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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Dec 13. 2023

위국헌신 군인본분

<서울의 봄>

우리 사회와 역사를 좀먹은 자들의 속성은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종교들에서 흔히 말하는 절대 악 따위가 거기엔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 악에 빙의하여 악행을 저지른 자들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런 자들에게는 악마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주는 것조차 아깝다. 오히려 그런 자들의 기본 속성은 매우 세속적인 것이라 본다. '사익'을 극렬하게 추구한다는 것. 그게 돈이든 권력이든 아니면 다른 그 어떤 무엇이든 말이다. 


생각해보면 옹졸하게도, 딱 그거 하나 밖에 없었다. 그 날 밤 대한민국을 뒤집어엎은 반란군들의 수괴에게, 뭐 별다른 대의명분이 또 있었으랴. 설마 그들이 대한민국에 정의를 바로세우고 나라를 옳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 그랬겠나? 아니면 정반대로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악 그 자체를 숭배해 대한민국을 악마 숭배하는 나라로 재탄생 시키기 위해 그랬을까? 아니, 그들에게 그런 거창한 명분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서울의 봄> 영화로만 봤을 때, 전두광이 군대를 동원해 반란을 도모한 기초 이유는 일단 딱 하나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상호가, 그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자신을 강원도 끄트머리 어딘가 저멀리로 보내려했기 때문에. 


물론 모든 역사적 사건들이 으레 다 그렇듯이, 그 이면엔 분명 여러가지 계산들이 더 오갔을 것이다. 절대 권력을 쥐고 있던 대통령이 급작스레 사망했는데, 그 권력은 그대로야. 그야말로 권력의 공백이자 무주공산. 그 옛날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혼노지의 변 직후에 비슷한 판단을 했듯이, 전두광 또한 그런 생각으로 말미암아 반란을 도모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아래 심연에 똬리를 튼 이유가 유치할 정도로 무척이나 단순하다는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그냥 잘 먹고 잘 살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가 이름을 살짝 변형해 표현하고 있는 전두광과 노태건 등의 우리 역사 속 악당들.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토록 많이 전승되어 왔다. 그것은 교과서에서, TV 뉴스에서, 다큐멘터리 등에서 계속 반복되어 왔다. 물론 그들의 악행은 계속 반복해 이야기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지겨운 악당들에 비해, 비교적 덜 조망된 영웅들 역시 역사엔 존재하지 않았던가. 영화가 이태신, 김준엽, 공수혁 등의 이름으로 바꿔내 그려내고 있는 그 영웅들을 <서울의 봄>이 오랜만에 제대로 그려주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기준점 이상의 극단적인 사익 추구는 악의 일종이지만, 그 반대 선의 속성은 그저 자신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것일 뿐이란 구도가 무척이나 흥미롭고 마음에 남는다. 이태신이 반란군을 막으려는 이유는 별 다른 게 없었다. 말그대로 그것이 '반란'이기 때문에. 그리고 본인은 그를 막아야하는 '군인'이기 때문에. 그게 다였다. 평소 전두광과 불편한 사이긴 했지만 이 사건을 빌미로 그를 죽이겠단 마음을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거기에는 그 어떤 사익도 없다. 그냥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맡은 바 역할과 책임을 다 하려고 했을 뿐인 사람들. 그 평범해서 당연하고, 또 당연해서 더 귀중한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있던 사람들이 영웅이라 좋았다. 비록 당시의 역사는 그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그 결정과 희생들이 고귀해보였던 것도 사실이고. 


'위국헌신 군인본분'. 일찍이 대한의군 참모총장이었던 안중근은 글씨를 통해 그같이 말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바로 군인의 본분일 것이라고. 아마 약삭빠른 전두광은 그같은 표어조차 자기 식대로 해석했겠지만, 그건 아마 오독이었겠지. <서울의 봄> 속 이태신과 김준엽, 공수혁 등의 인물들이야말로 위국헌신이 군인본분임을 명백하게 이해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래, 영웅보다는 그냥 사람이라고 하자. 극중 이태신이 말하듯, 전두광은 대한민국 군인으로도 그렇고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는 인물이었잖아. 그리고 그에 맞선 사람들은 그저 사람의 도리를 다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저 그 날의 역사가 사람말고 짐승의 편에 잠깐 섰던 것이지. 


<서울의 봄> /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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