭉친 존재다. 당신이 얼마나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마음가짐을 가졌든 불행히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걸 마냥 우리들 잘못이라 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켜켜이 쌓여온 인류의 역사와 그 문화가 우리들의 몸과 마음에 그 선입견들을 자연스레 체득시키고 또 체감시켰으니.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만은 알아야할 것이다. 그 선입견들이 우리 몸과 마음 어딘가에 쌓이게 된 건 우리들 잘못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걸 덜어내고 털어내는 데에는 분명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 말이다. 


좋은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를 우리가 전혀 살아보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에 데려다놓고 끝내 공감시킨다. 우리들 몸과 마음에 쌓인 여러 선입견들에 대한 좋은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은 흡사 그 옛날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을 떠올리게 하는 3막 구성을 통해 우리들 곳곳에 묻은 선입견들을 꺼내 보여주고, 또 그를 통해 우리가 극단적으로는 '괴물'이라 부르고 조금 더 부드럽게는 '소수'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살아올 수 밖에 없었는지를 또 들려준다. 


다만 영화에 대해 아쉬운 점부터. 영화는 각기 다른 세 개의 관점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다각도로 관객들에 전달한다. 좋은 컨셉이지만, 그를 유지하기 위해 몇몇 속임수들이 동원된 것처럼 보인단 사실은 괜시리 꼬투리를 잡게끔 만든다. 대표적으로는 누가 뭐래도, 1장 속 교무실 장면에서 호리 선생이 보여주는 태도를 속임수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호리는 좋은 교사였다. 하지만 제자들 중 두 아이에 의해 억울한 상황에 내몰린다. 물론 그처럼 억울했기 때문에 학부모와의 면담에서 괴상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라 굳이 변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 장면 속 호리 선생의 그 태도는 가짜 같다. 그저 이야기 초반에 강력한 미스테리를 하나 심어두고자 했던 각본가의 욕심이 불러온 억지라 생각한다. 


더불어 이러한 속임수를 통해 1장에 엄청난 영화적 동력이 깃듦으로써, 부득이하게도 이후 2장과 3장은 활력을 잃었다고 본다. 예컨대 1~3장 중 1장이 영화적으로는 가장 재미있다는 것.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활기를 잃는 영화적 구성에, 아주 아쉬움이 없었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거짓말일 테다. 


그러나 이같은 몇몇 단점들을 제외하면, <괴물>은 놀라운 성취로 관객들을 휘감는 작품이다. 앞서 속임수라 말했지만, 관객들이 스스로 그에 걸려 넘어진 부분도 분명 있었다. 그리고 그 지점들이 영화가 다루는 주제와 잘 맞아떨어진다. 호리 선생의 애인은 그저 등장한다. 그녀의 직업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정보는 일절 제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내면 어딘가에 있는 선입견으로 인해 그녀가 윤락업소의 여성일 거라 넘겨짚게 된다. 왜? 그녀의 헤어스타일이 숏컷이었고 성격 역시 털털했기 때문에. 그게 왜? 보통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헤어스타일이 숏컷이고 털털한 성격을 가진 여자가 윤락업소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단지 그 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높은 확률로 윤락업소 여성이 아닌 것처럼 암시된다. 


이는 하나의 예일 뿐, 영화 곳곳에 이런 부분들이 무척이나 많이 심어져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관객들은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소년들끼리는 학교에서 치고박고 싸울 수도 있다는 선입견. 남자는 싸운 친구와 쿨하게 화해할 줄 알아야 한다는 선입견. 누구나 이성 연인을 만나 하나의 가족을 꾸려야만 한다는 선입견. 이런 온갖 선입견들이 우리들 몸과 마음 속 도처에 매복해있다. 대다수의 누군가는 그런 선입견을 그저 받아넘길 테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우리의 세상엔 참으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하므로 그중 또 누군가는 그걸 있는 그대로 그저 받아넘길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괴물>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아가는 어린 두 소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괴물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선입견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새삼 상기 시켜낸다. 당신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소년이든 소녀이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진보 유권자든 보수 유권자든 청년이든 노인이든 바닷 사람이든 산 사람이든 상관 없다. <괴물>은 그저 잘 만든 이야기의 힘으로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소수 속 누군가의 삶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리고 끝내는 비극적으로 보이는 결말과 희망적으로 보이는 에필로그 사이에서 우리가 후자쪽을 은근히 바라며 서성이도록 만든다. 


유언비어가 굳힌 선입견이 한 개인 또는 소수의 삶과 정체성을 어떻게 뒤흔드는지 직접 체감, 체득시키는 영화. 잘 만든 이야기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아마도 올해 가장 힘이 셀 영화, <괴물>. 올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힘이 세다. 


<괴물> / 고레에다 히로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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