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

<대부>

by CINEKOON

소위 '뉴 아메리칸 시네마' 또는'뉴 할리우드'라 불리게 된 20세기 중후반 미국 영화의 새로운 물결. 그 역시도 대개의 다른 고전들이 그렇듯이, 지나치게 신화화된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 고전이라는 개념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신화화된 오해를 풀고 싶다. 고전을 안 본 사람들은 풍문으로만 듣던 그 작품들이 너무나도 위대한 나머지, 영화적 재미는 없지만 예술적 성취가 뛰어나거나 대단히 철학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겠거니 등으로 오해를 한다. 하지만 틀렸다. 물론 모든 고전 작품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그 긴 생명력을 연장하고 있는 대부분의 고전들은 그냥 영화적으로 존나 재미있기 때문에 여전히 살아남은 것에 가깝다. <대부> 역시 마찬가지. 지금에 와서야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 1순위 정도로 내내 언급되고 있지만, 개봉 당시였던 1972년엔 메시지나 테크닉 다 빼고 봐도 그냥 장르적으로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영화라서 흥행했던 거라고 본다. 그렇게 일단 유명해지면 그 뒤 해석의 여지나 살은 모두가 달려들어 이어붙이는 거고.


그러니까 이 작품에 대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이 영화가 빌어먹게 재미있다는 점이다. 영화 역사에 남을 명화이기도 하지만, 이후 누아르 또는 갱스터 장르 영화들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대중적 장르 영화이기도 하다는 것. 물론 <대부> 이전에도 훌륭한 누아르 갱스터 영화들은 존재했다. 다만 <대부>가 그 모든 걸 집대성해 대중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방점 찍어냈다 보면 편하다.


'나를 이스마엘이라 부르라'나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에 필적할 만한 시네마틱 도입부, "저는 미국을 믿습니다." 대부 돈 꼴레오네를 찾은 보나세라의 이 대사로 시작된 <대부>는 그 도입부 대사에서부터 이것이 미국의 이야기임을 공공연하게 천명한다. 그 시작부터 이민 국가였던 미국은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넘어온 돈 꼴레오네로 바꿔 묘사되고, 때문에 꼴레오네 가문이 벌이는 모든 짓들, 모든 말들은 모두 미국의 그것으로 치환된다. 가족 같은 끈끈한 정서를 뿌리에 두고 나름대론 멋스럽게 입었지만 동시기 스콜세지의 영화들이 표현했던 것처럼 결국엔 다 양아치 깡패들일 뿐인 꼴레오네 패밀리. 적에게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대부라 칭하는 일종의 우방들에게조차 언젠가 그 빚을 받아내겠다 말하는 꼴레오네의 말은 흡사 적국과 우방국을 대하는 미국을 떠올리게 만든다.


미국에 대한 은유까지 굳이 가지 않더라도, 꼴레오네 가문의 네 남매를 통해 전시되는 몰락과 타락의 서사는 그 자체로 충분히 흥미진진하다. 특히 마이클 꼴레오네. 그는 언제나 패밀리 바깥의 사람이었고, 범죄와는 동 떨어져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패밀리 수장이자 그의 아버지인 돈 꼴레오네조차도 셋째 아들인 마이클만은 범죄자의 길을 걷지 않게 하려 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마이클은 패밀리의 희망이자, 돈 꼴레오네의 희망이었다. 애초에 돈 꼴레오네도 그에게 직접 말하지 않나, 상원의원 같은 유력 정치인이 되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하지만 물려받은 피에는 힘이 있지 않은가. 자신과 가족은 완전히 다르다며 구분짓던, 자신의 연인에게 잉그리드 버드만보다 당신이 더 예쁘다고 말하던 마이클은 그 누구보다도 더 패밀리스럽고 꼴레오네스러운 면모로 모두를 놀래키며 점차 변해간다. 병문안을 갔던 상황 속에서 재빨리 판단하곤 암살자들을 피해 아버지의 병상을 옮겨낸다. 몰래 숨어 지켜보다가 아버지의 병문안을 온 제빵사를 패밀리의 일원으로 둔갑시켜 또 암살자들을 막아낸다. 심지어 상황이 지나간 직후, 그 제빵사는 겁이 나 손을 덜덜 떨며 담배를 그러쥐는 반면 마이클은 너무도 태연하게 라이터를 켜 담뱃불을 붙여주기까지. 애시당초 이런 인물이었음이 드러나니, 이후 벌어지는 솔로초와 경찰서장 암살도 무리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마이클은 정체성을 결국 깨우친 사람이다. 정직한 미국 시민이 되기 위해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대학으로 가 그저 공부를 열심히 할 뿐이었던 마이클. 그렇게 어떡해서든 패밀리의 길로부터 멀어지려 했던 그는 돌고 돌아 어쩔 수 없이 다시 패밀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영화가 결말에 이르러 보여주는 것은 마이클 앞에서 굳게 닫히는 문. 그의 정체성엔 더 이상 변화할 여지가 없다는 걸 은연 중 보여주는 그 닫힌 문. 그 결말에 이르러 <대부>는 제아무리 발버둥쳐봤자 벗어날 수 없다는 운명의 족쇄를 강렬하게 채운다.


보철물을 착용해 얼굴 생김새까지 변화시킨 말론 브란도부터, 그 유지를 이어받아 패밀리의 다음 보스가 되는 마이클 역할의 알 파치노까지. 고전적 얼굴들의 강렬한 연기가 다채롭다. 콘트라스트를 강하게 강조해 만들어낸 시리즈 특유의 누아르적 비주얼도 아름답기 그지없고. 내용적으로도 재밌지만 이렇듯 연기나 촬영 등, 테크닉적 측면에서도 여러모로 뜯어볼 구석이 많은 영화.


이어지는 2편은 무척이나 훌륭하고, 시리즈를 닫은 3편조차 크게 나쁠 것 없이 괜찮은 영화지만 그럼에도 자기완결성을 갖춘 1편의 담백한 맛이 제일 같기도. 좋은 책은 곁에 두고 인생 전반에 걸쳐 읽고 또 읽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대부>는 좋은 영화다. 곁에 두고 인생 전반에 걸쳐 보고 또 보고 싶다. 


tempImage6NKPR9.heic <대부>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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