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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Nov 29. 2023

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희망이다

<그녀가 말했다>

기자들의 투철한 직업 정신을 다룬 실화 기반의 영화들을 이미 우린 많이 봐왔다. 아무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톰 매카시의 <스포트라이트>일 테고, 얼마 전 공개되었던 맷 러스킨의 <보스턴 교살자>도 마찬가지.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 또한 물론 훌륭한 영화이지만 그건 기사를 쓰는 기자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 기사를 내보낼지 말지 결단하는 언론사주의 이야기가 더 크다고 생각해 논외. 


<그녀가 말했다>의 두 주인공 기자도 <스포트라이트>나 <보스턴 교살자>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길을 걷는다. 그들은 진실을 밝히는게 옳다는 직업적 사명 아래에서 서로를 북돋아주고 도와주는 한편, 또 사건을 직접 겪은 피해자이기도 한 제보자들 또한 소중히 대해준다. 그리고 밤을 새고 연이어 비행기를 타는 한이 있더라도 직업 특유의 집요함을 무기로 끝내 기사를 완성해내고 그로인해 세상을 바꾼다. 그렇게 메건과 조디는 하비 와인스타인이라는 영화계의 거물이자 성범죄자를 끌어내렸다. 


다만 <그녀가 말했다>의 두 주인공 중 특히 메건이 <스포트라이트>와 <보스턴 교살자>의 주인공 기자들 보다 한 가지를 더 경험한다는 게 중요하다. 그녀는 하비 와인스타인의 진실을 폭로하고 그를 여론과 법의 심판대에 세우며, 반대로 그에게 피해당한 여성들의 마음 속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것이 중요하단걸 당연히 알았다. 하지만 그 전에, 그녀는 이미 그와 관련해 무력감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는 것. 그녀는 2016년 치러졌던 미국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를 취재하다, 그가 각종 성추행은 물론 여러 성범죄들에 얽혀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실을 열심히 알리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트럼프의 당선과 대통령 취임. 이어지는 건 보수 언론들과 트럼프의 강성 지지자들에 의한 각종 인신 공격 및 협박이었고. 


그 때문에 메건은 함께 와인스타인을 취재하잔 조디의 말에 아주 잠깐이나마 당황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 모든 걸 밝혀내는 데에 성공한다한들,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야. 그게 와인스타인이든 아니면 또다른 누구든 권력을 가진 누군가라면 모든 걸 그저 헛된 풍문이라 치부한 뒤 여전히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을 거고, 그리되면 끝내 아무런 은폐엄폐물도 없이 덩그러니 남는 건 또 우리겠지. 그렇다면 우리 둘은 또 공격 받겠지. 나는 또 협박을 받을 거고, 조디 너 역시 마찬가지일 거야. 결국 우리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고 심지어는 모든 책임을 지게 될 거야. 영화에 직접 표현되진 않지만, 이런 생각들을 만약 메건이 정말 하고 있었다면 그건 그거대로 합당해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그녀는 최근 이미 그와 같은 사건에서 무력감을 한 번 느껴본 적 있는 인물 아닌가. 그로인해 산후 우울증도 더 심해졌을테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건은 조디와 손을 맞잡고 한 번 더 해보기로 한다. 이미 큰 벽을 한 번 느껴봤음에도 굳이 한 번 더. 거기에는 아마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상술했던 것처럼 그저 그게 당연한 일이라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 곳곳에 여러 '딸'들이 존재하고 있단 걸 곱씹어보면 메건이 조디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 메건은 최근 딸을 낳았다. 조디에게도 아직 어린 두 딸이 있다. 그리고 그건 와인스타인에 의해 꿈과 희망을 잃었던 피해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는 시종일관 그녀들이 딸들을 키우고 있단 걸 조용히 보여준다. 


그러니까 아주 높고 커서 결코 무너지지 않을 벽 앞에서도 우리를 끝내 진군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다음 세대에게 그 벽을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그 마음이다. 내가 겪었던 일을 나의 딸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너무나도 당연하며 지극히 인간적인 그 마음. 아들이었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그녀가 말했다>는 굳이 여러 딸들을 상정해 보여주며 그 같은 마음을 우리들 안에 굳혀낸다. 백 번 천 번 쓰러져도 다음 세대, 고로 내일은 조금 더 나을 거라는 믿음. 어쩌면 그 믿음이 우리 인류의 역사를 아주 조금씩일지언정 좋은 방향으로 가게끔 밀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녀가 말했다> / 마리아 슈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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