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잊어버리라 하지마

<차이나타운>

by CINEKOON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설탐정 제이크에게 한 여인이 찾아와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 듯한 남편의 뒷조사를 의뢰한다. 그렇게 시작된 제이크의 미행. 처음엔 그냥 흔하디 흔한 불륜 사건인 줄로만 알았다. 정말로 그 남자, 홀리스 멀웨이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모습 또한 사진으로 찍었고 말이다. 와우, 그럼 이제 끝난 것 아닙니까? 하지만 알고보니 홀리스의 아내랍시고 제이크를 찾아왔던 의뢰인은 가짜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홀리스 멀웨이는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판국인가. 그러면서 제이크는 자신이 과거 경찰이던 시절 주 근무지였던 차이나타운을 떠올린다. 치외법권 인외마경이었던 그 때의 차이나타운을.


사건이 이중 삼중으로 얽혀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수사물이라 할 만하다. 처음엔 피해자 홀리스 멀웨이가 LA의 수도국장이었다는 점, 그리고 사건당시 LA가 심각한 물 부족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는 점 등으로 말미암아 권력가 내지는 국가기관 사이 이해관계 충돌로 인한 살인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사건을 파면 팔수록 이상한 점들이 계속 쏟아져나온다. 특히 홀리스의 진짜 아내였던 에블린 멀웨이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그 시절 팜므파탈이잖아. 게다가 이 여자의 친부가 LA의 유명 갑부 노아 크로스네? 또 좀 훑다보니 노아 크로스는 자신의 사위 홀리스와 생전 그닥 사이가 좋았던 것 같지 않고... 그러다 <차이나타운>은 어느새 한 가문의 징그러운 가족사로까지 관객들을 몰고간다. 왜 잘 쓴 각본이라고들 하는지 절로 이해가 가는 전개.


신기한 게, 영화내내 주인공이랍시고 설쳐대는 건 제이크이건만 결국 영화를 끝까지 보고나면 가장 마음을 주게 되는 게 에블린이라는 점이다. 처음엔 그냥 고전적인 팜므파탈 역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겠거니 싶었는데 알고보니 이 전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희생자였어. 아버지에게 강간 당하고 그렇게 낳은 딸마저 또 제 할아버지에게 강간 당하게 생긴 미친 비극. 지금이야 <올드 보이> 같은 영화도 있으니 아주 충격적인 전개라곤 할 수 없을 텐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1974년 영화였다. 1974년에 에블린의 "그 아이는 내 여동생이면서 딸이예요!"라는 대사를 처음으로 들었던 당시 관객들은 망치로 머리 한 대 맞은 듯 그저 멍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제목은 '차이나타운'이면서 정작 영화는 차이나타운을 주 무대로 삼지 않는다. 결말 장면에서 잠깐 나오는 정도. 그외 대부분은 그저 제이크의 기억과 대사들 안에서만 존재하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일종의 치외법권이자 인외마경으로써. 근데 따지고 보면 진짜 치외법권 인외마경은 크로스 가문 그 자체였다. 그러니까 이 영화 속 진짜 차이나타운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권력과 폭력에 그저 당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의 굴레, 크로스 가문의 가족사였던 것.


그래도 용기를 내 결국 이 치외법권 인외마경을 탈출하는가 싶었는데 에블린은 경찰들이 쏜 총알에 맞아 비명도 지르지 못한채 사망하고, 그 옆에 있던 그녀의 동생이자 딸인 캐서린은 결국 자신의 할아버지이자 아버지, 그리고 아마도 곧 남편이 되기도 할 노아 크로스에 의해 강제적으로 거둬진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비극 앞에서 제이크는 주인공으로서 무어라도 해보려 하지만, 자신에게 여기는 차이나타운이니 그냥 잊어버리란 동료의 말에 끝내 그 역시도 굴복하고야 만다.


압도적인 권력과 부패한 체계 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체념과 달관 뿐이라는 영화의 비정한 엔딩이 너무나도 차갑다. 그리고 그 차가움에 정신을 번뜩 차리게 된다. 영화의 말이 맞지. 압도적인 권력과 부패한 체계 앞에서 우리가 무얼 할 수 있겠어... 하지만 영화가 그를 비극으로 그리고 있으니, 우린 또 그걸 반면교사로써도 활용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차이나타운>을 보며 생각했다. 세상에 그냥 잊어버릴 수 있는 일이란 없고 그냥 잊어버려야만 넘어갈 수 있는 공간은 없다고. 우리 모두 그들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고 노력하자. 당연히 제이크 기티스처럼 떠나지 않기를, 하물며 노아 크로스처럼 되지 않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에블린 멀웨이처럼 남지 않기를. 


tempImagegYlTeQ.heic <차이나타운> / 로만 폴란스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 영화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