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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Sep 24. 2023

확신, 전념, 응원. 승리의 정언 명령

<그란 투리스모>


비디오 게임을 리메이크한 영화로써, <그란 투리스모>의 선택은 특기할 만하다. <그란 투리스모>는 원작이 되는 비디오 게임의 서사를 영화의 서사로 바꿔 대체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그 전에. 일단 원작 게임 자체가 이렇다할 서사를 갖고 있지 않지 않은가. 무시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대개의 스포츠 게임들이 그렇듯 이것도 레이싱 게임인데 거기에 욱여넣을 서사랄 게 뭐가 있겠어. 서사가 없는 게 아니라 서사에 대한 필요성이 없는 거지. 고로 우리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은 영화 <그란 투리스모>의 기획이다. 대체 이 레이싱 게임을 영화화할 이유가 무엇이 있었나. 리메이크가 아니라 그냥 새로운 레이싱 영화 하나 만들면 안 됐던 건가?


그러한 의문을, <그란 투리스모>는 독특하게 뚫어낸다. <그란 투리스모> 속 세상에도 동명의 비디오 게임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디오 게임의 열혈 플레이어 중 하나가, 모니터 밖으로 나와 실제 세상 속에서 실제 레이서가 된다는 것이다. 원작이 되는 비디오 게임의 유산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여러 현실적 조건들을 따져 정공법적인 스포츠 영화의 구도로 풀어낸 게 내게는 <그란 투리스모>의 특기할 만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또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거. 거기서 또 하나의 레이어가 더 생기는 거고. 


이른바 고봉밥 레이싱 영화라 할 만 하다. <그란 투리스모>는 레이싱 장면에 사활을 건 것 마냥 물리적으로 마구 쏟아낸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일단 장점. 당연히 레이싱 매니아들은 그것 자체로 좋아하겠지.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단점. 밥도 적당히 먹어야 맛있고 좋지, 너무 많이 먹으면 질리고 체하지 않나. 그 점에서 <그란 투리스모>는 점진적으로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증명해낸다. 처음에는 박력있고 신났었는데, 보다보니 서서히 지치는 거지. 다만 이건 앞서 말했듯 레이싱 장면 자체로 영화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이라면 오히려 좋다 외칠 부분일 것. 


그외 스포츠 영화로써 <그란 투리스모>는 참으로 정공법적인 구성을 택했다. 세상으로부터는 물론이고 심지어 가족들에게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언더독 선수가, 무협지의 기연처럼 참스승을 만나 배우고 성장하면서 점차 성과를 내 끝내는 큰 대회에서 우승까지 하게 된다는 이야기. 큰 얼개부터가 참으로 교과서적인데, 안의 세부적 묘사들까지도 다 그렇다. 결국 가족들과는 눈물의 포옹을 하게 되고, 그와중 만난 스승은 알고보니 과거 실력자였으나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거의 은퇴한 상태였단 과거사까지. 


어찌보면 뻔한 전개겠으나, 애초 장르 영화란 개념이 왜 생겼고 또 왜 이어질 수 있었겠는가. 때때로 장르의 그 '뻔함'은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된다. 어떤 장르 팬들은 그 뻔한 묘사를 기대하고 또 보기 위해 극장을 찾기도 한단 말이다. 그만큼 스포츠 장르 영화로써 <그란 투리스모>가 택한 정공법은 어느정도 효과를 보인다. 


스포츠 장르 영화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그게 어떤 종목이냐에 따라 구체적 팁은 다 다르겠지만, 결국 승리하기 위한 방법은 딱 정해져있다는 것. 트랙을 확신하고, 경기에 전념하며, 무엇보다 스스로를 응원해줄 것. <그란 투리스모>의 주인공인 잔 마든보로 역시 그같은 과정을 거쳤다. 그는 비디오 게임으로 수없이 연마해왔던 트랙을 '확신'했으며, 스승인 잭의 가르침에 따라 부침이 있는 상황에서도 언제든 바로 지금 이 순간의 경기에 전념해왔다. 그리고, 위기와 의심의 순간 속에서도 그 좁디 좁은 레이싱 카 운전석 위에 홀로 앉아있는 스스로에게 자꾸 할 수 있을 거라 말을 걸어줬다.


그러니까 다시. 트랙을 확신하고, 경기에 전념하며, 무엇보다 스스로를 응원해줄 것. <그란 투리스모>가 다룬 건 카 레이싱이지만, 그 주문은 모든 스포츠 종목들을 아우른다. 이 정도면 이른바 승리의 정언 명령이라 할 수 있을지도. 


<그란 투리스모> / 닐 블롬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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