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
밀레니엄 버그에 의해 이제 곧 온세상이 멸망할 것이란 세기말 분위기가 팽배하던 1999년의 거제. 엄정화의 댄서를 꿈꾸며 거제 바닥을 휘어잡던 댄스 콤비 필선과 미나는 학교내에 댄스 연습실을 만들고자 마침 서울에서 전학온 치어리더 세현을 포섭해 치어리딩 동아리를 만든다. 그렇게 치어리딩 동아리란 명목 아래 가까스로 만들어진 댄스 연습실. 근데 어째 추다보니 본래 목적이던 힙합 댄스 못지않게 이 치어리딩도 재미지다. 하지만 힙합 댄스와는 달리 치어리딩은 애초부터 다른 누군가를 응원하기 위한 목적의 춤. 이에 필선과 미나, 세현,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힙을 합해 만년 꼴찌 상태이던 거제상고 축구부를 응원하며 그들을 우승팀으로 끌어올리고자 한다.
영화 이야기 말고 잠깐 내 이야기. 예술대학 영화과를 졸업하곤 사회에선 '무직'이라 부르는 상태에, 지난 2018년의 내가 있었다. 한반도 기후 관측이래 가장 더운 여름날이었던 2018년의 여름. 그 해에 나와 열댓명의 친구들은 하필 그중에서도 가장 더웠던 경주로 내려가 단편 영화를 찍었더랬다. 몇 번의 답사와, 또 며칠간의 촬영. 경주에서 그 며칠간 흘렸던 땀은 과장 좀 보태 내가 근 몇 년간 흘려왔던 모든 땀들의 총량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더웠고, 햇볕은 따가웠다. 친구들의 출신 성분도 다 제각각이었다.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 동기도 있었고, 후배도 있었다. 심지어 그 중 한 명은 영화과 출신도 아니라 영화 현장 경험이 전무했다. 그는 당시 영화의 PD 역할을 하던 내 후배와 고등학교 친구 사이일 뿐이었고, 도움이 필요한데 마침 영화 촬영 현장이라고 하니 흥미가 동해 오게 되었다고 했다. 정말이지 고마웠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자주 보는 사이로 지내고 있다.
나는 아니, 우리는 2018년 그 해 여름에 단편 영화 하나를 완성해냈다. 엄청 힘들고 무척이나 고생스러웠지만, 오히려 바로 그랬기에 더욱 소중한 영화와 너무 귀중한 추억으로 남은 것 같다. 나는 아직도 그 해 여름을 내 20대 전체의 썸네일로 생각하거든. 그리고, 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경험이 하나씩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꼭 나처럼 영화 만들던 경험이 아니여도 괜찮다. 필선과 미나처럼 함께 안무를 짜고 춤을 만들어가던 경험이 아니라도 좋다. 그게 영화든, 춤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작품이나 행사이든 간에.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함께 해나가거나 만들어나가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리고 <빅토리>는 그 기쁨을 싱그러운 청춘과 공명시키며 그 자장 안에서 행복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맞다, 나는 이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실제로 아이돌 출신 배우인 혜리를 필두로, 전체 배우진의 연기와 케미스트리가 훌륭하다. 댄스 영화답게 배우진이 춰낸 춤의 동선이나 동작 역시 경쾌하고, 그를 적당한 변속으로 담아낸 촬영과 편집 또한 마음에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토리>는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댄스 영화 보다도 성장 영화로써 기억될 작품이다. 필선과 미나, 세현, 소희, 순정, 용순, 상미, 유리, 지혜로 이어지는 극중 밀레니엄 걸즈의 멤버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경험으로 조금씩 성장해나간다. 물론 그중 아무래도 주인공인 필선과 미나가 물리적/감정적 중심일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빅토리>는 밀레니엄 걸즈의 다른 멤버들에게도 저마다의 사연을 꼭 하나씩 손에 쥐어준다. 거제상고 축구부의 치형과 동현에게도 그러하며, 심지어는 그 아이들의 가족들이나 학교의 교사들에게도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감동의 순간을, 또 누군가에게는 유머의 순간을 꼭 하나씩은 챙겨주고 있는 영화. 보는내내 영화가 극중 인물들 모두를 한아름 감싸안아주고 있는 것 같아 행복했다.
극중 필선은 거제 집 문을 박차고 서울까지 가 몇 달여의 가출 생활을 꾸린다. 그러다 여러가지 이유들로 오랜만에 돌아온 집. 그런데 몇 달여만에 들어온 딸에게 화를 내거나 돌아온 이유를 묻기는커녕, 필선의 아버지는 그저 묵묵히 밥솥에서 밥 한 그릇을 더 퍼낸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이어지는 식사. 물론 그 직후에 아버지와 딸 사이 대화가 이어지기는 한다. 하지만 나는 딸이 돌아왔다고 그저 묵묵히 밥 한 그릇을 더 퍼담아내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부터 눈물을 마구 흘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장면이면 몰라도, 필선과 그 아버지의 이 식탁 위 장면은 정말이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스포츠 장르와 그 궤를 거의 같이하는 댄스 장르 영화이다보니, 전개가 왕도적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이 장르에서 탈왕도적 전개를 하는 게 오히려 관객들의 기대치를 배반하는 일일지도 모르니. 어찌됐든 <빅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뻔한 영화고, 미리 예상했던 전개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진행되는 영화다. 하지만 <빅토리>의 성장 영화적 서사는 내 마음을 마구 휘젓고 다녔다. 필선이 아버지와 밥을 먹으며 눈물을 흘릴 때, 또는 아버지를 잃은 다른 멤버가 검은 상복을 입고 펑펑 울어제낄 때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함께 울었다. 헌데 놀랍게도, 슬프거나 어둡지 않은 장면에서조차 나는 눈물을 흘렸다. 밀레니엄 걸즈의 멤버들이 환한 대낮에 딱 맞춘 안무로 멋드러진 춤을 춰갈 때도, 이상하게 나는 눈을 적셨다. 분명히 모든 게 다 잘 되어가고 있는 장면인데 대체 나는 왜 그랬을까.
조금씩 나이가 들수록, 슬플 때 뿐만 아니라 행복할 때에도 눈물이 난다는 걸 느낀다. <빅토리>의 그 장면을 보며 내가 눈물 흘렸던 건 아마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올해 아니, 근 10년간 영화를 보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렸던 경험은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 이후로 이 영화가 처음이었다. 슬퍼서도 울고, 기뻐서도 울고. 울다가 웃다가 내 지난 아름다웠던 나날들까지 꺼내 닦아볼 수 있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 <빅토리>와 정녕 사랑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