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1승>

by CINEKOON


학창 시절, 배구 유망주로서 잠시 단꿈도 꾸었었지만 당시 팀의 감독이 그를 버리고 다른 팀으로 갔던 탓에 이후 줄곧 경력 내리막을 맞게 된 우진. 선수 생활도 변변치 않게 끝나고, 그렇다고 감독이나 교육자로서 성과를 본 것도 아니다. 그나마 지금하고 있던 유소년 대상 배구 학원에도 곳곳에 빨간 딱지가 붙은 지경. 여기다 이혼까지 했고 그나마 있는 하나뿐인 딸과의 관계 역시 소원하니, 이쯤되면 누군가가 그를 두고 인생의 패배자라 칭하며 손가락질하는 것도 차마 막을 수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런 우진의 모습이 여간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대기업 대오그룹의 재벌 2세 후계자 정원은 핑크스톰이라는 여자 배구팀을 사들여 구단주가 된 뒤, 그런 초라한 모습의 우진을 팀의 감독으로 선임한다. 대체 왜? 심지어 우진까지 포함해 세상 모두가 다 의문을 표하는 와중, 핑크스톰의 새로운 구단주 정원은 말한다. "그냥 이기는 거 재미없잖아요. 사람들은 루저의 도전과 패기를 보고 싶은 거예요." 정원의 한마디로 삽시간에 루저 낙인이 찍혀버린 우진은 그렇게 의문의 1패를 당하고.


그 종목이 무엇이든 간에, 스포츠 장르 영화에서 루저 주인공들의 좌충우돌 성장기란 전개는 참으로 왕도적일 수밖에. 그리고 그같은 왕도적 공식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는 <1승>은 그래서 다소간에 전형적이고 뻔해 보인다. 영화가 시작할 무렵부터 끝날 때까지 그 모든 과정들이 하나같이 다 예상되고 예측되는 불상사. 여기에 팀내 여러 갈등들과 더불어 주인공 우진의 딜레마 등이 재미나게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그 모든 요소들을 아주 깊숙하게 다루지는 않음으로써 심어둔 가능성들의 씨앗에 비해선 영화가 다소 싱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예컨대 토스와 패스는 무난히 잘하는데 결정적 스파이크는 해내지 못하는 배구 경기랄까.


다만 스포츠 장르 영화로써, <1승>의 그러한 점은 좋았다. 우진을 포함해 <1승>의 주인공들은 차츰 성장해나가지 않았다는 거. 그와 그녀들은 각각 감독과 선수들로서 이미 재능이 충만한 상태였다. 경기들 내내 죽 쑤다가 술 한 잔 마시고 그 술기운에 갑자기 엄청난 리더십과 전략을 펼쳐내보이는 우진. 그리고 딱히 훈련 강도를 더 높였다거나 한 것이 아님에도 높은 수준의 배구 실력이 갑자기 드러나는 선수들. 그러니까 이들은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을지언정, 영화 초반부에도 딱히 미운 오리 새끼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와 그녀들은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실력들을 그동안은 왜 감춰왔던 것인가? 핑크스톰은 그동안 왜 꼴찌 신세를 면할 수 없었나?


그 옛날, 거북이는 빙고를 외치며 말했다.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다고. 생각해보면 우진은 핑크스톰의 감독으로 부임할 무렵부터 이 팀에 딱히 애정이 있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핑크스톰을 대학 배구팀의 감독 자리로 넘어가기 위한 징검다리쯤으로만 치부했었다. 그리고 그건 핑크스톰의 선수들도 마찬가지. 각각의 사연은 다 달랐지만, 그녀들에겐 배구를 열심히 해야한단 동기 부여 자체가 안 되어 있지 않았나. 그러다 매번 무시만 받던 우진이 술김에 마음을 고쳐먹으면서, 핑크스톰은 리그내에서 무시할 수 없는 활약을 세워나가기 시작하고.


항상 다음을 생각하는 마음들이 어쩌면 우리를 망친다. '어차피 여기 뼈를 묻을 것도 아니잖아', '그거 하기 전까지만 이거 하자' 등의 마음들. 지금 이 순간을 도착지가 아닌 그저 기착지로만 여기는 마음들. 그런 마음들이 우리의 진심과 사력을 자꾸만 뒤로 미루게끔 만든다. 허나 내일의 미래는 하루하루의 오늘 속 지금들을 통해서만 도래할 수 있다. 어쩌면 바로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 '1승'이고 핑크스톰의 젊은 구단주 정원도 자꾸만 그를 강조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저멀리 언젠가의 우승이 아니라, 진심과 사력만 다한다면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거머쥘 수 있을 1승.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극장 문을 나서며 거북이의 노래를 한 번 더 흥얼거렸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봐요~ 힘들다 불평하지만 말고~ 사는 게 고생이라 하지만~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tempImageHzab5g.heic <1승> / 신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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