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해야해! 해야해?

<서브스턴스>

by CINEKOON


인간이라면 누구나 적어도 한 번쯤은 느끼는 아름다움과 젊음에 대한 욕망.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나씩은 갖고 있는 물리적으로 실존하는 육체. 그 육체는 그 욕망에 대한 장작이 되어주고, 또 그 욕망은 그 육체를 활활 불태움으로써 천연히 빛난다. 그러니 영화의 역사, 그중에서도 특히 호러 장르의 역사에서 바디 호러라는 서브 장르가 탄생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귀신 들린 집을 묘사하는 하우스 호러? 이 세상 모든 이가 다 자기 집, 특히 그런 영화 속에 나오는 마당 딸린 2층 집을 갖고 있진 않으니까. 젊은 청춘들을 주인공으로 삼는 하이틴 호러? 이 세상 모든 이가 다 청춘의 상태에 고정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누군가는 그보다 어려 아직 청춘을 맛보지 못했을 거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미 청춘을 초월해 그러한 감성에 공감키 어려울 테니.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라면 그 누구나, 육체는 갖고 있다. 그러니 바디 호러의 등장은 영화 역사에서 필연적인 것이었고 또 필요한 것이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브스턴스>의 메시지에는 어쩔 수 없이 고루한 측면이 있다. 나이듦에 대해 아쉬워하는 주인공과 젊음에 대한 욕망을 부채질하는 그 주변 인물과 상황들. 그러다 정작 아름다움과 젊음을 얻고 나서는 또 끝없는 욕망의 굴레에 빠져 "좀 더..."를 내뱉는 모습. 그리고 결국엔 현재와 지금의 아름다움에 만족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메시지까지. 게다가 하필 그 공간적 배경을 또 할리우드가 있는 LA로 설정함으로써, 쇼 비즈니스 업계 전반에 이젠 마치 당연하다는 듯 서린 루키즘을 굳이 또 꺼내와 그 주 재료로 삼는다. 그러니 <서브스턴스>의 메시지를 보며 고루하다 느끼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그만큼은 새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고 넘어간다면 영화에 또 다른 길이 열린다. 단순히 어순을 바꾼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건데, 예를 들면 "엄청 강렬한 영화지만 메시지가 진부하네"도 당연히 가능하지만 그 반대 역시 가능하다는 거다. "메시지가 엄청 진부한 영화지만, 이렇게까지 강렬히 만들어버리니 무시할 수가 없네." 구태여 뻔한 소리 하고 싶다고? 그럼 노랫말로 하든 소리를 지르든 하면 된다. 그래야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갖지. 개인적으로는 <서브스턴스>가 딱 그런 영화처럼 느껴졌다. 이 영화는 소리를 지르다 노래를 부르곤 이내 혼자 낄낄 거리는 경지에까지 간다. 이 정도의 정성이라면 고루한 훈계라도 환영이다.


그만큼 촬영과 편집 등을 위시한 영화의 기술적 측면이 뛰어나고, 미술과 분장 등 미적 측면 또한 아이디어는 물론 그 구현력 역시 수준 높다. 여기에 극중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개발하고 제공한 회사의 정체는 일종의 맥거핀처럼 남겨둠으로써 호기심을 자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이야기에 간결성까지 부여했다. <서브스턴스>는 다른 곁가지 이야기들에 전혀 관심이 없다. 이 영화는 그저 관객들을 주인공 안으로 자꾸만 끌어들이는 데에 모든 걸 쏟아붓는다. 영화 속에서 시점 쇼트가 유난히 자주, 또 잘 활용되고 있는 데엔 그런 이유가 있다. 심지어 엘리자베스 스파클에게 특별한 사연을 붙여주지도 않았다. 방송 촬영 중 엄청난 실수를 했다거나 또는 업계 거물들 사이에서 줄을 잘못 섰다거나 하는 등의 특별한 사연이 그녀에겐 전무하다. 그녀는 그저 늙었기에 수모를 당한다. 비록 왕년의 스타로 묘사되고 있기는 하나, 엘리자베스 스파클의 이야기에 평범한 우리들이 이토록 쉬이 몰입할 수 있었던 건 그같은 간결함이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데미 무어는 여전히 아름다운 배우지만, 솔직히 말해 왕년의 스타로서 서서히 잊혀지고 있던 게 사실이다. <서브스턴스>는 <더 레슬러>가 미키 루크를 통해, 또 <더 웨일>이 브랜든 프레이저를 통해 그랬듯 데미 무어를 캐스팅함으로써 영화 바깥에 존재하던 그녀의 이미지와 사연들까지 싹 다 동원해와 이야기에 깊이를 더해냈다. 어쩌면 데미 무어 평생 최고의 연기. 그리고 굉장히 피상적인 존재로서 영화에 동원되고 있는 마가렛 퀄리는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 그리고 몰입감 있는 연기를 통해 그 소임을 다 해냈고. 아-, 한 명 더 이야기하자면 데니스 퀘이드도 언급해야할 것이다. 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실은 그 사이 은퇴라도 한 것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의 능청맞으면서도 얄궂은 동시에 또 혐오스런 연기가, 마치 맞춤 양복처럼 재단이라도 한 것인지 그에 딱 맞춰진 촬영과 편집을 통해 더 폭발성을 띈다. 사실상 거의 2인극에 가까운 작품임에도 앙상블이 뛰어나게 느껴지는 건 각 배우들의 역량과 그를 활용한 감독의 전략 덕분이다.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전개. 누가 봐도 곧 어겨질 게 뻔한 서브스턴스의 규칙들이 짐짓 바보처럼 느껴지는 주인공에 의해 하나둘씩 깨지고 있는 걸 쭉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환장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걸 그저 마구 손가락질하며 비웃을 수 없는 건, 그런 상황 속에 던져지게 될 경우 나조차 스스로의 행동을 쉽게 가늠할래야 가늠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아름다움과 젊음에 대한 욕망을 제아무리 경계해야 한다 말하지만 그건 본능인 걸 어쩌겠는가. <서브스턴스>를 보며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또 낄낄 거리다가도, 이내 다시 깊은 체념의 한숨을 속으로 내쉴 수밖에 없었다. 


tempImageXZ4fHP.heic <서브스턴스> / 코랄리 파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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