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미래

<어쩔수가없다>

by CINEKOON


해고 당하는 것을 두고 미국에서는 도끼질한다고 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모가지 날아간다고 하니, 도끼질이나 날아가는 모가지나 둘 다 무섭고 잔혹하기란 매한가지이건만 어째 우리나라의 표현이 더 극단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인가. '도끼질'이란 표현은 머리 뿐만 아니라 수족을 자를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내포하지만, '모가지 날아간다'는 표현은 얄짤없이 그 머리만을 적확하게 노린다는 의미이기에 더 그런 듯하다. 그렇듯 직장을 잃고 돈 나올 구멍이 막힌다는 것은 한국에서 머리가 날아가는 일임에 진배없다.


영화는 그렇게 모가지 잘린 만수의 어두워서 우습고, 또 우스워서 서글픈 여정을 따라간다. 그래도 이 제지회사에서 은퇴까지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맞닥뜨린 해고.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같은 자식들, 그리고 진짜 강아지 두 마리가 모두 만수만을 바라보고 있다. 어쩌지, 어쩌지. 그러던 만수가 느닷없이 떠올린 아이디어, '나와 동급인 경쟁자들의 모가지를 내가 진짜로 직접 다 따버린다면 어떨까?'그렇게 만수가 주최하고, 만수가 진행하는 잔혹한 예선 토너먼트. 어쩔 수가 없이 하는 일이라고 자꾸 되뇌이지만, 막상 마주친 경쟁자들 삶의 면면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만수는 중간중간 망설이게도 된다.


박찬욱 영화답게 사람이 차례로 죽어나가고, 그 시신의 뒷처리 역시 기괴하기 이를데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박찬욱 영화들 중 가장 웃기다. <헤어질 결심>이 박찬욱만의 멜로 영화였다면,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스타일의 진정한 블랙 코미디다. 아마 박찬욱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웃은 영화가 아녔을까. 그리고 그 웃음의 대부분은 공감가능한 솔직함에서 온다. 우리 체면따위 생각하지 말고 이 영화를 보기로 하자. 그러다보면 나보다 나아보이는 경쟁자들 목을 직접 내가 다 따는 거, 아내를 두고 나보다 더 나아보이는 연하남에게 질투하는 거, 원하는 걸 얻어내기 위해 끔찍하게 싫은 상대 앞에서 내 가슴과 톡 튀어나온 유두를 보란듯이 전시하는 거 등등. 우리가 다 직접 해보지는 못했을지언정 한 번쯤은 떠올려본 옵션들이 아녔을까. 그런데 이 영화 속 인물들은 그걸 다 한다. 체면따위 다 내려두고서, 어쩔 수가 없다는 체념으로 그 빈자리를 채워나가며 행하는 삶의 웃픈 행위들. 그래서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영화들 중 가장 솔직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본 영화이건만, 박찬욱만의 스타일이 영화를 약진시키면서도 또 동시에 발목을 잡는 인상이다. 죽인 이의 시체를 분재 관리하는 것마냥 굵은 철사로 꼬아 기괴하게 압축시키는 이미지나 조용필의 노래에 맞춰 세 사람이 슬랩스틱 아닌 슬랩스틱을 선보이는 씬 모두가 박찬욱답게 훌륭하나, 제지회사내에서 잔뼈굵은 인물이었다하더라도 만수가 살고 있는 2층 주택은 일반 관객들의 공감에서 저멀리로 떠내려간다. 그리고 그건 이성민이 연기한 범모의 LP룸도 마찬가지고.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나 행동에는 일견 공감이 가지만 그 '영화적인' 프로덕션 디자인 때문에 군데군데에선 또 소격효과가.


사실 거의 끄트머리까지는 박찬욱 영화치고도 평작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결말. 바로 그 결말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씁쓸함을 느끼며 이 영화를 극장 바깥으로까지 마음에 품고 나갈 수 있었다. 흡사 <기생충>과 <미키 17>이 떠오르는 그 결말말이다. 갖은 고생 끝에 만수는 경쟁자들을 다 제거하고 큰 제지회사의 유일한 관리직으로 고용된다. 유일한 관리직으로서 그가 관리하는 것은 그 밑의 다른 인간 노동자들이 아닌 AI 등으로 무장한 첨단 자동화 공정이었다. 그 최첨단의 한 가운데에 선 만수는 마치 모든 걸 이루었노라-라는 마음가짐으로 커다란 쾌감을 내지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미래를 이미 알고 있다. AI가 발전하고 자동화 공정이 더 세밀화될수록, 결국엔 만수 역시 언젠가 재해고되리라. 그 때엔 그 제지회사의 높으신 분들이 다시 한 번 만수를 앞에 불러앉혀놓고 말하리라, "어쩔 수가 없다"고.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 중 제지회사내 근무이력을 가진 이는 아마 5%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제지회사내 사정을 잘 모른다고 그 나머지 95%가 <어쩔수가없다>의 이 결말에 공감 못하는 건 아니리라. <어쩔수가없다>의 결말이 조준하고 있는 건 제지회사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산업들이 AI의 등장으로 재편되고 있는 작금의 이 상황에서, 영화를 보던 우리 대부분은 그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스스로를 만수에게 겹쳐보고 있지 않았을까. 영화가 너무 씁쓸하다. 쓰라리고 쓸쓸하다. 


tempImage2zyyaO.heic <어쩔수가없다> / 박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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