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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Oct 22. 2023

돈, 자본주의. 미국의 신앙이자 원죄.

<플라워 킬링 문>

돈과 그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그것들이야말로 미국의 신앙이자 원죄일 것이다. 물론 돈과 자본을 추구하는 게 마냥 옳지 못한 일인 건 아니다. 때때로 돈과 자본이라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위한 핵심 재료로써 사용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에 대한 믿음 아니, 맹신이 국가와 역사 단위로 이뤄졌다면 거기엔 필연적으로 타락의 여지가 더 깊이 도사리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말이야 종교 박해를 피해 자유를 찾아 메이 플라워호 타 신대륙으로 향했다지만, 정작 그 새로운 세계에 도착한 그들도 이미 그 곳을 오래된 세계로 여기며 자리잡고 살던 또다른 이들을 밀어낸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미국이란 나라의 그러한 시발점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그토록 돈이란 개념은 강력한 힘을 가졌다. 때문에 그것은 종종 우리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던 선입견마저 뒤집고 부술 수 있다. 인디언이라고 잘못 불리우던 미 원주민들? 하나같이 다 미개한 야만인들로 이상한 소리를 질러대며 얼굴 하얀 사람들을 괴롭히던 존재 아냐? 그래서 정의로운 보안관들에 의해 그 때 다 죽었든지, 아니면 보호구역으로 내몰려 구차하고 불쌍하게 살아가던 족속들 아냐? 하지만 돈은 그 헤게모니 아닌 헤게모니 역시 전복시킬 수 있다. 그래서 <플라워 킬링 문>의 오세이지 부족 사람들에 대한 묘사는 특이하게 느껴진다. 석유 채굴권으로 부를 쌓아올린 미 원주민들의 모습이 말이다. 그들은 비싼 장신구를 몸에 두르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백인인 하인들을 수족 마냥 부린다. 대개의 우리 모두, 보통이라면 반대의 경우를 상상했을 것이다. 어찌 미 원주민인 홍인들이 백인들을 마구 대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돈이라면 그게 가능하다. 돈은 그처럼 권능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세이지 부족 사람들이 정말로 다 미개했다거나, 돈의 힘만 믿고 타인을 함부로 대했다거나 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까맣게 어두운 흑심을 숨긴 채 그들을 괴롭히다 끝내 집어삼켰던 건 이번에도 어김없이 얼굴 하얀 사람들이었다. 합법적인 권리로 얻은 오세이지 사람들의 부를, 백인들은 각종 불법적인 방법들로 침탈해갔다. 평균 수명이 짧은 오세이지 부족 사람들, 특히 그 중에서도 막대한 부를 거머쥔 여성들과 혼인해 이후 그녀들이 사망했을 경우 그 부를 상속받겠다던 심보. 그 자체로는 불경할지언정, 불법이 아닐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 돈은 권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건 예컨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 반지 같은 거다. 돈 스스로는 누군가를 죽일 힘을 갖고 있지 않다. 기껏해야 숫자고, 또 그 내용이 담긴 종이 쪼가리들뿐이지 않은가. 허나 절대 반지가 작은 속삭임으로 그 소유주들을 옭아매듯, 돈 역시 스스로의 물리적 힘은 존재하지 않되 그걸 가진 자들의 욕망을 증폭시켜내는 방식으로 누군가를 죽인다. 돈의 그 힘으로, 백인들은 자신들과 결혼한 오세이지 부족 여성들을 은밀한 방식으로 살해해 나갔다. 


마틴 스콜세지는 특유의 건조한 하드보일드 연출법으로 이 백인들의 만행을 세상에 드러낸다. 생각해보면 그의 이전 작품들 속에서도 온전히 올바른 주인공이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다 범죄자들이었고, 의리나 정의 따윈 생각지 않는 자들이었지. 그리고 그의 그런 연출론은 이번 <플라워 킬링 문>에서도 발화된다. 미국 국적의 백인 남성으로서 마지막엔 직접 등장까지 해 통렬한 반성의 의지를 표출해내는 80대의 노감독. 그 의지 하나만 해도 벌써 강력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와중에도 3시간 30여분짜리 상영시간은 너무 긴 것 아닌가-하는 작은 불만이 마음 바깥으로 삐져나오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나도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의식을 치러야 했다. 영화를 보기 두 시간 전 쯤부터 나는 물을 비롯한 음료를 끊었고,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엔 강박에라도 걸린양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3시간 30분을 잘 버텨보자 다짐까지 했지. 헌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같은 과정들이 왜인지 신성한 의식을 올리기 전 종교인들이 마땅히들 하는 준비처럼 느껴졌다. 거기서 또 생각했다. 아-, 이마저도 쇼츠와 릴스의 시대에 시네마를 어떻게든 수호하고자 하는 거장의 의도였던 것일까. 어쩌면 영화를 신성히 대해 달라는 목적으로 거장은 이같은 긴 상영시간을 고집했던 게 아니었을까. 


비교적 최근작이라 할 수 있을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같은 박력은 없다. 하지만 <플라워 킬링 문>도 역시나, 80대 거장의 손길이 빚어낸 준수한 명작품이다. 거장이 돌아본 역사, 미국인이 돌아본 미국. 그로인해 우리도 잠시나마 돌아볼 수 있었으니, 적어도 스콜세지는 맡은 바 소임을 다 해낸 셈이다. 


<플라워 킬링 문> / 마틴 스콜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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