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류승완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을 꼽으라면 <부당거래>라 말할 것이다. 가장 감동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주먹이 운다>라 말할 것이고.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류승완다운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언제나 <베테랑>이라고 답할 테다.
<베테랑>은 작정이라도 한 듯 굉장히 스트레이트한 영화고, 오래도록 성룡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밝혀온 류승완이 만든 자신만의 <폴리스 스토리>다. 누가봐도 악당으로 지탄받을 만한 인물을 상정해두고, 그를 무릎 꿇리기 위해 경쾌하고 단단하게 이야기를 굴려나간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큰 품이 들지 않는다. 누가 봐도 재밌는 영화일 것이고, 언제 봐도 신나는 영화일 것이다.
그 단순명쾌함이 <베테랑>의 주 동력으로써 신나게 펼쳐진다. 액션과 코미디, 그리고 누군가는 얄팍하다 말하겠지만 그럼에도 시기적절한 건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베테랑>의 그러한 요소요소들은 연출하고 연기하는 동안 신나고 재미있었을 게 절로 느껴지는 감독과 배우진의 역량에 발맞춰 힘차게 뻗어나간다. 싱겁다거나 진부하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적어도 이 영화를 보며 지루하다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형사 영화이지만 명확한 선과 악 구도를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협 장르나 수퍼히어로 장르 영화들과도 그 근간이 같다. 특히나 영화 곳곳 <다크 나이트>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묻어나오는데, 그럼에도 이 영화와 가장 근접하게 느껴지는 건 특이하게도 <스파이더맨> 실사 영화들이었다. 그것은 대체 왜인가. 스파이더맨이란 캐릭터의 주 매력은 그가 언제나 인정받고 싶어하는 청소년이라는 데에 있다. 때문에 스파이더맨은 영화 속 주요 전투 대부분을 다른 목격자들 앞에서 치르도록 설정된다. 남들 앞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청소년. 그래서 그는 수많은 뉴욕 시민들의 눈 앞에서 악당들과 전투를 치렀던 것이다.
<베테랑> 또한 마찬가지다. 범죄자들의 작업터인 부산항과 범죄자들의 은거지인 후미진 골목을 거쳐, <베테랑>의 마지막 액션 시퀀스는 우리들의 명동 한복판에서 진행된다. 다만 서도철은 스파이더맨과 같은 인정 욕구가 없고, 더더군다나 청소년은 또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까 여기엔 아예 다른 이유가 있다. 조태오와 같은 우리 사회의 악인들은 모두 보통 은밀하고 개인적인 공간에서 악행을 저질러왔다. 폭력이든 마약이든 간에 대부분이 다 그랬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류승완이 서도철과 조태오의 마지막 싸움을 명동으로 불러낸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니까 예컨대 <베테랑>은 마당놀이 같은 영화다. 그 옛날 광대들이 저잣거리 한복판으로 나와 천한 백성들을 상대로 높으신 나랏님들 들먹이며 그들을 욕보였던 것처럼, 류승완은 조태오라는 악인을 현대의 저잣거리 명동으로 불러내 서울시민들 앞에서 보란듯이 단죄시킨다. 백성들은 환호하고 시민들은 증인이 된다. 우리 사회의 합법적인 영웅 서도철은 우리 사회의 암적인 존재 조태오와 자웅을 겨루고, 끝내 체포시킴으로써 그를 단죄한다. 물론 조태오가 체포 되었다한들, 우리네 현실에서 그 이후를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 영화가 만약 실화였다면 조태오도 교도소에서 기껏해야 몇 년 형 살다가 나왔겠지. 아니면 증거불충분이나 사법거래 따위로 아예 형을 살지 않을 수도 있고.
바로 그렇기에 <베테랑>은 더욱 소중한 영화가 된다. 작금의 우리가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정의. 선뜻 포기하게 되는 현실. 그러나 비록 영화 속 이야기일지언정, <베테랑>은 그 정의와 현실에 대한 위로가 되어준다. 그게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이라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영화에 위로받고 싶어하는 건 우리들의 본능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